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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와 박정근, 표현의 자유 ‘그 사이’

정봉주와 박정근, 표현의 자유 ‘그 사이’
가카 '헌정' 방송에 출연한 정봉주 의원은 가카를 찬양한 걸까
[참세상] 이상원 수습기자 | 2012.01.12 19:47


정봉주 의원이 출연한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가카 헌정 방송”을 모토로 한다. “가카 께서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는 나꼼수가 만든 최고의 유행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나꼼수>가 ‘가카’를 찬양하려 만들어진 방송이 아니라는 사실을.

박정근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 했고, 북한 체제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트윗을 남겼다. 박 씨가 리트윗 한 내용을 보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새로 건설된 옥류관 료리전문식당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따위다.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박 씨의 트위터에 대해서 “북한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명백히 드러난다”라고 설명하며, 그를 풍자예술가로 소개하기도 했다.

▲ 지난 11일, 구속수감된 박정근씨. [출처: 트위터 아이디 @churuyasandayo]


가카 '헌정' 방송에 출연한 정봉주 의원은 가카를 찬양한 걸까

정봉주 의원과 박정근 씨는 모두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정봉주 의원이 가카 헌정을 모토로 건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그에게 가카를 찬양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딱 그만큼의 차이다.

가장 큰 차이는 정 의원 사건을 기회로 일명 ‘정봉주법’ 을 발의한 정치인들의 행보다. 정 의원이 구속된 이후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정 의원의 구속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행위라며 규탄했다. 정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 당했다고 한다면 박정근 씨는 제2의 정봉주다. 하지만 현재까지 통합진보당과 사회당을 제외한 정당은 흔한 논평조차 한 줄 내고 있지 않다.

트위터 리트윗 때문에 구속된 박 씨의 사건은 정치인들 보다 일반 시민들에게 더 와 닿고 있다. 시민들은 트위터를 통해 종일 박 씨 사건의 황당함을 토로하고, 국가보안법의 무자비함을 규탄하고 있다. 정 의원의 사건이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인들간의 문제라면, 박 씨의 사건은 그야말로 사소한 표현 하나로 본인에게도 닥칠 수 있는 시민의 문제다.

만약 정봉주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통해 북한 계정의 트윗을 리트윗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국보법이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박 씨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알 수 없다. 언제든 국보법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민들을 억압해 올 수 있다.

▲ 박정근 구속에 대한 시민들의 SNS 반응 [출처: 트위터 캡쳐]


시민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박정근 씨의 사건은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이 밝힌 박 씨의 범죄사실은 박 씨가 북한 체제를 선전, 선동하는 표현물을 트위터로 접속하여 취득, 반포하고, 북한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것을 빌미로 박 씨에게 국가보안법 7조 1항과 5항을 적용하여 처벌하려 한다.

박 씨의 변호를 맡은 이광철 변호사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국가보안법 7조 1항, 5항으로 처벌하려면 박 씨가 트위터에 남긴 표현이 대한민국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해야 한다”라며 “사법부의 판단이 참담할 뿐” 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참담하다”고 밝힌 것처럼 박 씨의 트위터 내용이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험한 내용이라 보기는 힘들다. <뉴욕타임즈>는 “그가 편집해서 트위터에 올린 북한 선전물의 모습에는 냉소적인 태도가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미소짓는 북한 군인의 얼굴을 시무룩하게 아래를 보는 표정의 캐리커쳐로, 군인의 무기는 위스키 병으로 바꿨다”고 설명하면서 박 씨가 트위터에 올린 것들은 그저 재미를 위했을 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 검찰이 문제로 삼은 박정근 씨의 트위터 내용. 박 씨는 지난해 9월 압수수색을 받은 이후로도 꾸준히 이 같은 트윗을 남겼다. 말도 되지 않는 검찰의 행보에 대한 저항이었다. [출처: 박정근 트위터]

역사적으로 국보법은 독재권력에 의해 시민들의 표현을 억압하는데 이용되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박정희를 욕해서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잡혀갔다는 엄혹한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보법은 이렇듯 언제든 권력의 입맛대로 시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표현을 억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정봉주법’, ‘노회찬법’ 으로 거론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일까. ‘정봉주법’ 과 ‘노회찬법’ 이 제2의 정봉주와 노회찬을 만들지 않을지는 몰라도, 제2의 박정근이 또 발생하는 일은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출처 : 정봉주와 박정근, 표현의 자유 ‘그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