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목사에게 면죄부…그들만의 교회재판
성범죄 교회재판 기록 입수
가해 목사 감쌌던 사람들이 재판
선처 탄원 내고, 옹호 연설 하기도
피해자 진술은 “증거 부족” 일축
3년 성범죄 31건 중 면직 5건뿐
“목사는 하나님만이 징벌”
성범죄 출소자도 목사직 박탈 안 해
[한겨레] 박준용 기자 | 등록 : 2019-03-08 05:00 | 수정 : 2019-03-08 09:28
사회 각 부문에서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개신교(기독교) 교회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교회 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교단 권력에서 찾는다. 특히 교회의 사법부 구실을 하는 교회재판은 사회에서 유죄로 판명 난 사건들의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며, 가해자가 목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발급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회재판은 교회 운영 전반을 규정하는 ‘교회 헌법’에 따라 위반 사항을 처벌하거나 분쟁을 해결하는 등 교회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한다. <한겨레>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했다. 이를 통해 교회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교회재판의 실상을 살펴본다.
서울 서초구 ㅅ 교회 박 아무개 목사는 성폭행 미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해 8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피해자는 20년간 이 교회에 다니던 교인이자 박 목사의 조카인 김화영(가명) 씨였다. 김 씨는 박 목사에게 당한 성폭력을 수사기관에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박 목사가 김 씨에게 사과하는 영상 등 정황증거도 있었다.
법원은 박 목사의 혐의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지만, 그는 여전히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박 목사 징계 수위를 정하는 노회(교회들의 지역연합체) 재판국이 지난 1월 그에게 목사직 박탈이 아닌 ‘정직’ 처분을 했기 때문이다. 상식과 동떨어진 징계의 배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재판국 구성이 있었다. 재판국원 일곱 명 중 재판국장을 포함한 세 명이 사회법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써준 교회 권력자들이었다. 노회 재판국장 한 아무개 목사는 “재판국장이 되기 전에 썼던 탄원서”라고 해명했다.
박 목사 사례처럼,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은 ‘엉터리 교회재판’ 탓에 제대로 된 징계를 받지 않고 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목회자 성범죄 31건을 집계한 결과, 교단이 가해자의 목사직을 박탈(면직)한 경우는 5건뿐이었다. 나머지 사건에서 가해자는 목회를 일시 중단하거나 자진 사직하는 방법으로 목회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면직되지 않는 한 언제든 복귀해 목사로 일할 수 있다.
개신교(기독교) 교회는 목회자를 징계하는 ‘권징재판’을 할 때 나름의 사법부를 구성한다. 사회법과 같은 3심제다. 해당 교회 장로·목사로 이뤄진 당회(1심),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인 노회(2심), 교단 전체를 총괄하는 총회(3심) 재판국이 징계 수위를 정한다. 상소도 가능하다. 심급마다 목사와 장로로 꾸려진 기소위원회(명칭은 교단마다 다름)가 검찰 노릇을 한다. 겉으로 보면 체계적 절차를 갖췄다. 하지만 이 절차를 거친 재판 관련 기록들을 보면, 교단들은 ‘성폭력 목사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이가 5명이나 되는데도 가해자로 지목된 목사가 징계 없이 교단 권력에 진출한 일이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소속 ㅈ 목사의 사례다. ㅈ 목사는 2007~2009년 대전 ㄱ 교회 담임목사 재직 중 신도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심진영(가명) 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ㅈ 목사가 찜질방에서 몸을 만지는 등 수차례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를 겪은 뒤 교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수소문해보니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었다”고 했다.
ㅈ 목사는 2009년께 서울 ㄹ 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다. 심 씨를 포함한 5명은 ㅈ 목사가 떠난 뒤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밝히고 나섰다. 이들은 피해 증언을 바탕으로 2010년 ㄹ 교회가 소속된 연회(노회)에 ㅈ 목사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교회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교단 내 검찰 노릇을 하는 심사위원회(기소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사위는 “고소인(피해자) 3명에 대한 추행은 고소 시한(3년)이 지났고, 나머지 고소인 2명의 경우 일방적인 진술이라 증거가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당시 연회 책임자(감독)인 ㄱ 목사마저 “상당히 아쉬운 심사위 결과”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 씨는 “ㅈ 목사를 강제추행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했지만, 당시는 성폭력 관련법 개정 전이어서, 사건 발생 뒤 6개월이 지나 고소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됐다”고 했다.
ㅈ 목사는 지난해 10월 연회 감독으로 취임했다. 1만 명이 넘는 교단 내 목회자 중 12명만 차지하는 요직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교단 내 신도·목회자들이 나섰다. ‘ㅈ 목사 제명과 감독 당선 무효를 위한 감리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꾸려졌고, 공대위는 성폭력 논란에 휩싸인 ㅈ 목사의 감독직 사퇴를 요구했다. ㅈ 목사의 금권선거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그는 두 달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공대위 쪽 설명을 빌리면 “교단이 8년 전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ㅈ 목사는 “사회법·교회법에서 모두 불기소된 사건”이라며 성폭력 의혹을 부인하고, 여전히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끝에도 어김없이 ‘솜방망이’ 징계가 등장했다. 서울 용산 삼일교회 부흥으로 이름을 알렸던 ‘스타 목사’ 전병욱의 얘기다. 2009년부터 그에게 성추행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 5명 이상에게서 나왔다. 그런데도 그는 홍대새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교회 권력의 카르텔 덕분이다. 전 목사가 담임을 맡았던 삼일교회 당회(교회재판 1심)는 2010년 9월 전 목사에게 3개월 설교 중지, 6개월 수찬 정지(교회 내 성찬예식 참여 금지) 징계만을 내렸다. 당시 전 목사가 소속된 상급 노회도 전 목사를 전폭 지원했다. 노회는 전 목사가 삼일교회를 떠나 개척한 교회를 소속 교회로 승인했다. 전 목사에 대한 재판도 여러 차례 미뤄졌다. 노회 재판국은 2016년 1월에야 전 목사에게 ‘공직 정지 2년’의 징계를 했다. 교단 내 직책을 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목회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이 교회재판의 재판국 구성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재판국원이던 김 아무개 목사는 재판이 있기 두 달 전, 전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이 전 목사를 공격하고 홍대새교회를 공격하지만, 우리 노회는 (이들을) 지킬 것”이라고 연설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노회 소속으로 승인한 노회장이기도 했다. 김 목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판이 끝난 사안이라 제가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했다.
삼일교회는 전 목사 처벌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해 총회에 상소했다. 하지만 2016년 9월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총회에서 대표단(총대) 과반의 반대로 총회 재판이 무산됐다. 이 아무개 원로목사는 당시 총회 연단에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지은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전 목사를 두둔했다. 전 목사는 <한겨레>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목회요? 계속해야죠.” 2017년 신도를 성추행한 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던 서울 ㅇ 교회 전 담임 ㅇ 목사는 출소한 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연한 듯 말했다. 그 역시 목사직을 박탈당하지 않아서 목회를 재개할 길이 열려 있다.
노회는 그가 목회 활동을 지속할 길을 터줬다. 노회 재판국은 ㅇ 목사에게 직무정지 1년의 징계만을 내렸다. 노회 기소위원장을 맡은 목사는 이 사안을 상소할 권한이 있었는데도 행사하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는 <한겨레>와 만나 “지난해 9월 열린 교회재판 결과를 노회가 뒤늦게 통보해주는 바람에 11월에야 파악했고, 그때는 이미 절차상 상소 기간(20일)이 끝나버린 상황이었다. 상소를 막으려고 일부러 늦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재판국장은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이었기에 면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가해자가 교단에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왜곡된 신앙적 관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홍보연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은 “교단 내에서 목사는 하나님만 치리(징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교회는 이런 신앙적 논리로 성폭력 목사를 감싸고 가벼운 징계를 내린다”고 했다.
교회재판에 참여하는 목사와 장로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재도 원인으로 꼽힌다. 신진희 변호사는 “교회에서 성범죄 징계권이 있는 이들은 성폭력을 ‘강간’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루밍 범죄가 다수인 교회 성폭력 사건의 성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교단 권력이 스스로 성폭력에 대한 처벌과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외국 교회의 경우 성폭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교회법을 갖추고 있다. 김애희 기독교반성폭력센터장은 “독일 복음주의교회, 미국 장로교 등은 목사와 신도 간 성적 관계를 모두 제재 대상으로 명시한다. ‘영적 권위’가 있는 목회자에 대해 신도가 수평적 의사표명이 어려울 수 있는 구조라고 규정하고 일체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도 이런 전제를 토대로 성범죄 목회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징계와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명시한 교단 내 관련 특별법·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독립된 성폭력 사건 상담·처리 창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보연 원장은 “(교회법상) 성폭력 고소사건을 처리하는 심사위원회가 모두 남성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 교회 내 성폭력 전문 위원회가 심사위 권한을 갖도록 하고, 이 조직에 전문가·여성을 포함해 피해자가 제도를 신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단 차원의 성범죄 목회자 관리 강화도 필요한 요소로 꼽힌다. 김 센터장은 “교단은 많은 목사를 배출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목사가 성범죄자가 되어도 해당 노회에서 모를 정도”라며 “성범죄 전력이 있는 목사가 기독교 부설 복지기관 등에서 일하면 성범죄 사각지대가 생긴다. 교단이 성범죄 목회자를 관리하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성폭력 목사에게 면죄부…그들만의 교회재판
성범죄 교회재판 기록 입수
가해 목사 감쌌던 사람들이 재판
선처 탄원 내고, 옹호 연설 하기도
피해자 진술은 “증거 부족” 일축
3년 성범죄 31건 중 면직 5건뿐
“목사는 하나님만이 징벌”
성범죄 출소자도 목사직 박탈 안 해
[한겨레] 박준용 기자 | 등록 : 2019-03-08 05:00 | 수정 : 2019-03-08 09:28
사회 각 부문에서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개신교(기독교) 교회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교회 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교단 권력에서 찾는다. 특히 교회의 사법부 구실을 하는 교회재판은 사회에서 유죄로 판명 난 사건들의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며, 가해자가 목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발급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회재판은 교회 운영 전반을 규정하는 ‘교회 헌법’에 따라 위반 사항을 처벌하거나 분쟁을 해결하는 등 교회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한다. <한겨레>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했다. 이를 통해 교회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교회재판의 실상을 살펴본다.
▲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지난해 3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장에 나붙은 대자보가 교회 성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제공
서울 서초구 ㅅ 교회 박 아무개 목사는 성폭행 미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해 8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피해자는 20년간 이 교회에 다니던 교인이자 박 목사의 조카인 김화영(가명) 씨였다. 김 씨는 박 목사에게 당한 성폭력을 수사기관에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박 목사가 김 씨에게 사과하는 영상 등 정황증거도 있었다.
법원은 박 목사의 혐의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지만, 그는 여전히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박 목사 징계 수위를 정하는 노회(교회들의 지역연합체) 재판국이 지난 1월 그에게 목사직 박탈이 아닌 ‘정직’ 처분을 했기 때문이다. 상식과 동떨어진 징계의 배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재판국 구성이 있었다. 재판국원 일곱 명 중 재판국장을 포함한 세 명이 사회법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써준 교회 권력자들이었다. 노회 재판국장 한 아무개 목사는 “재판국장이 되기 전에 썼던 탄원서”라고 해명했다.
박 목사 사례처럼,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은 ‘엉터리 교회재판’ 탓에 제대로 된 징계를 받지 않고 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목회자 성범죄 31건을 집계한 결과, 교단이 가해자의 목사직을 박탈(면직)한 경우는 5건뿐이었다. 나머지 사건에서 가해자는 목회를 일시 중단하거나 자진 사직하는 방법으로 목회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면직되지 않는 한 언제든 복귀해 목사로 일할 수 있다.
개신교(기독교) 교회는 목회자를 징계하는 ‘권징재판’을 할 때 나름의 사법부를 구성한다. 사회법과 같은 3심제다. 해당 교회 장로·목사로 이뤄진 당회(1심), 지역 교회들의 연합체인 노회(2심), 교단 전체를 총괄하는 총회(3심) 재판국이 징계 수위를 정한다. 상소도 가능하다. 심급마다 목사와 장로로 꾸려진 기소위원회(명칭은 교단마다 다름)가 검찰 노릇을 한다. 겉으로 보면 체계적 절차를 갖췄다. 하지만 이 절차를 거친 재판 관련 기록들을 보면, 교단들은 ‘성폭력 목사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은 교회 떠나고 가해자는 교단 권력 진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이가 5명이나 되는데도 가해자로 지목된 목사가 징계 없이 교단 권력에 진출한 일이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소속 ㅈ 목사의 사례다. ㅈ 목사는 2007~2009년 대전 ㄱ 교회 담임목사 재직 중 신도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심진영(가명) 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ㅈ 목사가 찜질방에서 몸을 만지는 등 수차례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를 겪은 뒤 교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수소문해보니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었다”고 했다.
ㅈ 목사는 2009년께 서울 ㄹ 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다. 심 씨를 포함한 5명은 ㅈ 목사가 떠난 뒤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밝히고 나섰다. 이들은 피해 증언을 바탕으로 2010년 ㄹ 교회가 소속된 연회(노회)에 ㅈ 목사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교회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교단 내 검찰 노릇을 하는 심사위원회(기소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사위는 “고소인(피해자) 3명에 대한 추행은 고소 시한(3년)이 지났고, 나머지 고소인 2명의 경우 일방적인 진술이라 증거가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당시 연회 책임자(감독)인 ㄱ 목사마저 “상당히 아쉬운 심사위 결과”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 씨는 “ㅈ 목사를 강제추행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했지만, 당시는 성폭력 관련법 개정 전이어서, 사건 발생 뒤 6개월이 지나 고소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됐다”고 했다.
ㅈ 목사는 지난해 10월 연회 감독으로 취임했다. 1만 명이 넘는 교단 내 목회자 중 12명만 차지하는 요직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교단 내 신도·목회자들이 나섰다. ‘ㅈ 목사 제명과 감독 당선 무효를 위한 감리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꾸려졌고, 공대위는 성폭력 논란에 휩싸인 ㅈ 목사의 감독직 사퇴를 요구했다. ㅈ 목사의 금권선거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그는 두 달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공대위 쪽 설명을 빌리면 “교단이 8년 전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ㅈ 목사는 “사회법·교회법에서 모두 불기소된 사건”이라며 성폭력 의혹을 부인하고, 여전히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 사회 각 부문에서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개신교(기독교) 교회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해 반복되는 교회 내 성폭력의 원인을 추적했다.
“전병욱 교회 지키자”던 목사가 전병욱 재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끝에도 어김없이 ‘솜방망이’ 징계가 등장했다. 서울 용산 삼일교회 부흥으로 이름을 알렸던 ‘스타 목사’ 전병욱의 얘기다. 2009년부터 그에게 성추행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 5명 이상에게서 나왔다. 그런데도 그는 홍대새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교회 권력의 카르텔 덕분이다. 전 목사가 담임을 맡았던 삼일교회 당회(교회재판 1심)는 2010년 9월 전 목사에게 3개월 설교 중지, 6개월 수찬 정지(교회 내 성찬예식 참여 금지) 징계만을 내렸다. 당시 전 목사가 소속된 상급 노회도 전 목사를 전폭 지원했다. 노회는 전 목사가 삼일교회를 떠나 개척한 교회를 소속 교회로 승인했다. 전 목사에 대한 재판도 여러 차례 미뤄졌다. 노회 재판국은 2016년 1월에야 전 목사에게 ‘공직 정지 2년’의 징계를 했다. 교단 내 직책을 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목회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이 교회재판의 재판국 구성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재판국원이던 김 아무개 목사는 재판이 있기 두 달 전, 전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이 전 목사를 공격하고 홍대새교회를 공격하지만, 우리 노회는 (이들을) 지킬 것”이라고 연설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노회 소속으로 승인한 노회장이기도 했다. 김 목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판이 끝난 사안이라 제가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했다.
삼일교회는 전 목사 처벌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해 총회에 상소했다. 하지만 2016년 9월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총회에서 대표단(총대) 과반의 반대로 총회 재판이 무산됐다. 이 아무개 원로목사는 당시 총회 연단에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지은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전 목사를 두둔했다. 전 목사는 <한겨레>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성폭행 아닌 성추행이어서 면직 결정하지 않았다”
“목회요? 계속해야죠.” 2017년 신도를 성추행한 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던 서울 ㅇ 교회 전 담임 ㅇ 목사는 출소한 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연한 듯 말했다. 그 역시 목사직을 박탈당하지 않아서 목회를 재개할 길이 열려 있다.
노회는 그가 목회 활동을 지속할 길을 터줬다. 노회 재판국은 ㅇ 목사에게 직무정지 1년의 징계만을 내렸다. 노회 기소위원장을 맡은 목사는 이 사안을 상소할 권한이 있었는데도 행사하지 않았다. 성추행 피해자는 <한겨레>와 만나 “지난해 9월 열린 교회재판 결과를 노회가 뒤늦게 통보해주는 바람에 11월에야 파악했고, 그때는 이미 절차상 상소 기간(20일)이 끝나버린 상황이었다. 상소를 막으려고 일부러 늦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재판국장은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이었기에 면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목사를 면직하지 않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소속 한 노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해 4월 노회 회의장 앞에서 열렸다. 피해자와 조력자가 손팻말을 들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제공
독일·미국에선 목사와 신도의 모든 성적 관계 제재
전문가들은 성폭력 가해자가 교단에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왜곡된 신앙적 관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홍보연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은 “교단 내에서 목사는 하나님만 치리(징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교회는 이런 신앙적 논리로 성폭력 목사를 감싸고 가벼운 징계를 내린다”고 했다.
교회재판에 참여하는 목사와 장로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재도 원인으로 꼽힌다. 신진희 변호사는 “교회에서 성범죄 징계권이 있는 이들은 성폭력을 ‘강간’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루밍 범죄가 다수인 교회 성폭력 사건의 성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교단 권력이 스스로 성폭력에 대한 처벌과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외국 교회의 경우 성폭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교회법을 갖추고 있다. 김애희 기독교반성폭력센터장은 “독일 복음주의교회, 미국 장로교 등은 목사와 신도 간 성적 관계를 모두 제재 대상으로 명시한다. ‘영적 권위’가 있는 목회자에 대해 신도가 수평적 의사표명이 어려울 수 있는 구조라고 규정하고 일체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도 이런 전제를 토대로 성범죄 목회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징계와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명시한 교단 내 관련 특별법·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독립된 성폭력 사건 상담·처리 창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보연 원장은 “(교회법상) 성폭력 고소사건을 처리하는 심사위원회가 모두 남성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 교회 내 성폭력 전문 위원회가 심사위 권한을 갖도록 하고, 이 조직에 전문가·여성을 포함해 피해자가 제도를 신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단 차원의 성범죄 목회자 관리 강화도 필요한 요소로 꼽힌다. 김 센터장은 “교단은 많은 목사를 배출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목사가 성범죄자가 되어도 해당 노회에서 모를 정도”라며 “성범죄 전력이 있는 목사가 기독교 부설 복지기관 등에서 일하면 성범죄 사각지대가 생긴다. 교단이 성범죄 목회자를 관리하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성폭력 목사에게 면죄부…그들만의 교회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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