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자유총연맹이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경향신문] 백철 기자 | 입력 : 2017.03.04 14:25:00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 지적이 계속되자 일부 지자체는 좀 더 은밀한 곳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편성한다. 인천의 어느 구에서 자총 예산은 홍보미디어실 예산으로 편성돼 있다. 전북 어느 군은 엉뚱하게 새만금국제협력과 밑에 자총 예산이 편성돼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자유총연맹의 위상이 높은 경상북도에서는 특이하게도 기획감사실에 자총 예산을 편성했다. 단체장이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런 편성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분석할 수 있다.
매년 100억 원을 세금으로 지원받는 민간단체가 있다. 자유총연맹이다. 자유총연맹은 비영리 민간단체이지만 자유총연맹법이라는 근거가 있는 법정단체다. 물론 뚜렷한 공익적 목적이 있는 단체라면 1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주의를 항구적으로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다소 모호한 사명이 있다.
자유총연맹은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3·1절 친박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경재 회장의 집회 발언을 보면 자유총연맹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알 수 있다. 김 회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살린다면서 “박근혜를 살리자”, “탄핵을 각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세금은 모든 국민으로부터 받고 일부 국민만 대변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미 언론과 국회는 김 회장의 정치 편향적인 태도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개선의 기미가 없자 지난해 국회는 국비 자유총연맹 지원 예산을 5억 원에서 2억5000만 원으로 절반 삭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친박단체 집회에 나타나 “우리 예산을 깎으면 내년(2017년) 정치적인 선거에 자유총연맹이 가담하겠다”고 의원들을 협박했다고 자랑스레 말한 바 있다.
올해 자유총연맹은 이미 국비를 포함해 전국 지자체 예산에서 98억 원 정도를 지원받게 돼 있다. 전국적인 관변단체 지자체 지원금 연구가 있었던 4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국비 보조금 삭감이 큰 손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리 국회의원이 호통을 쳐도 자유총연맹은 개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3년 전 보조금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변단체에 예산을 지원해온 대구광역시 소속 기초단체들도 예산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자유총연맹이 최소한 정치 편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려면 각 지자체의 예산 심의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총도 다른 민간단체와 같은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자유총연맹의 연간 전체 보조금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국비와 전국 지자체 홈페이지에 등록된 2017년 예산안을 훑어봤다. 전국에는 17개 광역단체와 226개 기초단체가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자유총연맹을 비롯한 3대 관변단체(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 예산을 여타 시민단체 보조금 예산과 별도로 편성한다. 액수와 지자체의 크기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를 살펴보면 서울시의 자유총연맹 지원예산은 약 8억870만 원인데, 경기도의 지원예산은 20억 원을 넘어 큰 차이를 보인다.
4년 전 관변단체의 전국 예산 지원실태를 알아본 적이 있다. 당시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나라살림연구소가 연구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대 관변단체 전체는 2013년 한 해 동안 전국 지자체로부터 총 279억 원가량의 예산을 받았다. 자유총연맹만 따로 놓고 봤을 때는 부산시를 제외하고 47억 원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4년 만에 이 예산은 약 2배 가까이 뛰었다. 당시 나라살림연구소는 3대 관변단체가 전체 사회단체 보조금의 26.9%를 차지하고 있다고 봤다. 3대 관변단체 중에서 자총 예산의 비율은 약 17%다.
물론 올해 자료와 4년 전 자료에는 차이가 있다. 2013년 자료는 국회의원이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출받은 것인 데다 부산광역시의 경우 노조와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반면 2017년 자료는 예산안을 기초로 한 자료다. 부산광역시 및 산하 기초단체 예산안도 포함이 됐다. 또한, 통일관, 낙동강 승전기념관 등 일부 광역단체에 있는 자유총연맹 관련 시설 지원금도 포함했다.
2017년 자유총연맹에 대한 국가와 지방의 보조금을 모두 더하면 약 98억7500만 원이다. 여기에 자총이 2002년 사실상 정부로부터 값싸게 매입한 한전산업개발(현재 자총은 지분율 31%의 대주주)의 배당금을 더하면 매년 자유총연맹에 들어가는 국가 보조금은 100억 원을 넘어선다. 자유총연맹에 대한 한전산업개발의 배당금은 원래는 공기업인 한전에 돌아가야 할 몫이다.
각 지자체의 자유총연맹 예산 실태를 보면 지자체별로 자유총연맹 예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기초단체의 경우 자유총연맹 예산을 대체로 행정과, 자치과, 총무과에 편성한다. 이런 부서는 다른 사회단체 보조금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다. 한꺼번에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예산도 같이 편성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관변단체 보조금에 대한 특혜 지적이 계속되자 일부 지자체는 좀 더 은밀한 곳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편성한다. 인천 계양구의 경우 통상적인 관변단체 예산 항목에 새마을운동중앙회과 바르게살기협의회만 편성돼 있다. 올해 자유총연맹 예산이 삭감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자유총연맹 예산은 홍보미디어실 예산으로 편성돼 있었다. 전북 부안군은 엉뚱하게 새만금국제협력과 밑에 자유총연맹 예산 860만 원이 편성돼 있다.
서울과 인천의 경우 자유총연맹의 힘이 예전만 하지는 못한 모습도 보인다. 서울시의 경우 상당히 많은 지자체에서 관변단체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고, 3개 단체를 묶어 ‘국민운동단체 예산’이라는 항목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나아가 아예 일반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사업 예산을 신청하도록 한 곳도 있다.
시민단체 예산 지원 중 실제로 얼마가 가는지는 들쑥날쑥하다. 2013년 나라살림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시민단체 보조금 예산 중 3대 관변단체가 가져가는 예산은 약 26.9%였다. 3대 단체 예산 중 자총의 비율은 약 17%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치구별로 예산 편성액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ㄱ구의 경우 과거 사회단체 보조금에 해당하는 예산 중 80% 정도가 3대 단체에 편성된다고 답했다. 반면 ㄴ구 예산 담당자는 3대 단체를 합쳐도 20%가 채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3·1절 집회에서 비교적 회원들이 집회에 열의를 보였던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서 자유총연맹의 위상은 높아 보였다. 특히 대구광역시의 경우 3년 전 보조금의 엉터리 집행 실태가 알려졌음에도 예산이 거의 변함이 없었다. 2014년 <뉴스타파>는 대구시 산하 기초단체들이 사실상 자동으로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예산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당수 관변단체는 지출을 간이영수증으로 증명하거나, 관련 단체의 전·현직 임원이 운영하는 업체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대구시의 기초단체들은 총 2억300만 원의 예산을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에도 2억482만 원을 지원해 큰 차이가 없었다.
경상북도에서는 자유총연맹의 위상이 높아 보였다. 다른 광역 시·도의 기초단체처럼 행정과, 자치과, 총무과에서 편성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북도에서만큼은 특이한 과에서 예산을 편성했다. 한 군에서는 기획감사실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2500만 원 편성했다. 게다가 이 예산은 사회단체 관련 예산이 아니라 ‘군정 홍보’ 관련 예산으로 편성돼 있다. 마찬가지로 경상북도 지자체 중에서는 문화관광과, 홍보전산과, 공보감사담당관 등 자유총연맹과 큰 연관성이 없는 부서에 예산이 편성된 경우가 있다. 단체장이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런 예산 편성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분석할 수 있다.
자유총연맹 지방조직들에 있어서 예산 문제는 민감하다. 과거와 달리 관변단체 예산에 대한 여러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관변단체 예산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지자체도 한 두 곳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자유총연맹 관계자 ㄱ 씨는 김 회장의 정치 편향적인 활동이 자유총연맹의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ㄱ 씨는 “자유총연맹 본부는 국비 안 받아도 운영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지부들은 지자체에서 예산을 삭감해버리면 그대로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곳들이 많다. 특히 야당 단체장들이 있는 조직은 예산이 깎이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젠 완전히 삭감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ㄱ 씨는 3·1절 행사로 많은 지역조직이 휘청거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경투쟁에 대한 비용을 이야기했다. ㄱ 씨 등 자유총연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관광버스 1대를 빌리는 여러 가지 제반 비용에 약 100만 원이 소요된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려면 최소한 점심과 저녁 2끼니를 제공해야 하는데, 중간에 간식이나 음료 비용을 고려하면 1인당 1만5000원에서 2만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ㄱ 씨는 “다른 지부, 지회 사정을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행사 때문에 간부급 인사 중에 추가로 기부금 몇백만 원씩 내고 속이 쓰린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자유총연맹 관계자 ㄴ 씨는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자총 조직이 엄청난 세금을 받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총법에 명확히 명시가 안 돼 있다고 해서 특정 세력만 편드는 활동을 계속하니까 반대급부로 언론에서도 계속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ㄱ 씨는 김 회장의 야심이 자유총연맹의 존폐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경재 회장이 태극기 집회에서 한 발언 댓글란을 봐라. 자총 자체가 완전 꼴통보수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같이 태극기를 흔들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며 “김 회장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으로 조직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총연맹 내부 규정에도 탄핵절차가 있다. 지금이라도 뜻 있는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회장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고, 정치적 야심이 없는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3월 1일 오후 1시, 탄핵 반대 친박집회에 자유총연맹 회원이 몇 명이나 올지 궁금증을 갖고 집회장소인 서울시 세종로사거리에 나갔다. 3·1절 집회 3주 전인 2월 9일, 김경재 회장은 전국 지부에 10만 명 동원령을 내렸다. 여러 자총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자총 본부는 각 지부에 등록된 회원의 10%를 3·1절 집회에 참가시키라고 지시했다.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집회 며칠 전에는 각 지부에 파란색 깃발과 모자를 배포했다. 이날 세종로사거리는 태극기를 든 인파로 가득했다. 동창회, 전우회 등 온갖 단체에서 깃발을 높이 들었고, 종이신문과 팸플릿을 뿌리는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중에 파란색 자총 깃발은 거의 없었다. 김경재의 ‘10만 대군’은 어디로 갔나.
당일 친박집회는 2시 세종로사거리에서 열리는 탄기국(탄핵 기각 국민총궐기 본부)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총재와 자총 회원들은 세종로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세종로 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탄기국 집회와는 별도로 집회를 연 것이다. 한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2월 27일 김 총재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다녀온 이후 총연맹 깃발 외에 다른 유인물은 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부분 회원도 공식 행사만 끝나면 다들 지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원 연단에 선 김경재 총재는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단체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오늘은 말실수를 할까 봐 원고를 써왔다”고 말했다.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헌재 재판관들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결과를 존중하고 수용하고 3·1정신으로 국민 대통합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김 총재는 원고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기 시작했다. 좀 더 솔직한 표현도 나왔다. 그는 “특검은 고영태 음모와 JTBC 의혹을 수사하지 않아서 도덕성에 흠결이 발생했다”며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세력은 도저히 수용이 불가능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살리자”, “박근혜를 살리자”, “탄핵을 각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비슷한 시각 세종로사거리에는 박근혜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의 연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종로공원 자총 집회에 참석한 자총 사람들이 세종로사거리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청계광장 앞에는 강원도, 경상남도, 대구시 등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20여 명씩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자유총연맹의 파란 모자와 깃발은 하얀 태극기 사이에 떠 있는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시간이 오후 3시를 넘자 파란 깃발을 따라 삼삼오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자총 회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자총 강원도지부에서 온 한 깃발을 따라가 봤다. 세종로공원을 나와 인근의 3호선 경복궁역에 도착한 이들은 깃발을 든 사람을 따라 길을 건넜다. 건너편에는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모자를 쓴 60대 여성에게 박근혜 탄핵에 관해 물어보자 “행사가 끝나서 집에 가야 한다. 탄핵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급히 버스에 올랐다. 20명 정도가 버스를 타자 운전사가 문을 닫았다. 광화문을 지난 친박집회 대열이 경복궁 쪽으로 접근하자 버스는 그 전에 얼른 서쪽으로 빠져나갔다.
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깃발을 들고 있는 40~50명은 탄기국 행진대오와 함께 ‘탄핵 무효’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미 자유총연맹 깃발은 집회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한 60대 남성회원은 “원래 촛불이 100만이고 여기는 2,000명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완전히 역전이다. 이제 저쪽에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친박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기자와 인터뷰한 남성을 비롯한 대구 자유총연맹 회원들은 중간에 인도로 빠져나와 통인시장 건너편에 주차된 2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한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김 총재가) 탄기국에서 자기를 불러주지 않으니까 소규모 집회장에서 허세를 부렸다”며 “탄핵 반대 집회에 인원을 동원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지회장들도 많은데, 눈치가 보여서 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박근혜 변호인단 측도 다급해졌다. 뒤늦게 박근혜 변호인단에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는 3월 1일 오후 친박집회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박근혜는 뇌물죄를 위반한 게 아니라며 “이 간단한 법률을 몰라서 국회와 특검이 박근혜를 탄핵소추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탄핵을 당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이라고 말했다. 김평우 변호사 외에도 박근혜를 직·간접적으로 돕는 법조인들이 여럿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중에는 <주간경향> 1210호가 다룬 ‘수상한 변호사’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프리덤뉴스 대표인 김기수 변호사다. 프리덤뉴스는 매번 친박집회에서 ‘애국일보’라는 이름의 8장짜리 종이신문을 수만여 부씩 배포하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4년 청와대에 재직할 당시 자신이 할 일을 수첩에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의 수첩에서 수상한 변호사들이 나온다. 2014년 7월 7일 김영한 수첩에는 ‘보수 법률단체 활용’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같은 해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김영한 수첩에는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4차례 등장한다. 같은 시기 우연인지 ‘행변’(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는 신생 단체가 나타나 세월호 유가족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피해 대리기사 변호를 맡는다. 행변 창립멤버인 김기수 변호사도 대리기사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변호사는 2015년 4월 행변을 떠났다. 다른 구성원들과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다. 그와 함께 행변을 떠나 두 달 뒤 ‘자변’(자유와 통일을 향한 변호사연대) 창립에 공헌한 차기환 변호사도 현재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맹활약 중이다. 차 변호사는 지난해 말부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변호하고 있다. 또한, 탄핵정국 초반부터 3월 초 현재까지 꾸준히 자신의 SNS를 통해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차 변호사는 행변 활동과 청와대는 관계가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 폭행사건 변론은 행변을 준비하던 멤버들끼리 논의해서 시작한 것이며, 김영한 수첩과는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김기수 변호사도 “민정수석실이라는 곳과 한 번도 연결돼 본 적이 없다. 박근혜 변호인단에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청와대와) 관계가 없어서 연락도 안 왔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박근혜 변호인단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자변에 소속된 황성욱 변호사는 지난해 말 서석구 변호사와 함께 박근혜 변호인단에 포함됐다. JTBC 태블릿 조작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데 앞장선 인지연 변호사도 자변 소속이다. 인 변호사는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자신의 아버지인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사를 꼽는다고 한다.
행변 멤버였던 강래형·성빈 변호사는 자변으로 가지 않고 행변에 남았다. 자변이 생길 무렵부터는 두 사람의 활동은 뜸했고, 자변 변호사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름이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지난 2월 <씨네21>과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이 밝힌 문화체육관광부 영화계정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 명단에서다. 모태펀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주로 투자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들은 펀드의 투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취재 결과 모태펀드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은 한 영화에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이 영화사가 입주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ㄱ 빌딩에는 ‘에픽미디어’라는 회사도 입주해 있다. 에픽미디어는 친박 집회 현장에 뿌려지는 종이신문 ‘노컷일베’를 만드는 회사다. 노컷일베는 애국일보(프리덤뉴스)와 더불어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의심받고 있다. ㄱ 빌딩에는 노컷일베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수단체가 입주해 있었다. 확인된 단체는 공교육살리기 학부모, 시민연합,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 한국자유연합, 자유민주주의수호 시민연대 등이다. 공교롭게도 에픽미디어 대표 ㄴ 씨는 ㄱ 빌딩에 입주한 여러 보수단체에 대표나 간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ㄱ 빌딩에 입주한 단체들은 강래형·성빈 변호사가 만든 행변의 활동과도 접점이 있다. 행변은 2014년 9월 16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비판하는 성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공교육살리기연합도 조 교육감에 대해 주민소환을 언급하는 등 주로 비판적으로 활동했다.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보수 교육감 단일화 운동을 하던 단체다.
‘헌변’(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이종순 변호사도 탄핵국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월 9일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광고를 <조선일보>에 낸 원로 변호사 9명 중 한 명이다. 헌변은 김영한 수첩에 직접 등장한다. 2014년 7월 7일 김영한 수첩엔 ‘보수 법률단체 활용: 헌변과 시변 커넥션 확보토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연인지 헌변은 같은 날 문창극 총리후보자 낙마와 관련해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헌변이 2년 8개월 만에 낸 성명이었다. 김영한 수첩에 세월호 특별법이 언급된 날에 헌변이 세월호 특별법 논평을 낸 적도 있다. 이 변호사는 “나는 김영한이라는 사람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신문광고를 냈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의 활동은 안 한다”고 말했다.
출처 100억, 자유총연맹이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경향신문] 백철 기자 | 입력 : 2017.03.04 14:25:00
▲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이 3·1절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친박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자유net 화면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 지적이 계속되자 일부 지자체는 좀 더 은밀한 곳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편성한다. 인천의 어느 구에서 자총 예산은 홍보미디어실 예산으로 편성돼 있다. 전북 어느 군은 엉뚱하게 새만금국제협력과 밑에 자총 예산이 편성돼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자유총연맹의 위상이 높은 경상북도에서는 특이하게도 기획감사실에 자총 예산을 편성했다. 단체장이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런 편성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분석할 수 있다.
매년 100억 원을 세금으로 지원받는 민간단체가 있다. 자유총연맹이다. 자유총연맹은 비영리 민간단체이지만 자유총연맹법이라는 근거가 있는 법정단체다. 물론 뚜렷한 공익적 목적이 있는 단체라면 100억 원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주의를 항구적으로 지키고 발전’시킨다는 다소 모호한 사명이 있다.
자유총연맹은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3·1절 친박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경재 회장의 집회 발언을 보면 자유총연맹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알 수 있다. 김 회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살린다면서 “박근혜를 살리자”, “탄핵을 각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세금은 모든 국민으로부터 받고 일부 국민만 대변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미 언론과 국회는 김 회장의 정치 편향적인 태도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개선의 기미가 없자 지난해 국회는 국비 자유총연맹 지원 예산을 5억 원에서 2억5000만 원으로 절반 삭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친박단체 집회에 나타나 “우리 예산을 깎으면 내년(2017년) 정치적인 선거에 자유총연맹이 가담하겠다”고 의원들을 협박했다고 자랑스레 말한 바 있다.
올해 자유총연맹은 이미 국비를 포함해 전국 지자체 예산에서 98억 원 정도를 지원받게 돼 있다. 전국적인 관변단체 지자체 지원금 연구가 있었던 4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국비 보조금 삭감이 큰 손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리 국회의원이 호통을 쳐도 자유총연맹은 개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3년 전 보조금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변단체에 예산을 지원해온 대구광역시 소속 기초단체들도 예산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자유총연맹이 최소한 정치 편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려면 각 지자체의 예산 심의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총도 다른 민간단체와 같은 기준으로 보조금을 받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3대 관변단체 중 자총예산 약 17%
자유총연맹의 연간 전체 보조금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국비와 전국 지자체 홈페이지에 등록된 2017년 예산안을 훑어봤다. 전국에는 17개 광역단체와 226개 기초단체가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자유총연맹을 비롯한 3대 관변단체(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회) 예산을 여타 시민단체 보조금 예산과 별도로 편성한다. 액수와 지자체의 크기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를 살펴보면 서울시의 자유총연맹 지원예산은 약 8억870만 원인데, 경기도의 지원예산은 20억 원을 넘어 큰 차이를 보인다.
4년 전 관변단체의 전국 예산 지원실태를 알아본 적이 있다. 당시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나라살림연구소가 연구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대 관변단체 전체는 2013년 한 해 동안 전국 지자체로부터 총 279억 원가량의 예산을 받았다. 자유총연맹만 따로 놓고 봤을 때는 부산시를 제외하고 47억 원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4년 만에 이 예산은 약 2배 가까이 뛰었다. 당시 나라살림연구소는 3대 관변단체가 전체 사회단체 보조금의 26.9%를 차지하고 있다고 봤다. 3대 관변단체 중에서 자총 예산의 비율은 약 17%다.
물론 올해 자료와 4년 전 자료에는 차이가 있다. 2013년 자료는 국회의원이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출받은 것인 데다 부산광역시의 경우 노조와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반면 2017년 자료는 예산안을 기초로 한 자료다. 부산광역시 및 산하 기초단체 예산안도 포함이 됐다. 또한, 통일관, 낙동강 승전기념관 등 일부 광역단체에 있는 자유총연맹 관련 시설 지원금도 포함했다.
2017년 자유총연맹에 대한 국가와 지방의 보조금을 모두 더하면 약 98억7500만 원이다. 여기에 자총이 2002년 사실상 정부로부터 값싸게 매입한 한전산업개발(현재 자총은 지분율 31%의 대주주)의 배당금을 더하면 매년 자유총연맹에 들어가는 국가 보조금은 100억 원을 넘어선다. 자유총연맹에 대한 한전산업개발의 배당금은 원래는 공기업인 한전에 돌아가야 할 몫이다.
일부 지자체 은밀하게 자총 예산 편성
각 지자체의 자유총연맹 예산 실태를 보면 지자체별로 자유총연맹 예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기초단체의 경우 자유총연맹 예산을 대체로 행정과, 자치과, 총무과에 편성한다. 이런 부서는 다른 사회단체 보조금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다. 한꺼번에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예산도 같이 편성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관변단체 보조금에 대한 특혜 지적이 계속되자 일부 지자체는 좀 더 은밀한 곳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편성한다. 인천 계양구의 경우 통상적인 관변단체 예산 항목에 새마을운동중앙회과 바르게살기협의회만 편성돼 있다. 올해 자유총연맹 예산이 삭감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자유총연맹 예산은 홍보미디어실 예산으로 편성돼 있었다. 전북 부안군은 엉뚱하게 새만금국제협력과 밑에 자유총연맹 예산 860만 원이 편성돼 있다.
서울과 인천의 경우 자유총연맹의 힘이 예전만 하지는 못한 모습도 보인다. 서울시의 경우 상당히 많은 지자체에서 관변단체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고, 3개 단체를 묶어 ‘국민운동단체 예산’이라는 항목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나아가 아예 일반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사업 예산을 신청하도록 한 곳도 있다.
시민단체 예산 지원 중 실제로 얼마가 가는지는 들쑥날쑥하다. 2013년 나라살림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시민단체 보조금 예산 중 3대 관변단체가 가져가는 예산은 약 26.9%였다. 3대 단체 예산 중 자총의 비율은 약 17%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치구별로 예산 편성액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ㄱ구의 경우 과거 사회단체 보조금에 해당하는 예산 중 80% 정도가 3대 단체에 편성된다고 답했다. 반면 ㄴ구 예산 담당자는 3대 단체를 합쳐도 20%가 채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3·1절 집회에서 비교적 회원들이 집회에 열의를 보였던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서 자유총연맹의 위상은 높아 보였다. 특히 대구광역시의 경우 3년 전 보조금의 엉터리 집행 실태가 알려졌음에도 예산이 거의 변함이 없었다. 2014년 <뉴스타파>는 대구시 산하 기초단체들이 사실상 자동으로 자유총연맹 등 관변단체 예산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당수 관변단체는 지출을 간이영수증으로 증명하거나, 관련 단체의 전·현직 임원이 운영하는 업체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대구시의 기초단체들은 총 2억300만 원의 예산을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에도 2억482만 원을 지원해 큰 차이가 없었다.
▲ 3월 1일 친박 집회에 참석한 자유총연맹 일부 회원들이 태극기 행진 대열에서 이탈해 버스를 타고 있다. / 백철 기자
경북이 자유총연맹의 위상 가장 높아
경상북도에서는 자유총연맹의 위상이 높아 보였다. 다른 광역 시·도의 기초단체처럼 행정과, 자치과, 총무과에서 편성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경북도에서만큼은 특이한 과에서 예산을 편성했다. 한 군에서는 기획감사실에 자유총연맹 예산을 2500만 원 편성했다. 게다가 이 예산은 사회단체 관련 예산이 아니라 ‘군정 홍보’ 관련 예산으로 편성돼 있다. 마찬가지로 경상북도 지자체 중에서는 문화관광과, 홍보전산과, 공보감사담당관 등 자유총연맹과 큰 연관성이 없는 부서에 예산이 편성된 경우가 있다. 단체장이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런 예산 편성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분석할 수 있다.
자유총연맹 지방조직들에 있어서 예산 문제는 민감하다. 과거와 달리 관변단체 예산에 대한 여러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관변단체 예산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지자체도 한 두 곳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자유총연맹 관계자 ㄱ 씨는 김 회장의 정치 편향적인 활동이 자유총연맹의 수명을 단축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ㄱ 씨는 “자유총연맹 본부는 국비 안 받아도 운영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지부들은 지자체에서 예산을 삭감해버리면 그대로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곳들이 많다. 특히 야당 단체장들이 있는 조직은 예산이 깎이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젠 완전히 삭감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ㄱ 씨는 3·1절 행사로 많은 지역조직이 휘청거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경투쟁에 대한 비용을 이야기했다. ㄱ 씨 등 자유총연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관광버스 1대를 빌리는 여러 가지 제반 비용에 약 100만 원이 소요된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려면 최소한 점심과 저녁 2끼니를 제공해야 하는데, 중간에 간식이나 음료 비용을 고려하면 1인당 1만5000원에서 2만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ㄱ 씨는 “다른 지부, 지회 사정을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행사 때문에 간부급 인사 중에 추가로 기부금 몇백만 원씩 내고 속이 쓰린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자유총연맹 관계자 ㄴ 씨는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자총 조직이 엄청난 세금을 받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총법에 명확히 명시가 안 돼 있다고 해서 특정 세력만 편드는 활동을 계속하니까 반대급부로 언론에서도 계속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ㄱ 씨는 김 회장의 야심이 자유총연맹의 존폐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경재 회장이 태극기 집회에서 한 발언 댓글란을 봐라. 자총 자체가 완전 꼴통보수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같이 태극기를 흔들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며 “김 회장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으로 조직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총연맹 내부 규정에도 탄핵절차가 있다. 지금이라도 뜻 있는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회장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고, 정치적 야심이 없는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만에 흩어진 자총 ‘10만 대군’
▲ 3월 1일 자유총연맹 회원들이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1일 오후 1시, 탄핵 반대 친박집회에 자유총연맹 회원이 몇 명이나 올지 궁금증을 갖고 집회장소인 서울시 세종로사거리에 나갔다. 3·1절 집회 3주 전인 2월 9일, 김경재 회장은 전국 지부에 10만 명 동원령을 내렸다. 여러 자총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자총 본부는 각 지부에 등록된 회원의 10%를 3·1절 집회에 참가시키라고 지시했다.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집회 며칠 전에는 각 지부에 파란색 깃발과 모자를 배포했다. 이날 세종로사거리는 태극기를 든 인파로 가득했다. 동창회, 전우회 등 온갖 단체에서 깃발을 높이 들었고, 종이신문과 팸플릿을 뿌리는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중에 파란색 자총 깃발은 거의 없었다. 김경재의 ‘10만 대군’은 어디로 갔나.
당일 친박집회는 2시 세종로사거리에서 열리는 탄기국(탄핵 기각 국민총궐기 본부)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총재와 자총 회원들은 세종로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세종로 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탄기국 집회와는 별도로 집회를 연 것이다. 한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2월 27일 김 총재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다녀온 이후 총연맹 깃발 외에 다른 유인물은 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부분 회원도 공식 행사만 끝나면 다들 지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원 연단에 선 김경재 총재는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단체를 이용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오늘은 말실수를 할까 봐 원고를 써왔다”고 말했다.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헌재 재판관들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 결과를 존중하고 수용하고 3·1정신으로 국민 대통합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김 총재는 원고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기 시작했다. 좀 더 솔직한 표현도 나왔다. 그는 “특검은 고영태 음모와 JTBC 의혹을 수사하지 않아서 도덕성에 흠결이 발생했다”며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세력은 도저히 수용이 불가능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살리자”, “박근혜를 살리자”, “탄핵을 각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비슷한 시각 세종로사거리에는 박근혜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의 연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종로공원 자총 집회에 참석한 자총 사람들이 세종로사거리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청계광장 앞에는 강원도, 경상남도, 대구시 등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20여 명씩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자유총연맹의 파란 모자와 깃발은 하얀 태극기 사이에 떠 있는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시간이 오후 3시를 넘자 파란 깃발을 따라 삼삼오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자총 회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자총 강원도지부에서 온 한 깃발을 따라가 봤다. 세종로공원을 나와 인근의 3호선 경복궁역에 도착한 이들은 깃발을 든 사람을 따라 길을 건넜다. 건너편에는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모자를 쓴 60대 여성에게 박근혜 탄핵에 관해 물어보자 “행사가 끝나서 집에 가야 한다. 탄핵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며 급히 버스에 올랐다. 20명 정도가 버스를 타자 운전사가 문을 닫았다. 광화문을 지난 친박집회 대열이 경복궁 쪽으로 접근하자 버스는 그 전에 얼른 서쪽으로 빠져나갔다.
자유총연맹 대구시지부 깃발을 들고 있는 40~50명은 탄기국 행진대오와 함께 ‘탄핵 무효’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미 자유총연맹 깃발은 집회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한 60대 남성회원은 “원래 촛불이 100만이고 여기는 2,000명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완전히 역전이다. 이제 저쪽에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친박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기자와 인터뷰한 남성을 비롯한 대구 자유총연맹 회원들은 중간에 인도로 빠져나와 통인시장 건너편에 주차된 2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한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김 총재가) 탄기국에서 자기를 불러주지 않으니까 소규모 집회장에서 허세를 부렸다”며 “탄핵 반대 집회에 인원을 동원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지회장들도 많은데, 눈치가 보여서 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다룬 ‘수상한 변호사들’ 역시나~
박근혜에 대한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박근혜 변호인단 측도 다급해졌다. 뒤늦게 박근혜 변호인단에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는 3월 1일 오후 친박집회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박근혜는 뇌물죄를 위반한 게 아니라며 “이 간단한 법률을 몰라서 국회와 특검이 박근혜를 탄핵소추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탄핵을 당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이라고 말했다. 김평우 변호사 외에도 박근혜를 직·간접적으로 돕는 법조인들이 여럿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중에는 <주간경향> 1210호가 다룬 ‘수상한 변호사’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프리덤뉴스 대표인 김기수 변호사다. 프리덤뉴스는 매번 친박집회에서 ‘애국일보’라는 이름의 8장짜리 종이신문을 수만여 부씩 배포하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4년 청와대에 재직할 당시 자신이 할 일을 수첩에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의 수첩에서 수상한 변호사들이 나온다. 2014년 7월 7일 김영한 수첩에는 ‘보수 법률단체 활용’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같은 해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김영한 수첩에는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4차례 등장한다. 같은 시기 우연인지 ‘행변’(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는 신생 단체가 나타나 세월호 유가족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피해 대리기사 변호를 맡는다. 행변 창립멤버인 김기수 변호사도 대리기사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변호사는 2015년 4월 행변을 떠났다. 다른 구성원들과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다. 그와 함께 행변을 떠나 두 달 뒤 ‘자변’(자유와 통일을 향한 변호사연대) 창립에 공헌한 차기환 변호사도 현재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맹활약 중이다. 차 변호사는 지난해 말부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변호하고 있다. 또한, 탄핵정국 초반부터 3월 초 현재까지 꾸준히 자신의 SNS를 통해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차 변호사는 행변 활동과 청와대는 관계가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 폭행사건 변론은 행변을 준비하던 멤버들끼리 논의해서 시작한 것이며, 김영한 수첩과는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김기수 변호사도 “민정수석실이라는 곳과 한 번도 연결돼 본 적이 없다. 박근혜 변호인단에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청와대와) 관계가 없어서 연락도 안 왔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박근혜 변호인단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자변에 소속된 황성욱 변호사는 지난해 말 서석구 변호사와 함께 박근혜 변호인단에 포함됐다. JTBC 태블릿 조작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데 앞장선 인지연 변호사도 자변 소속이다. 인 변호사는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자신의 아버지인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이사를 꼽는다고 한다.
행변 멤버였던 강래형·성빈 변호사는 자변으로 가지 않고 행변에 남았다. 자변이 생길 무렵부터는 두 사람의 활동은 뜸했고, 자변 변호사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름이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지난 2월 <씨네21>과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이 밝힌 문화체육관광부 영화계정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 명단에서다. 모태펀드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주로 투자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모태펀드 외부 전문가들은 펀드의 투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취재 결과 모태펀드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은 한 영화에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이 영화사가 입주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ㄱ 빌딩에는 ‘에픽미디어’라는 회사도 입주해 있다. 에픽미디어는 친박 집회 현장에 뿌려지는 종이신문 ‘노컷일베’를 만드는 회사다. 노컷일베는 애국일보(프리덤뉴스)와 더불어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의심받고 있다. ㄱ 빌딩에는 노컷일베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수단체가 입주해 있었다. 확인된 단체는 공교육살리기 학부모, 시민연합,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 한국자유연합, 자유민주주의수호 시민연대 등이다. 공교롭게도 에픽미디어 대표 ㄴ 씨는 ㄱ 빌딩에 입주한 여러 보수단체에 대표나 간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ㄱ 빌딩에 입주한 단체들은 강래형·성빈 변호사가 만든 행변의 활동과도 접점이 있다. 행변은 2014년 9월 16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비판하는 성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공교육살리기연합도 조 교육감에 대해 주민소환을 언급하는 등 주로 비판적으로 활동했다. 올바른 교육감 추대 전국회의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보수 교육감 단일화 운동을 하던 단체다.
‘헌변’(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낸 이종순 변호사도 탄핵국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월 9일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광고를 <조선일보>에 낸 원로 변호사 9명 중 한 명이다. 헌변은 김영한 수첩에 직접 등장한다. 2014년 7월 7일 김영한 수첩엔 ‘보수 법률단체 활용: 헌변과 시변 커넥션 확보토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연인지 헌변은 같은 날 문창극 총리후보자 낙마와 관련해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헌변이 2년 8개월 만에 낸 성명이었다. 김영한 수첩에 세월호 특별법이 언급된 날에 헌변이 세월호 특별법 논평을 낸 적도 있다. 이 변호사는 “나는 김영한이라는 사람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신문광고를 냈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의 활동은 안 한다”고 말했다.
출처 100억, 자유총연맹이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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