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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울린 ‘뉴라이트 대부’ 김진홍 목사의 끝없는 토지분쟁

조선족 울린 ‘뉴라이트 대부’ 김진홍 목사의 끝없는 토지분쟁
빈민선교 대부에서 뉴라이트 대부로 변신한 것도 부족했나
[민중의소리] 권지연 평화나무 뉴스진실성검증센터장 | 발행 : 2020-02-16 16:01:05 | 수정 : 2020-02-16 16:01:05


▲ 지난 2011년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출범대회에서 김진홍 목사가 출범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눔’을 기치로 내걸고 빈민들의 곁을 지키던 목사가 있었다. 바로 자칭 ‘메시아 나라의 왕’, ‘성령의 본체’라며, 한국교회의 망신을 자처한 전광훈을 적극적으로 두둔하며 극우 행보를 이어가는 김진홍 목사(동두천 두레교회 원로)다.

지금은 ‘뉴라이트의 대부’로 소개되는 김 목사지만 젊은 시절 그는 많은 신앙인에게 큰 울림을 준 진보지식인이었다. 1971년 대학원 재학 당시 서울 청계천에 활빈교회를 설립할 정도로 높은 의식과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김 목사의 변절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교회를 탄압한 중국 정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존경을 한몸에 받던 목사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더 큰 문제는 그가 빈민선교의 대부에서 뉴라이트의 대부로 변신하는 동안 그가 하던 선교사업도 함께 방향성을 잃고, 부패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김 목사에 대한 고소장이 동두천경찰서에 접수됐다. 연변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이동춘 대표와 한국에서 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를 운영하던 김종봉 회장이 김진홍 목사를 사기 및 배임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선교목적으로 설립한다던 연변두레마을에선 무슨 일이?
김진홍 목사 도운 중국동포 투자금 40억 날리고 쫓겨날 처지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에는 약 120만 평에 달하는 연변두레마을(연변덕래과학농목유한회사)이 들어서 있다. 김진홍 목사가 1997년 240만 위안을 투자해 중국 정부로부터 50년간 임대한 토지다.

2014년 1월 7일자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기사에 따르면 연변두레마을은 두레공동체가 100만 달러를 출연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낸 30억 원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기사는 ‘북한 선교의 전초기지로 설립된’이라고 연변두레마을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선교를 목적으로 교인들이 십시일반 걷은 헌금으로 임대한 토지란 얘기다.

당시 외국인의 투자 소식을 중국 정부는 반겼다고 한다. 김진홍 목사는 연변과기대 동북아농업개발원 부원장을 지낸 한응수 목사를 책임자로 파견 보냈다. 2003년 1월 4일자 한겨레 “연변서 생태농업 펼치는 ‘두레마을’” 기사에선 당시 연변 두레마을에는 한 목사를 포함한 한국인 6명과 중국동포 30여 명, 한족 10여 명 등 40여 명이 무농약·무시비·무경운의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는 농촌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현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한 목사의 선교 방식은 금세 문제를 일으켰다. 탈북자를 수용하고, 선교를 펼치다 추방을 당한 것이다.

당시 김진홍 목사와 함께 활동했던 임진철 교수(중국 중앙민족대학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선교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길게 볼 필요가 있지요. 우선 현지에 안착하고 지역사회와 친해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러면 선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계속 물밑에서 세포조직을 만들고 그러다가 발각돼 추방당했습니다. 그곳에는 본래 농민들이 군데군데 많이 살다가 연변두레마을이 들어서면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당시 보상금을 적게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농민들이 농성하기 시작했어요”

무리한 선교를 펼치다 책임자로 파견한 목사가 추방당한 상황에서 강제 이주했던 농민들까지 찾아와 농성을 벌였으니 김진홍 목사에게 그 땅이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임 교수는 김진홍 목사의 부탁을 받고, 중국동포 출신 사업가인 이동춘 대표를 찾아가게 된다. 그는 당시 한국의 국회의원격인 전국인민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동춘 대표는 김진홍 목사가 한국에서 펼친 두레마을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임진철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생태산업 컨셉으로 두레마을을 개발하는 에코폴리스 사업계획서를 연길시 주장(도지사)에게 제출해 사업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강제 이주 농민들의 농성 문제도 해소됐다.

이동춘 대표의 덕을 단단히 본 김진홍 목사는 중국동포 지원을 명분으로 땅 120만 평 전부를 이 대표에게 맡기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깊은 산속에 있는 땅이어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김 목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이동춘 대표는 김진홍 목사로부터 30만 평을 임대받아 2004년 민들레마을(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을 만들게 된다. 2007년 8월 2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10명 조선족의 꿈, 13억 중국인보다 크다”에 따르면 당시 이곳에서 이동춘 대표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김진홍 목사로부터 땅을 임대받은 이동춘 대표는 김종봉 전 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 회장과 정 모 씨와 합작 회사를 꾸려 전통 된장 단지를 건설했다. 된장과 간장을 담그고 된장 술도 빚어 판매했다. 이동춘 대표와 사업자들이 15년간 이곳에 쏟은 투자금액은 약 40억 원(인민폐 2,300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동춘 대표, 또 이 대표와 함께 된장 단지를 꾸려온 사업자들은 모두 빈 몸으로 쫓겨날 처지가 됐다.

▲ 평화나무가 입수한 영상엔 김진홍 목사가 이동춘 대표와 제3의 인물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동춘 대표에게 생태산업 합작 개발을 위해 땅을 임대한 것이며, A 장로와 체결한 서류에 찍힌 서명은 위조된 것이라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영상 캡쳐


‘토사구팽’ 당한 중국동포, 소송에 나서기까지
토지 이중매매한 김진홍 목사 “나는 몰랐다”
이동춘 대표에게 화해하자더니, 반년도 안 가 다시 배신

개발사업을 차곡차곡 진행해나가던 중, 김진홍 목사와 이동춘 대표는 A 장로로부터 고소장을 받게 된다. 김진홍 목사에게서 땅을 임대받았다는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A 장로는 본인이 이동춘 대표보다 먼저 땅을 임대했다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결국, 중국법원은 A 장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땅 20만 평을 사용할 권리가 A 장로에게 있다고 인정해 준 것이다.

이동춘 대표는 “김진홍 목사가 나에게 땅을 맡아달라고 할 때는 이 전체를 관리하고 개발해 달라는 공동개발위원장이라는 위임장도 써주고, 기증서도 써 주었다”며 “그런데 내가 모르게 30만 평 기증한 것을 취하한다는 문서를 (A 장로에게) 써주고 공동개발 위원장도 엉뚱한 이유를 달아서 취소한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김진홍 목사를 믿었다고 한다. 그가 지난날 빈민선교에 헌신해 온 훌륭한 목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김 목사도 이 대표를 찾았다. 김 목사는 2014년 10월경 이 대표를 집으로 불러 “(A 씨에게 빼앗긴) 땅도 되찾고 다시 한번 잘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평화나무가 입수한 영상에는 당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상에는 김 목사가 이동춘 대표와 제3의 인물이 함께한 자리에서 “잘 지내자 이거지. 우리도 염치가 있지. 우리가 자네에게 와 달라고 해서 들어온 거 아니야. 그래놓고 서로 간에 과오가 있다 쳐도 이해하고 넘어갈 것을 나가 어쩌고 하는 것은 인간사가 아니지. 땅을 찾아야지. 나는 자네를 높이 평가해요”라며 “내가 뭘 해주면 되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또 본인이 이동춘 대표에게 생태산업 합작 개발을 위해 땅을 임대한 것이며, A 장로와 체결한 서류에 찍힌 서명은 위조된 것이라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는 장면도 들어있다. 당시 김진홍 목사가 서명한 서류는 중국영사관의 인증까지 받았다.

▲ 왼쪽은 김진홍 목사가 이동준 대표에게 써준 사실 확인서, 오른쪽은 김진홍 목사가 이동준 대표에게 준 위임장. ⓒ평화나무

이동춘 대표는 다시 한번 김진홍 목사를 믿고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그 이듬해 또 다른 인물인 B 목사에게 120만 평 전체를 임대해주었다. 이중매매도 부족해 삼중으로 매매를 한 것이다. C 목사는 이동춘 대표를 고소했고, 이동춘 대표는 C 목사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 대표는 약 40억 원을 투자해 이룬 사업장을 고스란히 털고 나가야 할 상황에 놓였다며 억울해하고 있다.

중국법원에서 패소한 이동춘 대표는 한국 법에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야 김진홍 목사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매번 고소를 당했던 입장이던 이 대표가 김진홍 목사를 고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동춘 대표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던 김종봉 회장도 김진홍 목사를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평화나무는 김진홍 목사와 B 목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찾아 각자의 주장과 목소리를 청취하며 사건의 내막을 좀 더 면밀하게 들어보았다.


땅의 새 소유주 B 목사 “소송비용도 내가 다 치렀고 땅은 내 소유”

우선 김진홍 목사에게서 새롭게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B 목사는 이동춘 대표가 사기꾼이라고 몰았다. 이동춘 대표가 김진홍 목사가 임대하지도 않은 땅까지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고 월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은 “김진홍 목사의 일을 봐주는 사람”이라면서도 김진홍 목사에게 정당한 값을 치르고 토지 사용권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도 대차대조 관계가 있듯이, 나와 김진홍 목사 사이에서도 내부적으로 대차대조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2046년까지 토지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7년 동안 소송전을 치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소송비용도 모두 내가 지불하고, 김진홍 목사가 돈을 대는 것도 아니”라며 “김진홍 목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김진홍 목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판결이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120만 평 땅에서 중국인과 조선족 등을 대상으로 교육센터를 건립해 e커머스교육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정부가 우리 편을 들어준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동춘 씨 측)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했다.


B 목사의 법률 대리인 “김진홍도 잘못했지만 한국인이라...”

B 목사는 김진홍 목사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했다. 중국 법이 그렇게 인정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B 목사의 법률 대리인인 최 모 변호사의 말은 조금 달랐다.

최 변호사는 “이동춘이 우리 권리를 침범해서 잘못했다고 판결이 나왔다”면서 “이동춘이 다른 사람과 합작했다는 것이 재판에서 무효라고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중국법상 땅은 국가의 소유로 국가가 임대하는 것 외 개인에게 기증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춘 대표는 합작 회사로 운영한 것이어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봤지만, 김진홍 목사와 C 목사는 이동춘 개인 이름으로 합작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그렇다면 이동춘 대표에게 땅을 쓰라고 합작 회사를 설립한 김진홍 목사의 잘못은 없을까?

최 변호사는 “중국 정부로부터 임대받은 땅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지 못한다. 김진홍 목사가 그렇게 한 것도 잘못”이라고 말했다. 단, “이동춘 대표는 중국 국적이고, 김진홍 목사는 중국 법을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는 점을 들었다.

결국, 김진홍 목사는 중국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망을 피해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중국 정부가 임대한 땅을 타인에게 다시 임대할 수 없다면, 김진홍 목사가 C 목사에게 땅을 새롭게 기증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또 최초로 땅을 기증받았던 A 장로는 어떻게 법적으로 승소할 수 있었을까. 또 중국법원이 A 장로의 땅으로 인정된 20만 평은 현재 누구 소유일까.


“김진홍 목사 선교는 하지 않으면서 선교 헌금만 요구했다”

평화나무는 최초로 땅을 임대받았다고 주장해 온 A 장로의 아내, C 권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C 권사는 당시 김진홍 목사와 이동춘 대표를 상대로 한 소송은 본인이 모두 진행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천불이 난다는 듯, 계속 언성을 높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C 권사는 김진홍 목사가 이중으로 땅을 기증해 이동춘 대표도 손해를 봤다고 했다. 또 소송에서 승소한 후, 토지 20만 평을 D 권사에게 넘겨준 후 손을 털었다고 했다. 결국 B 목사와 다툼은 D 권사의 몫이 된 것.

C 권사는 “김진홍 목사가 땅을 맡길 때는 전체적인 운영을 할 수 없으니 장로님이 들어와서 사업을 병행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왔다”며 “그런데 땅을 공짜로 받기는 싫어서 정당한 사례를 한 후 법적으로 인정이 가능한 서류를 취득하고 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서에는 김진홍 목사의 사인도 분명히 찍혀 있는데, 우리보고 나가라고 해서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 과거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연변 두레마을 관련 기사들. ⓒ신문캡쳐

이어 “당시 나는 일본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고, 식당 운영도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김진홍 목사의 제안으로 땅을 받아 성서적인 농업이라고 해서 자연 농업 방식으로 양계사업을 했다. 그곳에서 많은 지도자를 길렀고 투자한 금액만 6억이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진홍 목사는 왜 애초에 A 장로와 C 권사에게 임대했던 땅을 이동춘 대표에게 2중으로 임대했을까.

C 권사는 “(김진홍 목사가) 많은 사람의 선교헌금을 받아 땅을 유치해 놓고, 선교는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이용해 후원자들에게 돈만 요구하는 그런 입장이었다”라며 “나는 20만 평 동사장으로 실제로 일을 했다. 많은 선교지의 사람들을 자연 농업을 시키면서 고생을 했는데 김진홍의 목적은 두레로 들어와서 그것을 다 자기의 공으로 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두레로 들어가지 않자, 보복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북방선교 하겠다더니 토지 둘러싼 분쟁만 거듭

애초에 김진홍 목사는 토지 120만 평 전부를 이동춘 대표에게 맡기고 싶어 했을 만큼 이 대표를 신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이 대표가 눈엣가시가 된 것일까.

당시 김진홍 목사의 최측근 중에서도 이동춘 대표에게 땅을 임대한 후 김진홍 목사가 정치적 노선을 달리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뉴라이트 계열의 해군 장교 부부를 앉혔혀 놓고, 이동춘 대표와 사사건건 부딪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장 관리자로 온 부부가 된장 공장을 못 하도록 막아서면서 몸싸움까지 날 정도였다고 하니, 충돌은 꽤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진홍 목사의 대리인을 맡았던 임진철 교수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자, “북방선교를 기치로 내걸고 설립한 연변두레마을 이지만, 남과 북, 조선족이 힘을 합해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를 당시 뉴라이트 계열 책임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동춘 회장이 싫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김 목사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면서 사역마저 갈 길을 잃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지점이다.

임 교수는 “(그동안) 이동춘 회장이라고 해서 법정에 호소하고 언론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나. 내가 (김진홍 목사를 만나) 해결하겠다고 했고 끊임없이 해결하려고 했다”며 “(김진홍 목사를) 설득하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안 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양반(김진홍 목사)이 젊은 시절에 해왔던 성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허물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깨졌다”며 “함께 일했던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만 이제는 정상화를 위해 계약 당사자가 전부 나와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춘 대표와 함께 된장 사업을 벌이다 함께 소송전에 휘말리게 된 김종봉 회장은 “김진홍 목사가 경우 없이 처리했기 때문에 이 대표와 내가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됐다, 그곳에 투자한 시간과 돈도 아깝지만, 조선족이 한국인에게 사기 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여러 사람의 증언과 반론을 토대로 살펴볼 때, 김진홍 목사가 애초에 선교에는 뜻이 없었는지, 후에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성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거창하게 선교를 내세웠으나 땅을 갖고 여러 사람에게 줬다 빼앗기를 반복하며 임대 수익을 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무엇보다 김진홍 목사는 연변두레마을의 투자 회사인 두레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자리에서 2004년 2월 27일 물러난 것으로 확인된다. 김 목사가 연변두레마을 토지를 마음대로 임대할 권리가 있는지에도 물음표가 찍히는 지점이다.

평화나무는 김진홍 목사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다. “땅을 왜 여러 사람에게 임대한 것이냐”는 평화나무의 질의에 김 목사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이어 “그 사람은 조선족 동포인데 같이 일하자고 했더니 다른 데다 (땅을) 팔아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나는 말할 생각이 없다”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김 목사에게 재차 전화를 걸어보고 문자메시지도 남겨 보았으나, 답은 오지 않고 있다.

한편 김진홍 목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특허받은 도토리 된장 공장 건설을 위한 클라우드 펀딩을 시작한다”며 모금을 유도하거나,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이제 이동춘 대표와 사업가들은 한국 법의 정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으로 선교헌금을 바친 교인들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해야 할까.


출처  [평화나무 리포트] 조선족 울린 ‘뉴라이트 대부’ 김진홍 목사의 끝없는 토지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