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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복원] ‘레드오션’ 노무업계 ‘창조’를 믿는다

노조파괴에 머리를 빌려주는 노무사들의 흑역사
[토요판] 커버스토리 창조의 후예들
[한겨레] 박기용 기자, 그래픽 송권재 기자 | 등록 : 2016-08-12 20:47 | 수정 : 2016-10-25 16:41


“노동자들 고혈 빨아먹은 자 반성도 없이 버젓이 돌아왔다”
심종두 복귀 뒤 노동계 ‘격분’, ‘영구 면허취소’ 개정안 상정
심, “인생 망가져, 찾지 말라”

제2 심종두, 제2 창조 ‘확장’
창조는 사용자 지향 분명해...경쟁·검증해 노무사 뽑아
“창조 출신 경계하고 주목해야”...김형철·김주목 등 “100명 넘어”



11일 늦은 오후 갑을오토텍 사쪽이 말문을 열었다. 직장폐쇄 뒤 16일 만이자 용역경비 투입 뒤 꼭 열흘 만이다. 중재안을 들고 찾아온 아산시장의 면담조차 거부했던 회사 쪽 임원들은 이날 본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용역경비를 조건부로 철수하겠다고 했다. 회사 쪽이 제시한 ‘조건'은 “노조가 관리직 사원의 대체생산을 방해하지 말 것”이었다. 노조는 반발했다. “회사가 공권력 투입의 명분만 쌓으려 할 뿐 진정한 사태 해결에는 관심조차 없다”고 비난했다. 갑을오토텍의 노사 대치 상황은 장기화하고 있다. 이 회사에선 지난해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회사가 채용한 특전사·경찰 출신 사원들이 ‘제2노조'를 만들어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노조는 “제2노조에서 용역경비로 사람만 바뀌었을 뿐, 회사는 사전에 계획된 치밀한 시나리오에 기대 끊임없이 노조를 파괴하려 든다”고 했다. 회사의 공공연한 노조 파괴 행위는 노무법인의 컨설팅에 따른 것이었다. 노무법인 ‘예지’는 지난달 설립인가가 취소됐고 갑을오토텍의 전 대표는 법정에서 구속됐다. 노조 파괴 컨설팅이란 신종 사업을 만든 원조는 ‘창조컨설팅'이다. 이 회사 대표 심종두는 노무사 자격 취소 뒤 3년의 징계 기간이 만료돼 얼마 전 글로벌원이라는 이름의 새 노무법인을 설립했다. 창조 이후 ‘노조 파괴'에 머리를 빌려주는 일은 노무사 업계의 대세가 됐다. 노조 파괴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오히려 더 횡행한다. 창조가 낳은 ‘창조의 후예들'은 무슨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까.

▲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금천구 독산동 현대지식산업센터 앞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선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의 김성민 지회장. 그는 동료 한광호(42)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3월 이후 상복을 입고 지낸다. 금속노조 제공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금천구 독산동 현대지식산업센터 앞 광장.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의 김성민 지회장이 대열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동료 한광호(42)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25일째. 목소리가 절절했다. 광장을 병풍처럼 둘러친 건물이 소리를 반사해 김 지회장의 외침을 메아리로 만들고 있었다.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먹고, 심지어 노동자를 숨지게 했던 자가, 반성의 여지도 없이 바로 이 자리에 버젓이, 또 다른 이들을 해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결의합시다. 심종두와 김주목만큼은 한국 사회에서 노무사 일을, 컨설팅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오늘 이 집회뿐만 아니라 끝까지,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반드시 퇴출시킵시다.”

심종두(55·공인노무사 10회)가 돌아왔다. ‘노조 파괴’ 컨설팅으로 악명을 떨친 창조컨설팅(이하 창조)의 심종두 대표가 노무법인 ‘글로벌원’을 설립해 현대지식산업센터 12층에 사무실을 냈다. 설립 인허가일은 6월 22일. 7년 동안 14개 회사의 노조를 깬 심종두는 고용노동부에 의해 공인노무사 자격이 정지된 뒤 3년 기한을 다 채웠다.

민주노총의 이날 집회가 있기 나흘 전(7월 15일)엔 창조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노무법인 예지레이버컨설팅(예지)이 고용노동부에 의해 설립인가가 취소됐다. 예지의 대표 노무사 김형철은 노무사 자격을 취득한 초기 창조에서 일한 바 있다. 예지는 최근 사업장 점거와 직장폐쇄 등으로 노사가 맞서고 있는 갑을오토텍에 노조 파괴 컨설팅을 했다. 예지가 2014년 11월 회사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고 작성한 ‘Q-P 전략 시나리오’가 지난 4일 공개됐다. 과거 창조가 만든 노조 파괴 시나리오보다 한층 더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조 출신 노무사가 창조의 노조 파괴 컨설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노동계는 격분했다. 야당 의원들은 7월 초 ‘영구 면허취소’ 등 노무사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상정했다.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가운데 회색 옷)와 김주목(오른쪽 옆) 노무사가 지난 2012년 10월 8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노동부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진행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과천/김정효 기자

노무사 업계는 “창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심종두와 창조컨설팅이 ‘창조’한 사업 전략은 노무사 업계의 대세가 됐다. 창조가 문을 닫고 노무 사업을 쉰 3년간 심종두는 무슨 일을 했을까. 심종두가 모습을 감춘 기간 동안 ‘창조형 컨설팅’은 어떻게 업계를 장악했을까. 창조의 ‘후예들’이 보폭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귀환한 심종두’는 어떤 일을 벌일까.


“이따금 해외에 나가 일”

노무사 자격과 함께 경영지도사 자격을 갖고 있는 심종두는 노무사 자격 정지 기간인 2014년 10월 ‘글로벌’이란 이름의 경영컨설팅 업체를 설립했다. 그해 말 노무사의 직무인 노무신고업무를 경영지도사의 직무에 포함하는 내용의 ‘중소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경영지도사도 노무사처럼 노무관리 진단과 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무 관련 전문지식이 없는 경영지도사가 노무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경영지도사의 노무 관련 업무를 제한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 1년도 안 돼 다시 원래대로 제도를 돌려놨다. 결과적으로 심종두가 노무사 자격이 정지된 사이 경영지도사가 노무사 일을 할 수 있게끔 한시적으로 법이 생겼다 없어진 셈이다. 지난해 초 신년회에서 심종두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한 지인은 “창조가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모임에 나오면 돈도 잘 쓰고 호방한 사람이었다. 창조를 그만둔 뒤로 후배들이 차린 노무법인에 자문을 해주고 이따금 해외에 나가 일을 하러 다닌다고 들었다”고 했다. 심종두가 경영컨설팅 일을 하며 노조 파괴를 지속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겨레>는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여러 차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11일 짧은 통화에서 그는 “개업은 했지만 일을 전혀 못하고 있다. 4년 동안 내 명예와 신용은 엄청나게 실추됐고 인생은 완전히 망가지고 피폐해졌다. 조용히 있고 싶으니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종두는 3년간 노무사 업계에서 사라졌지만, 제2의 심종두와 제2의 창조가 시장을 분할하며 ‘심종두식 사업’을 확대·확장했다. 창조는 한때 업계 1위였다. 가장 규모가 컸고 가장 잘나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법제팀장, 노사대책팀장 등을 지내며 13년간 일했던 심종두는 경총에서 쌓은 인맥을 사업에 십분 활용했다. 창조는 사쪽을 지향하는 노무사들에겐 선망의 직장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의 박성우 회장(공인노무사 10회)은 9일 “심종두가 경총 출신이다 보니 창조는 아예 처음부터 사용자 쪽이란 지향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채용 면접이 유명했다. 압박 면접을 했는데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런 걸 확인받고 사람을 뽑았다. 많은 노무사들이 창조에 들어가고 싶어했고 창조 출신들은 경쟁과 검증을 거쳤다. 그래서 더욱 경계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조는 2003년 1월 설립돼 2012년 10월 설립인가가 취소됐다. 창조를 거쳐 간 노무사들은 창조에서 배운 ‘창조식 컨설팅’으로 현재 노무 업계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창조 출신 노무사들, 여기 있다

갑을오토텍에 노조 파괴 컨설팅을 해 설립인가가 취소된 예지의 김형철 노무사는 2003년(12회)에 노무사가 됐다. 창조가 설립된 해다. 창조 재직 시 전국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산별 중앙교섭의 간사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단체교섭과 파업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다. 창조에서 나온 뒤엔 노무법인 ‘길’을 거쳐 예지의 대표 노무사로 일했다. 김형철 노무사는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실로 “갑을오토텍 쪽에서 노조 파괴 컨설팅을 먼저 요구해와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고 의원실 관계자는 전했다. 예지는 설립인가가 취소됐지만, 김형철 노무사에 대한 징계는 아직 진행 중이다. 심종두에 이어 현행 공인노무사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인 ‘등록 취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주목(59) 노무사(10회)는 창조의 전무였다. 심종두와 함께 2012년 공인노무사 자격이 정지됐던 창조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올해 초 심종두와 함께 노무사 직무 개시를 등록한 그는 지난 6월 ‘주목공인노무사사무소’를 설립했다. 2009년 8월 창조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2과장이었고, 이전엔 중앙노동위원회 심판과의 조사관이었다. 노동위원회 출신인 만큼 김주목은 “노동위원회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창조컨설팅 내부 문건)했다. 노동 관련 사건은 보통 지노위, 중노위를 거친 뒤 당사자들이 노동위원회 중재에 불복하는 경우 통상적인 소송 절차를 밟는다. 노동위원회 조사관들은 사건 심판을 담당하는 공익위원의 판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창조는 중노위 조사관들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사관 출신 김주목이 이들과의 연결고리였다. 친분이 있는 특정 조사관에게 자신들의 사건을 몰아주는 식이었다.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창조의 노조 파괴 컨설팅을 폭로한 은수미 전 의원은 “사건이 배정되는 날짜와 시간을 조사관이 미리 알려주면 창조가 그 시간에 신청서를 제출해 특정 조사관에게 사건을 배당받는 수법을 썼다”고 밝혔다. 창조의 사건을 가장 많이 담당한 조사관은 김주목과 8개월 동안 같은 과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2016년 08월 12일 기사에는 본 박스자리에 심은수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으나, 2016년 8월 29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사실이 아님을 이유로 심은수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고 2016년 9월 4일에 정정보도를 했다고 합니다. (심은수 본인의 주장, 댓글 참조)

따라서 해당 내용을 삭제를 합니다.


노무법인 ‘봄’의 대표는 이주형 노무사다. 그는 창조의 “행동대장 격”으로 통한다. 2012년 국감 때 공개된 창조의 내부 문건도 그의 차에서 발견됐다. 이주형은 특이한 개인사를 갖고 있다. 2000년 성균관대학교 부총학생회장이었는데, 그해 삼성재단과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다 최고 수준의 징계인 출교를 당했다. 이후 지인들과 연락이 끊겼다. 오래 그를 알아온 한 노무사는 <한겨레>에 “양심의 가책 없이 노조 파괴 업무를 수행한다”고 전했다. 창조의 설립인가가 취소된 직후 봄을 설립해 현재 대표로 있다. 창조 노무사들이 대거 봄으로 함께 옮겨 가면서 봄은 한동안 ‘창조 출신들이 만든 노무법인’으로 통했다. 역시 창조의 노사전략팀 파트장이었던 전지영 노무사(17회)가 부대표로 있다. 창조의 노무정책팀장이자 임원이기도 했던 백현민 노무사는 2002년(11회)에 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창조엔 2004년께 입사했다. 2012년 창조의 설립인가가 취소될 때 심종두, 김주목과 함께 마지막까지 회사에 남았던 인물이다. 백씨는 지난달 2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창조 시절의 일에 관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퇴사한 지 오래고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징계를 받은 노무사심종두·김주목·김형철 말고도 한 사람 더 있다. 노무법인 하모니의 이강훈 전 대표 노무사(9회)는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직무가 정지됐다. 컨설팅을 의뢰받은 기업(신세계 5개 계열사)의 노무관리 진단보고서에 노동조합 설립을 원천차단할 전략을 제시하고 설명했다는 이유다. 창조 출신은 아니지만, 김주목 노무사를 노무사 동기회에 소개해주는 등 이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종두는 “창조를 거쳐 간 노무사들은 100명도 넘을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그는 “단지 과거 창조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선배로서 마음 아픈 부분”이라 했다.


시장의 격변, 창조의 효과

창조 이후 노무사 업계는 전반적인 변화를 겪었다. 은수미 전 의원은 10일 “심종두와 창조는 불법 노조 파괴 시장을 만든 혁혁한 공로자”라고 했다.

과거 군사정부에서 노조 문제는 공안 문제이기도 했다. 사실상 정부가 노조 파괴를 지원했다. 회사가 ‘용역’을 고용하면 정부가 뒤를 봐줬다. ‘제임스 리’(1989년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에게 자행된 ‘식칼 테러’의 주인공)로 대표되는 노조 파괴 전문가들이 그런 이들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컨설팅 업체 아래로 용역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청과 하청, 컨설팅 업체가 협의해 용역을 고용했다. 2012년 7월 방패와 헬멧, 곤봉 등을 착용하고 새벽녘 공장에 잠입해 파업 중인 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컨택터스가 대표적 사례다. 불법 파업의 책임을 물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손해배상·가압류도 활성화됐다. 은 전 의원은 “돈으로 노조를 죽이는, 폭력과 결합한 체계적인 시스템의 기원을 창조와 심종두가 열었다”고 평가했다. 창조가 연 ‘그 기원’으로 노무사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2012년 국감에서 창조의 노조 파괴 컨설팅은 상세히 까발려졌다. 이들이 얻는 수익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창조가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과 체결한 대외비 약정서를 보면,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상급단체를 변경했을 때 1억 원, 노조 조합원 수가 절반으로 줄거나 20%만 남으면 각각 8천만 원의 성공보수를 받는다. 노조를 깨고, 민주노총을 약화하는 대가로 받는 돈이었다. 창조는 이런 방식의 계약을 통해 2년 8개월 동안(2010년 1월~2012년 8월) 모두 82억4500여만 원의 돈을 벌어들였다(2014년 4월 장하나 의원 공개). 오롯이 해당 회사의 노조들을 철저히 파괴한 대가였지만, 이 과정을 상세히 알게 된 노무사들 눈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 이용득 의원실의 이지환 비서관(공인노무사)은 “임금체불 진정사건에서 노무사가 받는 돈은 착수금 50만~100만 원이 전부다. 반면 중견기업의 노조 교섭 때 사쪽을 대리하면 회당 500만~1천만 원을 받는다. 교섭을 1년간 맡으면 1억 원은 우습게 버는 셈이다. 창조 이슈는 이런 일이 돈이 된다는 것을 다른 노무사들에게 알려준 기회가 됐다”고 했다. 노무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창조를 거쳐 갔거나, 창조 설립 취소 뒤 다른 곳으로 옮겨간 창조 출신 노무사들뿐 아니라, 창조의 행태를 배운 다른 노무법인들, 또 외국계 회사들까지도 노조 파괴 목적의 부당노동행위 컨설팅을 암암리에 벌이고 있다. 이 비서관은 “최근 복수노조 관련 이슈가 있는 회사라면 어김없이 이런 식의 자문을 하는 이들이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시장은 변했고, 변화 뒤엔 확장했다. 노무사 수도 늘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까지 노무사 업계에 뛰어들면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보다는 당장 수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공인노무사회가 확인한 올해 개업 노무사 수는 1,889명. 창조가 문제 됐던 2012년 현업 공인노무사 수는 1300여 명 수준이었다. 4년 사이 600명가량 늘었다. 1986년에 합격한 1기 노무사 111명 중 52명이 여전히 활동 중이고, 최근 해마다 250명 안팎의 인원이 새로 노무사가 되는 것을 참작하면, 노무사들 사이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져 가는 중이다.

박성우 노노모 회장도 “어느 전문자격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올해 노무사가 된 이들 중엔 수습 기간이 끝나고도 취직을 못한 이들이 많다. 아예 ‘난 사용자 쪽만 대리하겠다’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쪽에서 먼저 고액의 노조 파괴 컨설팅을 주문해 오면 노무법인 입장에선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은수미 전 의원은 “복귀한 심종두가 어떻게 움직일까보다 중요한 건 대다수 중견 노무법인들이 이런 컨설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예지의 김형철 등 많은 노무사들이 ‘회사 쪽이 요구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역마다 그 지역 업계를 꿰차고 사쪽을 대리해 노조 파괴 컨설팅을 하는 법인들이 존재한다. ‘레드오션’ 노무 업계에 돈 되는 시장이 열리면서, 노조 쪽에선 ‘지옥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정부가 깔아놓은 붉은 카펫

창조 이후 횡행한 노조 파괴는 정부가 깔아놓은 붉은 카펫 위에서 승승장구했다. 세계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3월 정부가 내놓은 자동차산업 지원정책엔 노사관계에 대한 언급이 포함됐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투적 노조가 걸림돌’이라거나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정부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그즈음 현대차는 부품의 재고를 없애고 실시간으로 물량을 대는 체제(‘Just in time’)를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부품사 노조들을 관리하려 한다는 정황이 있었다. 부품사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완성차 공장도 세워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명박의 노동 분야 친위그룹으로 불렸던 ‘한국선진노사연구원’이 정부 차원의 노조 압박 흐름의 선두에 섰다. 2009년 초 이들이 만든 연구서 ‘선진 쟁의질서 정착 방안 연구’를 보면 이런 흐름이 도드라진다. 연구서엔 “파업권 보장의 대응물로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하며”, “노동부의 요청이 있을 때 경찰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장 내에서 쟁의행위를 하지 못하게 바꿔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08년 5월에 설립한 이 연구원엔 이명박 대선 캠프와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출신 노무사들, 교수들이 참여했다. 전혜선 노무사도 이사진에 포함됐다.

▲ 지난달 19일 오전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가 새로 설립한 노무법인 ‘글로벌원’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 현대지식산업센터 앞 광장에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들. 금속노조 제공

전혜선(1회)은 창조 출신 이수현 노무사가 몸담은 열린노무법인의 대표다. 노무사 경력으로는 심종두의 선배다. 이용득 의원실의 이지환 비서관은 전 노무사에 대해 “오래전부터 대형 건설사의 입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못 하게 하거나, 다 된 산재 승인을 무산시키는 일을 해왔다는 의혹이 크다”고 했다. 박성우 노노모 회장도 “열린노무법인은 예전부터 건설업계 쪽을 장악해 노조 깨는 일을 많이 해왔다. 창조가 주로 노사관계가 이슈가 된 사업장에서 그런 짓을 하다 보니 더 부각됐지만, 업계 내부에선 이전부터 문제가 많은 곳으로 주목해왔던 곳”이라 했다. 전혜선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직능 부본부장을 맡아 활동했다. 대선 이듬해 선진노사연구원의 설립에 간여해 결국엔 이사장까지 역임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때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자신의 딸 명의의 대포폰을 만들어줘 사찰 은폐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선진노사연구원의 초대 이사장은 박영수 노무사(1회)다. 훗날 경기도 안산 소재 ㄷ전자의 임원으로 옮긴 뒤 10억 원 계약의 노조 무력화 프로젝트를 시도했다가 노조에 발각됐다. 연구원 초대 이사였던 박동국 노무사는 이채필 당시 노동부 장관의 영남대 동문으로, 경북·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주로 사측을 대리하는 노무사로 활동했다. 이우헌 이사도 경북 구미 케이이씨 노조파괴 공작에 가담했던 엘앤케이노무법인의 대표였고, 역시 이사진에 참여한 이강성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지냈는데, 심종두와 매우 긴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종두의 인맥도 정부가 깐 붉은 카펫 위에서 형성됐다. 이명박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예산을 들여 대학 등에 노사관계 전문가 과정(NALA·선진노사관계 전문가 육성)을 개설했다. 심종두는 2009~2010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이 과정을 개설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2012년 9월 한정애 의원실 자료). 심종두는 노사관계 전문가 과정의 교장이었다. 창조컨설팅은 2006년 3~12월에 한국외대에 노조 파괴 컨설팅을 한 경험이 있었다. 2009년 8월 창조에 합류한 김주목은 이 과정 수강생이었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해 2011년 10월 경비업 허가가 취소된 씨제이시큐리티의 김 아무개 팀장도 이 과정 수강생이었다. 김 팀장이 유성기업 아산공장에 흘린 수첩엔 ‘2011년 1월 31일 창조 방문(선물 전달), 2월 22일 창조 회의, 5월 15일 스승의 날 스승님 문안(심 대표)’이라 적혀 있었다. 광명성애병원 노무팀장인 김 아무개 씨도 이 과정 수강생이었다. 성애병원은 2004년 4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창조와 컨설팅 계약을 맺었는데, 서울성애병원은 이후 노조가 아예 해산됐고, 광명성애병원은 조합원 수가 350명에서 15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창조컨설팅 홍보 자료).

심종두는 2010년 4월 한국외대 법학대학원에서 노동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복수노조가 주제였다. 이듬해인 2011년 7월부터 한 사업장에 복수의 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한 제도 도입이 예정돼 있었다. 복수노조 제도를 활용해 강성인 기존 노조를 파괴하고 온건한 새 노조를 만드는 방식의 컨설팅 구상을 이때부터 시작한 셈이다. 박성우 노노모 회장은 “2000년대 중반쯤 흥국생명 정리해고 사건의 대리인으로 심종두와 만난 적이 있다. 노동법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서울대 ㅇ교수가 당시 중노위 공익위원이었는데, 그 교수 밑에 있던 조교한테 들으니 중노위에서 사건이 다뤄지는 와중에 공익위원인 이 교수가 사측 대리 노무사인 심종두와 만나 밥을 먹더라고 했다. 부적절한 만남임에도 이런 로비가 당시 비일비재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심종두의 외대 박사 논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가 새로 설립한 노무법인 ‘글로벌원’의 사무실 문 앞에 지난달 19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붙인 스티커. ‘노조파괴 컨설팅 아웃’ 등이 쓰여 있다. 금속노조 제공


땡볕 아래 계속되는 싸움

대치는 계속됐다.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 정문을 사이에 두고 지난 1일 시작된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과 회사 쪽 용역경비들의 소리 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500여 명이 일하던 갑을오토텍(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자동차 에어컨 생산공장에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얽혀들었다. 이미 7월 8일부터 파업 농성을 벌이며 공장을 집 삼은 노조원들과, 이들을 내치기 위해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용역경비들, 주변을 지켜선 경찰과 기자들, 정당·지자체·노동부 관계자들, 노조원 가족들이 한데 엉켜 불볕더위의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김형철 노무사의 예지가 작성한 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전략은 지난 4일 공개됐다. 문건은 ‘Q-P 전략’이란 이름을 달았다. “Q는 영화 촬영 때 쓰는 ‘시작’이란 의미로 금속노조에 대한 회사의 대응 전략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라고, 권기대 갑을오토텍 전 노무부문장이 근로감독관 조사에서 답한 기록이 있다. 이 문건엔 ‘노조 파괴를 위해 용병을 투입한 뒤 대체생산 경로를 확보하고, 파업을 유도하고, 직장폐쇄 뒤 선별 복귀시키고, 단체협약을 개악하고, 기존 노조원을 대량 징계해 심리를 위축시키고, 복지를 축소하고, 이를 통해 회사가 설립한 제2노조 가입을 유도하라’고 쓰여 있다. 회사의 말을 듣지 않는 기존 노조를 뿌리 뽑기 위한 총체적 경로가 망라돼 있다. 전문업체 컨설팅 비용과 용역경비 투입 비용 등 노조 파괴에 드는 소요 비용을 이 문건은 20억~37억 원으로 추산했다.

회사 쪽의 노조 파괴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정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동조합을 위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법은 규정한다. 사용자가 노조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노조를 만들고,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를 운영하는 일은 철저히 노동자들의 자율에 의한 일이어야 한다. 사용자에 견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균형된 사회 발전을 위해 오랜 역사에 걸쳐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다. 우리 헌법(33조)도 노동자의 권리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분 적시해 보호한다.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박효상 갑을오토텍 전 대표는 지난달 15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법정에서 구속됐다. 검찰의 구형(8개월)보다 많았다. 재판부(대전지법 천안지원 판사 양석용)는 판결문에서 “회사 쪽이 폭력적 위력 행사가 가능한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을 고용해 노조 파괴를 자행했고, 그렇게 고용한 용병들에게 폭력을 사주해 대규모 폭행이 벌어진데다, 이런 회사 쪽 행위가 복수노조법을 악용한 범죄이기 때문”이라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범행은 노사 간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결문에 썼다.

회사 쪽은 지난달 26일 공장을 폐쇄했다. 노조법의 ‘직장폐쇄’는 단순한 작업장 폐쇄가 아니었다. 특정 노조원들에 대해 작업장 출입을 금하는 조처다. 회사 쪽의 직장폐쇄가 불법이라며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을 쫓아내려 회사는 용역경비를 새로 고용했다. 쫓겨나지 않으려는 이들과 쫓아내려는 이들이 30도를 훌쩍 웃도는 한여름 땡볕에서 기나긴 싸움을 펼쳐야 했다. 노조 파괴는 노조원만이 아닌 가족들의 삶도, 사회도 파괴한다. 은수미 전 의원은 “복수노조 문제가 이슈가 되는 사업장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부당노동행위 컨설팅을 하는 법인들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조사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도 정부 역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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