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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하종강 “문재인 정부, 갈수록 재벌과 가까워가고 있다”

하종강 “문재인 정부, 갈수록 재벌과 가까워가고 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20-01-27 09:58:15 | 수정 : 2020-01-27 10:00:57


▲ 하종강 교수가 20일 서울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0 ⓒ김철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7일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아닌, 사람 중심의 창의와 혁신, 선진적 노사관계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그동안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2,000시간 아래로 낮아졌고, 저임금노동자 비중도 20% 미만으로 줄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한 반면, 파업에 따른 조업 손실 일수는 최근 20년 이래 가장 낮았다”면서 정부의 지난 노동 정책 관련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노동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한 지난 14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도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대해 76.7%가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비정규직 숫자도, 고용불안과 저임금이란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노동자들의 기대를,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를 받으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으며,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지난 20일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만나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하종강 교수는 “촛불 시민의 분노를 바탕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서민과 함께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구도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과거 정부처럼 재벌과 가까워가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처음엔 문재인 대통령 중심의 개혁 세력이
보수적인 관료들과 맞서느라
노동 개혁이 힘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부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실제로 저 정도구나 하는 걸
시간이 갈수록 느끼게 된다.”

질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답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노동 존중’을 내세웠다. 100대 국정과제 중에 63번째 과제로 사실상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정책과제였지만, ‘레토릭’으로 강조되다 보니 현실 보다 부풀려 이해된 거다. 노동자는 기대했고, 사용자는 경계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 공약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 ‘최저임금 1만 원’, ‘주 52시간’이다. 그런데 이 세 개가 다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노무현 때는 지키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를 노동운동, 진보세력으로부터 지키자는 정서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싸울 대상이 넓어지다 보니 뭔가 주장하기 어려워졌다고 활동가들이 토로한다.

질문 노무현 정부 시절엔 그나마 우리가 이런 한계가 있다면서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전선조차 제대로 형성하기 힘들다.

답변 실제로 개선된 내용은 별로 없는데,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성급하다고 보는 정서가 생겼다. 처음엔 문재인 대통령 중심의 개혁 세력이 보수적인 관료들과 맞서느라 노동 개혁이 힘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부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실제로 저 정도구나 하는 걸 시간이 갈수록 느끼게 된다.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한국노총이 들어가 있다. 한국노총은 한국 노동운동을 절반을 대표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아직 밖에 있다는 것을 무기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노총은 한국노총·정부·기업과 민주노총 사이에 전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한국노총조차 그러한 인식인데,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명확하게 전선을 인식한다는 것은 거의 허구에 가깝다.

▲ 하종강 교수가 20일 서울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0 ⓒ김철수 기자
질문 개혁이 필요한 대상인 재벌과 관련해선 현재 손조차 못 대는 상황이다.

답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재벌과 대통령의 결탁에 대한 심판이었다. 대통령과 재벌의 밀착 구조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이런 촛불 시민의 분노를 바탕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서민과 함께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구도를 생각했는데, 갈수록 과거 정부처럼 재벌과 가까워가고 있다. 삼성 이재용을 만나면서도 노동자들은 안 만나는 것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질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답변 실제로 비정규직 문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인천공항에 찾아가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라고 선언했을 때만해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지지부진하다. 일부 정규직화도 자회사를 통한 기형적 방식이어서 무늬만 정규직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톨게이트 수납원 문제다. 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은 입사 시기가 달라도, 하는 업무가 달라도, 소송을 제기했든 하지 않았든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판결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반대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대법원판결을 대놓고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하다 지금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강래 씨는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다. 그런 사람조차 직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대법 판결 무시할 수 있는 게 문재인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신규취업자 가운데 70%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숫자도, 비정규직의 처지도 나아진 게 없다 보니 비정규직 투쟁이 활발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도 줄지 않았고, 약간의 차이뿐 노동조건도 여전히 열악하다. 더구나 ‘희망 고문’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아예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말하지 않았다면 기대조차 걸지 않았을 것이다. 희망을 가지게 했던 정부가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실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노동비용을 제대로 부담해야
국가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시장 경제적 시각이다”

질문 그간 꾸준히 역량을 늘려온 비정규직 운동이 최근 폭발적으로 도약하는 분위기다.

답변 비정규직 문제는 ‘까방권’이 있다. 보수적인 세력도 감히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선 시비를 걸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도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선 후보들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권리 향상돼야 한다는 정서를 보수세력도 가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기득권 세력의 노동운동이라고 따가운 시각 받을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다. 현재 비정규직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노동조건도 여전히 열악하다. 이런 양상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 하종강 교수가 20일 서울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0 ⓒ김철수 기자

질문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답변 플랫폼 노동자의 급증을 마치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래 지향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플랫폼 노동은 기업들이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식일 뿐이다. 그런 걸 규제하려는 것조차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기업의 미래지향적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4차 산업 혁명으로의 진입을 막는 것처럼 이해하는 정서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회는 지난해 9월 AB -5 법안을 통과시켰다. 플랫폼 노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우버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규정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왜 이러한 법을 만들었을까? 철저한 시장경제 논리로 봐도 플랫폼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이 노동비용을 제대로 부담해야 국가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시장 경제적 시각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후 스크린도어 사고 1/5로 줄어
“정규직화는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
정규직에게 유익하고, 시민에게도 유익하다.”

질문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청년 노동자가 사망하고, 또다시 김용균 씨가 발전소에서 목숨을 잃는 등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비정규직의 죽음이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답변 서울지하철에서 구의역과 같은 스크린도어 사고가 구의역 사건 이전에도 3건 발생했다. 지금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됐지만, 당시는 서울메트로가 1~4호선을 운영했고, 5~8호선은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했디. 그런데 비정규직이 수리를 담당했던 1~4호선에서만 사고가 발생했고, 5~8호선에선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가 구의역 사건을 계기로 418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서울시 산하 기업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서울시 산하 기업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엔 노동이사가 2명이 있다. 모두 30년 이상 노동 운동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정규직 직원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쉽게 들어온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 채용 과정의 공정성 저해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노동이사들이 양쪽을 각각 100명 이상씩 만나서 조정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비정규직은 기존 호봉체계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별도 직군을 둬서 비정규직 직접 고용으로 바꿨다.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서 기존의 정규직보다 낮은 조건으로 들어오는 것이 상당히 굴욕적이긴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걸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이 열심히 싸워서 기존 정규직 호봉체계와 똑같이 만들어 주겠다 약속했다. 결국 418명이 전원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싸웠다. 3년이 조금 지난 지금은 호봉체계 등이 개선이 됐다.

당시 정규직이 된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들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뭐냐고 물어보면,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하청 노동자일 때는 위험한 일을 시켜도,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똑같은 사고가 3건이나 일어난 것이다. 3년 만에 고장 건수는 과거보다 1/5이다. 다섯 건 일어나던 사고가 한 건으로 줄었단 얘기다. 이건 당연한 결과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비정규직 직장에선 노동자들이 그렇게 할 수 없다. 평생 직장이 되면 행복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스스로 환경을 개선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진다. 정규직이 된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들이 몇 가지를 제안했고, 회사가 그 가운데 두 가지 정도를 받았는데도 놀라운 성과가 나타났다. 정규직화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개 인도주의적인 차원으로,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의 권리 보호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정규직화는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 정규직에도 유익하고, 시민에게 유익하다.

▲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 노동자 분향소 앞에서 노동보건단체 관계자들이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 사망 1주기 위험의 외주화 지속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27 ⓒ김철수 기자

지금 발전소에서 일어난 수많은 산재 사건도 대부분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사고가 일어나면 원청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청은 ‘우리 소유 설비가 아니다’라고 한다. 원청회사는 우리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안전업무를 하도급을 준다. 가장 효과적으로 이런 사고를 해결하는 건 직접 고용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 방식이다.

유럽은 기업살인법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들 법안의 중요개념은 기업이 지킬 법을 지키지 않아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영국은 기업 매출 10배 넘는 벌금을 부과한다. 기업 총자산의 두 배가 넘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회사는 도산한다. 회사는 도산하지만, 사회 전체 비용은 줄어든다. 미국은 기업살인법으로 형사적 처벌은 하진 않지만, 민사적으로 규제한다. 미국엔 징벌적 배상제도가 있다. 우리는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해 대법에서 승소해도 전체 배상금액이 2~3억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삼성이 노조 탄압할 때 부당해고인 걸 알면서도 ‘알고 있어 우리 법정에서 만나자’면서 해고한다. 나중에 최종 판결받아서 회사가 패소해도 한 명당 몇억이면 해결할 수 있다. 미국 같은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그렇게 못하도록 규모에 맞는 배상금을 물린다. 그래야 회사가 긴장한다. 철저한 자본주의 미국도 이렇게 기업을 규제한다. 노동자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 해롭다는 것이 자본주의적 시각이다. 우리는 형사적인 기업살인법도, 민사적인 징벌적 배상제도도 없으니깐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 사망했을 때 몇억 들여 처리하는 게 낫지 법은 못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질문 김용균 씨 사고를 계기로 관련한 법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답변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크다. 구의역 사고 김 군이 담당했던 시설관리 업무나 김용균 씨가 담당했던 발전소 업무가 하도급 금지 업무에 포함 안 됐다. 사용자 단체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에 찾아와 ‘기업 다 망하게 할 거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경제신문의 보도를 보면 ‘최저임금 폭탄에 산안법까지’라면서 마치 한국의 기업들을 망하게 하려고 문재인 정부가 작정이라고 한 것처럼 비난했다. 당시 정부 부처 가운데 안전규제 법안에 노동부만 그나마 의지가 있었지, 재계와 재벌을 대변하는 정부 부처는 대부분 반대했다. 그래서 ‘노동부 안’보다도 훨씬 후퇴한 법안이 통과됐다. 문재인 정부의 실체가 바로 이런 거다. 문 대통령을 포함한 개혁 세력이 이것을 의지로 돌파해야 하는데, 의지가 없었다. 정부 내 파워게임에서 기업 입장 대변하는 세력이 노동자 입장 대변하는 세력보다 훨씬 큰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려고 하는데 보수세력이 막아서 못하는 게 아니라, 개혁 세력 내부에 의지가 없는 거다.


“언론에선 제1 노총이 된 만큼 책임 의식을 가지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가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걸 엄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질문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됐다. 보수신문은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된 것을 심각한 문제인 양 다루고 있다.

답변 사실 민주노총이 제1 노총이 된 건 상당히 오래전부터다. 민주노총이 통계상 제2 노총었던 건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계상으로도 제1 노총이 된 것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빠져있는데, 전교조까지 포함되면 명실상부한 제1 노총이 된다. 그런데 언론에선 제1 노총이 된 만큼 책임 의식을 가지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가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오히려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걸 엄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이 참여할 조건을 만들어야 들어갈 수 있다.

▲ 비정규직 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회원들이 1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비정규직 1000만 설문조사 발표 및 2차 촛불행진 발표' 기자회견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수치로 나타낸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철수 기자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모범적으로 해결한 나라로 스웨덴을 꼽는다. 스웨덴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기업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시행했다. 경력 2년 된 선반공은 동네 작은 기업에서 일하나 대기업에서 일하나 임금이 같다.이런 결정이 나온 건 스웨덴 노사정 합의체에서다. 노사정 합의체는 이런 걸 해야 한다. 그런 걸 결정 할 수 있다면, 민주노총도 당연히 경사노위에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자에게만 양보를 요구한다. ‘탄력근로제 확대하자, 최저임금 결정 이원화하자, 최대 노동시간 52시간 유예하자’ 등 양보할 것을 이미 정해놓고 들어오라고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 입장만 대변하는 지식 장사꾼인 교수들은 스웨덴도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많이 훼손됐다고 주장한다. 훼손된 건 맞지만 훼손됐다고 해도 우리가 볼 땐 거의 신의 경지다. 스웨덴에서도 훼손됐으니 우리가 그걸 지향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사기다. 영양실조인 사람에게 비만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스웨덴의 동일노동동일임금 체계가
경제성장의 동력… 인건비 빼먹는 기업은 사라지고,
고임금을 지불하며 부가가치로 경쟁하는 기업 남아야”

스웨덴의 국가적 차원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제로 포인트에 머무는 동안 스웨덴만이 4~5%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스웨덴의 동일노동동일임금 체계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보, 보수는 물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비슷한 결론이다. 이런 원칙이 도입되면 인건비를 줄여서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점점 사라진다. 그게 오히려 스웨덴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는 거다. 인건비 빼먹는 것 이외에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점점 사라진다. 고임금을 지불하며 부가가치로 경쟁하는 기업만 남는다. 이런 게 철저한 시장경제 논리다.

노동전문가들은 적정한 최저임금은 없다고 한다. 그 사회의 세력 균형에 따라서 결정되는 게 적정한 최저임금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를 인상했다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2014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40%나 인상했다. 미국의 리버럴도 그 정도는 한다. 최저임금 인상하고 나서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인상법안 반대하고 싶으면 당신들이 그 임금 가지고 살아보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한국 국회로 가져오면 정의당 정서이지, 더불어민주당 정서는 아니다.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의 전체 정치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훨씬 보수화됐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미국보다 훨씬 심화한 것이 한국의 비정상적인 자본주의 상황이다.


“조국 장관 자녀 논란?
자녀들이 서울대 안 나와도,
졸업한 이들 못잖게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그 문제 신경 안 써도 된다.”

질문 지난해 이른바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대응을 두고 진보 진영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그리고 불평등이 대물림되고, 구조화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답변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 등이 당시 분노한 이유는 자신들은 어렵게 획득한 스펙을 조국의 딸은 쉽게 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촛불을 들었던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논문에 공동 제1 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경력 때문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우리들은 그런 세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나도 자녀가 대학에 갔지만, 고등학교 때 의과대학 실험에 참여해서 논문 저자로 이름 올리고, 그게 스펙이 돼서 대학 갈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노동자들 만나 물어보면 다 몰랐다고 한다. 상위 0.1%의 세계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자기들끼리만의 기득권 싸움이다. 자녀들이 서울대 안 나와도, 졸업한 이들 못잖게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그 문제 신경 안 써도 된다. 우리 자녀들이 조국 장관 자녀나, 나경원 자녀처럼 되지 못해도, 서울대 나오지 않은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신경 안 써도 된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그런 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 하종강 교수가 20일 서울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0 ⓒ김철수 기자

예전에 한겨레 신문이 진로 특집을 위해 네덜란드에 가서 취재해서 쓴 기사에 보면 중학생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니 벽돌공이라고 답한 학생이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벽돌공이 일하는 것 보니, 음악을 온종일 크게 들을 수 있더라. 나는 음악을 사랑하기에 음악 들으며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꿈이 가능한 건 벽돌공이나 대기업 정규직, 대학교수가 임금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차별을 용인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사기다. 실제 대우를 정당하게 해줘야 귀천이 없어지는 거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 받을 수 있게 되고,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게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나는 조국 문제도 그렇게 봤다.

질문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노동계 이슈와 관련한 움직임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답변 대개 진보정당의 후보는 표 때문에 진보와 노동을 감추려고 한다. 진보정당 내에도 노동운동 출신의 후보는 노동운동 경력을 별로 강조 안 한다. 저 같은 사람이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하는 게 오히려 정치적으로 마이너스다. 왜냐면 노동운동 출신들은 노동운동밖에 모른다는 편협한 시각이 있어서다. 저에게 지지요청이 오는 이들은 노동문제 관심 있지만, 노동운동 출신 아닌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노동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강조하려고 저 같은 이들과 관계를 오히려 홍보한다. 이런 모습은 정치적으로 낙후된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은 노동운동 출신 정치인이 절반 정도 있다. 절반보다 많아질 때 집권하게 된다.

지금 OECD 가입한 선진국 중에서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이 집권한 경험이 없는 나라가 딱 두 나라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이다.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은 대부분 노동운동 출신의 정치인들이 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 운동하던 사람이 정치인이 되면 마치 변절한 것처럼, 순수성이 훼손된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노동운동이 책임 가지고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코스다. 한국 노동운동은 너무 정치 활동 없는 게 오히려 문제다. 원래 노동운동은 정치 세력화해서, 그 사회 전체 제도를 바꾸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한국은 정치 냉소주의가 있어서 왜냐면 정치를 담당한 인간들이 식민지적 전통을 이어받은 도덕성 결여된 집단이 정치, 정치 냉소주의가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사회 운동 세력들이 정치를 많이 하는 게 올바른 모습이다.


“최대노동 52시간을 도입하면
망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망해야 한다.
그런 좀비기업, 한계 기업을 운영해봐야
국가 경제에 도움 되지 않는다.”

질문 이번 총선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노동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답변 여전히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가장 큰 관심사다. 아무도 이의 제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이슈를 선점해서 치고 나가야 한다. 노동시간, 최저임금 문제도 같이 거론할 필요가 있다. 레토릭으로 사용하는 공약은 되지 못해도, 공약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주 52시간이란 표현도 법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우리는 주 40시간제다. 52시간이란 표현을 쓰고 싶으면, ‘최대노동 52시간제’라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계속 주 40시간 최대노동 52시간제였다. 그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기업에 유리하게 근로기준법의 1주일을 주 5일로 봐야 한다고 법 해석을 68시간이 나온 거다. 근로기준법의 1주일은 7일이다. 무리하게 일주일을 5일로 이상하게 해석한 시기가 잠깐 있을 뿐이다.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건데,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마치 도둑질하다가 금지했더니, 몇 달만 더하게 해달라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하종강 교수가 20일 서울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1.20 ⓒ김철수 기자

최대노동 52시간을 도입하면 망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망해야 한다. 그런 좀비기업, 한계 기업을 운영해봐야 국가 경제에 도움 되지 않는다. 지난 2018년 6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전경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을 열었다. 당시 권태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정부가 일률적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면서 문제가 있는 듯 질문을 했다. 그러자 폴 크루그먼은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라면서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하는지 알 수 없다. 52시간으로 줄여도 여전히 높은 것 같다”며 “한국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노동조합, 민주노총, 파업
이런 단어 들었을 때 머리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보인다.
식민지 40년, 분단 70년 군사정부 30년으로
이뤄진 자본주의 역사는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질문 우리나라에선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우호적이지 않다.

답변 우리 국민은 노동조합, 민주노총, 파업 이런 단어 들었을 때 머리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보인다. 식민지 40년, 분단 70년 군사정부 30년으로 이뤄진 자본주의 역사는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왜 한국의 학교에선 노동교육을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런 역사를 거쳤기 때문이다. 왜 한국언론은 올바르게 보도하지 못할까? 이런 역사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노동문제 철저하게 가르친다. 독일은 1년 동안 모의 노사교섭 수업을 일곱 번이나 하고, 교과서를 보면 항의문건 쓰는 법, 서명운동하는 법, 언론 인터뷰하는 법, 노동조합 위원장 연설문 등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마치 한국 학부모가 보면 데모기술 가르치는 것처럼 교과서가 돼 있다. 이런 걸 왜 가르치겠나? 사회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사회과 교과서 1/3 정도가 단체교섭 전술과 전략을 짜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왜 고등학교에서 단체교섭 전략 전술을 몇 달 동안 가르치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사회 구성원 대부분 노동자인 사회에선 당연하다. 일본 미국도 다 가르치는데, 우리만 안 가르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바라보는 노동문제의 시각과 이런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서 보는 노동문제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 파업으로 길이 더러워지면 우리나라는 청소노동자를 욕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청소노동자 파업 때마다 시장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린다. 노동자 파업으로 불편해져도,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를 파업하게 만든 경영자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나라 시민의 시각이다. 공정여행 운동하는 분에게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시 청소노동자 파업으로 거리에 쓰레기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이 착한 마음으로 자원봉사대를 조직해서 청소하러 나갔다가 쫓겨났다고 한다. ‘거리가 지저분할수록 파업 효과가 높아지는 것인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고 했다고 한다. 노동자의 파업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런 게 우리나라 사람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엔 파업하는데 청소하러 나오는 게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

질문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답변 노동자의 권리가 향상되는 게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임금도 더 인상돼야 국가 경제에 유리하다. 자기보다 많아서 기분 나쁘긴 하겠지만, 그들의 연봉 인상이 곱게 안 보이지만, 대기업 정규직도 인상하고, 비정규직은 더 빠른 속도로 인상해야 한다. 정규직이 자기 이익만 챙길 게 아니라 비정규직을 당연히 챙겨야 한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그나마 열심히 하는 현대차 노조가 가장 욕을 많이 먹는다. 지금 현대차 노조 말고 나머지 대기업 노조들은 싸우지 않으니 욕도 안 먹는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만나면 현대차만큼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 많이 해준 노조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은 노동 소득 비율이 너무 낮다. 기업과 정부로부터 노동자 쪽으로 돈을 많이 옮겨놔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고, 외환위기 등 경제 위기를 만나지 않을 수 있다. 박정희 정부의 놀라운 경제 성장이 IMF 외환위기라는 치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을 경제학자들이 공부한 분야에 따라 각각 다르게 표현하지만, 결국 노동 소득 비중이 작아 빚어진 것으로 본다. 정부와 기업 가진 돈을 노동자에게 옮겨야 국가 경제도 튼튼해진다.


출처  [인터뷰]하종강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규직에도 이익… 문재인 정부 갈수록 재벌에 가까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