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건국’ 이승만 문서 공개…건국절 논란 끝내나
이승만 자필 사인 선명…일왕에 보낸 공식 문서
박근혜 “건국 68주년” 8·15 경축사와도 충돌
“뉴라이트 등 건국절 제정론자들에게 뼈아픈 문서”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 등록 : 2016-10-02 16:41 | 수정 : 2016-10-02 18:54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권한에 따라 나는 일본에 요구한다. 모든 무장세력과 군대, 그리고 통상적인 외교사절과 자문관들을 제외한 모든 일본 관리들과 시민 등을 한국에서 철수시켜라.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distinct, independent, sovereign State)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
이는 1919년 6월 18일 이승만이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당시 공식명칭은 대한민주공화국 집정관 총재)으로서 일본 국왕에게 보낸 공식 문서 내용의 일부다. 이는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면서, 그가 주도한 1948년의 분단 단독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비로소 건국된 것이라며 1919년 건국을 부인하고 임시정부 및 동북지역 무장 항일투쟁 역사를 깎아내려 온 ‘이승만주의자’들과 뉴라이트의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이승만주의자들에겐 자가당착이 된다. 이 문서는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장(우당 기념관 이사장, 전 국정원장)이 2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이승만은 자신이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하게 조직된 자주 통치국가(completely organized, self governed State)가 됐음을 ‘당신’(you, 일본 국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면서 이 모든 공식 업무들이 이에 입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그해 3월 1일 한국 전역의 3백 곳이 넘는 지역에서 한국민의 총의와 의지에 따라 작성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선포됐다는 사실, 13도 대표들이 선출됐고 이들이 4월 23일 서울에 모여 입법부(the Korean National Council, a representative legislative body, to goern Korea)를 구성했으며 거기서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으로 선출하고 다른 집행(행정)부 관리들(executive officers)도 선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승만의 자필 사인(Syngman Rhee)이 선명한 이 문서는 대한민주공화국(‘한성정부’) 수립(1919년 4월 23일)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승만이 자신이 대통령에 선출된 사실을 통보받고 이를 수락하면서 워싱턴 현지에 대한민국 미국 사무실을 차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과 일본 등 각국 원수들에게 그 사실을 공식 통보한 문서 가운데 하나다.
이 문서를 공개한 이종찬 회장은 “1948년 건국을 주장해온 이승만 추대세력에겐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등을 세워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광복회가 주최한 ‘바른 역사 아카데미’(9월 28일~12월 21일 매주 수요일 열리는 역사강좌) 제1 주제(‘민족사적인 건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1 특강 강사로 나섰을 때도 그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며 “1948년 건국 주장자들에겐 가장 뼈아픈 문서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이 문건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알려졌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데다 역사적 문서 원본을 대중들이 직접 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이 문건의 공개와 대중적 공유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특히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승만주의자와 뉴라이트들로선 자가당착”이라며 “그들의 건국절 주장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 우리 현실에선 더욱 의미 깊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8월 15일 박근혜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71주년,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며 뉴라이트와 이승만주의자들의 1948년 건국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뒤, 그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를 열고 1919년 건국을 부정하고 임시정부 및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깎아내렸다.
전희경 의원이 마련한 그 날 토론회에서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원장을 지낸 류석춘 교수 등은 1919년 건국은 당시 외국 국적자들(김구는 중국, 안창호는 미국,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국적자였고, 이승만은 무국적이었다며)이 주도한 것이었고, 1919년 건국 주장은 결과적으로 남북이 정통성을 나눠 갖게 하는 것이며, “쉽게 생각하면 김일성 정권에게 절반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희경 의원은 1919년 건국론자들을 “자신의 반대한민국적 사관을 숨기면서 대한민국 독립세력과 건국세력을 이간질하는 사람들”(<미디어 오늘> 8월 22일 치)이라며 예의 종북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출처 [단독] ‘1919년 건국’ 이승만 문서 공개…건국절 논란 끝내나
이승만 자필 사인 선명…일왕에 보낸 공식 문서
박근혜 “건국 68주년” 8·15 경축사와도 충돌
“뉴라이트 등 건국절 제정론자들에게 뼈아픈 문서”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 등록 : 2016-10-02 16:41 | 수정 : 2016-10-02 18:54
▲ 1919년 6월 18일, 이승만이 일본왕에게 보낸 대한민국 건국 통보 공식문서. 아래에 이승만의 자필 사인이 선명하다. 우당기념관 제공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권한에 따라 나는 일본에 요구한다. 모든 무장세력과 군대, 그리고 통상적인 외교사절과 자문관들을 제외한 모든 일본 관리들과 시민 등을 한국에서 철수시켜라. 우리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주권국가(distinct, independent, sovereign State)임을 공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약상의 약속들은 무효로 간주될 것이다.”
이는 1919년 6월 18일 이승만이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당시 공식명칭은 대한민주공화국 집정관 총재)으로서 일본 국왕에게 보낸 공식 문서 내용의 일부다. 이는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면서, 그가 주도한 1948년의 분단 단독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비로소 건국된 것이라며 1919년 건국을 부인하고 임시정부 및 동북지역 무장 항일투쟁 역사를 깎아내려 온 ‘이승만주의자’들과 뉴라이트의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이승만주의자들에겐 자가당착이 된다. 이 문서는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장(우당 기념관 이사장, 전 국정원장)이 2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이승만은 자신이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하게 조직된 자주 통치국가(completely organized, self governed State)가 됐음을 ‘당신’(you, 일본 국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면서 이 모든 공식 업무들이 이에 입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그해 3월 1일 한국 전역의 3백 곳이 넘는 지역에서 한국민의 총의와 의지에 따라 작성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선포됐다는 사실, 13도 대표들이 선출됐고 이들이 4월 23일 서울에 모여 입법부(the Korean National Council, a representative legislative body, to goern Korea)를 구성했으며 거기서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으로 선출하고 다른 집행(행정)부 관리들(executive officers)도 선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승만의 자필 사인(Syngman Rhee)이 선명한 이 문서는 대한민주공화국(‘한성정부’) 수립(1919년 4월 23일)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승만이 자신이 대통령에 선출된 사실을 통보받고 이를 수락하면서 워싱턴 현지에 대한민국 미국 사무실을 차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과 일본 등 각국 원수들에게 그 사실을 공식 통보한 문서 가운데 하나다.
이 문서를 공개한 이종찬 회장은 “1948년 건국을 주장해온 이승만 추대세력에겐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등을 세워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 회장은 “지난달 28일 광복회가 주최한 ‘바른 역사 아카데미’(9월 28일~12월 21일 매주 수요일 열리는 역사강좌) 제1 주제(‘민족사적인 건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1 특강 강사로 나섰을 때도 그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며 “1948년 건국 주장자들에겐 가장 뼈아픈 문서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이 문건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알려졌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데다 역사적 문서 원본을 대중들이 직접 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이 문건의 공개와 대중적 공유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특히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이승만주의자와 뉴라이트들로선 자가당착”이라며 “그들의 건국절 주장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 우리 현실에선 더욱 의미 깊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8월 15일 박근혜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71주년, 건국 68주년”을 언급하며 뉴라이트와 이승만주의자들의 1948년 건국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한 뒤, 그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과 그 의미를 찾아서’를 열고 1919년 건국을 부정하고 임시정부 및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깎아내렸다.
전희경 의원이 마련한 그 날 토론회에서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원장을 지낸 류석춘 교수 등은 1919년 건국은 당시 외국 국적자들(김구는 중국, 안창호는 미국,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국적자였고, 이승만은 무국적이었다며)이 주도한 것이었고, 1919년 건국 주장은 결과적으로 남북이 정통성을 나눠 갖게 하는 것이며, “쉽게 생각하면 김일성 정권에게 절반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희경 의원은 1919년 건국론자들을 “자신의 반대한민국적 사관을 숨기면서 대한민국 독립세력과 건국세력을 이간질하는 사람들”(<미디어 오늘> 8월 22일 치)이라며 예의 종북 색깔론을 펼치기도 했다.
출처 [단독] ‘1919년 건국’ 이승만 문서 공개…건국절 논란 끝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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