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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의 또 다른 의혹 ‘국정원의 판사 면접’…이번엔 밝혀질까?

행정처의 또 다른 의혹 ‘국정원의 판사 면접’…이번엔 밝혀질까?
[SBS] 임찬종 기자 | 작성 : 2018.06.11 08:17 | 수정 : 2018.06.11 09:31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의혹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법원행정처 문건들이 집중적으로 작성된 시점은 2015년이다. 양승태 前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그야말로 전력투구하고 있던 시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법원행정처와 관련된 또 다른 중대한 의혹이 언론에 폭로된 적이 있다. 경력 판사 선발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해 비밀 면접을 진행했다는 보도가 2015년에 나온 것이다.


3년 전 폭로된 ‘국정원의 경력판사 면접 의혹’

3년 전 이맘때였다. 법원행정처 내부에선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 전략" 같은 문건이 한창 생산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SBS 박상진 기자는 "경력 판사에 지원했는데 국정원이 비밀 면접"을 했다는 기사를 단독보도했다.(2015년 5월 26일 SBS 8뉴스 방송)

2013년에 법원행정처가 주관한 경력 판사 선발 과정에 지원한 변호사들을 국정원 요원이 비밀리에 만났고, 일부 지원자에게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거나 노조 사건 등에 대한 SNS 활동에 대해 추궁해 사실상 사상검증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판사 임용자 신원 조회나 대면 조사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SBS는 채용이 확정된 임용 예정자가 아니라 최종 선발 인원의 2배수에 달하는 지원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면접은 정상적 신원조사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 관련기사
- 경력판사 지원했는데…국정원 '비밀 면접' 논란 (박상진 기자 / 2015년 5월 26일)
- "임용 예정자 아닌 지원자 면접은 규정 위반" (박원경 기자 / 2015년 5월 26일)


법원행정처 입장은 어땠을까? 사건을 취재한 박상진·박원경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에 공식 질의했지만 “법원은 국정원에 신원조사를 의뢰하고, 신원조사의 구체적인 방법 등은 국정원 직원이 관련 규정에 따라 실시하고 있고, 신원조사 방법에 대하여 법원에서 관여하거나 간섭할 영역에 있지 않음” 이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정상적 신원조사를 의뢰했을 뿐이고, 국정원이 신원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는 관여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법원 잘못은 없다는 해명이었다. 법원은 정상적 신원조사로 알고 있었을 뿐 비정상적 면접이 진행된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고 답한 것이다.


이의제기 묵살 의혹…행정처장의 ‘유감 표명’

그러나 SBS는 국정원의 판사 지원자 면접이 정상적 신원조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행정처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추가로 지적했다. 2013년에 경력 판사로 선발된 법관 중 '국정원 면접을 왜 거쳐야 했던 것이냐?'라고 법원 고위 관계자에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비정상적인 신원조사를 한 사실을 몰랐다는 행정처 해명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사실상 유감을 표명하는 글을 올렸다. 2015년 6월 3일에 공개된 글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당시 메르스 사태로 언론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있었고, 이 글이 올라온 곳이 법원 직원들만 접속할 수 있는 통신망인 '코트넷'이란 점은 일단 언급만 해두겠다.)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그 동안 실태를 파악한 결과, 부적절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례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신원조사가 법령상 정해진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나는 형태로 이뤄지거나 사법부 독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필요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비록 신원조사가 법령에 근거한 것이고 법관 임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법원 안팎의 의견에 대해 법원행정처 역시 깊이 공감한다"

▲ 재판 거래 의혹 법원행정처 파일 98개 공개


징계 없이 넘어간 행정처…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3년 전 보도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건 역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이 없지 않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보도 직전까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던 법원행정처는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부적절한 사례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까지는 인정했다.

그렇다면 행정처는 부적절한 사례가 법률을 위반한 정도에 이른 것인지, 법률 위반은 아니더라도 법원 내부 절차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는 볼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 실수에 불과해 징계할 사안까지는 아닌 것인지 규명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행정처가 국정원의 면접이 실시된 경위와 관련해 관련자를 징계했다거나, 이의제기를 묵살한 의혹에 대해 진상 규명 결과를 발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행정처의 침묵이 더욱 의아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규탄 성명을 발표하면서 "신원조회 과정에서 임용 예정자가 아닌 단순한 지원 대상자에 대해서까지 신원조사를 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며 "지난해(2014년) 1월 대전지방법원 행정1부에서도 신원조사와 관련해, 보안업무규정 제31조 제1항 제1호에서 명시한 '공무원임용예정자'란 최종 합격자 결정을 거쳐 채용후보자 등록을 한 사람을 의미하며, 단순히 공개 시험에 응시한 지원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SBS도 같은 판례를 인용해 경력판사들에 대한 국정원 비밀 면접과 관련된 공무원들이 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행정처가 "부적절한 사례"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이와 관련된 위법 의혹을 언론과 변호사 단체가 지적했다. 법원 고위 관계자가 이의 제기를 받고도 묵살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그런데도 2015년 당시 법원행정처는 수사의뢰나 고발은커녕 공식적인 내부 징계조치조차 없이 넘어간 것이다.


‘국정원의 판사 면접’도 조사해야…문건은 없을까?

애초에 판사 임용예정자가 아니라 지원자에 대해 국정원이 면접할 수 있도록 지원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법률전문가인 행정처 간부들과 심의관 중에서 이런 조치에 법률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가?

행정처는 국정원이 경력판사 지원자들을 직접 접촉해 면접을 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는가?

경력 판사 합격자의 이의제기를 받은 법원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사실을 왜 묵살했는가?

경력판사 합격자의 이의제기는 누구에게 보고됐는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이후에도 행정처 내부 관계자에 대한 징계 등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행정처장이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선에서 대응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보고한 것이고, 누가 허가한 것인가?

당시 행정처가 답하지 않은 이 같은 질문들은 검찰 수사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져야 한다. 판사 선발 과정에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이 개입해 지원자들의 사상까지 검증했다는 의혹은 재판거래와 판사사찰 의혹과 마찬가지로 삼권분립과 재판의 독립성 훼손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문건이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작성됐는지도 역시 규명되어야 한다. 특별조사단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공용 컴퓨터에 "BH"나 "상고법원" 같은 제한된 키워드를 입력해 관련 문건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 키워드 목록에 국정원의 경력 판사 비밀면접과 관련된 단어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들이 집중 작성된 2015년에 언론이 폭로한 국정원 비밀면접 의혹과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담은 보고서가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에 해당할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추가 조사 또는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의 비밀면접과 관련된 행정처 문건의 존재 여부는 반드시 확인대상이 되어야 한다.

▲ 전국 법원장 회의


이번에도 “이 정도에서” 마무리한다면…

지난 7일 전국의 법원장들은 간담회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는 형사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형사 재판에서 판사가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는지를 따지는 것과 형사 조치를 통해 강제적으로 증거를 찾아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게다가 국정원의 판사 비밀면접과 같이 지금까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반드시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는 의혹도 있다. 무엇보다 과연 지금 법원이 '우리의 자체 조사 결과 형사 조치를 취할 정도의 문제는 없었으니 믿어달라.'라고 국민에게 강변할 수 있는 상황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6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국정원의 판사 지원자 면접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글을 올렸을 때 나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걱정됩니다. 언론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너무나 조용한 것 역시 문제지만, 별로 시끄럽지 않다고 이 정도에서 법원이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문제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결국, 걱정했던 "더 큰 문제"는 터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법원이 또 "이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면 다음엔 어떤 문제가 터질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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