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송경호 검사의 ‘과거’를 묻지 않는 언론

송경호 검사의 ‘과거’를 묻지 않는 언론
‘원칙과 자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없다
[고발뉴스닷컴]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승인 : 2020.01.21 15:30:37 | 수정 : 2020.01.21 16:12:45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헌법에 따른 비례와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의 말입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송경호 검사는 지난 16일 열린 서울중앙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난해 7월 취임사 중 한 구절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송경호 검사가 겨냥한(?) 대상은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보입니다.

▲ <이미지 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캡처>


문재인 정부와 ‘추미애 법무부’를 비판하면 지면 내어줄 준비가 돼 있는 언론들

동아일보를 비롯해 보수 신문과 종편 등에서 관련 내용을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 덕분에 송경호 검사는 ‘검찰권이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는’ 원칙을 강조한 검사로 그려졌습니다. 반면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마치 ‘특정 세력을 위해 검찰권을 행사할 것처럼 여겨지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물론 법무부의 ‘검찰 직제개편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질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현 정권 인사와 관련돼 있는 사안을 수사하는 수사팀 해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총장 체제의 간부들을 ‘원칙주의자’로, 신임 간부들을 ‘그 반대편에 선 검사’로 규정하는 듯한 기성 언론의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 간부들이 검찰 직제개편안에 반대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보수 언론과 일부 종편을 중심으로 ‘이런 반대’ 의견에 힘을 싣는 보도를 해왔다는 것도 새로울 게 없는 내용입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보수 언론이 송경호 검사를 ‘원칙주의자’로 그리는 것이 놀랍지는 않습니다. 보수 언론과 일부 종편 입장에서 그가 실제 원칙주의자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최근 이들 언론의 보도 행태를 봤을 때, 문재인 정부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그리고 이번 인사에서 새로 부임한 신임 간부들을 ‘질타’하는 내용이라면 언제든 지면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로 균형성을 잃은 일방적인 기사가 많이 양산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의 보도 행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합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난 정권에서 ‘정치적 기소’ 사건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검사를 ‘의인’으로 묘사하는 건 정도가 지나칩니다. 아니 이건 ‘선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송경호 검사를 ‘원칙주의자’로 그리는 일부 언론 … 정도가 지나치다

송일준 광주MBC 사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관련 내용을 언급하면서 알려진 내용이지만 송경호 3차장 검사는 “이명박 정권 시절, 피디수첩 죽이기 수사팀원으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파괴에 적극 부역했던 검사”였습니다.

어제(20일) 한겨레가 <“‘조국 사심없이 수사’했다는 송경호, ‘광우병 PD수첩’ 주임검사”>에서 지적했듯이 “1심(형사 단독)부터 2심(지법 항소부)을 거쳐 대법원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전부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또 당시 검찰의 기소가 “이명박 정권의 입맛에 맞춘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핵심 역할을 했던 송경호 검사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엘리트 검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검사’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의 핵심 간부로 등장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검찰개혁이 왜 잘 진행되지 않는지,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정권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잘못된 기소를 했던 검사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승승장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검찰 조직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결국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장례식장 추태’가 벌어질 당시 송경호 검사는 심재철 신임 반부패부장에게 “당신이 정권에 기여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도 사심 없이 수사했다”, “우리는 아무런 방향성 없이 수사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한겨레는 “엠비 정부 입맛에 맞게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주저하지 않은 그가 지금 와서 ‘사심없는 수사’, ‘방향성 없는 수사’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는 검찰 안팎의 비판을 소개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한겨레신문 홈페이지 캡처>


전두환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해도 그대로 받아 쓸 건가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송일준 광주MBC 사장이 페이스북에 쓴 글 - “(헌법정신을 강조한 것과 관련해) 혹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경호 검사가 할 말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대목이 생각나더군요.

그런데 ‘이런 대목들’이 기성 언론의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잡히지 않는 걸까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하는 걸까요. 만약 전자라면 저널리즘을 논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후자라면 언론이기를 포기한 태도라고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성 언론과 기자들에게 한 마디 덧붙이면, 어떤 사람이 원칙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쓰는 것 –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걸 제발 인지하기 바랍니다.

‘화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 발언을 둘러싼 이면이나 맥락적 상황을 고려해 짚어야 할 부분은 없는가, 이런 점들을 주목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전두환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말했다고 그걸 그대로 받아쓸 건가요? 정말로 그랬다간 뉴스수용자들로부터 외면만 받을 뿐입니다.

▲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관련 수사의 실무 책임자인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출처  송경호 검사의 ‘과거’를 묻지 않는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