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결탁했던 법원, 이제 와서 덮겠다고?
[민중의소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발행 : 2018-06-11 12:33:16 | 수정 : 2018-06-11 12:39:44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법관사찰 및 재판거래의 패악들은 박근혜와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적폐와 국정농단을 그대로 판박이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인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법과 정의를 유린하던 모습은 양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자는 후자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법농단의 작태는 우리의 헌정질서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불길하다.
우리 헌법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이며, 그것은 법치를 확립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함을 요체로 한다. 그런데, 전직 대법원장과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이 사법농단은, 사법권을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헌납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할 재판이라는 행위를 완전한 요식행위 내지는 권력이 관통하는 통로로 만들고자 하였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국정농단의 전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켰지만, 작금의 양승태 체제는 이 사법농단으로써 그 민주적 기본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그래서 이 사태에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는 순화된 표제를 붙이는 것은 옳지 못 하다. 그것은 남용의 수준을 넘어 사법권 그 자체의 부정이며 따라서 그 본질은 헌법기관인 법원의 기능을 방해하여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행위의 수준에까지 이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법원과, 자신의 사람으로 구성하여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원행정처를 베이스캠프 삼아 사법권을 자기도취적인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헌법에 부여한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이 이 사태에서는 양승태와 그 일행의 사적인 권력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태의 심각성이 양승태라는 한 개인의 돌출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문건은 이 땅의 법관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승진경쟁에 뛰어든 법관과 “승진을 포기한 자(승포자)”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후자인 승포자는 마치 무능과 게으름과 반항의 상징처럼 오도한다. 승진을 목을 매지 않기에 인사권자의 지휘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이유가 없는 이들을 두고 일탈자의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그 다른 집단에 있다.
실제 이 사법농단의 사태에서 ‘승진을 포기하지 아니한 법관’들의 일부는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차장의 명령이라면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영혼 없는 법률기계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력을 위하여 권력의 눈에 벗어난 법관들을 사찰하였을 뿐 아니라 사법관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도저히 쓸 수 없는 보고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성·보고하였다. 양승태 대법원체제의 패악질에 대한 충실한 실무역으로서의 역할을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승진이라는 개인적 탐욕을 위해 ‘사법과 국민을 포기한 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사태이자 동시에 승진을 빌미삼아 사법관들을 한줄 세우기로 일관하는 법원의 총체적 비리로 규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법원 내부의 갈등 혹은 사법의 독립 침해 우려 운운하며 그 발본색원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에 찬 요구를 호도하려는 시도들이 일고 있다. 보수언론들이 서울고법의 부장판사들이 “김명수 사법부에 반기 들다”라는 식의 헤드라인을 작성하고, “재판거래 사실 아닌데...” 등등의 추측성 보도를 양산하는 것, 혹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론을 거론하거나 “승포자”의 문제가 마치 사법개혁의 핵으로 대두한 것처럼 보도하는 등 논점을 오도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점에서 제3차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양승태 체제와 조선일보와의 긴밀한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파일제목이 있음은 주목을 요한다. 그 문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어떠한 내용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양승태 체제의 사법농단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보도가 지속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에 양승태 체제만큼이나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양승태 체제가 국민과 헌법을 대상으로 사법농단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는 마치 그것이 법원 내부의 갈등 혹은 조직상의 분란 정도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그들의 보도에 의하면 일부 법관들 특히 발탁승진의 혜택을 충실히 누린 고위직 법관들이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법원장의 고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에 서서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전국법원장간담회에서는 재판거래의 의혹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깊이 우려한다며 형사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태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재판거래의 합리적 근거는 공개된 문건 도처에 깔려 있다. 심지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나온다. 단지 보고서는 이런 음모가 실행에 옮겨졌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제3차보고서의 말대로 아이디어의 차원에 그쳤는지, 아니면 양승태나 고위법관들이 청와대와 거래하면서 실제 그리 하였는지는 의당 강제수사의 방식에 의해 규명되어야 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 법원장들은 강제수사권이 발동되는 것을 굳이 막고자 한다. 그들은 사법부가 직접 고발하여 외부기관인 검찰의 강제수사를 요청하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이 사건의 재판에 유죄의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고발 주체로서의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혹은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은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관으로서의 지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관으로서 고발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발은 행정관으로서의 대법원장 혹은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의견에 따라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재량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하여야 하는 의무사항이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거래하고자 한 것이 재판인지 아닌지는 그런 연후에야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와 같은 국가기관이 권력남용을 일삼으며 사법을 농단하였다는 숱한 정황을 남기고 있다면 의당 그 의혹을 조사하고 책임을 규명하여 국민 앞에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법치와 민주에 터 잡은 국가가 취할 정도이다. 그저 제3차보고서와 같이 구린 냄새가 폴폴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작정 면죄부를 던지는 것은 그 자체 최악의 직무유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힘없는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전직 대법원장이나 그 하수인이었던 법원행정처에 갖다 댈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태는 그냥 내부조직의 맡겨서 이 고위법관들이 이야기하듯 “1년 넘게 이어지는 사법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한 조치”로써 처리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법 조직 내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다른 법관들을 사찰하고 그 재판과 판결을 이용하여 외부의 정치권력과 야합하고자 한 헌법유린의 사건이다. 그것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 수준이 아니라 우리 법질서 전체에 대한 부정이자 폭력이다. 그래서 그것은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조직관리의 차원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야기한 국민적인 실망과 분노부터 삭혀내고 뼈 깎는 노력으로 제대로 된 사법을 만들어내는 수준에서야 비로소 정리될 수 있을 뿐이다.
실제 이 사태의 핵심은 우리의 사법체계가 권력 앞에서 무한히 허약한 존재임이 드러났다는 점에 있다. 혹은 민주화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법관을 앞세운 소수 권력의 지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현재의 우리 사법체제는 대법원장과 그 수족에 불과한 법원행정처를 통해 언제든지 유린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대법원장을 통제하거나 그와 유착할 수만 있다면 마음대로 사법 체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허점이 도처에 널려 있음이 이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우리 헌정체제의 핵인 민주적 기본질서-혹은 그들이 애지중지하던 자유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하였다는 암울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염려하였다면 “내가 가야합니까?”라고 버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향하여 “그래, 가야합니다!”라고 외쳤어야 했다. 법원 내부를 바라보며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그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성난 눈동자를 먼저 바라보았어야 했다. 통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갈등을 빚어낸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사태에 대한 참회와 그 발본색원의 의지를 드러내었어야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흥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격파 퍼포먼스를 했다.
실제 이 사건은 책임의 소재는 물론 사실관계조차도 그 대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덮여 있다. 그러기에 국민의 시선은 이미 법원으로부터 수사권을 가진 검찰로 이동해 있다. 수사권의 발동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다. 그리고 그 단초를 누가 열어야 할 것인지의 문제 또한 국민들은 답을 가지고 있다. 만약 대법원장이 이런 요구를 저버릴 경우 성난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검찰과 법무부 혹은 그 수반인 청와대를 압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정 대법원장은 이런 사태를 원하는가? 그래서 행정부가 사법농단의 비행을 수사하고 처단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하기를 기다리려 하는가? 혹은 “반기”를 들었던 고위법관들은 이런 치욕의 상태로 치닫는 것이 그들과 대법원장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 생각하는가? 혹은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사법이라는 국가적 중책을 맡기에 너무도 순진한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에고, 이 일을 어찌 할거나...
출처 [기고] 박근혜와 결탁했던 법원, 이제 와서 덮겠다고?
[민중의소리]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발행 : 2018-06-11 12:33:16 | 수정 : 2018-06-11 12:39:44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법관사찰 및 재판거래의 패악들은 박근혜와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적폐와 국정농단을 그대로 판박이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인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법과 정의를 유린하던 모습은 양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자는 후자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법농단의 작태는 우리의 헌정질서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불길하다.
▲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사법피해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의 사법농단 수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임화영 기자
민주적 기본질서 무너뜨린 내란행위와 총체적 비리
우리 헌법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이며, 그것은 법치를 확립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함을 요체로 한다. 그런데, 전직 대법원장과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이 사법농단은, 사법권을 정치권력의 손아귀에 헌납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할 재판이라는 행위를 완전한 요식행위 내지는 권력이 관통하는 통로로 만들고자 하였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로 국정농단의 전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켰지만, 작금의 양승태 체제는 이 사법농단으로써 그 민주적 기본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그래서 이 사태에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는 순화된 표제를 붙이는 것은 옳지 못 하다. 그것은 남용의 수준을 넘어 사법권 그 자체의 부정이며 따라서 그 본질은 헌법기관인 법원의 기능을 방해하여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행위의 수준에까지 이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법원과, 자신의 사람으로 구성하여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원행정처를 베이스캠프 삼아 사법권을 자기도취적인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헌법에 부여한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이 이 사태에서는 양승태와 그 일행의 사적인 권력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태의 심각성이 양승태라는 한 개인의 돌출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문건은 이 땅의 법관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승진경쟁에 뛰어든 법관과 “승진을 포기한 자(승포자)”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후자인 승포자는 마치 무능과 게으름과 반항의 상징처럼 오도한다. 승진을 목을 매지 않기에 인사권자의 지휘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이유가 없는 이들을 두고 일탈자의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그 다른 집단에 있다.
실제 이 사법농단의 사태에서 ‘승진을 포기하지 아니한 법관’들의 일부는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차장의 명령이라면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영혼 없는 법률기계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력을 위하여 권력의 눈에 벗어난 법관들을 사찰하였을 뿐 아니라 사법관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도저히 쓸 수 없는 보고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성·보고하였다. 양승태 대법원체제의 패악질에 대한 충실한 실무역으로서의 역할을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승진이라는 개인적 탐욕을 위해 ‘사법과 국민을 포기한 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사태이자 동시에 승진을 빌미삼아 사법관들을 한줄 세우기로 일관하는 법원의 총체적 비리로 규정된다.
▲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슬찬 인턴기자
강제수사 막는 시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법원 내부의 갈등 혹은 사법의 독립 침해 우려 운운하며 그 발본색원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에 찬 요구를 호도하려는 시도들이 일고 있다. 보수언론들이 서울고법의 부장판사들이 “김명수 사법부에 반기 들다”라는 식의 헤드라인을 작성하고, “재판거래 사실 아닌데...” 등등의 추측성 보도를 양산하는 것, 혹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론을 거론하거나 “승포자”의 문제가 마치 사법개혁의 핵으로 대두한 것처럼 보도하는 등 논점을 오도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점에서 제3차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양승태 체제와 조선일보와의 긴밀한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파일제목이 있음은 주목을 요한다. 그 문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어떠한 내용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양승태 체제의 사법농단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보도가 지속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헌법질서에 양승태 체제만큼이나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양승태 체제가 국민과 헌법을 대상으로 사법농단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는 마치 그것이 법원 내부의 갈등 혹은 조직상의 분란 정도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그들의 보도에 의하면 일부 법관들 특히 발탁승진의 혜택을 충실히 누린 고위직 법관들이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법원장의 고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에 서서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전국법원장간담회에서는 재판거래의 의혹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깊이 우려한다며 형사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태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재판거래의 합리적 근거는 공개된 문건 도처에 깔려 있다. 심지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나온다. 단지 보고서는 이런 음모가 실행에 옮겨졌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제3차보고서의 말대로 아이디어의 차원에 그쳤는지, 아니면 양승태나 고위법관들이 청와대와 거래하면서 실제 그리 하였는지는 의당 강제수사의 방식에 의해 규명되어야 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 법원장들은 강제수사권이 발동되는 것을 굳이 막고자 한다. 그들은 사법부가 직접 고발하여 외부기관인 검찰의 강제수사를 요청하는 것은 앞으로 진행될 이 사건의 재판에 유죄의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고발 주체로서의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혹은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은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관으로서의 지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관으로서 고발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발은 행정관으로서의 대법원장 혹은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의견에 따라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재량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하여야 하는 의무사항이 된다.
▲ ‘양승태 사법농단’ 재판거래 피해당사자, 시민사회는 7일 오후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및 사법농단세력 전원 구속·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김주형 기자
발본색원으로 바로 잡아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거래하고자 한 것이 재판인지 아닌지는 그런 연후에야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와 같은 국가기관이 권력남용을 일삼으며 사법을 농단하였다는 숱한 정황을 남기고 있다면 의당 그 의혹을 조사하고 책임을 규명하여 국민 앞에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법치와 민주에 터 잡은 국가가 취할 정도이다. 그저 제3차보고서와 같이 구린 냄새가 폴폴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작정 면죄부를 던지는 것은 그 자체 최악의 직무유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힘없는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전직 대법원장이나 그 하수인이었던 법원행정처에 갖다 댈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태는 그냥 내부조직의 맡겨서 이 고위법관들이 이야기하듯 “1년 넘게 이어지는 사법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한 조치”로써 처리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법 조직 내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다른 법관들을 사찰하고 그 재판과 판결을 이용하여 외부의 정치권력과 야합하고자 한 헌법유린의 사건이다. 그것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 수준이 아니라 우리 법질서 전체에 대한 부정이자 폭력이다. 그래서 그것은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조직관리의 차원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야기한 국민적인 실망과 분노부터 삭혀내고 뼈 깎는 노력으로 제대로 된 사법을 만들어내는 수준에서야 비로소 정리될 수 있을 뿐이다.
실제 이 사태의 핵심은 우리의 사법체계가 권력 앞에서 무한히 허약한 존재임이 드러났다는 점에 있다. 혹은 민주화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법관을 앞세운 소수 권력의 지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현재의 우리 사법체제는 대법원장과 그 수족에 불과한 법원행정처를 통해 언제든지 유린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대법원장을 통제하거나 그와 유착할 수만 있다면 마음대로 사법 체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허점이 도처에 널려 있음이 이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우리 헌정체제의 핵인 민주적 기본질서-혹은 그들이 애지중지하던 자유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하였다는 암울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염려하였다면 “내가 가야합니까?”라고 버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향하여 “그래, 가야합니다!”라고 외쳤어야 했다. 법원 내부를 바라보며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그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성난 눈동자를 먼저 바라보았어야 했다. 통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갈등을 빚어낸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사태에 대한 참회와 그 발본색원의 의지를 드러내었어야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흥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격파 퍼포먼스를 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흥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격파 퍼포먼스를 했다. ⓒ임화영 기자
실제 이 사건은 책임의 소재는 물론 사실관계조차도 그 대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덮여 있다. 그러기에 국민의 시선은 이미 법원으로부터 수사권을 가진 검찰로 이동해 있다. 수사권의 발동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다. 그리고 그 단초를 누가 열어야 할 것인지의 문제 또한 국민들은 답을 가지고 있다. 만약 대법원장이 이런 요구를 저버릴 경우 성난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검찰과 법무부 혹은 그 수반인 청와대를 압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진정 대법원장은 이런 사태를 원하는가? 그래서 행정부가 사법농단의 비행을 수사하고 처단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하기를 기다리려 하는가? 혹은 “반기”를 들었던 고위법관들은 이런 치욕의 상태로 치닫는 것이 그들과 대법원장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 생각하는가? 혹은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사법이라는 국가적 중책을 맡기에 너무도 순진한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에고, 이 일을 어찌 할거나...
출처 [기고] 박근혜와 결탁했던 법원, 이제 와서 덮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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