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시민단체는 어떻게 국회의 ‘갑(甲)’이 됐나?
[KBS] 노윤정 기자, 하누리 기자 | 입력 : 2020.02.04 (14:26) | 수정 : 2020.02.04 (14:27)
〈국회감시 프로젝트 K〉가 ‘국회의원과 상’ 을 연속 보도한 이후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시상식 주최 단체 중 한 곳인 ‘법률소비자연맹’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했습니다. 기사에 단 댓글을 통해 이 단체의 실체를 알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져 후속 취재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난달 31일 방송된 ‘〈의원과 상 AS〉 국감 평가한다더니…수상한 청탁?’ 편입니다.
‘국회의원과 상’을 취재하는 내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단체가 국회에는 ‘갑(甲)’이나 다름없다는 것. ‘설마…’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법률소비자연맹이 주축이 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의 ‘국리민복상’ 시상식에서 취재진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갑(甲)’이네, 국회가 ‘을(乙)’이네, 하는 이야기, 그저 엄살이 아닌 듯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먼저 이 단체 태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93년 법정 모니터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1998년 의정 감시를 하겠다며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을 구성해 국정감사 모니터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한 의원은 “의원과 기자 밖에 출입하지 않던 국감장에 시민단체가 들어온 것”이라면서 “초기에는 반향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이 단체는 ‘국감 백서’를 내고, 의원 평가를 해 상을 주기 시작합니다. 사실 객관적 평가가 쉽지 않은 게 의정 활동인데, ‘모니터단’ 이름으로 평가 결과를 발표하니 보도도 많이 됐습니다. 의원 실명을 거론하며 ‘출석률 꼴찌’라고 비판하거나 국감 우수 의원이라며 상을 주니,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못 한다’고 지목당하거나, 다들 받는 상을 나만 못 받으면 어쩌나,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또 다른 의원은 털어놨습니다.
이렇게 해서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잡음이 불거진 건 2011년. 백서를 강매한다거나 보좌진에게 ‘갑질’을 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여야 8개 정당 보좌진협의회가 연맹의 활동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환경의 변화로 입지도 점차 줄어듭니다. 국감이 인터넷에 생중계되고, 여러 단체가 평가에 나서면서 국감장에 앉아서 하는 모니터 활동의 의미가 축소된 겁니다. 결국, 2018년 법률소비자연맹 측은 의원들에게 ‘(다른 단체가 주는) 짝퉁 상을 받으면 수상자에서 배제하겠다’는 공문을 보내기까지 합니다. 이 단체가 지난 20여 년 걸어온 길입니다.
‘갑질’ 차원 정도라면 문제 삼을 것 없습니다. 시민단체라고 해서 의원들에게 ‘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취재 과정에 드러난 문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2014년부터 ‘저작권법’ 관련 전방위 활동에 나선 법률소비자연맹. 느닷없이 의원들을 고발하는가 하면 FTA 기준에 맞춰 ‘비친고죄(피해자 고소 없이 처벌 가능한 범죄)’로 개정된 저작권법을 다시 ‘친고죄(피해자 고소가 필요한 범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회에서 저작권법 개정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대외적 이유는 영상물 등을 무심코 내려받은 학생들이 합의금을 노린 ‘법파라치’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것.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된 이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률소비자연맹의 활동 이면에는 김대인 연맹 총재의 ‘가족사(事)’가 있었습니다.
김대인 총재의 아들 김 모 씨는 2013년 말, 검찰이 ‘SAT 문제유출’ 수사로 기소한 피고인 24명 중 한 명입니다. 미국 대입시험인 SAT 문제를 인터넷에서 팔아 2억여 원어치 수익을 챙겨 저작권법을 위반한 혐의입니다. 판매자 가운데 수익이 가장 많아 보도자료에 ‘브로커’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의원들을 고발까지 하면서 저작권법 개정 운동에 나선 건 이때부터입니다. 저작권법을 다시 친고죄로 바꾸면, SAT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 시작된 수사가 정당성을 잃게 될 테니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5년부터는 국감에서도 ‘SAT’가 등장합니다. 물론 법률소비자연맹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4년간 9차례 질의했는데 2018년에는 검찰의 증거가 ‘가짜 서류’라는 법률소비자연맹 측 의견서를 인용하며 “기소가 잘못됐다면 공소를 취소하는 게 떳떳한 검찰”이라고 발언합니다. 윤상직 토착왜구당 의원은 2017년 국감에서 “(법률소비자연맹 측에서) SAT 사건 판사가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사퇴하라고 한다”고 질의합니다.
특정 사건 재판을 놓고 이렇게 노골적인 압박성 질의가 나오는 건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이상 이례적입니다. 최근 4년간 법사위 국감에서 나온 SAT 사건 질의는 18차례. 질의 의원은 7명(노철래·박주민·박지원·서영교·윤상직·이상민·정성호 - 가다나 순)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노철래 전 의원(2016년 구속)을 제외하고 6명은 모두 NGO모니터단으로부터 ‘국감 우수의원상’을 받았고, 특히 관련 질의를 한 해에는 어김없이 수상했습니다.
의원들의 집요한 질의,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지난해 말 사법 농단 재판에서 공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문자메시지. ‘SAT 사건 관련해 사실조회 회신이 지연돼 회신 중. 검찰 측에 촉구 예정’이라는 내용입니다. 단순한 저작권법 위반 사건이 법원행정처가 진행 상황을 챙기는 ‘주요 사건’이 된 겁니다. 사법 농단 수사 담당 검사는 “국감 질의가 나오자 임종헌 전 차장이 재판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의원들의 국감 질의 내용은 재판부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김대인 총재 아들 변호인은 ‘이 사건이 국감에서도 지적당했다’는 취지로 변론 의견서에 속기록을 첨부해 제출했습니다. SAT 사건 담당 판사, 공판 검사들은 “작은 사건인데도 재판 때마다 방청석이 꽉 찼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사법감시배심원단’을 꾸려 매번 방청한 겁니다.
온갖 등쌀 속에 진행된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피고인 24명 중 2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항소를 포기해 1심에서 형이 결정됐고, 일부는 대법원까지 가서 혐의를 다투고 형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김대인 총재의 아들 김 모 씨, 6년 동안 1심 판결이 지연되다가 지난해 8월 저작권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기소 자체가 잘못됐다는 건데, 법률소비자연맹이 재판 기간 내내 주장한 내용입니다.
김 씨 변호인이 공소 기각을 주장한 근거는 김 씨가 판매한 SAT 문제지가 정확히 언제, 무슨 문제지인지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 집요한 문제 제기에 검찰은 문제지 ‘코드’를 일일이 명시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재판부에서 허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2018년 재판부가 바뀐 후 공소장 변경 허가는 어째서인지 취소됐고 결국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특정 사건 재판 결과를 논리적으로 문제 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판사마다 법적 판단은 다를 수 있고, 변호인이 변호를 잘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피고인들과 김 씨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따져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김 씨의 공소장 변경 허가를 취소한 판사에게 물어봤습니다.
답변은 “재판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하기 곤란하다”, “내가 봤을 때는 공소장 변경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취소했다”는 것. 그러면서 “압박을 받아 영향받은 것은 없다”며 “(1심 결과를 놓고) 2심에서 다시 다퉈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씨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고,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의원들은 김대인 총재 아들이 SAT 사건 피고인이란 사실을 알고 질의했을까? 꼬치꼬치 물어보고 법률소비자연맹과 의원들 답변을 교차 검증해본 결과, ‘몰랐다’는 게 취재진 판단입니다. 대부분 의원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혀 몰랐고 자신도 피해자니 보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답은 “그걸 어떻게 검증하느냐”라는 것. 한 의원은 “시간도 없고, 시스템도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국감 질의를 놓고 검증까지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질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은 결국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검증도 없이 수년에 걸쳐 십여 차례 이뤄진 청탁성·압박성 질의.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도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의원 전원에게 KBS 보도 관련 입장문을 배포했습니다. 관련 자료는 법률소비자연맹 홈페이지(http://www.goodlaw.org)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론권 보장을 위해 알립니다.
출처 [취재후] 이 작은 시민단체는 어떻게 국회의 ‘갑(甲)’이 됐나?
[KBS] 노윤정 기자, 하누리 기자 | 입력 : 2020.02.04 (14:26) | 수정 : 2020.02.04 (14:27)
〈국회감시 프로젝트 K〉가 ‘국회의원과 상’ 을 연속 보도한 이후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시상식 주최 단체 중 한 곳인 ‘법률소비자연맹’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했습니다. 기사에 단 댓글을 통해 이 단체의 실체를 알려달라는 요구가 이어져 후속 취재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난달 31일 방송된 ‘〈의원과 상 AS〉 국감 평가한다더니…수상한 청탁?’ 편입니다.
‘국회의원과 상’을 취재하는 내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단체가 국회에는 ‘갑(甲)’이나 다름없다는 것. ‘설마…’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법률소비자연맹이 주축이 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의 ‘국리민복상’ 시상식에서 취재진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 지난해 12월 27일 국리민복상 시상식에서 심재철 토착왜구당 원내대표에게 ‘훈계’하는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
법률소비자연맹이 ‘갑(甲)’이네, 국회가 ‘을(乙)’이네, 하는 이야기, 그저 엄살이 아닌 듯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의 ‘어제’와 ‘오늘’
먼저 이 단체 태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93년 법정 모니터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1998년 의정 감시를 하겠다며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을 구성해 국정감사 모니터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한 의원은 “의원과 기자 밖에 출입하지 않던 국감장에 시민단체가 들어온 것”이라면서 “초기에는 반향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이 단체는 ‘국감 백서’를 내고, 의원 평가를 해 상을 주기 시작합니다. 사실 객관적 평가가 쉽지 않은 게 의정 활동인데, ‘모니터단’ 이름으로 평가 결과를 발표하니 보도도 많이 됐습니다. 의원 실명을 거론하며 ‘출석률 꼴찌’라고 비판하거나 국감 우수 의원이라며 상을 주니,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못 한다’고 지목당하거나, 다들 받는 상을 나만 못 받으면 어쩌나,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또 다른 의원은 털어놨습니다.
▲ 국정감사NGO모니터단 활동 모습
이렇게 해서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잡음이 불거진 건 2011년. 백서를 강매한다거나 보좌진에게 ‘갑질’을 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여야 8개 정당 보좌진협의회가 연맹의 활동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회 환경의 변화로 입지도 점차 줄어듭니다. 국감이 인터넷에 생중계되고, 여러 단체가 평가에 나서면서 국감장에 앉아서 하는 모니터 활동의 의미가 축소된 겁니다. 결국, 2018년 법률소비자연맹 측은 의원들에게 ‘(다른 단체가 주는) 짝퉁 상을 받으면 수상자에서 배제하겠다’는 공문을 보내기까지 합니다. 이 단체가 지난 20여 년 걸어온 길입니다.
평가하고 청탁하고?…아슬아슬한 줄타기
‘갑질’ 차원 정도라면 문제 삼을 것 없습니다. 시민단체라고 해서 의원들에게 ‘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취재 과정에 드러난 문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의원 활동 관련 기사를 홈페이지, 블로그 등에 올려 언론사 저작권을 침해한 혐의로 국회의원 270명을 무더기 고발했다.’ (2014년 2월 언론 보도)
2014년부터 ‘저작권법’ 관련 전방위 활동에 나선 법률소비자연맹. 느닷없이 의원들을 고발하는가 하면 FTA 기준에 맞춰 ‘비친고죄(피해자 고소 없이 처벌 가능한 범죄)’로 개정된 저작권법을 다시 ‘친고죄(피해자 고소가 필요한 범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회에서 저작권법 개정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대외적 이유는 영상물 등을 무심코 내려받은 학생들이 합의금을 노린 ‘법파라치’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것.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된 이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률소비자연맹의 활동 이면에는 김대인 연맹 총재의 ‘가족사(事)’가 있었습니다.
김대인 총재의 아들 김 모 씨는 2013년 말, 검찰이 ‘SAT 문제유출’ 수사로 기소한 피고인 24명 중 한 명입니다. 미국 대입시험인 SAT 문제를 인터넷에서 팔아 2억여 원어치 수익을 챙겨 저작권법을 위반한 혐의입니다. 판매자 가운데 수익이 가장 많아 보도자료에 ‘브로커’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의원들을 고발까지 하면서 저작권법 개정 운동에 나선 건 이때부터입니다. 저작권법을 다시 친고죄로 바꾸면, SAT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 시작된 수사가 정당성을 잃게 될 테니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5년부터는 국감에서도 ‘SAT’가 등장합니다. 물론 법률소비자연맹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2017년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는 6차례에 걸쳐 ‘SAT 문제유출 사건’ 질의가 이뤄졌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4년간 9차례 질의했는데 2018년에는 검찰의 증거가 ‘가짜 서류’라는 법률소비자연맹 측 의견서를 인용하며 “기소가 잘못됐다면 공소를 취소하는 게 떳떳한 검찰”이라고 발언합니다. 윤상직 토착왜구당 의원은 2017년 국감에서 “(법률소비자연맹 측에서) SAT 사건 판사가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사퇴하라고 한다”고 질의합니다.
특정 사건 재판을 놓고 이렇게 노골적인 압박성 질의가 나오는 건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이상 이례적입니다. 최근 4년간 법사위 국감에서 나온 SAT 사건 질의는 18차례. 질의 의원은 7명(노철래·박주민·박지원·서영교·윤상직·이상민·정성호 - 가다나 순)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노철래 전 의원(2016년 구속)을 제외하고 6명은 모두 NGO모니터단으로부터 ‘국감 우수의원상’을 받았고, 특히 관련 질의를 한 해에는 어김없이 수상했습니다.
▲ SAT 사건 국감 질의를 한 의원들. 모두 NGO모니터단으로부터 우수의원상을 받았다.
눈에 띄는 재판 결과…나 홀로 ‘공소 기각’
의원들의 집요한 질의,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지난해 말 사법 농단 재판에서 공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문자메시지. ‘SAT 사건 관련해 사실조회 회신이 지연돼 회신 중. 검찰 측에 촉구 예정’이라는 내용입니다. 단순한 저작권법 위반 사건이 법원행정처가 진행 상황을 챙기는 ‘주요 사건’이 된 겁니다. 사법 농단 수사 담당 검사는 “국감 질의가 나오자 임종헌 전 차장이 재판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의원들의 국감 질의 내용은 재판부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김대인 총재 아들 변호인은 ‘이 사건이 국감에서도 지적당했다’는 취지로 변론 의견서에 속기록을 첨부해 제출했습니다. SAT 사건 담당 판사, 공판 검사들은 “작은 사건인데도 재판 때마다 방청석이 꽉 찼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사법감시배심원단’을 꾸려 매번 방청한 겁니다.
▲ 법률소비자연맹이 주축이 된 사법감시배심원단은 SAT 사건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관련 기사. 이 내용은 다시 국감에서 윤상직 한국당 의원의 질의로 등장했다.
온갖 등쌀 속에 진행된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피고인 24명 중 2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항소를 포기해 1심에서 형이 결정됐고, 일부는 대법원까지 가서 혐의를 다투고 형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김대인 총재의 아들 김 모 씨, 6년 동안 1심 판결이 지연되다가 지난해 8월 저작권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기소 자체가 잘못됐다는 건데, 법률소비자연맹이 재판 기간 내내 주장한 내용입니다.
김 씨 변호인이 공소 기각을 주장한 근거는 김 씨가 판매한 SAT 문제지가 정확히 언제, 무슨 문제지인지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 집요한 문제 제기에 검찰은 문제지 ‘코드’를 일일이 명시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재판부에서 허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2018년 재판부가 바뀐 후 공소장 변경 허가는 어째서인지 취소됐고 결국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 법률소비자연맹 총재의 아들은 SAT 사건 피고인 가운데 유일하게 1심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특정 사건 재판 결과를 논리적으로 문제 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판사마다 법적 판단은 다를 수 있고, 변호인이 변호를 잘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피고인들과 김 씨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따져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김 씨의 공소장 변경 허가를 취소한 판사에게 물어봤습니다.
답변은 “재판에 대해 구체적 언급은 하기 곤란하다”, “내가 봤을 때는 공소장 변경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취소했다”는 것. 그러면서 “압박을 받아 영향받은 것은 없다”며 “(1심 결과를 놓고) 2심에서 다시 다퉈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씨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고,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검증을 어떻게 해요?”…책임은 누구 몫?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의원들은 김대인 총재 아들이 SAT 사건 피고인이란 사실을 알고 질의했을까? 꼬치꼬치 물어보고 법률소비자연맹과 의원들 답변을 교차 검증해본 결과, ‘몰랐다’는 게 취재진 판단입니다. 대부분 의원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혀 몰랐고 자신도 피해자니 보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공개적 의정 활동이고 수년에 걸쳐 질의가 이뤄졌는데, 검증 정도는 해야 했던 것 아닌가요?”
돌아온 답은 “그걸 어떻게 검증하느냐”라는 것. 한 의원은 “시간도 없고, 시스템도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국감 질의를 놓고 검증까지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질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취재진은 결국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검증도 없이 수년에 걸쳐 십여 차례 이뤄진 청탁성·압박성 질의.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도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의원 전원에게 KBS 보도 관련 입장문을 배포했습니다. 관련 자료는 법률소비자연맹 홈페이지(http://www.goodlaw.org)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론권 보장을 위해 알립니다.
출처 [취재후] 이 작은 시민단체는 어떻게 국회의 ‘갑(甲)’이 됐나?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다 ‘최다 전과 후보자’ 오명 쓴 민중당 김동우 예비후보 (0) | 2020.02.04 |
---|---|
‘마스크 판매 제한’ 주장까지, 토착왜구당은 어떻게 혐오를 부추겼나 (0) | 2020.02.04 |
합의 없이 불가능한데 지리산 케이블카에 16억 원 ‘헛돈’ (0) | 2020.02.03 |
검찰, 부산 일본영사관 시위 대학생 기소…시민단체 ‘반발’ (0) | 2020.02.03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0) | 202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