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과 삼성, ‘재벌-투기자본 연대’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만들까?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10-09 15:55:34 | 수정 : 2016-10-09 15:55:34
작년에 왔던 각설…, 아니 참 작년에 왔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작년에는 삼성그룹을 죽일 것처럼 으르렁댔는데, 올해에는 환한 얼굴로 “이재용 만세!”를 외친다.
물론 이들의 환한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상대는 마른 오징어에서도 육수를 짜낸다는 악명 높은 벌처펀드(vulture fund)다. 이들의 별칭이 괜히 대머리독수리(vulture)가 아니다. 죽은 시체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내는 게 대머리독수리다. 특히 폴 싱어(71)가 이끄는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아르헨티나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아르헨티나 군함과 대통령 전용기를 압류해 돈을 뜯어낸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환한 웃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적질을 하던 이들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석패했다. 명분은 있었지만 한국은 월가 투기자본이 뛰어들기에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재벌 3세에게 경영권 몰아준다며 국민연금과 사법부, 100여 개의 언론과 70여 개의 금융회사들이 모조리 동원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 있겠나?
각설이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다. 확실한 설계도가 있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아직 사태 초반이라 그들의 설계도가 무엇인지 불투명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사실이 있다. 지난해 석패의 아픔이 이들에게 큰 교훈이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에 웃으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삼성과 이재용을 향해 “우리가 지금부터 너희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마. 대신 돈다발을 다오!”라고 외친다. 삼성과 이재용은 월가 헤지펀드가 내민 이 ‘연대의 손길’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성사된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정말로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헤지펀드-재벌자본 연대’라는 최악의 모습이 현실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7일 삼성전자에 서한을 보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 △ 30조 원(주당 24만 5000원)의 현금 배당 △ 분할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나스닥 상장 △ 3명의 외국인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이 그것이다.
특이한 점은 공개서한의 태도가 나긋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점이다. 엘리엇은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동시에 세계적인 테크놀로지 회사로서의 지위를 구축함에 있어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고 아양도 떨고, “이러한 성과들에 대한 창업주 가족과 삼성전자 경영진의 공로는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라고 알랑방귀도 뀐다.
자신들의 제안을 설명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다. 엘리엇은 “삼성전자에게 지금은 곧 새롭게 구성될 리더십을 통해 빛나는 업적을 지속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자 중요한 기회”라면서 “저희는 삼성전자의 이사진이 이러한 기회를 꼭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겸손하게 제안을 내놓았다. 특히 엘리엇이 “새롭게 구성될 리더십”을 언급하며 명시적으로 ‘이재용의 시대’를 승인해 줄 뜻을 내비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머리독수리가 왜 이리도 고분해졌을까? 이들에게는 이미 계산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이 제안한 네 가지 제안 중 첫 번째, 즉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삼성 입장에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즉 먼저 청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바라던 바였다.
지난해 이재용은 무역회사와 놀이동산을 합치는 황당한 방식으로 일단 그룹 지배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재용은 삼성전자를 둘로 쪼개야 한다. 그리고 주식을 잔뜩 들고 있는 분할된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자신이 지배 중인 삼성물산과 합쳐야 한다. 엘리엇이 청하지 않더라도 이재용은 이 짓을 언젠가는 했어야 했다.
물론 이재용에게는 부담이 있다. 지배권 확보를 위해 기업을 이리저리 쪼개고 붙이는 행동이 여론에 좋게 보일 리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에도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올해 삼성SDS 분할을 계획했을 때에도 소액주주들과 시민사회에 “기업이 레고 장난감이냐? 뗐다 붙였다 하게!”라는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엘리엇이 이 여론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 길을 제시할 테니, 이재용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모양새를 취하라”는 게 엘리엇이 제시한 길이다. 이재용으로서는 나쁠 게 없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엘리엇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총대를 멘 대가로 배당 30조 원 내놓으시고 사외이사 3명 내놓으시라!”라고 말이다. 명분을 주되 돈을 얻겠다? 역시 대머리독수리다운 현실적 발상이다. 지난해 한번 붙어보더니 엘리엇은 한국 같은 비정상적 나라에서 삼성을 이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삼성은 엘리엇의 제안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엘리엇 제안이 지배구조 개편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다고 하지만 30조 원의 배당과 나스닥 상장, 사외이사 3명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재용은 이번에도 결사항전의 자세로 엘리엇을 물리치려 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승리 가능성이 지난해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 넘게 들고 덤볐지만, 이번에는 고작 삼성전자 지분 0.62%를 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재용이 이들의 ‘연대 제안’을 뿌리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삼성전자를 정리한 이후에도 이재용에게 처리해야 할 큰 산이 또 하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성생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때 이재용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무려 7.5%나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와 생명이 완전히 분리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5%를 정리해야 하는데, 이게 돈으로 무려 18조 원이 넘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18조 원 어치의 전자 주식을 처분할 때에도, 그것을 누군가가 사들일 때에도 외국인 주주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도 50%를 넘고, 삼성생명에도 외국인이 15%나 들어와 있다. 결국 외국인의 승인 없이 이재용 부회장이 생명과 전자를 부드럽게 분할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이번 ‘재벌-헤지펀드 연대’는 성사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재벌 개혁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재벌이 축적한 부를 외국계 주주들에게 퍼 주면 투자와 고용은 당연히 악화된다. 재벌의 모든 의사 결정 시스템도 이재용 및 그에게 아부해서 돈 뜯어내려는 외국계 주주들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래도 과거 이재용이 혼자서 결정할 때보다 나아지는 것 아니냐?”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이재용이 혼자서 결정하건, 헤지펀드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건 그 결정이 반노동적이고 반시민사회적일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헤지펀드 역시 돈만 아는 대머리 독수리일 뿐이다.
스웨덴 정부가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거대한 재벌과 대 타협을 이뤄낸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발렌베리 그룹을 압박한 덕분이었다. 발렌베리 가문이 고작 5.3%의 지분으로 5대 째 그룹을 경영하는 이유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그것을 승인해 줬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경영권을 인정받는 대신 지금도 기업 소득의 무려 85%를 사회공헌기금으로 내고 있다.
재벌을 개혁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몫이다. 설혹 그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재벌과 타협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 해도, 그것 역시 한국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일에 눈치 빠른 헤지펀드가 먼저 끼어들어 ‘재벌-헤지펀드 연대’를 시도했다. 이 연대가 공고해지면 시민사회가 재벌을 견제할 길은 더 좁아진다. 이재용은 환호하고 헤지펀드는 그 뒷배를 봐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국부는 쉴 새 없이 배당으로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이다.
출처 엘리엇과 삼성, ‘재벌-투기자본 연대’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만들까?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10-09 15:55:34 | 수정 : 2016-10-09 15:55:34
작년에 왔던 각설…, 아니 참 작년에 왔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작년에는 삼성그룹을 죽일 것처럼 으르렁댔는데, 올해에는 환한 얼굴로 “이재용 만세!”를 외친다.
물론 이들의 환한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상대는 마른 오징어에서도 육수를 짜낸다는 악명 높은 벌처펀드(vulture fund)다. 이들의 별칭이 괜히 대머리독수리(vulture)가 아니다. 죽은 시체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내는 게 대머리독수리다. 특히 폴 싱어(71)가 이끄는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아르헨티나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아르헨티나 군함과 대통령 전용기를 압류해 돈을 뜯어낸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 올해 3월 오바마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의 '벌처펀드'를 상징하는 대머리독수리 인형에 성조기를 두르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AP/뉴시스
그래서 이들의 환한 웃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해적질을 하던 이들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석패했다. 명분은 있었지만 한국은 월가 투기자본이 뛰어들기에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재벌 3세에게 경영권 몰아준다며 국민연금과 사법부, 100여 개의 언론과 70여 개의 금융회사들이 모조리 동원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어디 있겠나?
각설이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다. 확실한 설계도가 있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아직 사태 초반이라 그들의 설계도가 무엇인지 불투명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사실이 있다. 지난해 석패의 아픔이 이들에게 큰 교훈이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에 웃으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삼성과 이재용을 향해 “우리가 지금부터 너희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마. 대신 돈다발을 다오!”라고 외친다. 삼성과 이재용은 월가 헤지펀드가 내민 이 ‘연대의 손길’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성사된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정말로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헤지펀드-재벌자본 연대’라는 최악의 모습이 현실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양 떠는 엘리엇-갈 길 바쁜 이재용
엘리엇은 7일 삼성전자에 서한을 보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 △ 30조 원(주당 24만 5000원)의 현금 배당 △ 분할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나스닥 상장 △ 3명의 외국인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이 그것이다.
특이한 점은 공개서한의 태도가 나긋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점이다. 엘리엇은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동시에 세계적인 테크놀로지 회사로서의 지위를 구축함에 있어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고 아양도 떨고, “이러한 성과들에 대한 창업주 가족과 삼성전자 경영진의 공로는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라고 알랑방귀도 뀐다.
자신들의 제안을 설명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다. 엘리엇은 “삼성전자에게 지금은 곧 새롭게 구성될 리더십을 통해 빛나는 업적을 지속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자 중요한 기회”라면서 “저희는 삼성전자의 이사진이 이러한 기회를 꼭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겸손하게 제안을 내놓았다. 특히 엘리엇이 “새롭게 구성될 리더십”을 언급하며 명시적으로 ‘이재용의 시대’를 승인해 줄 뜻을 내비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머리독수리가 왜 이리도 고분해졌을까? 이들에게는 이미 계산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이 제안한 네 가지 제안 중 첫 번째, 즉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을 통한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삼성 입장에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즉 먼저 청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바라던 바였다.
지난해 이재용은 무역회사와 놀이동산을 합치는 황당한 방식으로 일단 그룹 지배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재용은 삼성전자를 둘로 쪼개야 한다. 그리고 주식을 잔뜩 들고 있는 분할된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자신이 지배 중인 삼성물산과 합쳐야 한다. 엘리엇이 청하지 않더라도 이재용은 이 짓을 언젠가는 했어야 했다.
물론 이재용에게는 부담이 있다. 지배권 확보를 위해 기업을 이리저리 쪼개고 붙이는 행동이 여론에 좋게 보일 리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에도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올해 삼성SDS 분할을 계획했을 때에도 소액주주들과 시민사회에 “기업이 레고 장난감이냐? 뗐다 붙였다 하게!”라는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엘리엇이 이 여론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 길을 제시할 테니, 이재용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모양새를 취하라”는 게 엘리엇이 제시한 길이다. 이재용으로서는 나쁠 게 없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엘리엇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총대를 멘 대가로 배당 30조 원 내놓으시고 사외이사 3명 내놓으시라!”라고 말이다. 명분을 주되 돈을 얻겠다? 역시 대머리독수리다운 현실적 발상이다. 지난해 한번 붙어보더니 엘리엇은 한국 같은 비정상적 나라에서 삼성을 이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삼성이 엘리엇을 뿌리치기 어려운 이유
모르긴 몰라도 삼성은 엘리엇의 제안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엘리엇 제안이 지배구조 개편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다고 하지만 30조 원의 배당과 나스닥 상장, 사외이사 3명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재용은 이번에도 결사항전의 자세로 엘리엇을 물리치려 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승리 가능성이 지난해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 넘게 들고 덤볐지만, 이번에는 고작 삼성전자 지분 0.62%를 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재용이 이들의 ‘연대 제안’을 뿌리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삼성전자를 정리한 이후에도 이재용에게 처리해야 할 큰 산이 또 하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성생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삼성그룹은 전자와 생명, 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지배구조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다. 금산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한국의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상태다. 법을 위반했는데도 그룹이 유지되는 이유는 국회와 정부가 삼성에게 예외 조항을 적용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특혜는 언젠가 끝이 난다. 이재용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어떻게든 분리해야 한다.
이때 이재용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무려 7.5%나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와 생명이 완전히 분리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5%를 정리해야 하는데, 이게 돈으로 무려 18조 원이 넘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18조 원 어치의 전자 주식을 처분할 때에도, 그것을 누군가가 사들일 때에도 외국인 주주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도 50%를 넘고, 삼성생명에도 외국인이 15%나 들어와 있다. 결국 외국인의 승인 없이 이재용 부회장이 생명과 전자를 부드럽게 분할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재벌 개혁,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그래서 이번 ‘재벌-헤지펀드 연대’는 성사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재벌 개혁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재벌이 축적한 부를 외국계 주주들에게 퍼 주면 투자와 고용은 당연히 악화된다. 재벌의 모든 의사 결정 시스템도 이재용 및 그에게 아부해서 돈 뜯어내려는 외국계 주주들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래도 과거 이재용이 혼자서 결정할 때보다 나아지는 것 아니냐?”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이재용이 혼자서 결정하건, 헤지펀드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건 그 결정이 반노동적이고 반시민사회적일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헤지펀드 역시 돈만 아는 대머리 독수리일 뿐이다.
스웨덴 정부가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거대한 재벌과 대 타협을 이뤄낸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발렌베리 그룹을 압박한 덕분이었다. 발렌베리 가문이 고작 5.3%의 지분으로 5대 째 그룹을 경영하는 이유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그것을 승인해 줬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경영권을 인정받는 대신 지금도 기업 소득의 무려 85%를 사회공헌기금으로 내고 있다.
▲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6월부터 25일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 삼성그룹 이재용 세습 찬반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민사회-삼성그룹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1474명의 삼성 노동자와 1만588명의 일반 시민 등 1만2062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세습 반대가 90.1%로 높게 나왔다. ⓒ김철수
재벌을 개혁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몫이다. 설혹 그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재벌과 타협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 해도, 그것 역시 한국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일에 눈치 빠른 헤지펀드가 먼저 끼어들어 ‘재벌-헤지펀드 연대’를 시도했다. 이 연대가 공고해지면 시민사회가 재벌을 견제할 길은 더 좁아진다. 이재용은 환호하고 헤지펀드는 그 뒷배를 봐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국부는 쉴 새 없이 배당으로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이다.
이제 정말 재벌개혁이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벌들이 그동안 벌인 범법과 탈법이 헤지펀드의 옹호 속에 묻히기 전에, 한국의 시민사회가 제대로 된 견제의 힘을 갖추고 재벌 개혁에 나서야 한다. 장담하는데 재벌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헤지펀드의 존재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 엘리엇과 삼성, ‘재벌-투기자본 연대’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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