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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첫차 타고 강남빌딩 윤낸 아침 “우리가 일해야 세상이 돌아가”

첫차 타고 강남빌딩 윤낸 아침 “우리가 일해야 세상이 돌아가”
[2020 노동자의 밥상] ⑥ ‘6411번 버스’ 타는 청소노동자
“차 무너지겠어…” 오늘도 꽉 찬 6411 버스
반찬 봇짐 진 노동자 싣고 새벽을 가른다
승객 대부분 빌딩 청소 60~70대
출발한 지 11분 만에 콩나물시루
“전쟁이야 전쟁”, “사람 끼였어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사람들 타기에
느닷없이 버스 안 장터 열리기도
“햇김 하나 줘”, “돈 받아” 진풍경

[한겨레] 강재구 기자 | 등록 : 2020-01-17 05:00 | 수정 : 2020-01-17 09:30


▲ 지난 7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 첫차가 강남 쪽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김명진 기자

첫차는 출발 11분 만에 만석이 됐다. 새벽 4시 서울 구로의 작은 공원에서 출발한 6411번 버스가 영등포와 동작을 거쳐 강남 복판의 마천루로 향하는 동안 어두운 점퍼에 주름진 얼굴을 파묻은 이들이 꾸역꾸역 버스에 올랐다. 올해 예순일곱이 된 김순남(이하 모두 가명)은 개중에서도 바지런하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걸린 새벽 3시 40분, 김순남은 집 앞 정류장을 두고 날마다 15분을 걸어 6411번 종점인 구로 거리공원에 당도한다. 겨울비까지 내리던 지난 7일 새벽에도 그는 홀로 버스 종점에 서 있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자리가 없어요. 새벽부터 1시간 동안 서서 가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하기 정말 힘들거든.” 버스가 도착하자 김순남처럼 일찌감치 종점에 와 기다린 이들 6명이 함께 첫차에 올랐다.


전쟁통 같은 출근길

6411번 첫차에 올라탄 이들은 성별이 달라도 차림새와 나이대, 인상이 서로 닮았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생전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탄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라며 이 버스를 타는 ‘투명인간’들을 세상에 알렸다. 대개 60대이거나 70대인 6411번 첫차의 승객들은 하는 일을 물으면 “미화 일을 한다”고 답했다. <한겨레>가 지난달 18일과 이달 2일, 7일 세 차례에 걸쳐 6411번 첫차를 타고 질문을 한 승객 열에 아홉은 강남에 있는 빌딩의 청소노동자였다.

김순남도 강남의 10여 층짜리 빌딩에 출근해 2개 층의 사무실과 계단, 화장실을 쓸고 닦는다. 출근 시간은 새벽 6시지만 5시 30분이면 빌딩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출근해 일을 시작하기 전,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김순남은 강남이라는 공장을 돌릴 채비를 마친다. 빌딩엔 변호사도 있고 영업사원들도 있다. 빌딩 사람들도 김순남도 서로 마주하는 것이 마뜩잖다. “사무실 사람들이 일찍 오면 불편해. 사람이 있으면 청소한 자리를 밟고 다니니 말짱 도루묵이거든. 다시 닦아야 해.”

▲ 7일 새벽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이 버스의 첫 승객들이 6411번 버스에 오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6411번의 ‘김순남들’은 차림새처럼 급여도, 근무 시간도, 근무 형태도 닮았다. 대부분 새벽 6시부터 오후 2~3시까지 일하고 최저임금 안팎인 월 140만~17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는다. 유니폼처럼 거무튀튀한 점퍼에 등가방을 멨고, 여성들은 대체로 짧은 파마머리를 했다. 노 전 의원의 설명처럼 이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매일 어떤 자리에 앉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일하는 곳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첫차라는 공동체에서 이들은 이미 서로 벗이다. 운 좋게 좌석에 앉은 이는 가방을 들어주고, 며칠 누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강남이라는 섬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산다.

첫차를 타고 강남을 청소하러 가는 일은 출근 그 자체로 중노동이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잠든 새벽, 6411번 승객들은 첫차에서 그들만의 전쟁을 치른다. 구로에서 출발한 차량은 20분쯤 지나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다. 첫차를 타고 강남으로 가야 하는 이들은 넘치는데 6411번 노선이 모두 소화할 수 없어서다.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도 못했을 낡은 몸들이 버스의 흔들림을 따라 위태롭게 출렁이고 부딪쳤다. “전쟁이다, 전쟁.”, “시장통이야.”, “차 무너지겠어.”, “콩나물시루야.”, “여기 사람 끼였어요!” 곳곳에서 악 소리가 났다.

부대낌의 문제만이 아니다. 첫차 승객들은 6411번 버스가 정류장마다 태우는 사람 수에 따라 자주 발을 구른다.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버스 출발이 한 박자씩 늦어지면 다음 정류장에서 승객은 더 많아진다. 그러면 도미노처럼 버스 출발이 더 늦어진다. 반드시 첫차를 타고 출근 시간을 지켜야 하는, 주로 용역업체 소속인 이들에게 연착은 현장 반장의 불벼락을 뜻한다.

그럴 때면 버스 밖의 승객도 발을 구르지만 다른 노선으로 옮겨타야 하는 승객들도 목이 탄다. “늦었다.”, “택시 타야겠네.”, “아이고, 노선을 늘려주든지, 버스를 늘리든지 좀 하지.” 겨우 하루 7만~8만 원을 벌자고 새벽잠을 버렸는데, 돈 1만 원을 길에 뿌려야 하는 날이면 차비를 건네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노회찬 버스’로 여러 차례 언론을 타도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새벽이 이들에게는 야속하기만 한 까닭이다.

15년째 6411번 버스를 탄 김순남은 다행히도 24개 좌석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앉을 수 있다. 1시간 17분 동안 이어질 전쟁통을 선잠과 함께 편히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비결도 있다. 우선 덜컹대는 맨 뒷자리를 피한다. 그렇다고 버스 앞머리에 앉으면 나중에 탄 입석자들이 옹종거리며 부대끼게 된다. 그래서 김순남은 맨 뒷자리 바로 아래 왼쪽 창가에 몸을 기댄다. 그의 ‘전용석’이다.



버스에선 밥상을 위한 장터가 열린다

첫차를 타는 이들은 하는 일과 겉 차림만큼이나 고된 새벽 노동 뒤 챙겨 먹는 아침밥의 내용도 닮았다. 승객 대부분이 둘러멘 등가방에는 작업복, 무릎담요와 함께 아침과 점심때 먹을 반찬도 실려 있다. 새벽 노동하러 가는 이의 도시락에 산해진미가 들었을 리 만무하다. 김치나 멸치, 나물처럼 대개 고봉밥을 가득 떠 넣기 위해 필요한 짭짤한 찬거리가 담겼다. “거기서 거기야. 다 똑같아.” 아침은 잘 챙겨 먹느냐는 물음에 예순여섯살 송병중은 손사래를 쳤다. “김치에다 한가지 아무거나.”, “김치, 알타리, 그리고 갓김치.”

첫차 승객 중엔 건물에서 나오는 파지를 모아 팔고 그 돈으로 밥상을 차리는 이들도 있다. 일흔네살 박정래는 “옛날에는 파지를 모아서 쌀 사 먹었는데 요즘엔 파지가 잘 안 나오니 쌀 사 먹기가 바쁘다”고 했다. 김순남의 처지는 그나마 낫다. 김순남의 일터 휴게실에는 주방이 있다. 가스레인지와 싱크대가 구비돼 있다. 다른 이들이 전기밥솥 달랑 하나로 살림하는 것과 달리 김순남이 일하는 빌딩에선 국을 끓이고 생선도 굽는다. 김순남을 포함한 미화원 6명이 오이소박이, 고추장아찌, 깻잎과 콩나물무침을 가득 쌓아두고 고봉밥을 뜬다. 때로 집에서 고기를 가져오는 날도 있다. “우리는 잘 해 먹어. 아침도 뜨신 밥 먹고 점심도 뜨신 밥 먹고. 먹을 거 없는 날은 김치 대가리 잘라서 찌개도 해 먹고.”

▲ 김순남의 일터 밥상. 오이소박이, 고추장아찌, 깻잎과 콩나물무침을 가득 쌓아두고 하얀 쌀밥을 뜬다.

김순남의 일터에선 직원들이 밥 차려 먹을 식자재를 사고 비용을 청구하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식비를 대준다. 밥 먹는 일을 치사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침 일을 마친 8시께면 김순남의 동료들은 8평(26㎡) 크기의 휴게실에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는다. 첫차 승객 중에서도 월급이 140만 원으로 적은 편인 김순남이 15년이나 한 빌딩을 지켜온 것은 겨우 그런 까닭인지도 모른다.

김순남의 아침 밥상에는 ‘6411번 장터’에서 사들인 찬거리가 오르기도 한다. 구반포역 정류장을 시작으로 고속터미널역, 학동역을 지나며 승객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면 이 버스엔 느닷없이 장이 선다. “돈 먼저 받아. 돈 먼저 받으셔.”, “나도 김 하나 줘.” 승객 중 한 명이 버스 안에서 햇김을 팔기 시작하는데 모두 익숙한 듯 거래에 동참했다. 김을 파는 이도 역시 강남에서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다.

“한 톳에 8천 원이야. 여기 사람들 다 아니까 주문받아서 파는 거예요. 친정 오빠가 전라도에서 보내준대. 다른 데보다 싱싱하고 저이가 장사를 잘해.” 어떤 날은 갑오징어와 낙지가 팔려나가고, 봄철에는 주꾸미도 버스에 오른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버스에서 벌어지는 이 진풍경은 비슷한 세상에서 비슷하게 몸 쓰는 일을 하며 사는 이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 7일 새벽 6411번 버스 첫 차 안에서 승객들이 빌딩 청소 현장 밥상에 올릴 김을 거래하고 있다. 매일 거의 같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는 계절에 따라 반건조 생선, 과일, 김 등이 거래된다. 파는 이도 사는 이도 모두 빌딩 청소노동자들이다. 김명진 기자

▲ 지난 7일 새벽 빌딩 청소 노동을 하는 김순남씨가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선릉역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그래서일까. 이들은 무엇보다 ‘자부심’을 공유한다. 어떤 옹졸한 버스 기사가 “오늘 강남으로 쓰레기 세 차를 실어 날랐다”고 조롱하건, 주변에서 “허드렛일을 한다”고 수군거리건, 6411번 첫차의 승객들이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사실은 매일 아침을 살핀 서로가 가장 잘 안다.

“엄마들 없으면 청소 못 해.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데. 젊은 애들은 빗자루만 왔다 갔다 하거든.”, “우리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야. 우리 같은 사람이 일해야 세상이 돌아가.” 여전히 캄캄한 새벽, 강남에 도착한 6411번 버스가 쏟아낸 김순남들은 그런 말을 남기고 빌딩으로 한 명씩 흩어졌다.


출처  첫차 타고 강남빌딩 윤낸 아침 “우리가 일해야 세상이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