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삼성화재 김부장의 ‘강제퇴직 잔혹사’
[밥앤법] 부장급 사실상 ‘강제퇴직’ 논란
[한겨레] 안영춘 기자 | 등록 : 2017-03-07 05:01 | 수정 :2017-03-07 08:49
그들은 하루 이틀 전 직속 상사인 임원의 갑작스러운 독대 요청으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달라.” 보직해임을 알리는 구두 통보였다. 당사자들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맞은 이들을 전자게시판에서 숨죽여 찾아 나갔다. 이름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도 밤하늘 별자리처럼 선이 이어지고 형상이 그려졌다.
(1)만 50살 이상, (2)부장 단 지 6년 이하. 이 두 범주 안에 얼추 다 들어왔다. 50살, 51살이 많았다. 52살은 드물었고, 53살 넘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놀라는 이도 없었다.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다.
<한겨레>가 삼성화재 쪽에 물어보니, 이 회사의 부장급은 22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해 12월 보직해임된 이는 23명이었다. (1)과 (2)의 범주에 든 이는 30~40명 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최소 절반 이상이 보직해임된 셈이다. 십수 명이 사원급 실무자로 내려앉았다. ‘명’만 있고 ‘보’는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더러는 부장 보직보다 한 단계 낮은 팀장급 관리자로 옮겼다.
보직해임 대상자 선정 기준은 뭘까. 삼성화재는 문서로 제시한 답변에서 지난해 12월 보직해임된 이들을 ‘부진 부서장’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성과 및 효율 부진자 중심으로 보직해임을 추진’한다며, 특히 괄호를 쳐서 ‘연령 무관’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부장 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승진 인사를 하려면 해마다 10% 정도 보직해임이 불가피하다”며 “9월에 임원들과 인사 부문 책임자들로 구성되는 ‘인사 세션’에서 업적과 역량, 다면평가 자료 등 데이터 중심으로 평가작업을 벌여 10월 말에 ‘세팅’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장 연차를 감안하다 보니 나이도 연동해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부장급 인사 뜯어보니
50살 이상·부장 단 지 6년 이하
절반 이상이 보직해임·강등
회사에선 “성과부진 조처”
당사자들 인사고과엔 공통점
리더십 평가 90%가 ‘보통 이상’
보직해임 뒤 일부항목 ‘하위’ 10%
“원인-결과 뒤바꾼 짜깁기 고과”
부장 해임은 ‘유예된 해고’
명퇴나 무기계약직 선택 않으면
보험모집·신규분야 발굴 ‘험한 일’
그걸 알기에 대개는 사표 써
“20년 이상 열심히 몸 바쳤는데
나이 들었다고 내쫓다니 서글퍼”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보직해임된 이들을 여럿 만나 들은 얘기는 회사 쪽 설명과 사뭇 달랐다. “나이가 절대적 기준이다. 거기에 부장을 단 햇수가 조금 고려된다”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회사에서 특별히 배려하는 몇몇 특수 사례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과 (2)의 범주에 들고도 보직해임되지 않은 이들이 제법 있지 않은가. 이들은 “베테랑을 한꺼번에 들어내면 일이 안 돌아가니까 두어 차례 나눠서 하는 것”이라며 “이번이 아니면 내년, 길어야 내후년”이라고 했다. 회사 쪽 자료를 봐도 지난해 말 53살 이상 부장은 1명(0.5%), 2015년 말은 2명(0.9%)뿐이었다. 2014년 말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한겨레>가 별도로 입수한 보직해임자 3명의 10년 치 인사고과 평가 이력에는 특이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영업 실적 등으로 평가하는 업적평가(반기별)나 팀장이나 부장으로서의 리더십 등을 평가하는 역량평가(연간)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10%)와 우수(25%)를 받고, 보통(55%) 미만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가, 보직해임 이후 받은 평가에서 처음으로 둘 중 하나가 하위 10%(최하위 3% 포함)였다. 보직해임자 ㄱ 씨는 “삼성화재에서 저성과자가 부장에 오르거나 몇 년씩 자리를 지키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 그만큼 우수한 사람들이다. 보직해임 직후 고과만 유독 낮은 이유가 뭐겠냐”고 되물었다.
회사 쪽에서 제시한 ‘보직해제 사유’를 본 보직해임자 ㄴ 씨는 “사실관계를 참 교묘하게 짜깁기했다”며 혀를 찼다. 첫째, 보직해임된 해의 고과는 연말에 나오기 때문에 보직해임(12월 1일) 사유에 반영될 수 없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셈이다. 둘째, 부서장은 일반 직원보다 우수고과 비율을 적게 배정하기 때문에 1개 항목 정도 낮은 고과를 받을 확률이 높다. 그것을 근거로 ‘성과 부진’이라고 하면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고과를 유지하는 극소수 말고 누구라도 해당한다. 셋째, 업적 평가에는 개인 실적뿐 아니라 소속 조직과 상위 조직의 실적도 반영되기 때문에 그 책임이 개인에게만 전가돼선 안 된다.
보직해임자들 말로는 ‘인사 세션’도 승진 대상자를 추리는 작업에만 국한된다. 회사 쪽은 고과에 없는 다면평가까지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했지만, 다면평가 용도는 부서장 리더십 개선일 뿐, 그것 때문에 보직해임되는 경우는 없다고 반박한다. 보직해임자 ㄷ 씨는 “11월 중순에 보직해임을 통보하는 건 절차상 불가능하다. 일러야 이틀 전, 심지어 당일 오전에도 통보한다”며 “명예퇴직과 무기계약직 전환 가운데 택일을 강요하는 게 비전 설계냐”고 물었다. ㄱ 씨는 “그나마 일할 부서라도 조율한 사람을 ‘보직해임 자청’으로 포장했을 것”이라며 “제정신이라면 누가 지옥행 열차를 타려 하겠느냐”고 일갈했다.
그럼 보직해임 이후 목적지는 정해져 있을까. 보직해임자들은 “국가가 정한 정년은 60살이지만 삼성화재의 정년은 50살”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보직해임이 해고는 아니다. 그러나 ‘유예’돼 있을 뿐이다. 그 기간은 짧으면 1년, 길어야 2~3년이었다. 여기에도 선택지는 있다. 먼저, 성과급과 수당 등이 빠진 ‘사인연봉’(연봉계약서상 연봉)의 2.5배를 받고 명퇴한 뒤 1~2년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다. 명퇴 대신 부장 때 연봉의 60% 정도에 무기계약직으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 이도 저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전자게시판에 ‘명’이라 표시된 새 업무를 준다.
새 업무는 몇 개 분야로 한정된다. 먼저, 지점(옛 영업소)에서 보험설계사들과 일하게 하거나 신채널영업(신규 분야 발굴)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채권 추심이나 소액 구상 소송, 보상 실무 같은 비영업 부문으로도 간다. 전화 상담 일을 맡기기도 한다. 이들 부문에는 자연히 명퇴 무기계약직과 비명퇴 보직해임자들이 집중된다. 이들은 대개 한두 해 선후배로 구성된다. 오래 버티지 못하니 더 간격이 벌어지기 어렵다. ㄱ 씨는 “십수 년 관리 업무만 하던 이들에게 주임·대리만큼의 목표가 할당된다.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예전 부하 밑에서 일하는 모멸감은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보직해임 한 달 뒤부터가 진짜다. 하위 고과를 받는 순간 성과급이 보통 고과(‘사인연봉’의 30% 수준)보다 절반 이하로 깎인다. 직책수당도 없다. 총연봉이 20% 이상 줄어든다. 그러나 시작일 뿐, 진짜 지옥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듬해 연봉은 20% 깎인 데서 출발한다. 성과급과 수당도 거기에 맞춰 정률로 계산된다. 그러면 애초 연봉에서 30% 이상 줄어든다. 부과된 업무 목표가 비현실적인 탓에 애초 좋은 고과를 받긴 어렵다. 하위 고과를 잇달아 받으면 2~3년 만에 연봉이 대리급 이하로 떨어진다. 명퇴나 무기계약직을 선택하지 않은 대가다.
반전은 정말 불가능할까. 회사 쪽은 ‘보직해임=유예된 해고’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직해임 뒤 성과가 좋아 부장급으로 재발탁된 두 사람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들의 이름을 들은 ㄴ 씨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람은 50살이 되기 전에 소속 조직이 사라져 보직해임됐다가 1년 뒤 자리가 생겨서 재발탁된 경우다. 또 한 사람은 부하 직원의 잘못에 관리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됐다가 복직됐다. 정말 웃기는 건 두 사람 모두 지난해 12월 1일 다시 보직해임됐다는 사실이다. 둘 다 나이 때문이다.”
그는 “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진짜 험한 꼴 보기 전에 거의 사표를 낸다”고 말했다. 보직해임 뒤 몇 해 더 일하다 퇴직한 ㄹ 씨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 번도 하위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설령 55살까지 버틴다고 해도 대폭 연봉이 깎인 상태에서 그때부터 임금피크제로 다시 해마다 10%씩 깎여나가기 때문에 60살 정년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50살 이상 부장 수가 2014년 말 19명에서 지난해 말 29명으로 늘었다”며 “보험업 성장기인 1990년대 초반 입사자들이 많아 부장 자리에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ㄱ 씨는 “백 보 양보해서 인원 구성과 규모를 적정하게 관리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20년 이상 우수한 성과를 내며 열심히 일해온 이들을 오로지 ‘나이 기준’으로 자르고, 그걸 가리려고 무능력자로 낙인찍어 밖으로 내모는 데서 분노를 넘어 큰 슬픔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삼성화재는 해마다 1조 원 안팎의 이익을 내고 있다. 회사 쪽 관계자는 “매출 대비 수익률은 삼성그룹 안에서도 추종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상반기 삼성화재의 총매출 대비 정규직 직원 인건비 비중은 1.8%에 불과했다. ( ‘2015년 상반기 삼성그룹 매출 대비 인건비 현황’)
※ 이 기사에서의 ‘부장’, ‘팀장’ 등 직책명은 삼성화재 내부의 실제 직책명과 일부 다를 수 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직 내 역할 관계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표현을 단순화했음을 밝힙니다.
출처 국가가 정한 정년은 60살, 삼성화재 정년은 50살?
[밥앤법] 부장급 사실상 ‘강제퇴직’ 논란
[한겨레] 안영춘 기자 | 등록 : 2017-03-07 05:01 | 수정 :2017-03-07 08:49
지난해 12월 1일, 국내 1위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의 사내 전자게시판에 부장급 인사가 떴다. 해마다 이맘때 발표되는 정기 인사였다. 회사 사람 누구에게나 큰 관심사지만, 관심 내용이 남다른 이들이 있었다. 인사 대상 가운데 드문드문 ‘명’(命)만 있고 ‘보’(補)가 빠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이틀 전 직속 상사인 임원의 갑작스러운 독대 요청으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달라.” 보직해임을 알리는 구두 통보였다. 당사자들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맞은 이들을 전자게시판에서 숨죽여 찾아 나갔다. 이름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도 밤하늘 별자리처럼 선이 이어지고 형상이 그려졌다.
(1)만 50살 이상, (2)부장 단 지 6년 이하. 이 두 범주 안에 얼추 다 들어왔다. 50살, 51살이 많았다. 52살은 드물었고, 53살 넘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놀라는 이도 없었다.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다.
<한겨레>가 삼성화재 쪽에 물어보니, 이 회사의 부장급은 22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해 12월 보직해임된 이는 23명이었다. (1)과 (2)의 범주에 든 이는 30~40명 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최소 절반 이상이 보직해임된 셈이다. 십수 명이 사원급 실무자로 내려앉았다. ‘명’만 있고 ‘보’는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더러는 부장 보직보다 한 단계 낮은 팀장급 관리자로 옮겼다.
보직해임 대상자 선정 기준은 뭘까. 삼성화재는 문서로 제시한 답변에서 지난해 12월 보직해임된 이들을 ‘부진 부서장’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성과 및 효율 부진자 중심으로 보직해임을 추진’한다며, 특히 괄호를 쳐서 ‘연령 무관’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부장 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승진 인사를 하려면 해마다 10% 정도 보직해임이 불가피하다”며 “9월에 임원들과 인사 부문 책임자들로 구성되는 ‘인사 세션’에서 업적과 역량, 다면평가 자료 등 데이터 중심으로 평가작업을 벌여 10월 말에 ‘세팅’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장 연차를 감안하다 보니 나이도 연동해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부장급 인사 뜯어보니
50살 이상·부장 단 지 6년 이하
절반 이상이 보직해임·강등
회사에선 “성과부진 조처”
당사자들 인사고과엔 공통점
리더십 평가 90%가 ‘보통 이상’
보직해임 뒤 일부항목 ‘하위’ 10%
“원인-결과 뒤바꾼 짜깁기 고과”
부장 해임은 ‘유예된 해고’
명퇴나 무기계약직 선택 않으면
보험모집·신규분야 발굴 ‘험한 일’
그걸 알기에 대개는 사표 써
“20년 이상 열심히 몸 바쳤는데
나이 들었다고 내쫓다니 서글퍼”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보직해임된 이들을 여럿 만나 들은 얘기는 회사 쪽 설명과 사뭇 달랐다. “나이가 절대적 기준이다. 거기에 부장을 단 햇수가 조금 고려된다”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회사에서 특별히 배려하는 몇몇 특수 사례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과 (2)의 범주에 들고도 보직해임되지 않은 이들이 제법 있지 않은가. 이들은 “베테랑을 한꺼번에 들어내면 일이 안 돌아가니까 두어 차례 나눠서 하는 것”이라며 “이번이 아니면 내년, 길어야 내후년”이라고 했다. 회사 쪽 자료를 봐도 지난해 말 53살 이상 부장은 1명(0.5%), 2015년 말은 2명(0.9%)뿐이었다. 2014년 말엔 단 한 명도 없었다.
삼성화재 쪽이 인적 사항을 가리고 메모 형식으로 제시한 11건의 ‘보직해제 사유’를 보면, ‘성과 부진’이 7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밖에 조직관리 잘못 2건, 본인 요청 2건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10월 말 세팅된 평가 결과를 놓고 보완작업을 벌여 11월 중순께 당사자들에게 통보하고 ‘비전 설계’ 상담을 한다”며 “일부 반발도 있지만 70~80%는 자신의 실적에 따라 어떤 평가가 나올지 예상하기 때문에 수긍을 한다”고 말했다. 또 “자기 성과는 좋지만, 리더십이 약해 부장 역할을 힘들어하며 보직해임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때문에 보직해임 뒤에 고과가 나아지고 급여가 오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겨레>가 별도로 입수한 보직해임자 3명의 10년 치 인사고과 평가 이력에는 특이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영업 실적 등으로 평가하는 업적평가(반기별)나 팀장이나 부장으로서의 리더십 등을 평가하는 역량평가(연간)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10%)와 우수(25%)를 받고, 보통(55%) 미만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가, 보직해임 이후 받은 평가에서 처음으로 둘 중 하나가 하위 10%(최하위 3% 포함)였다. 보직해임자 ㄱ 씨는 “삼성화재에서 저성과자가 부장에 오르거나 몇 년씩 자리를 지키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 그만큼 우수한 사람들이다. 보직해임 직후 고과만 유독 낮은 이유가 뭐겠냐”고 되물었다.
회사 쪽에서 제시한 ‘보직해제 사유’를 본 보직해임자 ㄴ 씨는 “사실관계를 참 교묘하게 짜깁기했다”며 혀를 찼다. 첫째, 보직해임된 해의 고과는 연말에 나오기 때문에 보직해임(12월 1일) 사유에 반영될 수 없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셈이다. 둘째, 부서장은 일반 직원보다 우수고과 비율을 적게 배정하기 때문에 1개 항목 정도 낮은 고과를 받을 확률이 높다. 그것을 근거로 ‘성과 부진’이라고 하면 모든 면에서 탁월한 고과를 유지하는 극소수 말고 누구라도 해당한다. 셋째, 업적 평가에는 개인 실적뿐 아니라 소속 조직과 상위 조직의 실적도 반영되기 때문에 그 책임이 개인에게만 전가돼선 안 된다.
보직해임자들 말로는 ‘인사 세션’도 승진 대상자를 추리는 작업에만 국한된다. 회사 쪽은 고과에 없는 다면평가까지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했지만, 다면평가 용도는 부서장 리더십 개선일 뿐, 그것 때문에 보직해임되는 경우는 없다고 반박한다. 보직해임자 ㄷ 씨는 “11월 중순에 보직해임을 통보하는 건 절차상 불가능하다. 일러야 이틀 전, 심지어 당일 오전에도 통보한다”며 “명예퇴직과 무기계약직 전환 가운데 택일을 강요하는 게 비전 설계냐”고 물었다. ㄱ 씨는 “그나마 일할 부서라도 조율한 사람을 ‘보직해임 자청’으로 포장했을 것”이라며 “제정신이라면 누가 지옥행 열차를 타려 하겠느냐”고 일갈했다.
그럼 보직해임 이후 목적지는 정해져 있을까. 보직해임자들은 “국가가 정한 정년은 60살이지만 삼성화재의 정년은 50살”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보직해임이 해고는 아니다. 그러나 ‘유예’돼 있을 뿐이다. 그 기간은 짧으면 1년, 길어야 2~3년이었다. 여기에도 선택지는 있다. 먼저, 성과급과 수당 등이 빠진 ‘사인연봉’(연봉계약서상 연봉)의 2.5배를 받고 명퇴한 뒤 1~2년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다. 명퇴 대신 부장 때 연봉의 60% 정도에 무기계약직으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다. 이도 저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전자게시판에 ‘명’이라 표시된 새 업무를 준다.
새 업무는 몇 개 분야로 한정된다. 먼저, 지점(옛 영업소)에서 보험설계사들과 일하게 하거나 신채널영업(신규 분야 발굴)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채권 추심이나 소액 구상 소송, 보상 실무 같은 비영업 부문으로도 간다. 전화 상담 일을 맡기기도 한다. 이들 부문에는 자연히 명퇴 무기계약직과 비명퇴 보직해임자들이 집중된다. 이들은 대개 한두 해 선후배로 구성된다. 오래 버티지 못하니 더 간격이 벌어지기 어렵다. ㄱ 씨는 “십수 년 관리 업무만 하던 이들에게 주임·대리만큼의 목표가 할당된다.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예전 부하 밑에서 일하는 모멸감은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보직해임 한 달 뒤부터가 진짜다. 하위 고과를 받는 순간 성과급이 보통 고과(‘사인연봉’의 30% 수준)보다 절반 이하로 깎인다. 직책수당도 없다. 총연봉이 20% 이상 줄어든다. 그러나 시작일 뿐, 진짜 지옥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듬해 연봉은 20% 깎인 데서 출발한다. 성과급과 수당도 거기에 맞춰 정률로 계산된다. 그러면 애초 연봉에서 30% 이상 줄어든다. 부과된 업무 목표가 비현실적인 탓에 애초 좋은 고과를 받긴 어렵다. 하위 고과를 잇달아 받으면 2~3년 만에 연봉이 대리급 이하로 떨어진다. 명퇴나 무기계약직을 선택하지 않은 대가다.
반전은 정말 불가능할까. 회사 쪽은 ‘보직해임=유예된 해고’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직해임 뒤 성과가 좋아 부장급으로 재발탁된 두 사람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들의 이름을 들은 ㄴ 씨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람은 50살이 되기 전에 소속 조직이 사라져 보직해임됐다가 1년 뒤 자리가 생겨서 재발탁된 경우다. 또 한 사람은 부하 직원의 잘못에 관리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됐다가 복직됐다. 정말 웃기는 건 두 사람 모두 지난해 12월 1일 다시 보직해임됐다는 사실이다. 둘 다 나이 때문이다.”
그는 “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진짜 험한 꼴 보기 전에 거의 사표를 낸다”고 말했다. 보직해임 뒤 몇 해 더 일하다 퇴직한 ㄹ 씨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 번도 하위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설령 55살까지 버틴다고 해도 대폭 연봉이 깎인 상태에서 그때부터 임금피크제로 다시 해마다 10%씩 깎여나가기 때문에 60살 정년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50살 이상 부장 수가 2014년 말 19명에서 지난해 말 29명으로 늘었다”며 “보험업 성장기인 1990년대 초반 입사자들이 많아 부장 자리에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ㄱ 씨는 “백 보 양보해서 인원 구성과 규모를 적정하게 관리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20년 이상 우수한 성과를 내며 열심히 일해온 이들을 오로지 ‘나이 기준’으로 자르고, 그걸 가리려고 무능력자로 낙인찍어 밖으로 내모는 데서 분노를 넘어 큰 슬픔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삼성화재는 해마다 1조 원 안팎의 이익을 내고 있다. 회사 쪽 관계자는 “매출 대비 수익률은 삼성그룹 안에서도 추종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상반기 삼성화재의 총매출 대비 정규직 직원 인건비 비중은 1.8%에 불과했다. ( ‘2015년 상반기 삼성그룹 매출 대비 인건비 현황’)
※ 이 기사에서의 ‘부장’, ‘팀장’ 등 직책명은 삼성화재 내부의 실제 직책명과 일부 다를 수 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직 내 역할 관계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표현을 단순화했음을 밝힙니다.
출처 국가가 정한 정년은 60살, 삼성화재 정년은 5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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