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왜구당에 꼭 되묻고 싶은, ‘기생충’ 송강호 대사
[리뷰] <기생충>과 <올드보이>, <마더>를 통해 본 한국사회
[오마이뉴스] 주수원 | 19.06.13 09:24 | 최종업데이트 : 19.06.13 09:24
※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 <올드보이>, <마더> 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신작 <기생충>을 찍는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2012년에 나왔던 <연가시>처럼 변종 기생충으로 생기는 대재난일 거란 생각을 했다. 커다란 외형의 <괴물>(2006)로 재난을 다루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드러냈다면 이번에는 인간 내부의 미시적인 곳으로 파고들어 기생충을 통한 재난을 그리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생충'은 나오지도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기생과 충을 나눠서 읽어야 한다. 'parasite'라는 영어 제목만으로는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한국적 맥락이 듬뿍 담긴 제목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혐오하는 이에게 '충'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맘충, 급식충, 틀딱충 등. 특정한 집단에 대한 혐오의 마음을 벌레에 비유했다. 봉준호 감독은 "부자와 빈자가 예의를 지키면 '기생'은 '공생'이 될 것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을 기생한다고 바라보고 거기에 '충'이란 말까지 덧붙이는 기생충의 제목은 얼핏 무례한 부자의 폭력적인 시선처럼 느껴진다. '땅콩회항'을 비롯해 부자들의 갑질이 떠오르고 <베테랑>(2014) 속의 재벌3세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경로로 간다. 이선균과 조여정이 맡은 부자 집안은 무례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편인 송강호 집안이야말로 염치가 없고 무례하다. 영화 제목이 한동안 <데칼코마니>로 정해졌던 것처럼, 그리고 외국 포스터에서처럼 4:4의 양 집의 인물들의 면면을 봤을 때 빈자가 부자에 기생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증명서를 위조하고, 어수룩하고 순진한 부자를 속여서 가족들이 한 명씩 사기 취업을 하는 전반부는 경쾌한 리듬으로 도둑질을 모의하고 진행해가는 케이퍼무비와 같다. 이선균네가 캠핑을 가면서 온 집안을 다 장악한 중간 지점까지는 송강호네가 오히려 강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다시금 이 지점부터 영화는 끊임없는 하강하기 시작한다. 집안의 숨겨진 또 하나의 가족과 만나는 지하실로 내려가고, 이선균네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며 비가 오는 가운데 끝도 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캐릭터쇼가 펼쳐지며 웃음이 가득했던 전반부는 끝났고 봉준호 감독의 그 어떤 영화보다 우울한 결말을 향해 침잠해간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들에서 여러 차례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설국열차>(2013)에서는 꼬리칸의 반역의 이중적 실체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2018)의 타노스처럼 최후 생존자 2명을 제외한 살아 남은 인류 전체를 날려버린다. <옥자>(2017)에서는 강원도 산골 소녀의 미자의 고군분투로 끝끝내 '옥자'를 구하지만 수십만의 다른 옥자를 내버려 둔 채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영화도 <기생충>의 결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암울한 건 비단 이 결론이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아들 최우식이 부자가 되어서 집을 산 뒤 아버지 송강호를 구출해낸다는 상상이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절실히 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2013)에서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밝혀듯이 지난 2백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되며 '세습' 자본주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에는 전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를 잘 건드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송강호네 가족은 모두 백수이지만 결코 무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경력을 위조해서 취업을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일을 척척 유능하게 한다. 하지만 학위가 없고, 자격이 없으며, 부자들과의 연계고리가 없었기에 능력이 있어도 그 자리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부자집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지만 '냄새'로 구분이 된다. 이 대목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박소담의 대사처럼 반지하방의 눅눅한 냄새로 생각되지만 곧이어 이선균이 선을 확장해 버린다. "왜,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라고. 영화를 보며 슬그머니 내 옷의 냄새를 맡아봤다. 고백하건대 지인과 서울 지하철의 1호선 냄새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이 냄새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형성된 타고난 분위기일 수도 있다.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드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를 통해서 사회적 위치, 교육 환경, 계급 위상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향으로서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계급이 나뉜다고 했다. 나는 일을 할 때 1980년대 팝송을 노동요로서 많이 듣는다. 클래식도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좀처럼 맞지 않았다.
언제가 문화판에서 일을 하는 지인과 이 얘기를 하니 클래식은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접하지 않고서는 좋아하기 힘든 음악이라고 한다. 커서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문화적 취향을 넘어서기란 힘들다고. 사실 1980년대 팝송을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들었지만 공부를 한 것도 뜻을 알고 들은 것도 아니였다. 그게 어느덧 나한테 밴 '냄새'일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사실 4:4 부자와 빈자의 대결처럼 보였던 영화는 빈자들간의 대결로 이어지고 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빈자들의 사연을 알 길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역시나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와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올드보이>에서는 부자인 유지태가 중산층으로 보이는 최민식을 납치해 15년간 감금한 뒤 비밀을 밝혀내라고 요구한다.
<기생충>에서 부자는 질문을 하지 않을 뿐더러 "부인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조금이라도 사적인 질문이 들어오면 "선을 넘지 말라"고 한다. 이선균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송강호가 왜 자신을 칼로 찔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가 한 잘못이라곤 냄새로 뒷담화를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송강호가 듣고 있는지 몰랐으니. 그렇지만 <올드보이> 속 유지태 대사로 돌려주면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인 셈이다.
<올드보이>와 한 가지 더 비교를 하자면 부자 유지태에 의해 강제로 15년간 감금당하고 가족 살해 등 괴롭힘을 당했던 최민식과 달리 <기생충>에서는 부자 이선균, 조여정 부부는 빈자 송강호 가족에게 표정과 뒷담화로 모멸감을 줬을지언정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다. 송강호 스스로 긴 감금에 들어갈 뿐이다. 타인에 의해 감금되었다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생의 의지를 밝힐 수 있지만, 스스로 들어간 끝을 알 수 없는 감금 생활에서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얼핏 <설국열차>와 같은 계급투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영화 <마더>와 같은 깊은 허무감이 담겨 있다. <마더>에서 탐정과도 같은 김혜자는 내 아들이 범인일 리 없다는 확신, 나는 좋은 엄마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건에 뛰어들지만 결국 그녀가 맞이한 진실은 정반대였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잊기 위해 흐느적 거리듯이 춤을 추는 김혜자의 춤사위는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기생충>에서도 아들 최우식은 계획을 세울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는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지 제대로 노력만 할 수 있다면 지긋지긋한 반지하방의 백수를 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영화 <마더>처럼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현실을 잊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내내 나오는 수석 역시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수석이 되기도 하고 개울가의 평범한 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 가족들을 잘 포장해서 어딘가에 놓아준다면 이들은 수석이 될 수도 있지만 학력, 자격증, 기본자산도 없는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수석으로 재둔갑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전에 나온 봉준호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결말이다.
단 하나 희망적인 실마리를 찾아본다면 빈자들이 얘기하는 '사랑'일 수도 있다. 송강호는 이선균에게 몇 번이나 "부인을 사랑하시죠?"라고 물어본다. 송강호 가족과 또 다른 숨겨진 2명의 가족의 경우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물론 이선균, 조여정 부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 부자들을 대상화하는 다른 영화들처럼 서로간의 불륜을 한다거나 가학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송강호가 계속 질문을 하는 건 '냄새'가 다르고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같은 사람이 아니겠느냐란 확인일 수 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벌을 받은 천사 미하일이 인간 세상에서 깨닫게 되는 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설국열차> 꼬리칸의 사람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며 이들을 '충'이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토착왜구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난 5일 정부가 저소득층에 월 50만 원의 구직수당을 지급하는 등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돈 퍼주는 정책', '총선을 앞두고 퍼주기 남발'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충'이란 시선을 거두고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 전환을 하기 위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토착왜구당, 바른미래당 정치인들에게 되묻고 싶다. "국민들을 사랑하시죠?"라고.
출처 자유한국당에 꼭 되묻고 싶은, '기생충' 송강호 대사
[리뷰] <기생충>과 <올드보이>, <마더>를 통해 본 한국사회
[오마이뉴스] 주수원 | 19.06.13 09:24 | 최종업데이트 : 19.06.13 09:24
※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 <올드보이>, <마더> 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신작 <기생충>을 찍는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2012년에 나왔던 <연가시>처럼 변종 기생충으로 생기는 대재난일 거란 생각을 했다. 커다란 외형의 <괴물>(2006)로 재난을 다루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드러냈다면 이번에는 인간 내부의 미시적인 곳으로 파고들어 기생충을 통한 재난을 그리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생충'은 나오지도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기생과 충을 나눠서 읽어야 한다. 'parasite'라는 영어 제목만으로는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는 한국적 맥락이 듬뿍 담긴 제목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혐오하는 이에게 '충'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맘충, 급식충, 틀딱충 등. 특정한 집단에 대한 혐오의 마음을 벌레에 비유했다. 봉준호 감독은 "부자와 빈자가 예의를 지키면 '기생'은 '공생'이 될 것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을 기생한다고 바라보고 거기에 '충'이란 말까지 덧붙이는 기생충의 제목은 얼핏 무례한 부자의 폭력적인 시선처럼 느껴진다. '땅콩회항'을 비롯해 부자들의 갑질이 떠오르고 <베테랑>(2014) 속의 재벌3세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경로로 간다. 이선균과 조여정이 맡은 부자 집안은 무례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편인 송강호 집안이야말로 염치가 없고 무례하다. 영화 제목이 한동안 <데칼코마니>로 정해졌던 것처럼, 그리고 외국 포스터에서처럼 4:4의 양 집의 인물들의 면면을 봤을 때 빈자가 부자에 기생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증명서를 위조하고, 어수룩하고 순진한 부자를 속여서 가족들이 한 명씩 사기 취업을 하는 전반부는 경쾌한 리듬으로 도둑질을 모의하고 진행해가는 케이퍼무비와 같다. 이선균네가 캠핑을 가면서 온 집안을 다 장악한 중간 지점까지는 송강호네가 오히려 강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다시금 이 지점부터 영화는 끊임없는 하강하기 시작한다. 집안의 숨겨진 또 하나의 가족과 만나는 지하실로 내려가고, 이선균네에서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며 비가 오는 가운데 끝도 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캐릭터쇼가 펼쳐지며 웃음이 가득했던 전반부는 끝났고 봉준호 감독의 그 어떤 영화보다 우울한 결말을 향해 침잠해간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 기생충의 외국 포스터 'parasite'라는 단어 만으로는 기생과 충이 결합된 한국 제목의 느낌이 다 전달되지 않는다. 4:4 데칼코마니에 또 한 가족의 숨겨진 다리가 보이는 포스터. 흥미로운 건 포스터 속 송강호 가족들은 부잣집에서 일하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 않고 반지하방에서 입고 있는 모습으로 있어 옷만으로도 구별된다는 점이다. ⓒ (주)바른손이앤에이
‘냄새’로 구별되는 계급에 대한 현실적이면서 암울한 묘사
봉준호 감독은 전작들에서 여러 차례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설국열차>(2013)에서는 꼬리칸의 반역의 이중적 실체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치 <어벤져스: 인피니티워>(2018)의 타노스처럼 최후 생존자 2명을 제외한 살아 남은 인류 전체를 날려버린다. <옥자>(2017)에서는 강원도 산골 소녀의 미자의 고군분투로 끝끝내 '옥자'를 구하지만 수십만의 다른 옥자를 내버려 둔 채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영화도 <기생충>의 결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암울한 건 비단 이 결론이 영화적 상상력만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아들 최우식이 부자가 되어서 집을 산 뒤 아버지 송강호를 구출해낸다는 상상이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절실히 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2013)에서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밝혀듯이 지난 2백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되며 '세습' 자본주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에는 전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를 잘 건드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송강호네 가족은 모두 백수이지만 결코 무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경력을 위조해서 취업을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일을 척척 유능하게 한다. 하지만 학위가 없고, 자격이 없으며, 부자들과의 연계고리가 없었기에 능력이 있어도 그 자리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부자집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되지만 '냄새'로 구분이 된다. 이 대목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박소담의 대사처럼 반지하방의 눅눅한 냄새로 생각되지만 곧이어 이선균이 선을 확장해 버린다. "왜,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라고. 영화를 보며 슬그머니 내 옷의 냄새를 맡아봤다. 고백하건대 지인과 서울 지하철의 1호선 냄새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이 냄새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형성된 타고난 분위기일 수도 있다.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드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를 통해서 사회적 위치, 교육 환경, 계급 위상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향으로서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계급이 나뉜다고 했다. 나는 일을 할 때 1980년대 팝송을 노동요로서 많이 듣는다. 클래식도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좀처럼 맞지 않았다.
언제가 문화판에서 일을 하는 지인과 이 얘기를 하니 클래식은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접하지 않고서는 좋아하기 힘든 음악이라고 한다. 커서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문화적 취향을 넘어서기란 힘들다고. 사실 1980년대 팝송을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들었지만 공부를 한 것도 뜻을 알고 들은 것도 아니였다. 그게 어느덧 나한테 밴 '냄새'일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 <마더>와 비교되는 지점
▲ 영화 <기생충> 속 송강호 가족의 식사 좋은 일 있을 때 삼겹살을 푸짐히 구워먹는 게 이들의 '아비투스'인 셈. ⓒ CJ 엔터테인먼트
더 무서운 건 사실 4:4 부자와 빈자의 대결처럼 보였던 영화는 빈자들간의 대결로 이어지고 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빈자들의 사연을 알 길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역시나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와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올드보이>에서는 부자인 유지태가 중산층으로 보이는 최민식을 납치해 15년간 감금한 뒤 비밀을 밝혀내라고 요구한다.
<기생충>에서 부자는 질문을 하지 않을 뿐더러 "부인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조금이라도 사적인 질문이 들어오면 "선을 넘지 말라"고 한다. 이선균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송강호가 왜 자신을 칼로 찔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가 한 잘못이라곤 냄새로 뒷담화를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송강호가 듣고 있는지 몰랐으니. 그렇지만 <올드보이> 속 유지태 대사로 돌려주면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인 셈이다.
<올드보이>와 한 가지 더 비교를 하자면 부자 유지태에 의해 강제로 15년간 감금당하고 가족 살해 등 괴롭힘을 당했던 최민식과 달리 <기생충>에서는 부자 이선균, 조여정 부부는 빈자 송강호 가족에게 표정과 뒷담화로 모멸감을 줬을지언정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다. 송강호 스스로 긴 감금에 들어갈 뿐이다. 타인에 의해 감금되었다면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생의 의지를 밝힐 수 있지만, 스스로 들어간 끝을 알 수 없는 감금 생활에서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얼핏 <설국열차>와 같은 계급투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영화 <마더>와 같은 깊은 허무감이 담겨 있다. <마더>에서 탐정과도 같은 김혜자는 내 아들이 범인일 리 없다는 확신, 나는 좋은 엄마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건에 뛰어들지만 결국 그녀가 맞이한 진실은 정반대였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잊기 위해 흐느적 거리듯이 춤을 추는 김혜자의 춤사위는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기생충>에서도 아들 최우식은 계획을 세울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는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지 제대로 노력만 할 수 있다면 지긋지긋한 반지하방의 백수를 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영화 <마더>처럼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현실을 잊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내내 나오는 수석 역시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수석이 되기도 하고 개울가의 평범한 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 가족들을 잘 포장해서 어딘가에 놓아준다면 이들은 수석이 될 수도 있지만 학력, 자격증, 기본자산도 없는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수석으로 재둔갑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전에 나온 봉준호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결말이다.
정치인들이여, “국민을 사랑하시죠?”
▲ 영화 <마더> <기생충>은 봉준호의 이전작품인 <설국열차> 보다는 <마더>와 더 닮아 있다. 예정된 파국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할 수 있는건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한 몸부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영화 <마더>
단 하나 희망적인 실마리를 찾아본다면 빈자들이 얘기하는 '사랑'일 수도 있다. 송강호는 이선균에게 몇 번이나 "부인을 사랑하시죠?"라고 물어본다. 송강호 가족과 또 다른 숨겨진 2명의 가족의 경우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물론 이선균, 조여정 부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 부자들을 대상화하는 다른 영화들처럼 서로간의 불륜을 한다거나 가학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송강호가 계속 질문을 하는 건 '냄새'가 다르고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같은 사람이 아니겠느냐란 확인일 수 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벌을 받은 천사 미하일이 인간 세상에서 깨닫게 되는 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었으니.
어쩌면 <설국열차> 꼬리칸의 사람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우리 스스로는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며 이들을 '충'이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토착왜구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난 5일 정부가 저소득층에 월 50만 원의 구직수당을 지급하는 등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돈 퍼주는 정책', '총선을 앞두고 퍼주기 남발'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충'이란 시선을 거두고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 전환을 하기 위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토착왜구당, 바른미래당 정치인들에게 되묻고 싶다. "국민들을 사랑하시죠?"라고.
출처 자유한국당에 꼭 되묻고 싶은, '기생충' 송강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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