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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뒤 '이동의 자유' 제한한 경찰…법원서 망신

집회 뒤 '이동의 자유' 제한한 경찰…법원서 망신
[경향신문] 박용하 기자 | 입력 : 2016.09.05 06:00:00 | 수정 : 2016.09.05 06:00:57


‘신고 범위를 벗어난다’며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의 이동까지 막은 경찰의 행태는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집회가 끝나면 늘 ‘즉각 해산’을 요구하던 경찰의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김기영 부장판사)는 2013년 ‘쌍용차 국정조사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던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47) 등 2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정부는 정 씨 등 2명과 이들이 지정한 당시 집회참가자 42명에게 각 100만~200만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

▲ 【서울=뉴시스】 박찬수 인턴기자 =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청계광장 앞에서 경찰이 시민을 향해 최루액을 쏘고 있다. 이날 몸싸움은 쌍용차 국정조사 촉구 범국민대회 참석자들이 청계광장 인근에서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던 중 경찰이 길을 막자 일어났다.


앞서 정 씨 등은 2013년 8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가 끝난 뒤 청계천 광교사거리에서 인도를 이용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려 했다. 장애인단체의 문화제에 참가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행진은 애초 신고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가로막았고, 항의하는 이들에게 최루액을 발사했다. 정 씨 등이 소송을 내자 정부는 “신고 없는 행진은 불법집회에 해당하며, 최루액 분사도 그 방법에 있어 합리성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항소심은 달랐다. 재판부는 “시위가 신고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도 애초 신고 내용과 동일성이 유지되는 한 신고를 안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단지 신고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저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참가자들이 광교에서 일정 시간 정리 집회를 가졌던 점, 사회자가 집회 종료를 전제로 장애인 문화제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점에 비춰 당시 시민들의 행진은 무단 집회가 아니라고 봤다.

한편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경찰의 ‘집회의 자유’ 침해 행위에 대해 비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은 수년 전부터 미신고 또는 신고범위 일탈 집회의 경우 경찰이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한 판시를 거듭해 왔고, 헌법재판소 역시 ‘통행제지와 같은 전면적 통제는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며 “하지만 이 사건 집회에서 경찰은 통행 제지 기준 등에 대해 사전에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경찰은 현재 법원이 언급한 공권력 발동의 적법 요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주요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미흡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출처  [단독] 집회 뒤 '이동의 자유' 제한한 경찰…법원서 망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