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7'보다 먼저 리콜해야 할 것
[티브로드 해고자 복직 단식 농성 ①] 케이블 간접고용 인생들의 비망록
[오마이뉴스] 글: 송경동, 편집: 최유진 | 16.09.05 21:21 | 최종 업데이트 16.09.06 07:20
벌써 7일째다. 지난 8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야기다. 오곡을 나눠 먹는다는 추석이 낼모레인데 그들은 왜 곡기까지 끊어야 했을까.
대표이사 김재필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소개된 티브로드 소개 글이다. 디지털 케이블 TV, 기가 인터넷, 인터넷 전화, 알뜰폰, 스마트렌탈 등 사업을 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7,625억 원 매출에 1,434억 원의 영업 이익을 냈다. 순이익은 1,036억 원.
2000년대 들어 대기업들이 지역 케이블방송사들을 인수·합병하면서 현재 5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티브로드, CJ헬로비전, 씨앤앰, 현대HCN, CMB)가 전체 케이블 가입자 가구의 85.7%(2012년 기준)를 점유하고 있는데 330만 명의 가입자를 두고 있는 티브로드가 시장 점유율 1위다. 사업도 잘하고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에게 꾸준한 사회공헌지원'을 하고 '상생 나눔 경영'을 한다니 상이라도 줄 만한 기업 아닐까.
하지만 티브로드는 사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장의 영업, 설치, 수리 등에 종사하는 기술직 1,600여 명을 모두 비정규 노동자들로 채우고 있다. 상시 필수 업무이므로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전국 50여 개 유통 및 영업점들에 바지사장들을 들이고 모든 업무를 위장도급 방식으로 외주화하고 있다.
1,600여 명의 비정규직은 티브로드 작업복을 입고, 티브로드 본사가 제공한 PDA 프로그램을 통해 전산망에 접속하여 작업관리, 고객관리, 자재관리, 품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티브로드 교육장에서 교육을 받고, 티브로드 제품을 판촉, 설치, 수리, 철거하고 다닌다. 원청에 의해 매달 실적과 등급이 매겨지고 급여도 정해진다. 실적이 부진한 자는 원청에서 페널티를 부여하고 실적 부진이 누적되면 본사에서 직접 해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복장, 명찰, 명함도 원청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본사 사업부 소속 "RM"(기술RM, 영업RM 각 1명)이 각 센터에 상주하면서 직접 업무를 지시하고 교육을 했다. 기술RM은 설치한 것을 검수하고 매일 일하는 인원을 점검했다. 영업RM은 영업 건에 대해서 보고받고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으로 법망에 걸리는 것을 피하고자 현재는 상주는 않지만 지금도 센터별 책임자가 1인씩 정해져 있어 이들이 수시로 지시하고, 업무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가 이러한데도 티브로드는 1,600여 명의 현장 설치 수리기사들이 자신들과 어떤 관계도 없는 이들이라고 한다. 티브로드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모기업 태광그룹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자율성도 없이 100% 티브로드의 업무를 대행하는 50여 개의 외주업체는 티브로드의 중간 노무 관리기구에 불과하다.
위장 도급업체 모두 원청이 아닌 다른 사업자와 계약을 한 사실이 없고 원청의 업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원청과 계약이 갱신되지 않으면 자동 폐업이다. 티브로드는 고용, 노동조건, 복지, 임금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1년 단위로 재계약이라는 방식으로 외주 바지 업체들만 관리하면 된다. 실적이 낮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주당 60∼70시간 장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 티브로드는 1일 처리해야 할 콜(30개)을 내리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에서 깎았다. 설치나 수리를 하고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한 건을 처리하는 데 빨라도 약 30~40분이 걸렸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는 애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한 달에 1~2일 정도만 쉴 수 있었고 명절, 공휴일도 쉴 수 없었다. 실적 압박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연차, 월차 개념도 없어 그것이 무어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다. 시간외수당, 4대 보험,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은 그림의 떡. 차량유지비, 유류비, 통신비, 작업 공구, 심지어 안전장비 구매까지 여타 업무비용도 노동자가 부담해야 했다. 한 달 월급에서 월평균 36.7만 원을 업무 비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경력이 20년 이상 된 이들이 많다. 지역 유선방송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설치 업무를 한 나름 장인이자 전문기술직들이다. 유선방송 역사의 산증인들인데, 현실에서는 고용이 불안정한 간접고용 노동자일 뿐.
18년 일한 이의 월급이 2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 200만 원에 차량 유지비, 기름값(한 달 40~50만 원), 점심값, 사고처리 비용, 통신비 등 업무 비용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했다. 신규 가입자를 모집해 오지 않으면 급여가 차감되거나 재계약에 불이익이 오기에 자신의 돈으로 유령 가입자를 늘리고, 인터넷이 필요 없는 어르신들에게까지 통신 가입을 강요해야 했다.
온갖 감정노동과 위험 작업은 기본이었다. 혼자서 전봇대를 오르거나, 건물 옥상이나 난간에 안전띠 하나 없이 매달려야 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그간 여러 명이 작업 중 사망하거나, 다쳐 나갔지만, 온전히 산재보상이라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스무 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죽었다. 성수역, 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였다. 청년의 작업 가방에서 나온 채 먹지 못한 컵라면이 수많은 사람을 울게 했고, 분노하게 했다. 더욱 아픈 건 며칠 후인 6월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폭발 사고로 비정규노동자 4명이 숨졌지만 아무런 사회적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이 차이를 떠나면 케이블방송통신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이 그와 똑같다. 지난 6월 23일엔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가전 AS 기사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을 하다 추락해 죽었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5학년 아들을 둔 근속 20년 차 베테랑 기사였지만 건당 수수료와 원청의 실적 압박 시스템이 어떤 안전 장구도 없이 그를 빌라 3층 외벽으로 나서게 했다. 그의 작업 차량에서도 점심을 한참 지나고서도 채 먹지 못한 도시락이 발견되었다.
작년 LG전자 AS 기사가 똑같은 사고로 죽었고, 재작년엔 티브로드 AS 기사가 그렇게 혼자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죽었다.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도급제에 가까운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 원청의 실적 압박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든 일상적인 사회적 참사이자 간접 살인 행위이다. 잊을 만하면 소식이 전해오는 조선소 산재 사망 사고 대부분도 위험마저 외주화해 물려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비정규직호'라는 또 다른 세월호에서 언제까지 '가만히 있어야 할까.'
무슨 '외부세력'의 개입도 필요 없었다. 2013년 몇몇 동료들이 제안하자마자 두 달 만에 광속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전국 센터에 소수로 흩어져 건당 수수료를 쫓아 초침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평소에 교류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너무도 부당한 차별과 근무 조건들이 급속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엔 35일간 파업도 해봤다. 사측은 온갖 회유와 기만, 탄압에 나섰다. 특별근로감독을 피하려고 급여 명세를 위조하고, 출퇴근 기록부를 없애는 등 치졸한 일들이 이어졌다. 케이블방송업계의 민낯이 드러나는 사회적 투쟁이었다. 모기업인 태광그룹 본사도 항의 점거해보았다.
사회적 여론이 거세지자 모기업인 태광그룹과 티브로드 원청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근본 요구는 관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티브로드 원·하청은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협조하고, 협력업체는 재하도급을 금지하며, 임금인상은 지급된 임금 총액 대비 45만 원 인상하며 2014년도에도 9만 원의 임금인상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잠깐뿐. 합의서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인 2014년 티브로드 원청은 협력업체의 단가수수료 정책을 '인당 고정비 지급에서 가입자대비 단가수수료 지급정책으로 전환'함으로써 노사 상생을 무력화시켰다. 인상된 상생지원금을 각종 단가에 편입시켜 수수료가 인상된 것처럼 보이는 편법이었다. 노조 탈퇴 공작을 펼치고, 탈퇴 조합원들을 개인사업자(도급기사)로 전환하는 등 협력업체 내 재하도급화를 버젓이 자행했다.
올해엔 비정규직 노동조합 자체를 없애려고 하고 있다. 2016년 1월 31일 기존 협력업체 50개와 맺은 용역계약을 만료하고 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선별 고용, 노동조합 간부 표적 고용 거부, 노동조건 하락, 신규업체에 대한 비공개·밀실 협의를 진행하며 최소한 5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직접' 해고했다.
조합원들 다수가 일하고 있는 경기도 광명 시흥의 한빛 북부지회와 전주센터 노동자들이 타깃이었다. 현재 티브로드 조합원들은 사측을 상대로 직접고용 책임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청의 직접 사용자성이 확인될 경우 사측은 그간 진행해 온 위장도급 과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직접고용의 책임을 지고, 그간 비정규직 위장도급으로 챙긴 임금 몫도 '뱉어'내야 한다.
자동차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대부분 판결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이 대부분 인정된 사례들에 따르면, 케이블통신업계에서 자행한 위장도급 외주화 역시 불법이었음이 확인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정당한 항의와 저항을 꺾기 위해 조합원들 다수가 있는 센터부터 계약해지 방식을 통해 부당해고에 나서고 있다.
그렇게 부당해고 당한 51명의 비정규노동자가 200여 일 넘게 노숙 투쟁을 하고 있다. 여러 차례 시한부 파업과 순환 파업을 벌이고, 원청인 티브로드 본사와 전주센터 앞에서 농성도 해왔다. 센터장이 소속된 전주 국민의당 당사에서 연좌시위도 해봤다. 지난 6월 7일엔 해고자 두 명이 다시 한강대교에 올라 고공시위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문제 해결의 기미도 없어 급기야 지난 8월 30일,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티브로드가 해고자 복직에 나서지 않으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티브로드 가입해지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가입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미 수도권에서 200여 명의 이용자가 서명으로 해지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연대에 나선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에서는 실제 열쇠를 쥐고 있는 티브로드 모회사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의 보석 취소 재수감과 티브로드 재인허가 불허를 위한 국민투표 운동을 선언한 상태다.
참고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횡령·배임으로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는 상태다. 더불어 매년 1천억 원 이상 흑자를 내면서도 '상생 나눔 경영'은커녕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티브로드가 방송의 공공성을 실현해야 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자격이 있는가 하는 사회적 문제 제기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안팎에서는 방통위가 인허가 심의를 할 때 케이블방송사들의 노동 실태를 포함해 심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 제기 중이다.
1,000억 원이 넘는 단기 순이익이란 실제 이렇게 노동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할 각종 권리, 즉 고용과 노동조건, 임금 등을 가져간 몫이다. 단식에 들어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티브로드만의 투쟁이 아니라고 한다. 케이블방송통신전자서비스 노동자 전체를 위한 사회적 투쟁임을 강조한다. 비용 절감과 고용 책임 회피,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저항 등을 피하고자 케이블방송통신전자서비스 업계 대부분이 티브로드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을 일반화하고 있다. 비정규직 활용의 수법이나 탄압의 양상도 너무나 비슷하다.
2013년 케이블방송 부문 최초로 노동조합이 설립된 씨앤앰도 2014년 협력업체 교체 과정에서 계약해지 방식으로 조합원 전원인 600여 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했다. 18개 협력업체가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노조를 압박해왔다. 전원 무기한 노숙농성을 하며, 그해 11월 12일엔 강성덕, 임정균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찬 바람을 뚫고 20m 높이의 서울신문 전광판에 올라야 했다.
씨앤앰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에 용기를 얻어 2014년 노동조합을 설립한 LGU+에는 2,500명의 비정규직이, 그리고 같은 해 조직된 SK브로드밴드에는 4,000명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다. LGU+에서도 2015년 말과 2016년 초 서부산, 북부산, 남인천, 김해센터를 담당하는 업체 교체 과정에서 고용 미끼로 절반 전후의 조합원이 사직하거나 탈퇴하게 하였다.
대부분을 개인도급으로 전환했다. 신규업체가 '직원을 미리 뽑았다'며 '기존 센터 직원을 승계할 수 없다'거나 '일부 직원만 선별 고용하겠다' 또는 '임금을 삭감하자, 노동조건을 낮추자'며 고용 승계를 거부토록 했다. LGU+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노동자 공동 투쟁 때는 장연의와 강세웅 두 조합원이 다시 혹한의 날씨에 서울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전국 100여 개 외주업체에서 약 1만 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마크를 달고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3년 동안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센터만 골라 13개 업체가 위장 폐업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솎아내려 했다. LGU+에서, SK브로드밴드에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씨앤앰에서, 티브로드에서 업무상 불이익으로 생계를 어렵게 해서 조합원들을 대거 탈퇴시키고, 이직시킨 후 개인도급으로 전환 시키는 것은 공통된 일상이기도 하다.
모기업이, 원청이 능력이 없거나 영세해서 비정규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 굴지의 대재벌들이다. 티브로드의 모기업인 태광그룹만 해도 자산 38조 원에 년 매출 13조의 공룡기업이다. 국내 10대 재벌 계열사들이 '사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만 43만 명이다. 그중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수만 36만 명이라고 한다. 조선과 철강업종은 공정의 60~70%가 사내하청으로 운영되고 있고, 공공부문과 호텔-백화점-대형마트 등 서비스업까지 간접고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충분한 지급 능력을 갖춘 재벌들이 도리어 비정규직 확산의 맨 앞에 서 있다.
이런 굴지의 대기업 마크를 달고 일하는 모든 케이블방송전자통신서비스 외주하청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는 '배고파서 못 살겠다'였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최종범, 염호석 두 분이 '전태일처럼' 목숨을 던지고서야 최소한의 비정규직 노조 인정과 경총을 들러리로 세운 단체교섭이 가능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맺은 합의, 협약 등은 투쟁이 끝나고 현장으로 복귀하면 약속이나 한 듯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2013년부터 저절로 생겨난 케이블방송전자통신서비스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이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 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을 꾸리고 공동 대응 중이기도 하다.
방법이 없지 않냐고? 현실에 대한 패배감 때문이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외주업체 교체 시 고용·근속·단체협약이 승계되도록 해야 한다. 원청이 사용자 책임, 사회적 책임을 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주업체와 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고용·근속·단체협상 승계를 원청에서 조건으로 내걸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원청 사용주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교섭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그간 사회적 투쟁 과정을 통해 급조된 협력업체 바지 사장단도, 경총도 어떤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함을 확인했다. 실제 사용주가 책임 있게 나서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쟁의 행위 시 대체인력 투입도 금지되어야 한다. 정당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대체인력 투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정당한 쟁의권에 대한 반사회적인 도전이며 부정이다.
이를 위한 법 제도화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에 이어 '상시적 업무에서의 직접고용의 원칙과 간접고용의 금지 규정'을 신설해 원천적으로 반사회적인 비정규직 사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의 '사용자'의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 및 노동조합 활동에 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력·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하고, 해당 사용자로부터 근로조건 및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영향력을 받는 근로자들이 조직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을 해당 사용자의 교섭당사자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처우조항)에 이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
과거와 달리 사례들도 축적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2010년 3월 현대중공업 사안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와 직접적 근로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원청회사가 사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사내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지배·개입행위를 하였다면 원청회사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사용자인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하여 당연히 단체교섭의무 또한 지게 된다. 중앙노동위원회도 2016년 6월 일본계 기업인 아사히글라스가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조직된 지 한 달 만에 해당 업체와 계약 해지를 한 것은 노조를 형해화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원청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봤다.
동양시멘트 비정규직들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는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미 수많은 제조업 사업장 불법파견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해 오기도 했다.
그 최전선에 지금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입법 요구까지를 하면서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 있다. 날마다 경찰들의 집요한 침탈이 있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다. 먼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티브로드 원청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입만 열면 사회 양극화 해소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국회도 답해야 한다. 1998년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이 국회에서 제정되고 난 후 일어난 끊이지 않는 참사였다. 2006년 국회에서 비정규직 구조 인정과 확산법에 불과한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이 통과되고 난 후 넓혀진 일상적 재난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시대의 대세처럼 외치는 국회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제일 먼저 바로잡아야 할 일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어떤 국민도 현행 비정규직 제도와 그 확산이 이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비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 1,000만 명에 이르렀다.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런 '인간의 존엄'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국회'가 아닌 '소수 재벌 자본의 국회'일 뿐이다.
며칠 사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한 대가 배터리 불량으로 폭발했다는 소식이 화제였다. 한 대가 폭발했을 뿐이지만 삼성전자는 전량을 리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전체 사회에서 리콜되어야 할 지극히 위험하고도 잘못된 일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다. 어떤 이도 '비정규' 인생으로 불안하게 이 땅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이미 한두 명의 분통이 터지는 일을 넘어섰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분통이 터지고 있다. 정당한 리콜이 되지 않을 때, 새롭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관계로 나아가지 않을 때 어떤 분노로 이 분통들이 터져 나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 단식도 오늘(9월 5일)로 19일째인데, 유성기업 열사 유가족 단식도 20일째인데 또 단식이냐고, 책망하지들 마시고 오늘 국회 앞에서 곡기를 끊고 있는 티브로드 비정규 노동자들의 손을 우리가 모두 함께 잡아 주어야 할 까닭들이기도 하다.
함께 곡기를 끊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지난 5월 28일 구의역 9-2 승강장에서 죽어간 스무 살 청년 지하철 비정규노동자를 추모하며 포스트잇 한 장을 붙여주듯 그런 작은 발걸음, 작은 마음들 하나면 좋다. 오늘 우리 집에 오는 각종 설치수리기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어도 좋다.
무엇이든 우리 모두의 '존엄'한 내일을 위해 오늘 곡기를 끊고 있는 저 하층 비정규노동자들이 있음을, 그들이 오늘 열어가는 길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길임을,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밝히는 길임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출처 '갤럭시노트7'보다 먼저 리콜해야 할 것
[티브로드 해고자 복직 단식 농성 ①] 케이블 간접고용 인생들의 비망록
[오마이뉴스] 글: 송경동, 편집: 최유진 | 16.09.05 21:21 | 최종 업데이트 16.09.06 07:20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코앞이다. 양극화 시대 고단하고 삭막한 삶이라지만 가족과 함께 모여 조상을 기리고 음식을 나누며 잠시라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게 명절 아니던가. 지금 이 한가위가 유난히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케이블방송 업계 1위 티브로드에서 설치, 수리 기사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조 탄압에 혈안이 된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서울과 전주에서 7개월 넘게 길거리 노숙농성을 이어왔다. 지금 두 사람은 곡기를 끊고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명절을 앞두고 밥을 굶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명절을 빼앗아가 버리곤 했다. 불평등이 화두다. 한가위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기를 바라며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농성투쟁에 맘보태는 이들의 기고로 일곱 차례 연재한다.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과 진짜 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말]
케이블방송 업계 1위 티브로드에서 설치, 수리 기사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조 탄압에 혈안이 된 회사 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서울과 전주에서 7개월 넘게 길거리 노숙농성을 이어왔다. 지금 두 사람은 곡기를 끊고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명절을 앞두고 밥을 굶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명절을 빼앗아가 버리곤 했다. 불평등이 화두다. 한가위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기를 바라며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농성투쟁에 맘보태는 이들의 기고로 일곱 차례 연재한다.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과 진짜 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말]
▲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간접고용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2일 국회 정문 앞에서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송경동
벌써 7일째다. 지난 8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야기다. 오곡을 나눠 먹는다는 추석이 낼모레인데 그들은 왜 곡기까지 끊어야 했을까.
"티브로드는 국내 대표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Multiple System Operator)로서 전국 77개의 사업권역 중 22개 권역에서 22개 유선방송 사업자(SO; System Operator)를 보유, 방송, 초고속 인터넷, VoIP(인터넷 전화), MVNO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티브로드는 '이웃과 함께하는 밝은 세상, Tbroad가 만들어 갑니다'라는 사내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매년 불우시설 후원 등의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에게 꾸준한 사회공헌지원을 통해 이웃 사랑 실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상생 나눔 경영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의 장을 열겠습니다."
티브로드는 '이웃과 함께하는 밝은 세상, Tbroad가 만들어 갑니다'라는 사내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매년 불우시설 후원 등의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에게 꾸준한 사회공헌지원을 통해 이웃 사랑 실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상생 나눔 경영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의 장을 열겠습니다."
대표이사 김재필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소개된 티브로드 소개 글이다. 디지털 케이블 TV, 기가 인터넷, 인터넷 전화, 알뜰폰, 스마트렌탈 등 사업을 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7,625억 원 매출에 1,434억 원의 영업 이익을 냈다. 순이익은 1,036억 원.
2000년대 들어 대기업들이 지역 케이블방송사들을 인수·합병하면서 현재 5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티브로드, CJ헬로비전, 씨앤앰, 현대HCN, CMB)가 전체 케이블 가입자 가구의 85.7%(2012년 기준)를 점유하고 있는데 330만 명의 가입자를 두고 있는 티브로드가 시장 점유율 1위다. 사업도 잘하고 '어려운 환경의 이웃들에게 꾸준한 사회공헌지원'을 하고 '상생 나눔 경영'을 한다니 상이라도 줄 만한 기업 아닐까.
티브로드 기술직 1,600여명은 모두 비정규직
하지만 티브로드는 사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장의 영업, 설치, 수리 등에 종사하는 기술직 1,600여 명을 모두 비정규 노동자들로 채우고 있다. 상시 필수 업무이므로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전국 50여 개 유통 및 영업점들에 바지사장들을 들이고 모든 업무를 위장도급 방식으로 외주화하고 있다.
1,600여 명의 비정규직은 티브로드 작업복을 입고, 티브로드 본사가 제공한 PDA 프로그램을 통해 전산망에 접속하여 작업관리, 고객관리, 자재관리, 품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티브로드 교육장에서 교육을 받고, 티브로드 제품을 판촉, 설치, 수리, 철거하고 다닌다. 원청에 의해 매달 실적과 등급이 매겨지고 급여도 정해진다. 실적이 부진한 자는 원청에서 페널티를 부여하고 실적 부진이 누적되면 본사에서 직접 해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복장, 명찰, 명함도 원청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본사 사업부 소속 "RM"(기술RM, 영업RM 각 1명)이 각 센터에 상주하면서 직접 업무를 지시하고 교육을 했다. 기술RM은 설치한 것을 검수하고 매일 일하는 인원을 점검했다. 영업RM은 영업 건에 대해서 보고받고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으로 법망에 걸리는 것을 피하고자 현재는 상주는 않지만 지금도 센터별 책임자가 1인씩 정해져 있어 이들이 수시로 지시하고, 업무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가 이러한데도 티브로드는 1,600여 명의 현장 설치 수리기사들이 자신들과 어떤 관계도 없는 이들이라고 한다. 티브로드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모기업 태광그룹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자율성도 없이 100% 티브로드의 업무를 대행하는 50여 개의 외주업체는 티브로드의 중간 노무 관리기구에 불과하다.
위장 도급업체 모두 원청이 아닌 다른 사업자와 계약을 한 사실이 없고 원청의 업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원청과 계약이 갱신되지 않으면 자동 폐업이다. 티브로드는 고용, 노동조건, 복지, 임금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1년 단위로 재계약이라는 방식으로 외주 바지 업체들만 관리하면 된다. 실적이 낮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은행에서 대출도 못 받아요"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업체가 일 년이나 이 년마다 이름이 계속 바뀌었어요. 사장들이 계속 바뀐다는 거죠. 계속 법인이 바뀐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은행에서 대출도 못 받아요. 왜냐고? 입사한 지 일 년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도 계속 사장, 법인이 바뀌니 우리는 계속 신입인 거죠. 그러니까 퇴직금도 안 쌓이고, 고용승계도 안 되고…" - 조합원 인터뷰 <이것이 연대의 힘이다>(노사과연) 중에서
"케이블과 인터넷 업계 일을 하는 사람들은 멀티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 전화, TV 영업에 AS, 설치, 철거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해야 합니다. 전단에 하나하나 자기 전화번호가 박힌 도장을 찍어 일하는 지역에 붙이고 다녀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죠." - 박호준 조합원 인터뷰
"결혼한 지 2년 됐고 아기가 20개월 됐습니다. 아내가 아기를 낳는데 18시간 진통 끝에 낳았고 (상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이제 출근해'였습니다. 할당 구역이 있으니 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티브로드는 우리가 자신들의 가족이 아니라고 합니다. 배신감을 느낍니다. 우리의 피땀으로 성장한 거 아니겠습니까." - 최 아무개 조합원 인터뷰
▲ 지난 8월 30일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간접고용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송경동
주당 60∼70시간 장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 티브로드는 1일 처리해야 할 콜(30개)을 내리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에서 깎았다. 설치나 수리를 하고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한 건을 처리하는 데 빨라도 약 30~40분이 걸렸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는 애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한 달에 1~2일 정도만 쉴 수 있었고 명절, 공휴일도 쉴 수 없었다. 실적 압박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연차, 월차 개념도 없어 그것이 무어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다. 시간외수당, 4대 보험,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은 그림의 떡. 차량유지비, 유류비, 통신비, 작업 공구, 심지어 안전장비 구매까지 여타 업무비용도 노동자가 부담해야 했다. 한 달 월급에서 월평균 36.7만 원을 업무 비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경력이 20년 이상 된 이들이 많다. 지역 유선방송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설치 업무를 한 나름 장인이자 전문기술직들이다. 유선방송 역사의 산증인들인데, 현실에서는 고용이 불안정한 간접고용 노동자일 뿐.
18년 일한 이의 월급이 2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 200만 원에 차량 유지비, 기름값(한 달 40~50만 원), 점심값, 사고처리 비용, 통신비 등 업무 비용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했다. 신규 가입자를 모집해 오지 않으면 급여가 차감되거나 재계약에 불이익이 오기에 자신의 돈으로 유령 가입자를 늘리고, 인터넷이 필요 없는 어르신들에게까지 통신 가입을 강요해야 했다.
"산재로 처리해 달라고 하자 원청은 계약 해지 통보"
온갖 감정노동과 위험 작업은 기본이었다. 혼자서 전봇대를 오르거나, 건물 옥상이나 난간에 안전띠 하나 없이 매달려야 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그간 여러 명이 작업 중 사망하거나, 다쳐 나갔지만, 온전히 산재보상이라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업무 중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10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3개월 정도 일을 하지 못했는데, 사측에서는 기사의 과실이라며 산재는커녕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어떤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몇 년 전 한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났었다. 이후 사측은 허리에 거는 안전장치를 지급했으나, 안전장치 비용을 급여에서 차감했다.
지난해 노조 결성 이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또 한 분은 업무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노조가 산업재해로 처리해 달라고 하자, 이후 회사는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고, 원청에서는 6월 말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티앤씨넷지회 이인수 조합원
지난해 노조 결성 이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또 한 분은 업무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노조가 산업재해로 처리해 달라고 하자, 이후 회사는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고, 원청에서는 6월 말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티앤씨넷지회 이인수 조합원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스무 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죽었다. 성수역, 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였다. 청년의 작업 가방에서 나온 채 먹지 못한 컵라면이 수많은 사람을 울게 했고, 분노하게 했다. 더욱 아픈 건 며칠 후인 6월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폭발 사고로 비정규노동자 4명이 숨졌지만 아무런 사회적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이 차이를 떠나면 케이블방송통신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이 그와 똑같다. 지난 6월 23일엔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가전 AS 기사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을 하다 추락해 죽었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5학년 아들을 둔 근속 20년 차 베테랑 기사였지만 건당 수수료와 원청의 실적 압박 시스템이 어떤 안전 장구도 없이 그를 빌라 3층 외벽으로 나서게 했다. 그의 작업 차량에서도 점심을 한참 지나고서도 채 먹지 못한 도시락이 발견되었다.
작년 LG전자 AS 기사가 똑같은 사고로 죽었고, 재작년엔 티브로드 AS 기사가 그렇게 혼자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죽었다.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도급제에 가까운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 원청의 실적 압박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든 일상적인 사회적 참사이자 간접 살인 행위이다. 잊을 만하면 소식이 전해오는 조선소 산재 사망 사고 대부분도 위험마저 외주화해 물려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비정규직호'라는 또 다른 세월호에서 언제까지 '가만히 있어야 할까.'
무슨 '외부세력'의 개입도 필요 없었다. 2013년 몇몇 동료들이 제안하자마자 두 달 만에 광속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전국 센터에 소수로 흩어져 건당 수수료를 쫓아 초침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평소에 교류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너무도 부당한 차별과 근무 조건들이 급속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엔 35일간 파업도 해봤다. 사측은 온갖 회유와 기만, 탄압에 나섰다. 특별근로감독을 피하려고 급여 명세를 위조하고, 출퇴근 기록부를 없애는 등 치졸한 일들이 이어졌다. 케이블방송업계의 민낯이 드러나는 사회적 투쟁이었다. 모기업인 태광그룹 본사도 항의 점거해보았다.
사회적 여론이 거세지자 모기업인 태광그룹과 티브로드 원청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근본 요구는 관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티브로드 원·하청은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협조하고, 협력업체는 재하도급을 금지하며, 임금인상은 지급된 임금 총액 대비 45만 원 인상하며 2014년도에도 9만 원의 임금인상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잠깐뿐. 합의서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인 2014년 티브로드 원청은 협력업체의 단가수수료 정책을 '인당 고정비 지급에서 가입자대비 단가수수료 지급정책으로 전환'함으로써 노사 상생을 무력화시켰다. 인상된 상생지원금을 각종 단가에 편입시켜 수수료가 인상된 것처럼 보이는 편법이었다. 노조 탈퇴 공작을 펼치고, 탈퇴 조합원들을 개인사업자(도급기사)로 전환하는 등 협력업체 내 재하도급화를 버젓이 자행했다.
비정규직 조합원 있는 센터부터 계약 해지
올해엔 비정규직 노동조합 자체를 없애려고 하고 있다. 2016년 1월 31일 기존 협력업체 50개와 맺은 용역계약을 만료하고 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선별 고용, 노동조합 간부 표적 고용 거부, 노동조건 하락, 신규업체에 대한 비공개·밀실 협의를 진행하며 최소한 5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직접' 해고했다.
조합원들 다수가 일하고 있는 경기도 광명 시흥의 한빛 북부지회와 전주센터 노동자들이 타깃이었다. 현재 티브로드 조합원들은 사측을 상대로 직접고용 책임을 확인하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청의 직접 사용자성이 확인될 경우 사측은 그간 진행해 온 위장도급 과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직접고용의 책임을 지고, 그간 비정규직 위장도급으로 챙긴 임금 몫도 '뱉어'내야 한다.
자동차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대부분 판결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이 대부분 인정된 사례들에 따르면, 케이블통신업계에서 자행한 위장도급 외주화 역시 불법이었음이 확인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정당한 항의와 저항을 꺾기 위해 조합원들 다수가 있는 센터부터 계약해지 방식을 통해 부당해고에 나서고 있다.
그렇게 부당해고 당한 51명의 비정규노동자가 200여 일 넘게 노숙 투쟁을 하고 있다. 여러 차례 시한부 파업과 순환 파업을 벌이고, 원청인 티브로드 본사와 전주센터 앞에서 농성도 해왔다. 센터장이 소속된 전주 국민의당 당사에서 연좌시위도 해봤다. 지난 6월 7일엔 해고자 두 명이 다시 한강대교에 올라 고공시위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문제 해결의 기미도 없어 급기야 지난 8월 30일,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티브로드가 해고자 복직에 나서지 않으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티브로드 가입해지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가입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미 수도권에서 200여 명의 이용자가 서명으로 해지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연대에 나선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에서는 실제 열쇠를 쥐고 있는 티브로드 모회사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의 보석 취소 재수감과 티브로드 재인허가 불허를 위한 국민투표 운동을 선언한 상태다.
참고로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횡령·배임으로 4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는 상태다. 더불어 매년 1천억 원 이상 흑자를 내면서도 '상생 나눔 경영'은커녕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티브로드가 방송의 공공성을 실현해야 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자격이 있는가 하는 사회적 문제 제기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안팎에서는 방통위가 인허가 심의를 할 때 케이블방송사들의 노동 실태를 포함해 심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 제기 중이다.
1,000억 원이 넘는 단기 순이익이란 실제 이렇게 노동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할 각종 권리, 즉 고용과 노동조건, 임금 등을 가져간 몫이다. 단식에 들어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티브로드만의 투쟁이 아니라고 한다. 케이블방송통신전자서비스 노동자 전체를 위한 사회적 투쟁임을 강조한다. 비용 절감과 고용 책임 회피,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저항 등을 피하고자 케이블방송통신전자서비스 업계 대부분이 티브로드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을 일반화하고 있다. 비정규직 활용의 수법이나 탄압의 양상도 너무나 비슷하다.
두 비정규직노동자가 20m 전광판에 오른 이유
2013년 케이블방송 부문 최초로 노동조합이 설립된 씨앤앰도 2014년 협력업체 교체 과정에서 계약해지 방식으로 조합원 전원인 600여 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했다. 18개 협력업체가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노조를 압박해왔다. 전원 무기한 노숙농성을 하며, 그해 11월 12일엔 강성덕, 임정균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찬 바람을 뚫고 20m 높이의 서울신문 전광판에 올라야 했다.
씨앤앰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에 용기를 얻어 2014년 노동조합을 설립한 LGU+에는 2,500명의 비정규직이, 그리고 같은 해 조직된 SK브로드밴드에는 4,000명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다. LGU+에서도 2015년 말과 2016년 초 서부산, 북부산, 남인천, 김해센터를 담당하는 업체 교체 과정에서 고용 미끼로 절반 전후의 조합원이 사직하거나 탈퇴하게 하였다.
대부분을 개인도급으로 전환했다. 신규업체가 '직원을 미리 뽑았다'며 '기존 센터 직원을 승계할 수 없다'거나 '일부 직원만 선별 고용하겠다' 또는 '임금을 삭감하자, 노동조건을 낮추자'며 고용 승계를 거부토록 했다. LGU+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노동자 공동 투쟁 때는 장연의와 강세웅 두 조합원이 다시 혹한의 날씨에 서울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전국 100여 개 외주업체에서 약 1만 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마크를 달고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3년 동안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센터만 골라 13개 업체가 위장 폐업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솎아내려 했다. LGU+에서, SK브로드밴드에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씨앤앰에서, 티브로드에서 업무상 불이익으로 생계를 어렵게 해서 조합원들을 대거 탈퇴시키고, 이직시킨 후 개인도급으로 전환 시키는 것은 공통된 일상이기도 하다.
모기업이, 원청이 능력이 없거나 영세해서 비정규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 굴지의 대재벌들이다. 티브로드의 모기업인 태광그룹만 해도 자산 38조 원에 년 매출 13조의 공룡기업이다. 국내 10대 재벌 계열사들이 '사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만 43만 명이다. 그중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수만 36만 명이라고 한다. 조선과 철강업종은 공정의 60~70%가 사내하청으로 운영되고 있고, 공공부문과 호텔-백화점-대형마트 등 서비스업까지 간접고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충분한 지급 능력을 갖춘 재벌들이 도리어 비정규직 확산의 맨 앞에 서 있다.
이런 굴지의 대기업 마크를 달고 일하는 모든 케이블방송전자통신서비스 외주하청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는 '배고파서 못 살겠다'였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최종범, 염호석 두 분이 '전태일처럼' 목숨을 던지고서야 최소한의 비정규직 노조 인정과 경총을 들러리로 세운 단체교섭이 가능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맺은 합의, 협약 등은 투쟁이 끝나고 현장으로 복귀하면 약속이나 한 듯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2013년부터 저절로 생겨난 케이블방송전자통신서비스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이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 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을 꾸리고 공동 대응 중이기도 하다.
외주업체 교체 시 고용·근속·단체협약이 승계돼야 한다
방법이 없지 않냐고? 현실에 대한 패배감 때문이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외주업체 교체 시 고용·근속·단체협약이 승계되도록 해야 한다. 원청이 사용자 책임, 사회적 책임을 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주업체와 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고용·근속·단체협상 승계를 원청에서 조건으로 내걸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원청 사용주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교섭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그간 사회적 투쟁 과정을 통해 급조된 협력업체 바지 사장단도, 경총도 어떤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함을 확인했다. 실제 사용주가 책임 있게 나서도록 사회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쟁의 행위 시 대체인력 투입도 금지되어야 한다. 정당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대체인력 투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정당한 쟁의권에 대한 반사회적인 도전이며 부정이다.
이를 위한 법 제도화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에 이어 '상시적 업무에서의 직접고용의 원칙과 간접고용의 금지 규정'을 신설해 원천적으로 반사회적인 비정규직 사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의 '사용자'의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 및 노동조합 활동에 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력·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하고, 해당 사용자로부터 근로조건 및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영향력을 받는 근로자들이 조직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을 해당 사용자의 교섭당사자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처우조항)에 이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의2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① 사용자는 동일 사업 또는 사업장 내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하여 동일임금을지급하여야 한다.
② 제2항의 동일가치노동이라 함은 동일한 또는 유사한 조건 하에 동일노동을 수행한 경우 또는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객관적인 기술․노동강도․작업조건 등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를 말한다.
③ 제2항의 동일임금이란 통상적․기본적 임금과 사용자가 고용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현금 또는 현물로 직․간접적으로 지불하는 모든 부가적인 급여를 말한다.
-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보장 법제도개선 토론회> 자료집(류하경 변호사) 발제 중에서, 법제도화 언급 여러 부분을 내용에 공감해 부분 인용합니다.
② 제2항의 동일가치노동이라 함은 동일한 또는 유사한 조건 하에 동일노동을 수행한 경우 또는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객관적인 기술․노동강도․작업조건 등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를 말한다.
③ 제2항의 동일임금이란 통상적․기본적 임금과 사용자가 고용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현금 또는 현물로 직․간접적으로 지불하는 모든 부가적인 급여를 말한다.
-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보장 법제도개선 토론회> 자료집(류하경 변호사) 발제 중에서, 법제도화 언급 여러 부분을 내용에 공감해 부분 인용합니다.
과거와 달리 사례들도 축적되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2010년 3월 현대중공업 사안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와 직접적 근로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원청회사가 사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사내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지배·개입행위를 하였다면 원청회사는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사용자인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 대하여 당연히 단체교섭의무 또한 지게 된다. 중앙노동위원회도 2016년 6월 일본계 기업인 아사히글라스가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조직된 지 한 달 만에 해당 업체와 계약 해지를 한 것은 노조를 형해화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원청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봤다.
동양시멘트 비정규직들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는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미 수많은 제조업 사업장 불법파견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해 오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국회는...
▲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간접고용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8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해고자 복직과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송경동
그 최전선에 지금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입법 요구까지를 하면서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 있다. 날마다 경찰들의 집요한 침탈이 있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다. 먼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티브로드 원청의 대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입만 열면 사회 양극화 해소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국회도 답해야 한다. 1998년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이 국회에서 제정되고 난 후 일어난 끊이지 않는 참사였다. 2006년 국회에서 비정규직 구조 인정과 확산법에 불과한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이 통과되고 난 후 넓혀진 일상적 재난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시대의 대세처럼 외치는 국회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제일 먼저 바로잡아야 할 일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어떤 국민도 현행 비정규직 제도와 그 확산이 이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비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 1,000만 명에 이르렀다.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런 '인간의 존엄'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국회'가 아닌 '소수 재벌 자본의 국회'일 뿐이다.
며칠 사이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한 대가 배터리 불량으로 폭발했다는 소식이 화제였다. 한 대가 폭발했을 뿐이지만 삼성전자는 전량을 리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전체 사회에서 리콜되어야 할 지극히 위험하고도 잘못된 일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다. 어떤 이도 '비정규' 인생으로 불안하게 이 땅에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이미 한두 명의 분통이 터지는 일을 넘어섰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분통이 터지고 있다. 정당한 리콜이 되지 않을 때, 새롭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관계로 나아가지 않을 때 어떤 분노로 이 분통들이 터져 나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 단식도 오늘(9월 5일)로 19일째인데, 유성기업 열사 유가족 단식도 20일째인데 또 단식이냐고, 책망하지들 마시고 오늘 국회 앞에서 곡기를 끊고 있는 티브로드 비정규 노동자들의 손을 우리가 모두 함께 잡아 주어야 할 까닭들이기도 하다.
함께 곡기를 끊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지난 5월 28일 구의역 9-2 승강장에서 죽어간 스무 살 청년 지하철 비정규노동자를 추모하며 포스트잇 한 장을 붙여주듯 그런 작은 발걸음, 작은 마음들 하나면 좋다. 오늘 우리 집에 오는 각종 설치수리기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어도 좋다.
무엇이든 우리 모두의 '존엄'한 내일을 위해 오늘 곡기를 끊고 있는 저 하층 비정규노동자들이 있음을, 그들이 오늘 열어가는 길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길임을,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밝히는 길임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출처 '갤럭시노트7'보다 먼저 리콜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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