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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재자연화 미루다 ‘표류 위기’ 처한 4대강

재자연화 미루다 ‘표류 위기’ 처한 4대강
“4대강은 아직도 갇혀 있다”
[한겨레21 제1295호] 전정윤 기자 | 등록 : 2020-01-05 00:54 | 수정 : 2020-01-05 08:36


▲ 정규석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 사무국장(녹색연합 협동처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서울혁신파크 내 미래청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적폐를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4대강 사업”(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16개 보 설치 사업)을 꼽는 이가 많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대강 복구 현황을 물으면, 머뭇머뭇 “그러게… 4대강은 어떻게 되고 있지?”라는 질문이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4대강 사업은 보수 정부 10년간 적폐 중 적폐로 비판받았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개혁과 부동산 가격 급등, 대학 입시 공정성 논란 등 이슈에 밀려 ‘잊힌 적폐’가 되었다.

대중의 관심에선 멀어졌으나 16개 보로 인해 ‘갇힌 호수’가 된 4대강을 다시 ‘흐르는 강’으로 되돌리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멈춘 적이 없다. 18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2017년 3월 4대강재자연화범국민대책위원회를 4대강재자연화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로 개편했고, 정부와 여당을 향해 여전히 “4대강 재자연화”를 촉구하고 있다.

2019년을 마무리 짓는 12월 31일 오전 서울혁신파크 내 미래청에서 정규석 시민위원회 사무국장(녹색연합 협동처장)을 만났다. 정 사무국장은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기본계획)이 나왔던 2009년 환경단체 활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올해로 만 10년, 2019년 4대강 재자연화 로드맵(이행안) 진행 상황을 평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그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8년 정치 쟁점화를 우려하는 정부와 여당의 우려로 재자연화가 미뤄졌던 것처럼, 총선이 있는 2020년에도 재자연화 로드맵이 표류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정 사무국장은 ‘4대강 재자연화’ 개념을 설명하려고 “반대말인 인공화” 얘기부터 꺼냈다. 댐과 하굿둑(바닷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 강어귀 부근에 쌓은 댐) 건설이 대표적이다. 농사를 많이 짓던 시절엔 생태나 수질보다 댐을 이용한 농업용수 공급이 중요했지만, 이제 하굿둑 주변 주민도 용수 부족보다 수질을 걱정한다. 마찬가지로 제철과 중화학공업 등 대규모 공업용수가 필요한 산업 중심일 때는 인공화가 필요했지만, 이제 산업구조도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 수문 열었지만…

정 사무국장은 “시대가 바뀌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라며 “유럽에서는 댐 철거 등 인공 시설물을 걷어내고 물길을 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4대강 사업은 16개 보로 물을 가둬 4대강을 호수로 만든 사업이었다. 그는 “재자연화의 핵심은 16개 보를 철거해 4대강을 다시 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사실 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4대강 보는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다. 보가 있으면 자연이 훼손되고 편익보다 훨씬 큰 유지·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탓이다. 10~20년 뒤엔 누가 정권을 잡든 보를 철거하게 될 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 세대가 치를 비용이 커진다. 정 사무국장이 “우리 세대가 망쳤으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첫 로드맵 발표 뒤 한 차례 수정해 재자연화 일정을 구체화했다. 2019년이 저문 12월 31일 시점에서 이 로드맵 실행 점수를 후하게 매기기는 쉽지 않다. 시민위원회는 12월 20일 재자연화 표류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4대강 재자연화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2017년 5월 대통령 업무지시를 발표했어요. 2017년 16개 보 수문을 개방해 모니터링해보자, 2017년 모니터링 결과를 근거로 2018년에는 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자, 2019년 1월부터는 재자연화를 어떻게 할지 실행 계획을 세우자는 로드맵이었죠. 하지만 2017년 수문 개방부터 제대로 못 했어요. 결국 2019년 7~8월 중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금강과 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확정하고, 한강과 낙동강은 2019년 상반기부터 보 개방 모니터링을 시작해 2019년 이내에 보 처리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정 사무국장은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을 수 있지만, 한국수자원공사·환경부·국토교통부 등 4대강 사업을 진행했던 실무 부처들은 수문을 여는 것부터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했다. 또 “정치인들도 지방선거에서 정치 쟁점으로 비화할까 봐 4대강 사업이나 재자연화라는 말 자체를 꺼렸다”고 아쉬워했다.

▲ 2016년 6월 물고기들의 이동과 물의 흐름을 막은 충남 공주 우성면 공주보의 일부 구간에 부유물이 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녹조 발생 90% 이상 줄자 “수문만 열자” 주장

지난해 2월, 조사평가단 전문위원회는 결국 사회적 편익(경제성)에 근거해 우선 금강과 영산강 5개 보의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세종보와 죽산보 해체, 다리로 이용되는 공주보의 부분 해체, 백제보와 승촌보의 추가 모니터링 안이 제시됐다. 정 사무국장은 “금강 3개, 영산강 2개로 보의 수가 적어서 수문을 열어 모니터링을 진행하기 수월했다”고 말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는 “금강·영산강 지역이 현 여당 지지 기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4대강 보가 만들어지고 6~7년이 흐르는 사이 변화된 4대강 환경에 맞춰 농사를 지어온 이해당사자가 많아졌다. 그만큼 민심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는데, 현 정부에 우호적인 금강과 영산강 지역에서 4대강 재자연화를 수월하게 진행한 셈이다. 물론 수문 개방 초기엔 공주보, 세종보 인근 지자체에서도 “보를 열면 지하수가 부족해진다”는 이유로 반대가 있었다. 정 사무국장은 “실제 조사해 지하수가 영향받는 곳에 더 큰 관정(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해 만든 둘레가 대롱 모양으로 된 우물)을 파주고 보상하겠다고 합의했다”고 현황을 전했다.

보 철거에 앞서 2018년 3월 금강과 영산강의 주요 보를 개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특히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9년 11월 20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같은 해 6~9월 녹조 발생량이 보 개방 이전인 2013~2017년 같은 기간 평균보다, 금강은 95%, 영산강은 97% 줄었다. 정 사무국장은 “보를 개방한 뒤 유속이 빨라지고 체류 시간이 짧아지니 녹조가 피는 시기가 줄었고 녹조에 영향을 미치는 수치가 개선된 것”이라며 “보로 물을 막아놨던 곳에 강이 흐르고 모래톱이 생겨나고 생태 공간이 만들어지자, 해당 지역을 서식지로 삼던 다양한 생물 종이 돌아왔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보 개방 효과가 수치로 확인되자, 이번엔 “보를 철거하지 말고 수문만 개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정 사무국장은 “보 수문만 완전히 개방하면 보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착각 때문”이라며 “보를 철거하지 않는 이상 4대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라고 말했다. 16개 보 중에 영산강과 일부 보를 제외하곤 고정보(막힌 보)와 가동보(수문을 개폐할 수 있는 보)가 섞여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정보가 3분의 2 정도다. 개방할 수 있는 보를 다 개방하더라도 물길의 3분의 2는 막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행안부, 지역에 책정된 예산 안 줘

그나마 한강과 낙동강은 보 개방 모니터링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금강·영산강과 상황이 반대다. 한강과 낙동강은 보의 수가 많고, 자유한국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정 사무국장은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꼽았다.

“4대강 사업 공사 뒤 강에 설치된 취수구와 양수구(강이나 호수에서 물을 수로로 끌어들이는 입구) 위치를 보면 기존 시설보다 상당히 높아요. 보를 열어 물을 흘려보내면 수위가 낮아지는데, 취수구·양수구가 수면보다 높게 공중에 뜨게 돼요. 물을 끌어 올리지 못하는 거지요. 취수구·양수구 위치를 보면,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계획할 때부터 아예 (홍수 조절을 위해) 보를 개방해 수위를 낮추려는 생각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와요.”

남한강 여주·강천·이포 3개 보 인근에는 OB맥주와 하이닉스 등 민간이 운영하는 대규모 양수장이 있다. 정 사무국장은 “민간기업들은 (4대강 사업 계획에 따라) 양수구 위치를 높이 올려놓은 상태라, 국가정책으로 (보 개방과 철거가) 명확해지면 그때 보완 공사를 해서 낮추겠다는 입장”이라며 “한강 보를 쉽사리 개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낙동강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양수장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중앙정부의 ‘행정 태만’을 의심한다. 정 사무국장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에 예산을 주기로 했는데, 창녕군에서 공문까지 보내 예산을 신청해도 행정안전부가 책정된 예산조차 주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4대강 재자연화와 관련한 소극적 행정의 증거”라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태업이라, 지역단체들이 주민 감사나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을 검토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보수 언론과 정치권은 낙동강 인근 농민들의 반발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수문이 개방되면서 수위가 떨어졌고, 지하수가 줄면서 농업용 지하수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는 주장이다. 4대강 사업 이후 비닐하우스 안에 비닐하우스를 하나 더 설치하고 그 위로 평균온도가 일정한 지하수를 뿌려 온도를 유지하는 수막재배가 유행했다. 농민들은 난방비가 줄어 선호했지만, 지하수 남용을 고려하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 사무국장은 “지하수도 공공재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큰 관정을 파서 같이 쓰거나 버려지는 물을 재활용하는 방법까지 고민했어야 한다”며 “농법이 환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무조건 접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보상과 보완책을 협의해 다른 농법으로 전환할 기회를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부실 공사’ 세종보 철거해 예로 삼아야

2020년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선 “어찌 됐건 금강과 영산강은 보 처리 방안을 확정하는 게 중요”하다. 보 처리 방안이 확정돼도 해체까지 짧게는 5~6년, 길게는 그 이상이 걸린다. 실제 해체는 차기 정부의 몫이지만, 그전에 현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줄 게 있다. 정 사무국장은 “세종보의 경우 규모가 작고 부실 공사라 철거해야 한다는 걸 공히 인정한다”며 “시범적으로 세종보를 뜯어낸 뒤 강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나머지 15개 보를 철거하는 데 지속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낙동강과 한강은 2020년 “수문을 열어 (수질 개선 등)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4대강 보로 막힌 강물은 세숫대야에 담긴 흙탕물 같다. 시간이 지나면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고 윗물은 맑아 보인다. 세숫대야에 있던 물을 흘려보내면 처음엔 가라앉았던 흙이 올라오면서 물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수문을 단기적으로 개방할 경우 오히려 수질이 악화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 사무국장은 “물을 오랫동안 흘려보내면 수질이 안정화할 텐데, 최소 6개월 이상 수문을 열어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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