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가성비’ 공수처가 ‘검찰 파쇼’ 깨려면
검찰 65년 기소독점 허물어…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남은 과제
[한겨레] 이춘재 기자 | 등록 : 2020-01-04 21:14 | 수정 : 2020-01-04 22:23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된 다음 날인 2019년 12월 31일 아침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쳐 보였다. 공수처법 수정안을 주도한 의원으로서 해묵은 숙제를 끝낸 홀가분함을 느꼈을 법한데도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질문 몇 개를 던져보니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공수처법을 공격하는 주장에 반박하느라 지친 탓이었다. 기자가 공수처 반대론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공수처의 한계를 지적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얼굴에 짜증이 확 번졌다.
박 의원은 “(공수처 반대론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제도를 만들라는,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말처럼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만들 수 없다. 필요한 제도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고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공수처 반대론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대론 가운데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법은 65년 동안 유지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허무는 역사적인 법이다. 검찰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으로 기소독점과 함께 직접 수사권을 갖게 된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됐다. ‘경찰 파쇼’를 견제하라고 준 권한을 ‘검찰 파쇼’를 위해 쓴 결과다.
공수처는 검찰 파쇼를 막는 여러 제도 가운데 가장 ‘가성비’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사실상 수사 무풍지대에 있었던 검사를 수사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고위 공직자를 망라한다. 특히 판사, 검사, 경찰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직접 기소하도록 했다.)
공수처는 검사의 개인 비리는 물론 검찰권을 위법하게 행사한 행위도 처벌(직권남용죄 적용)할 수 있다. 그동안 칼을 휘두를 줄만 알았던 검사들은 앞으로 자신의 칼이 ‘적법하게’ 쓰이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 공수처 도입으로 ‘봐주기 수사’나 ‘표적 수사’ 등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기소편의주의를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이 공수처 도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박 의원은 “판사나 경찰과 달리 검찰은 그동안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혀 하지 않았던 집단이다. 그래서 검찰이 공수처 반대론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은 공수처 수정안 내용이 공개된 직후 12월 26일 “공수처에 대한 범죄 통보 조항은 중대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문을 냈고, 이튿날에는 반대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검찰이 문제 삼는 조항(제24조 2항)은 공수처 이외의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대검은 의견서에서 “공수처가 임의로 검경의 사건을 이첩받아 간 후 과잉 수사를 하거나 수사 착수를 지연해 부실 수사를 하는 등 권한 남용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검은 “수사 착수 단계부터 공수처에 사실상 사전 보고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공수처가 국가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검경의 고위 공직자 수사 시스템은 무력화된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이 조항이 “수사 중복과 혼선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대검은 ‘검찰 통제’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대검은 “(수사 중복을 피하려면) 검사 25명의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먼저 대규모 수사기관인 검찰에 수사 개시 내용을 통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수사 기밀 유출, 또는 수사 검열 논란 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수처가 규모와 능력 면에서 검찰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의 우선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가로채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고위 공직자 수사를 망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삼성 비자금 사건’(2008년) 수사를 예로 든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의 폭로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등 당대 ‘특수통’(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검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삼성 본사를 압수 수색을 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떡값 검사’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특검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조준웅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됐고 검찰은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조준웅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4조5천억 원을 상속재산으로 판단하고 비자금 조성 의혹은 무혐의 처분했다(‘떡값 검사’ 부분도 증거가 없다고 묵살했다). 하지만 2012년 ‘이건희-이맹희 상속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은 4조5천억 원이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2018년 더불어민주당의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 티에프(TF)’는 이 돈이 비자금으로 판단된다며 차명계좌에 대한 전면 재수사와 조준웅 특검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은 공수처가 조준웅 특검처럼 검찰 수사를 망치는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삼성 봐주기 수사’의 원죄가 검찰에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검찰은 2005년 ‘삼성 엑스파일(국정원 녹취록)’ 공개로 드러난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대놓고 묵살했다. 당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현 토착왜구당 대표)이 이끌던 수사팀은 녹취록 내용을 공개한 이상호 당시 문화방송 기자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만 기소했을 뿐 삼성과 ‘떡값 검사’들은 봐줬다. 이런 ‘전과’가 있는 검찰이 공수처의 ‘수사 말아먹기’를 경고하는 것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도 거론한다. 만약 공수처가 있었다면 박근혜에 대한 수사가 가능했겠느냐는 주장이다. 당시 공수처가 있었다면 검찰은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과 안종범 경제수석에 대한 압수수색 전에 공수처에 이를 보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수처는 수사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사건 이첩을 요구했을 것이고, 결국 박근혜 수사는 흐지부지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도 아전인수에 가깝다. 당시 검찰은 자발적으로 수사에 나선 게 아니라, ‘촛불집회’를 의식해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여러 건의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었음에도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 착수에 미적댔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검찰이 공수처에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수사 내용 ‘통보’가 아니라 ‘이첩’에 있다. “공수처 통보 조항은 일종의 ‘교통정리’다. 공수처 원안(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에는 검찰이 하는 수사를 아무 때나 공수처에 넘기게 돼 있다. 검찰 수사가 한참 진행됐을 때 공수처에 넘기면 수사 대상자는 중복 수사를 받게 된다. 또 검찰과 공수처 모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수사 초기에 공수처에 통보한 뒤 어느 곳에서 수사할지 정해야 한다. 공수처장은 가능한 한 빨리 수사 가능 여부를 판단한 뒤 검찰에 회신하도록 했다. 검찰도 교통정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것은 공수처에 수사를 넘기기 싫기 때문이다.”(박주민 의원)
검찰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검사를 수사하는 게 의심스러워 공수처에 넘기라면 흔쾌히 따르겠다. ‘김학의 사건’, ‘진경준 사건’ 같은 수사는 공수처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고위 공직자 비리는 공수처의 인력 규모나 능력 면에서 볼 때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여권이 공수처 원안보다 검찰을 더 압박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조국 수사’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것이다. 박 의원은 “팩트(사실) 자체가 틀렸다”고 일축했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것은 2019년 4월이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는 8월 말 시작됐다. 박 의원은 “공수처는 지난 20년 동안 논의돼왔다. 조국 수사 때문에 갑자기 도입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제한 등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수사권·기소권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지 못하면 공수처도 검찰처럼 ‘괴물’이 될 수 있다. 65년 전 ‘경찰 파쇼’를 막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졌던 검찰이 ‘검찰 파쇼’가 됐듯이.
출처 ‘최고의 가성비’ 공수처가 ‘검찰 파쇼’ 깨려면
검찰 65년 기소독점 허물어…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남은 과제
[한겨레] 이춘재 기자 | 등록 : 2020-01-04 21:14 | 수정 : 2020-01-04 22:23
▲ 2019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된 다음 날인 2019년 12월 31일 아침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쳐 보였다. 공수처법 수정안을 주도한 의원으로서 해묵은 숙제를 끝낸 홀가분함을 느꼈을 법한데도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질문 몇 개를 던져보니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공수처법을 공격하는 주장에 반박하느라 지친 탓이었다. 기자가 공수처 반대론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공수처의 한계를 지적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얼굴에 짜증이 확 번졌다.
박 의원은 “(공수처 반대론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제도를 만들라는,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말처럼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만들 수 없다. 필요한 제도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고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공수처 반대론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대론 가운데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가성비 좋은 제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법은 65년 동안 유지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허무는 역사적인 법이다. 검찰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으로 기소독점과 함께 직접 수사권을 갖게 된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됐다. ‘경찰 파쇼’를 견제하라고 준 권한을 ‘검찰 파쇼’를 위해 쓴 결과다.
공수처는 검찰 파쇼를 막는 여러 제도 가운데 가장 ‘가성비’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사실상 수사 무풍지대에 있었던 검사를 수사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고위 공직자를 망라한다. 특히 판사, 검사, 경찰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직접 기소하도록 했다.)
공수처는 검사의 개인 비리는 물론 검찰권을 위법하게 행사한 행위도 처벌(직권남용죄 적용)할 수 있다. 그동안 칼을 휘두를 줄만 알았던 검사들은 앞으로 자신의 칼이 ‘적법하게’ 쓰이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 공수처 도입으로 ‘봐주기 수사’나 ‘표적 수사’ 등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기소편의주의를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이 공수처 도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박 의원은 “판사나 경찰과 달리 검찰은 그동안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혀 하지 않았던 집단이다. 그래서 검찰이 공수처 반대론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은 공수처 수정안 내용이 공개된 직후 12월 26일 “공수처에 대한 범죄 통보 조항은 중대한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문을 냈고, 이튿날에는 반대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검찰이 문제 삼는 조항(제24조 2항)은 공수처 이외의 수사기관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대검은 의견서에서 “공수처가 임의로 검경의 사건을 이첩받아 간 후 과잉 수사를 하거나 수사 착수를 지연해 부실 수사를 하는 등 권한 남용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검은 “수사 착수 단계부터 공수처에 사실상 사전 보고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공수처가 국가 사정기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검경의 고위 공직자 수사 시스템은 무력화된다”고 주장했다.
‘수사 말아먹기’ 경고는 적반하장
여당은 이 조항이 “수사 중복과 혼선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대검은 ‘검찰 통제’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대검은 “(수사 중복을 피하려면) 검사 25명의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먼저 대규모 수사기관인 검찰에 수사 개시 내용을 통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수사 기밀 유출, 또는 수사 검열 논란 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수처가 규모와 능력 면에서 검찰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의 우선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가로채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고위 공직자 수사를 망칠 수밖에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삼성 비자금 사건’(2008년) 수사를 예로 든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의 폭로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등 당대 ‘특수통’(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검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삼성 본사를 압수 수색을 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떡값 검사’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특검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조준웅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됐고 검찰은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조준웅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4조5천억 원을 상속재산으로 판단하고 비자금 조성 의혹은 무혐의 처분했다(‘떡값 검사’ 부분도 증거가 없다고 묵살했다). 하지만 2012년 ‘이건희-이맹희 상속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은 4조5천억 원이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2018년 더불어민주당의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 티에프(TF)’는 이 돈이 비자금으로 판단된다며 차명계좌에 대한 전면 재수사와 조준웅 특검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은 공수처가 조준웅 특검처럼 검찰 수사를 망치는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삼성 봐주기 수사’의 원죄가 검찰에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검찰은 2005년 ‘삼성 엑스파일(국정원 녹취록)’ 공개로 드러난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대놓고 묵살했다. 당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현 토착왜구당 대표)이 이끌던 수사팀은 녹취록 내용을 공개한 이상호 당시 문화방송 기자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만 기소했을 뿐 삼성과 ‘떡값 검사’들은 봐줬다. 이런 ‘전과’가 있는 검찰이 공수처의 ‘수사 말아먹기’를 경고하는 것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 공수처 수정안을 주도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31일 <한겨레21>과 인터뷰했다. 류우종 기자
검찰도 교통정리 필요성 인정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도 거론한다. 만약 공수처가 있었다면 박근혜에 대한 수사가 가능했겠느냐는 주장이다. 당시 공수처가 있었다면 검찰은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과 안종범 경제수석에 대한 압수수색 전에 공수처에 이를 보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수처는 수사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사건 이첩을 요구했을 것이고, 결국 박근혜 수사는 흐지부지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도 아전인수에 가깝다. 당시 검찰은 자발적으로 수사에 나선 게 아니라, ‘촛불집회’를 의식해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여러 건의 언론 보도와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었음에도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 착수에 미적댔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검찰이 공수처에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수사 내용 ‘통보’가 아니라 ‘이첩’에 있다. “공수처 통보 조항은 일종의 ‘교통정리’다. 공수처 원안(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에는 검찰이 하는 수사를 아무 때나 공수처에 넘기게 돼 있다. 검찰 수사가 한참 진행됐을 때 공수처에 넘기면 수사 대상자는 중복 수사를 받게 된다. 또 검찰과 공수처 모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수사 초기에 공수처에 통보한 뒤 어느 곳에서 수사할지 정해야 한다. 공수처장은 가능한 한 빨리 수사 가능 여부를 판단한 뒤 검찰에 회신하도록 했다. 검찰도 교통정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것은 공수처에 수사를 넘기기 싫기 때문이다.”(박주민 의원)
검찰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검사를 수사하는 게 의심스러워 공수처에 넘기라면 흔쾌히 따르겠다. ‘김학의 사건’, ‘진경준 사건’ 같은 수사는 공수처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고위 공직자 비리는 공수처의 인력 규모나 능력 면에서 볼 때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 만병통치약 아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여권이 공수처 원안보다 검찰을 더 압박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조국 수사’에 대한 보복 아니냐는 것이다. 박 의원은 “팩트(사실) 자체가 틀렸다”고 일축했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것은 2019년 4월이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는 8월 말 시작됐다. 박 의원은 “공수처는 지난 20년 동안 논의돼왔다. 조국 수사 때문에 갑자기 도입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제한 등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수사권·기소권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지 못하면 공수처도 검찰처럼 ‘괴물’이 될 수 있다. 65년 전 ‘경찰 파쇼’를 막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졌던 검찰이 ‘검찰 파쇼’가 됐듯이.
출처 ‘최고의 가성비’ 공수처가 ‘검찰 파쇼’ 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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