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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천연잔디, 알고 보니 인조잔디 반값도 안 돼

천연잔디, 알고 보니 인조잔디 반값도 안 돼
그런데 왜 인조잔디만 고집, “어렵다는, 비싸다는 선입견에 지레 겁먹어서”
[오마이뉴스] 이민선 | 16.09.04 20:55 | 최종 업데이트 16.09.04 20:55


▲ 시흥시 마유로에 있는 천연잔디 구장, ‘맨땅에 그린’ ⓒ 이민선

인조잔디는 천연잔디의 대체품이었다. 굉장히 비싸다고 알려진 천연잔디 대신 ‘아쉽지만’ 선택한 게 인조잔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천연잔디가 인조잔디의 반값도 안 됐다. 더 많은 기술이 개발되고 더 많은 잔디 인프라가 생기면 더 내려갈 수도 있다고 한다.

믿기 힘든 말이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말이다. 잔디 축구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이미 개방했고, 잔디 구장을 시공·관리할 사회적 기업까지 설립한 지방자치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치단체는, 잔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잔디 농부를 양성하기 위한 ‘잔디 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하는 곳은 경기도 시흥시다. 지난 30일 시흥시를 방문해 우정욱 소통 담당관과 천연잔디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만났다. 이들 안내를 받아 천연잔디 구장과 천연잔디 시공·관리 회사인 사회적 기업 ‘녹색 발전소’를 둘러봤다. 우 담당관은 잔디 사업을 제안하고 직접 추진한 장본인이다.

우 담당관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약 4,000㎡(1,212평))에 천연잔디를 심는 비용은 2억 원 정도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 곳에 인조 잔디를 시공하는 비용이 대략 5억 원 정도였으니,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금액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그동안 인조잔디만 고집한 것일까?

“잔디, 어렵다는, 비싸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어서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좀 더 손쉬워 보이는 인조잔디를 선택한 것이고. 사실, 어렵긴 하다. 그러나 그건 몰라서 어려웠다. 벼농사를 생각해 보자, 어렵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린 벼농사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농사짓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잔디도 키우는 방법만 잘 알면 어렵지 않다. 우린, 잔디 농사짓는 방법을 그동안 터득했다.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잔디를 깔 수 있는 이유다.”

우 담당관 설명이다. 잔디 농사짓는 방법을 터득한 덕분에 인조잔디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천연잔디를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잔디, 키우는 방법만 알면 벼농사보다 더 쉽다

▲ 우정욱 시흥시 소통 담당관 ⓒ 이민선

▲ 시흥시 천연잔디 조성 관련 공무원, 왼쪽부터 문용수, 우정욱, 김정한 ⓒ 이민선

하지만, 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보살피는 문제. 식물이다 보니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물만 부족해도 한꺼번에 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잔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주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천연잔디는 식물이라 관리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대신 인조잔디를 깔자”라고.

시흥시는 이 문제를 잔디 시공·관리 전문 사회적 기업 ‘녹색 발전소’로 해결했다. 녹색 발전소 직원은 대표 포함 총 6명이다. 우 담당관과 함께 수년간 잔디 사업을 한 덕분에 잔디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다. 시공·관리에 필요한 장비를 거의 완벽하게 갖췄다는 게 이 회사의 강점이다.

그렇다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 우 담당관은,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인조잔디를 관리하고 재시공하는 비용보다는 훨씬 쌀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확하게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인조잔디보다는 아마 쌀 것이다. 인조잔디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매년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수명이 다하면 (5년~7년) 3억 원 정도(초등학교 운동장 기준)를 들여 재시공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천연 잔디는 그보다는 훨씬 싸다.

장비만 능숙하게 다루면 직원 한 명이 굉장히 넓은 면적을 관리할 수 있어 많은 인건비가 필요치 않다. 잔디 선진국 독일에서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커다란 축구장을 관리하기도 한다. 또한, 공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관리하니 비용이 부풀려질 염려가 적고, 잔디 자체가 주민 편익 시설이니만큼 공공에서 지원할 명분이 충분해 관리 비용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대표를 포함해서 6명으로 구성된 이 회사에서 관리하는 잔디 구장은 굉장히 넓었다. 시흥시 마유로에 있는 ‘맨땅에 그린’ 운동장(약 5,000㎡, 2개소)과 정왕동에 있는 희망공원 천연잔디 구장(7,992㎡), 산기대학로 237번지에 있는 천연잔디 농장(87,982㎡)도 조성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축구 전용 구장 면적이 약 7,000㎡이니, 직원 6명이 축구장 15배 넓이의 잔디 구장을 관리하는 셈이다.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도 천연잔디 사업의 큰 장점이다. 우 담당관은 “잔디 사업이 활성화되면 조만간에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 50개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시흥시는 잔디 사업을 계속 확장할 계획이다. 우 담당관은 “10년 정도면 시흥시 대부분 학교 운동장을 천연잔디로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시에서 주도해서 하지만, 때가 되면 민간에 넘겨서 자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때는, 농민들이 스스로 잔디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만큼 자생력이 향상됐을 때를 말한다. 이를 위해 시흥시는 ‘잔디 학교’를 열어 잔디 전문 농부를 양성하고 있다. 우정욱 담당관이 이 학교 교장이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 시범구장 이름이 ‘맨땅에 그린’인 이유”

▲ 천연잔디 시공.관리 사회적기업 ‘녹색발전소’직원이 장비를 타고 잔디를 관리하는 모습. 이 회사는 잔디 관리를 위한 수많은 장미를 보유하고 있다. ⓒ 이민선

▲ 시흥시는 많은 종류의 천연잔디를 시험재배하고 있었다. ⓒ 이민선

시흥시가 천연잔디 사업을 벌인 주된 이유는 농가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서다. 벼농사하는 농민들에게 잔디 농사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더불어 녹색 도시를 만들어 도시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인조잔디가 한창 깔릴 때, 이거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례를 만들려 했었는데, 주변의 호응이 워낙 없어서 그냥 접었다. 그렇다고 인조잔디를 걷어내기 위해서 이 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인조잔디는 환경 유해성을 비롯해 워낙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언젠가는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경쟁상대로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천연잔디 사업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우 담당관은 “아무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고, 그래서 시범 구장 이름이 ‘맨땅에 그린’”이라고 말했다.

“2011년에 농업기술센터에서 주도했는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잔디 다 죽여 놓고는 하는 이야기가 ‘안 됩니다’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팔을 걷었다. 독일 종자 회사 찾아가서 묻고 또 묻고, 잔디 전문가 찾아가서 자문하고. 이거를 하기 위해 난 건국대에서 하는 ‘그린 키퍼’라는 강의를 1년간 듣기도 했다.

예산이 없어서 행정안전부에 사정사정해서 자금을 끌어오기도 했고, 그래도 돈이 부족해서 저하고 우리 직원들(공보관실)이 직접 잔디를 심기도 했다. 그런데, 고생한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는커녕 ‘시에서 왜 잔디를 키우느냐, 성공할 수 있느냐’는 등의 비난과 걱정만 쏟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게 ‘맨땅에 그린’ 등의 잔디 구장이다. 지난해 9월 시민들에게 개장했다. 매주 축구 동호인들이 이곳에서 공을 차고 있다. 대여비는 2시간 기준 평일 10만 원, 주말 15만 원이다.


행복 사회로 가는 길에 어쩌면 녹색 잔디가 있을지도!

▲ 천연잔디 농장에 있는 물주는 기계, 길이 200m. ⓒ 이민선

인조잔디 바람을 몰고 온 것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타고 일어난 축구 열기다. ‘축구 발전을 위해 잔디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인조잔디 붐’이 일어났다. 이 바람을 타고 체육공원, 학교 운동장 등에 인조잔디가 깔렸다. 환경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인조잔디 바람에 묻혀 밖으로 새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아쉬운 대로 선택한 인조잔디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환경 호르몬을 비롯해 특히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납 같은 중금속이 검출됐다. 인조잔디와 함께 깔린 우레탄 육상트랙과 우레탄 농구장에서도 이 같은 유해 물질이 발견됐다.

당연히,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어째서 학교 운동장에까지 깔았겠느냐는 의혹이 일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조잔디 시공업자 등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들 입김이 크게 작용했으리란 추측이 나돌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해 행복지수 최고로 알려진 덴마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한 ‘덴마크 견학 여행 꿈틀 비행기 2호’에 탑승한 덕분이었다. 참 부러운 게 많은 나라였는데, 특히 눈에 띈 게 녹색 잔디다. 반면, 우리의 학교와 공원은 갑갑하기 짝이 없다. 향기로운 흙과 푸른 잔디 자리를 고무 냄새 팍팍 풍기는 인조 잔디와 유해 성분 덩어리로 알려진 우레탄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도심 속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잔디 덕분에 난 지금도 덴마크를 행복사회와 함께 ‘푸른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행복사회로 가는 길에 녹색 잔디가 꼭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출처  천연잔디, 알고 보니 인조잔디 반값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