[인터뷰] '체로키 파일' 폭로했던 팀 샤록 기자, 광주를 찾다
[오마이뉴스] 글: 유성애, 편집: 김지현 | 16.05.28 12:00 | 최종 업데이트 16.05.28 17:45
"아마 박근혜가 이 기사에 대해 불평할 지도 모르겠네요(Maybe President Park Geun-hye would complain about it.)"
지난 26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팀 샤록(Tim Shorrock, 65) 기자가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미국 탐사기자인 그는 지난 14일, 광주광역시와 광주전남기자협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팀 샤록 기자는 과거 5·18과 관련한 미국 국무부의 비밀문건인 '체로키(Cherokee) 파일'을 입수·폭로한 기자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5월 광주 명예시민이 됐다. 그는 또 지난해 말,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한국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기사를 미국 <더 네이션>지에 썼다가 뉴욕 총영사관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박정희 비판 기사, 누군가의 심기 건드렸다")
그는 지난 24일 서울대병원에 찾아가,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는 농민 백남기씨와 그 가족을 만났으며 이를 기사로 작성 중이라고 했다. 팀 샤록은 "알고 보니 (백씨는) 1980년 학생 때 체포되는 등 일생을 활동가로 산 분(lifelong activist)"이라면서 "물대포 쏜 영상도 봤다, 정부가 과잉대응(overreaction)을 했으며 여기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광주시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팀샤록 기자가 지난24일 서울대병원을 찾아 백도라지씨(농민 백남기씨 큰딸)와 만났다. ⓒ 팀샤록 페이스북
▲ 2015년 12월 팀샤록 기자가 <더 네이션>지에 썼다가 뉴욕 총영사관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기사. "독재자의 딸, 노동자를 탄압하다("In South Korea, a Dictator's Daughter Cracks Down on Labor)" ⓒ 더 네이션 화면갈무리
팀 샤록은 이번 방문 때 다른 외신기자들과 함께 5.18 추모기념식에도 참석했다. 박근혜가 3년째 추모식에 불참한 데 대한 생각을 묻자, 팀 샤록은 "정부가 5.18 정신을 약화시키고 이를 평가절하 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는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논란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과거) 광주 시민군이 갇혔던 감옥에도 직접 가봤는데 고문 등 그렇게 참혹한 만행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라면서 "정부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광주 시민을 기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두환이 최근 '발포 명령'을 부인한 것에 대해서는 "비상 계엄령을 명령한 것도 그였고, 당시 군대도 그의 아래에 있었다"라면서 전두환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Kwangju Diary)이 미국 내에서 절판됐으나, 쉽게 나서는 주체가 없어 재출판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 야당의원들이 이에 관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5.18 비밀문서 폭로' 미국인 "수치스럽다") 팀 샤록은 이와 관련 "역사적으로 중요한 책"이라며 "재출판이 빨리 되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 팀샤록 기자가 과거 입수해 폭로한 '체로키 파일' 중 일부. 팀샤록기자 블로그(timshorrock.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 출처 팀샤록닷컴
팀 샤록이 공개한 문서(pdf)에 따르면 1980년 5월 2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책심의위원회' 회의 결론에는 "한국 당국의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한 광주 질서 회복(the first priority is the restoration of order in Kwangju by the Korean authorities with the minimum use of force necessary)"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여기에는 "광주 상황에 대해 지금껏 미국이 해온 것 이상의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 중재를 권고했으나, 질서 회복을 위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는 않는다(we have counselled moderation, but have not ruled out the use of force, should the Koreans need to employ it to restore order)"는 내용도 있었다.
다음은 팀 샤록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을 취재해 세계에 알린 외신기자들이 지난 16일 오전 광주를 찾아 옛 전남도청을 리모델링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을 둘러보고 있댜. 왼쪽부터 팀 셔록, 브래들리 마틴, 도널드 커크, 노만 소프. ⓒ 연합뉴스
- 이번에 5.18 관련해 한국에 초청됐다. 참석 소감과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우 좋았다. 외신 기자들과 함께 초청받아 온 뒤 많은 일을 같이 했다. 5.18 기념식에도 함께 참석했고, 광주전남기자협회 초청으로 대학생들과 만나기도 했다. 특히 5.18 당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싸웠던, 구 전남도청 앞에 있는 종(민주의 종 - 기자 주)을 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기억에 남는다.
외신기자들과 함께 1980년 당시 광주 시민군들이 갇혔던 감옥에 가보기도 했다. 계엄군들이 당시 사람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장소에서, 실제 생존자 3명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서 우리에게 당시 상황을 증언해줬다. 어떻게 고문받았는지를 시연하며 보여주기도 했다."
- 시민군 구금과 고문 등의 내용을 이전에는 몰랐나.
"예전에도 알긴 했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1980년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미국 정부는 한국 계엄군이 시민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군대가 한 도시(광주)를 점령하더라도 평화로울 거라고 봤다고 했다."
- 실제로 당시 미국 정부가 그런 참상을 몰랐으리라고 생각하나?
"확실히는 나도 알 수 없다. 아마 미국 정부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군 감시 아래 있었으므로, 관련해서 분명 어떤 정보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백남기씨 딸 백도라지씨도 직접 만났다고 하던데.
"백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에 갔고, 큰딸(백도라지씨)과 만나서 두 시간 정도 얘기했다. 백씨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는 잘 몰랐다. 알고 보니 일생을 활동가로 산 분이시더라(lifelong activist). 박정희 시대에 활동했고, 5.18 때는 체포된 적도 있었다. 그후에 농민이 된 것이다. 그분이 평소 가톨릭 농민회에서 활동했는데, 광주 참상이 담긴 비디오를 동네 주민들에게 와서 보라며 자주 보여줬다고 한다.
딸과 함께 그가 누워있는 곳(중환자실)에 들어가 직접 백씨를 봤다. 가족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매우 슬펐다. 당시 영상도 나중에 봤는데, 정말 강한 물대포를 앞에서 직격으로 쏘더라. 게다가 화학약품이 섞인 물이었다. 나는 정부가 당시 과잉대응(overreaction)을 했고, 따라서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입 꽉 다문 황교안 국무총리 지난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및 제창 거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가운데, 황교안 국무총리(사진 가운데)는 일어나긴 했지만 입을 다문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고 있다. ⓒ 권우성
- 박근혜가 5.18 추모기념식에 3년째 불참해 논란이 됐다.
"알고 있다. 당시 국무총리가 추모기념식에 대신 왔었다. 옆에서 봤는데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 저는 이런 게 한국 정부가 5.18 광주 정신을 약화시키고 이를 평가절하 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관련한 논란도 그렇다. 기념식에서 총리는 이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제가 보니 5.18 유가족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매우 화나 있었고, 결국 (박승춘) 보훈처장은 아예 항의를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관련 논란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그런데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좀 우스워 보인다. 그 곡을 지은 사람이 나중에 북한을 갔다는 이유로, '임'을 김일성으로 해석하는 등 무슨 북한과 관련시키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5·18 당시 광주시민을 기리기 위해서, 광주 정신을 기억하려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북한을 위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하는데, (제가 정보공개 청구한) 미국 문서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당시 미국 감시 하에 한반도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북한 군대가 있었으면 당연히 알았을 텐데 이를 전혀 몰랐던 것만 봐도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지만원씨 책을 일부분 읽어봤다. 외신기자들이 다 같이 봤다. 거기엔 외신기자 브래들리 마틴을 출처로 해서 '브래들리 마틴에 따르면 윤상원(5·18 시민군 대변인)은 자살했다고 한다'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윤상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브래들리 마틴은 자신은 전혀 그런 걸 쓴 적이 없다고 했다."
▲ 광주시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팀 샤록(Tim Shorrock) 외신기자와 26일 만났다. 그는 과거 '체로키파일'을 폭로해 알려졌다. 사진은 작년 5월 국회 정론관에서 인사하는 팀샤록 기자의 모습. ⓒ 남소연
- 5.18과 관련, 전두환은 당시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얼굴 찡그리며) 당연히 전두환이 책임이 있다. 계엄령을 명령한 것도 그였고. 당시 군대도 그의 아래에 있었다. 잔혹한 사람이었다(he was a brutal man). 훗날 유죄 판결도 받았고 하니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당시 공수부대들은 원래 북한군을 상대하도록, 그리고 남한 국민을 보호하려 훈련한 건데 오히려 자국 시민을 죽였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절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라크전 뒤에 있었던 딕 체니(Dick Cheney, 전 부통령) 또한 그렇다. 포로 고문 등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트럼프도 (테러리스트 관련) 물 고문은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등, 실상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 광주 5·18 민주화 항쟁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넘어 넘어) 영문판 재출판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맞다. 역사적으로 정말 중요한 책인 만큼 재출판이 빨리 되길 바란다. 미국에도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는 <넘어 넘어> 책 영문판에 '워싱턴의 시각'을 짧게 실었다. 출판이 왜 진전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재출간을 해야 한다고 본다."
- 5.18 관련해 모은 미국 기밀문서를 모두 광주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이번 방문 때 윤장현 광주시장과 만났다. 제가 모은 자료를 기부하기로 했다. 자세한 사항은 협의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1~2년 내로 진행될 걸로 본다. 여기에는 광주뿐 아니라, 1980년대 박정희 암살 때부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 등이 폭넓게 담겨있다. 원본을 광주시에 주고 복사본을 제가 가질 예정이다.
5.18 관련 아카이브를 광주가 만들었는데, 미국의 FOIA 문서(정보공개법에 따라 기밀 해제된 문서)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광주 인권정책 담당과 주로 이야기했고, 이번에 윤 시장을 만났다. 윤 시장이 매우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저는 이 문서를 광주에서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외신 기자로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게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힘을 합쳐 이뤄낸 사건이다. 여기에 제가 굉장히 깊게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한국과 관련된 기사들을 쓸 예정이다.
이를 알리는 건 한국에도 미국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북한에 관심을 가질 뿐, 남한에 대해서는 매우 적은 이해를 하고 있다. 남한이 얼마나 역동적인 나라인지, 이 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는지도 제대로 잘 모른다. 미국 국민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과거 박근혜 비판 기사를 썼다가 외압 논란이 인 적 있는데.
"(허탈하게 웃으며) 뉴욕 총영사관은 그 전까지는 논란이 없다가, 제 기사가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하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마도 기사 중에서 제가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한 부분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박근혜 시대가 박정희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제 기사를 해석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저는 그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언론의 자유도 있고, 민주주의도 이룩했지 않나. 박근혜가 과거 박정희 정권 같은 어둠의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물론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렇다. 그 사람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죄 등으로 들어갔는데 사실 그건 잡아들이려는 구실에 불과하다. 과거로 돌아간 건 아니지만 이렇듯 문제는 여전하다. 그래도 언론이 이를 계속 알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한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광주 온 외신기자 "전두환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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