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 고공농성 두 달,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눈물
[민중의소리] 김승화(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 고덕지회) | 발행 : 2019-08-26 10:41:16 | 수정 : 2019-08-26 10:41:47
사다리차에 배낭 하나, 침낭 하나를 짊어지고 올랐다. 이 많은 인원의 여자분들이 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라고 지부장님이 말씀하셨다. 노조생활 1년, 사회생활과는 또 다른 신입이다. 신입생이 뭘 알겠는가? 낯설었다. 우리가 올라갈 수는 있을까? 생각했는데 캐노피 위에 전원이 다 올라와 있었다. 신기했다.
어두운 새벽, 비처럼 내려앉은 이슬 때문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기도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넓은 캐노피에 올라와 마른 시멘트 바닥을 찾아 침낭을 펴고 고속도로 위 선잠을 잤다. 처음 캐노피 생활은 바빴다. 방송에서 뉴스보도가 됐고, 포털 사이트에서도 우리 기사가 1면에 나왔다. 출근 투쟁을 매일 해도 방송에 뉴스가 단 몇 초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잘했다, 잘 올라왔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우리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의 억울함을 봐달라, 알아달라, 알릴 수 있구나’ 기뻤다.
햇빛을 가릴 데가 없어 그늘막이 올라왔다. 밧줄은 누가 가져왔지? 우리는 안 가져왔는데…. 밧줄 하나에 밑에 계시던 동료분들이 최소 필요한 물품을 올려주셨다. 그늘을 만든다는 가리개 하나가 시간이 갈수록 튼튼한 천막이 되었고, 고공에서 우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손피켓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피켓 시위도 했다.
천막이 있지만 집이 될 수 없었고, 고공이기에 바람에 날아가는 장판도 있었다. 천막이 날아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보수에 보수를 하면서 한 달이 지난 것 같다. 고공농성 중 한 명, 두 명씩 아파서 내려가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처음에 올라왔을 땐 3개의 노조 다 합쳐서 총 41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25명이다.
내려가시는 분들은 기쁜맘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아직 이룬 게 없는데, 이렇게 내려갈 순 없는데, 내려가야 하는 심정이 어떠하랴.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으면서 동료들이 걱정하게 아픈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여러 가지 생각을 다 해보고 무거운 맘으로 내려갔을 그들이었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과 밑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투쟁하는 동지들 사진을 보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게 맞는 건가? 이제 내려가야 되는 거 아닌가? 매일 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공농성은 지상의 투쟁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고공농성의 투쟁을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비교하자면 단식이나 삭발 같은 아주 극단적인 투쟁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직 이룬 게 없는데, 내려갈 명분이 없는데, 내려가서 개인적으로 할 일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하나씩 이뤄갔다. 3개의 노조가 공동교섭을 할 것을 약속하였고, 도로공사와의 교섭 날짜도 잡혔다. 이렇게 하나씩 하는 거지 생각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처음부터 교섭자리에서 교섭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자회사 자랑만 늘어놓고 갔다고 한다. 다음 두 번째 교섭을 기다리던 중 대법원 판결 날짜가 잡혔다.
대법에 계류 중인 분들은 300여명, 대량 부당해고 된 인원은 1,500명이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에 의해 우리가 승소를 하면, 대법에 승소한 동료들만 직접고용을 하겠다고 예전부터 얘기를 한 상황이었다. 소송 사건번호도 여러 개이고, 지위 확인과 임금차액 소송이 분리돼 있는 소송이 있지만 후에 소송은 분리를 시키지 않아서 동결로 집행하기가 어렵다고 변호사가 말한 것 같다. 이것도 미리 알았으면 붙여서 소송하지 않았을 텐데, ‘무지가 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각 노조 집행부들의 소송이 대법계류 중인데 집행부들이 출근하면 남은 1,200명은 어떻게 하지? 가열차게 해오던 투쟁은 분위기가 완전히 꺾여 질 텐데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무단결근을 하고 우리 투쟁에 앞장서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저분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져준단 말인가? 2013년도에 시작된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위확인 소송의 끝을 2019년도에 마무리 짓고 싶을 텐데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에겐 질문만이, 선택만이 던져져 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 × 퀴즈 풀 듯 선택의 선택 양 갈림길에 서 있다. 나의 투쟁이고 우리의 투쟁이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탓해서도 안 되는 투쟁이다. 슬픈 투쟁, 즐거운 투쟁, 행복한 투쟁, 투쟁! 투쟁! 이 단어의 뜻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려는 싸움이라고 나와 있지만 노동자들의 모든 애환이 이 단어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하다. 내 선택에 후회 없는 투쟁을 하기 위해 오늘도 투쟁!
출처 [기고] 캐노피 고공농성 두 달,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눈물
[민중의소리] 김승화(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 고덕지회) | 발행 : 2019-08-26 10:41:16 | 수정 : 2019-08-26 10:41:47
▲ 서울톨게이트 요금소 구조물 위에는 해고 노동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중의소리
사다리차에 배낭 하나, 침낭 하나를 짊어지고 올랐다. 이 많은 인원의 여자분들이 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라고 지부장님이 말씀하셨다. 노조생활 1년, 사회생활과는 또 다른 신입이다. 신입생이 뭘 알겠는가? 낯설었다. 우리가 올라갈 수는 있을까? 생각했는데 캐노피 위에 전원이 다 올라와 있었다. 신기했다.
캐노피 올라와서야 우리를 알릴 수 있었다
어두운 새벽, 비처럼 내려앉은 이슬 때문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기도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넓은 캐노피에 올라와 마른 시멘트 바닥을 찾아 침낭을 펴고 고속도로 위 선잠을 잤다. 처음 캐노피 생활은 바빴다. 방송에서 뉴스보도가 됐고, 포털 사이트에서도 우리 기사가 1면에 나왔다. 출근 투쟁을 매일 해도 방송에 뉴스가 단 몇 초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잘했다, 잘 올라왔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우리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의 억울함을 봐달라, 알아달라, 알릴 수 있구나’ 기뻤다.
햇빛을 가릴 데가 없어 그늘막이 올라왔다. 밧줄은 누가 가져왔지? 우리는 안 가져왔는데…. 밧줄 하나에 밑에 계시던 동료분들이 최소 필요한 물품을 올려주셨다. 그늘을 만든다는 가리개 하나가 시간이 갈수록 튼튼한 천막이 되었고, 고공에서 우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손피켓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피켓 시위도 했다.
천막이 있지만 집이 될 수 없었고, 고공이기에 바람에 날아가는 장판도 있었다. 천막이 날아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보수에 보수를 하면서 한 달이 지난 것 같다. 고공농성 중 한 명, 두 명씩 아파서 내려가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처음에 올라왔을 땐 3개의 노조 다 합쳐서 총 41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25명이다.
내려가시는 분들은 기쁜맘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아직 이룬 게 없는데, 이렇게 내려갈 순 없는데, 내려가야 하는 심정이 어떠하랴.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으면서 동료들이 걱정하게 아픈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여러 가지 생각을 다 해보고 무거운 맘으로 내려갔을 그들이었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과 밑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투쟁하는 동지들 사진을 보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게 맞는 건가? 이제 내려가야 되는 거 아닌가? 매일 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공농성은 지상의 투쟁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고공농성의 투쟁을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비교하자면 단식이나 삭발 같은 아주 극단적인 투쟁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직 이룬 게 없는데, 내려갈 명분이 없는데, 내려가서 개인적으로 할 일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하나씩 이뤄갔다. 3개의 노조가 공동교섭을 할 것을 약속하였고, 도로공사와의 교섭 날짜도 잡혔다. 이렇게 하나씩 하는 거지 생각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처음부터 교섭자리에서 교섭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자회사 자랑만 늘어놓고 갔다고 한다. 다음 두 번째 교섭을 기다리던 중 대법원 판결 날짜가 잡혔다.
▲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한국도로공사 영업소지회 노조원들이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를 기습 점거 후 해산하는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노동자들의 모든 애환이 담긴 단어, 투쟁
대법에 계류 중인 분들은 300여명, 대량 부당해고 된 인원은 1,500명이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에 의해 우리가 승소를 하면, 대법에 승소한 동료들만 직접고용을 하겠다고 예전부터 얘기를 한 상황이었다. 소송 사건번호도 여러 개이고, 지위 확인과 임금차액 소송이 분리돼 있는 소송이 있지만 후에 소송은 분리를 시키지 않아서 동결로 집행하기가 어렵다고 변호사가 말한 것 같다. 이것도 미리 알았으면 붙여서 소송하지 않았을 텐데, ‘무지가 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각 노조 집행부들의 소송이 대법계류 중인데 집행부들이 출근하면 남은 1,200명은 어떻게 하지? 가열차게 해오던 투쟁은 분위기가 완전히 꺾여 질 텐데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무단결근을 하고 우리 투쟁에 앞장서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저분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져준단 말인가? 2013년도에 시작된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위확인 소송의 끝을 2019년도에 마무리 짓고 싶을 텐데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에겐 질문만이, 선택만이 던져져 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 × 퀴즈 풀 듯 선택의 선택 양 갈림길에 서 있다. 나의 투쟁이고 우리의 투쟁이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탓해서도 안 되는 투쟁이다. 슬픈 투쟁, 즐거운 투쟁, 행복한 투쟁, 투쟁! 투쟁! 이 단어의 뜻은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려는 싸움이라고 나와 있지만 노동자들의 모든 애환이 이 단어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하다. 내 선택에 후회 없는 투쟁을 하기 위해 오늘도 투쟁!
출처 [기고] 캐노피 고공농성 두 달,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눈물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중당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 진상규명하고 엄벌해야” (0) | 2019.08.27 |
---|---|
프락치에 ‘가짜 반국가단체’ 만들려고 한 국정원 (0) | 2019.08.27 |
옥고까지 치렀는데... 또 ‘독립유공’ 인정 못받은 권승욱 선생 (0) | 2019.08.25 |
세번째 피고인 된 변호사 “이런 판결은 처음...” (0) | 2019.08.25 |
왜 이것은 ‘반쪽 짜리’ 노동이란 말인가 (0) | 2019.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