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말 세상을 뒤바꿔버린 결정이었어요”
3년 복역 후 출소한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민중의소리] 양아라 기자 | 발행 : 2017-02-12 16:18:34 | 수정 : 2017-02-12 21:14:55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카페 안, 한 남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종북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요? 벌써 자기검열에 빠진 건가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 질문은 마치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종북 좌파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가 탄핵돼야 하는 이유에 관심을 갖기보다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의 머리 속을 파헤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 국가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정짓는 것과 같았다.
그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헌법에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있고 내용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도 있어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법의 잣대로 들이대고 국가폭력으로 제재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인가요?”
<민중의소리>는 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카페에서 김근래(51)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만기 복역한 후 지난해 9월 출소했다. 그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곱씹으며 3년간 옥살이를 버텨냈다.
감옥문을 나섰지만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아직도 감옥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홍열 전 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이상호 전 경기진보연대 고문, 우위영 전 진보당 대변인, 박민정 전 진보당 청년위원장, 이영춘 전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등 6명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복역하고 있다.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는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이 북한에 동조해 내란을 꾸몄다고 발표하며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국정원 등이 ‘박근혜 당선’을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는 와중에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시작됐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협조자 이모씨의 녹취파일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고, 이석기 의원의 실제 발언도 국정원이 제공한 녹취록과는 수백군데가 다른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결국 내란음모는 없었으나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희대의 사건으로 남았다.
내란음모 사건을 빌미로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인용 결정을 내린 다수의 재판관들은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통합진보당의 숨은 목적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였다. 당시 헌법재판소 안팎에선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라 지목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 자리를 부정선거로 강탈한 지 딱 2년 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서도 드러난 ‘통진당 해산판결’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의해 기획된 박근혜 정권의 보복이었을까.
“진보를 표방했던 역대 정당 중 국회에서 13석을 얻은 정당은 통합진보당이 유일할 거예요. 나중에 국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내버려뒀다가는 다음 선거를 거치면서는 더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통합진보당은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날아오는 위협이 됐고,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태양 가까이에 가서 녹아버렸다.
그 ‘역사적인’ 판결을 내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31일 명예롭지 않은 퇴임식을 가졌다. 박 소장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고 대한민국의 민주적 가치 정립에 한 획을 그었다”면서 “세상을 바꿔놓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김근래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세상을 바꿔놨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시키는 ‘암흑천지’로 만들어 놨죠. 그래서 국민들이 촛불을 든 거 아니에요. 사회 전반에 진보, 개혁, 민주, 인권 이런 흐름을 축소시킨 것이죠. 정당이 해산될 정도면 그보다 힘이 약한 일반 개인들, 단체들은 운신의 폭이 훨씬 줄어들어요. 단순히 진보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고립상태가 된 거죠.”
그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활동을 하며 매주 촛불집회에서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3년이 흐른 지금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은 서서히 잊혀졌고, 아직까지도 불편한 주제다.
그래서 이석기 전 의원의 구명운동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은 꼭 “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바로 이 말을 붙이고서야 “해산은 잘못 된 거다”라고 말한다. “‘너 빨갱이지? 종북이지?’ 공격받거나 자기주장을 오해를 받을까봐 미리 방어막을 친다. 이에 그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검열을 해요. 종북몰이가 무서운 거예요. 저들이 노리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물론 ‘이석기 석방을 얘기하면 내부가 분열된다, 보수언론한테 촛불집회 순수성이 훼손당할 빌미가 된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근래씨는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대화하면 대부분은 동의했다고 말한다. “저 사람들이 항상 국면을 전환하거나 본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면하기 위해 종북몰이, 빨갱이 사냥을 하고 나오는데 대한민국 적폐를 청산하는 이 시기에 오히려 국민의 힘을 모아 깨야죠.”
그는 평소 “우리는 피해자인데 마치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3년이 지났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두렵다. 교도소 밖 세상은 그에게 더 큰 감옥이다. 아무런 잘못없는 가족에게도 ‘빨갱이 가족’이라는 붉은 낙인이 찍혔다. 마치 이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사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내란음모 사건을 일으킨 빨갱이들은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대요.”
감옥 안에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자신이 해결할 문제는 고스란히 가족과 지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본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그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386세대다. 그는 늘 야당을 지지하며 길거리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가 바뀔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진보진영에 내세운 권영길 대선 후보의 수행비서로 현실 정치에 들어왔고, 민주노동당의 창당 당원, 통합진보당의 당원 등으로 활동했다.
운동가 이전에 그는 아내와 아들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감옥에서 나온 후로 그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자 운영하던 가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은 산에서 나무 베는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서 큰 희생을 당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오히려 원망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계좌나 통신기록 등을 국정원에 털리는 등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보진영 내에서도 통합진보당 해산의 계기가 됐던 내란음모사건으로 진보진영 전체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원망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도 종북몰이를 피하고자 등을 돌렸다. 가족들이 탄원서를 받기위해 야당 국회 의원실에 방문하면 거의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했다.
진보정당의 싹은 박근혜 정권에 의해 밟혔지만 그 뿌리는 사회 속에 살아있지 않을까. 그에게 탄핵 이후 대선 전에 진보정당이 하나로 뭉쳐질 수 있을까를 물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거나 통합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금 신뢰 수준에서는 쉽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진단했다.
“과거 통합진보당은 선거를 앞두고 물리적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내부의 화학적 결합이 잘 안 됐고 총선 공천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해소가 되지 못했죠. 내부가 허약한 상태에서 외부의 공격까지 받아 무너져 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게 실력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분열과 이탈을 반복했던 통합진보당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진보정당이 다시 집권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는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양당 독식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선거제도 속에서는 선거 막판에 가면 소수정당들은 죽어야 해요. ‘진보정당 너네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된다’ 이 논리로 몰아가면 국민들은 불안하잖아요. 결국은 소수정당은 주저앉고 중도 사퇴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들의 촛불혁명이라고 표현되는 이 시기에 적폐를 청산하는 일환으로 낡은 정치구조와 민의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바뀐다면 진보정당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음모 사건의 피해자인 김근래씨는 시민들이 든 오늘의 촛불이 내일의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그는 이 나라가 뺏은 권리를 찾으려 다시 거리에 섰다. 종북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평범한 그와 인터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내 눈에 씌워 있던 빨간 안경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출처 [인터뷰]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말 세상을 뒤바꿔버린 결정이었어요”
3년 복역 후 출소한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민중의소리] 양아라 기자 | 발행 : 2017-02-12 16:18:34 | 수정 : 2017-02-12 21:14:55
▲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진짜 종북이 있어요?”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카페 안, 한 남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종북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요? 벌써 자기검열에 빠진 건가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 질문은 마치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종북 좌파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가 탄핵돼야 하는 이유에 관심을 갖기보다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의 머리 속을 파헤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 국가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정짓는 것과 같았다.
그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헌법에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있고 내용적으로는 사상의 자유도 있어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법의 잣대로 들이대고 국가폭력으로 제재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인가요?”
<민중의소리>는 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카페에서 김근래(51)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만기 복역한 후 지난해 9월 출소했다. 그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곱씹으며 3년간 옥살이를 버텨냈다.
감옥문을 나섰지만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아직도 감옥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홍열 전 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이상호 전 경기진보연대 고문, 우위영 전 진보당 대변인, 박민정 전 진보당 청년위원장, 이영춘 전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등 6명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복역하고 있다.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는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이 북한에 동조해 내란을 꾸몄다고 발표하며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국정원 등이 ‘박근혜 당선’을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는 와중에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시작됐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협조자 이모씨의 녹취파일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고, 이석기 의원의 실제 발언도 국정원이 제공한 녹취록과는 수백군데가 다른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결국 내란음모는 없었으나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희대의 사건으로 남았다.
▲ 이상호씨 부인 윤소영씨, 구속됐다 최근 석방된 김근래씨(왼쪽부터) 등이 광화문광장에서 구속자 석방을 위한 시민 서명을 받고 있다. ⓒ민중의소리
“통합진보당 해산은 세상을 바꿔놓은 결정”
내란음모 사건을 빌미로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인용 결정을 내린 다수의 재판관들은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통합진보당의 숨은 목적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였다. 당시 헌법재판소 안팎에선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가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라 지목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 자리를 부정선거로 강탈한 지 딱 2년 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서도 드러난 ‘통진당 해산판결’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의해 기획된 박근혜 정권의 보복이었을까.
“진보를 표방했던 역대 정당 중 국회에서 13석을 얻은 정당은 통합진보당이 유일할 거예요. 나중에 국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내버려뒀다가는 다음 선거를 거치면서는 더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통합진보당은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날아오는 위협이 됐고,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태양 가까이에 가서 녹아버렸다.
그 ‘역사적인’ 판결을 내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31일 명예롭지 않은 퇴임식을 가졌다. 박 소장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고 대한민국의 민주적 가치 정립에 한 획을 그었다”면서 “세상을 바꿔놓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김근래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세상을 바꿔놨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를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시키는 ‘암흑천지’로 만들어 놨죠. 그래서 국민들이 촛불을 든 거 아니에요. 사회 전반에 진보, 개혁, 민주, 인권 이런 흐름을 축소시킨 것이죠. 정당이 해산될 정도면 그보다 힘이 약한 일반 개인들, 단체들은 운신의 폭이 훨씬 줄어들어요. 단순히 진보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고립상태가 된 거죠.”
“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지만...정당 해산결정은 잘못됐다”
종북몰이 그리고 자기검열
종북몰이 그리고 자기검열
그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활동을 하며 매주 촛불집회에서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3년이 흐른 지금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은 서서히 잊혀졌고, 아직까지도 불편한 주제다.
그래서 이석기 전 의원의 구명운동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은 꼭 “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바로 이 말을 붙이고서야 “해산은 잘못 된 거다”라고 말한다. “‘너 빨갱이지? 종북이지?’ 공격받거나 자기주장을 오해를 받을까봐 미리 방어막을 친다. 이에 그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 검열을 해요. 종북몰이가 무서운 거예요. 저들이 노리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물론 ‘이석기 석방을 얘기하면 내부가 분열된다, 보수언론한테 촛불집회 순수성이 훼손당할 빌미가 된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근래씨는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대화하면 대부분은 동의했다고 말한다. “저 사람들이 항상 국면을 전환하거나 본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면하기 위해 종북몰이, 빨갱이 사냥을 하고 나오는데 대한민국 적폐를 청산하는 이 시기에 오히려 국민의 힘을 모아 깨야죠.”
▲ 김근래 전 통합민주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5일 오후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열린 ‘이카로스의 감옥-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북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제공
“더 큰 감옥 안에 살고 있다”
그는 평소 “우리는 피해자인데 마치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3년이 지났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두렵다. 교도소 밖 세상은 그에게 더 큰 감옥이다. 아무런 잘못없는 가족에게도 ‘빨갱이 가족’이라는 붉은 낙인이 찍혔다. 마치 이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사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내란음모 사건을 일으킨 빨갱이들은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대요.”
감옥 안에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자신이 해결할 문제는 고스란히 가족과 지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본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그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386세대다. 그는 늘 야당을 지지하며 길거리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가 바뀔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진보진영에 내세운 권영길 대선 후보의 수행비서로 현실 정치에 들어왔고, 민주노동당의 창당 당원, 통합진보당의 당원 등으로 활동했다.
운동가 이전에 그는 아내와 아들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감옥에서 나온 후로 그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자 운영하던 가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은 산에서 나무 베는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서 큰 희생을 당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오히려 원망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계좌나 통신기록 등을 국정원에 털리는 등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보진영 내에서도 통합진보당 해산의 계기가 됐던 내란음모사건으로 진보진영 전체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원망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도 종북몰이를 피하고자 등을 돌렸다. 가족들이 탄원서를 받기위해 야당 국회 의원실에 방문하면 거의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했다.
▲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2년 청와대 헌법재판소 커넥션 규탄 기자회견'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윤종오 무소속 의원 등이 참석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양지웅 기자
“진보정당 너네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된다”
진보정당의 싹은 박근혜 정권에 의해 밟혔지만 그 뿌리는 사회 속에 살아있지 않을까. 그에게 탄핵 이후 대선 전에 진보정당이 하나로 뭉쳐질 수 있을까를 물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거나 통합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금 신뢰 수준에서는 쉽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진단했다.
“과거 통합진보당은 선거를 앞두고 물리적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내부의 화학적 결합이 잘 안 됐고 총선 공천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해소가 되지 못했죠. 내부가 허약한 상태에서 외부의 공격까지 받아 무너져 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게 실력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분열과 이탈을 반복했던 통합진보당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진보정당이 다시 집권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는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양당 독식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선거제도 속에서는 선거 막판에 가면 소수정당들은 죽어야 해요. ‘진보정당 너네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된다’ 이 논리로 몰아가면 국민들은 불안하잖아요. 결국은 소수정당은 주저앉고 중도 사퇴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들의 촛불혁명이라고 표현되는 이 시기에 적폐를 청산하는 일환으로 낡은 정치구조와 민의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바뀐다면 진보정당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음모 사건의 피해자인 김근래씨는 시민들이 든 오늘의 촛불이 내일의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그는 이 나라가 뺏은 권리를 찾으려 다시 거리에 섰다. 종북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평범한 그와 인터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내 눈에 씌워 있던 빨간 안경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출처 [인터뷰]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말 세상을 뒤바꿔버린 결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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