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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자 해고됐다” 91년생 박지혜씨는 왜 소송에 나섰나

“임신하자 해고됐다” 91년생 박지혜씨는 왜 소송에 나섰나
[경향신문] 김원진 기자 | 입력 : 2020.04.19 10:07 | 수정 : 2020.04.19 16:27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휴대전화 액정이 번쩍였다. 18개월 된 아이를 막 재우던 참이었다. 화면에 ‘02-530’으로 시작하는 발신자 번호가 떴다. 어딘가 낯익은 번호였다. 급히 이어폰을 끼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저희 쪽으로 보내주신 탄원서는 반송했습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1시 23분, 서울중앙지검 소속 실무관에게서 온 전화였다. 자신을 해고한 대표를 꼭 처벌해달라고 검사한테 보낸 탄원서가 반송이라니,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실무관은 “약식기소를 해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법원에 다시 탄원서를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기소는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 절차다. 약식기소는 서면 심리로 공판 절차를 대신해달라며 재판을 청구할 때 쓰인다. 벌금 등 재산형을 구형한 사건에만 한정돼 약식기소를 할 수 있다.

박지혜씨(30·가명)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검찰이 기소됐다고 알린 중소기업 ㄱ사 대표 ㄴ씨의 혐의가 적시된 공소장을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ㄴ씨는 박씨가 출산 전 다녔던 직장 대표였다. 그는 임신한 뒤 ㄴ씨가 자신을 부당해고 했다고 주장하며 사측과 1년 반 가까이 분쟁을 겪고 있다.

박씨는 지난 3월 31일 오후 4시 30분, 공소장 복사본을 받았다. 총 세 장이었다. 공소장에는 근로기준법 위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 적혔다. 검찰이 ㄴ씨를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한 사실도 알게 됐다.

박씨는 집에 돌아와 모둠전·골뱅이무침을 주문했다. 밤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동생과 마주앉아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임신·출산에 이어 모유 수유까지 이어져 2년 넘게 입에 대지 않던 술이었다.

▲ 박지혜씨가 다녔던 중소기업 여행사가 2017년 10월 ‘정규직 채용’이라고 내건 채용공고(위). 박씨가 예전에 여행사 사장과 대화한 내용(아래). / 박지혜씨 제공


“너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는 1991년 7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어릴 적엔 태권도·피아노·컴퓨터·보습학원에 다녔다.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도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고교시절엔 역사를 좋아했다. 2학년 땐 교내 국사경시대회에 나가 금상도 받았다. 대학 진학도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생각했다.

수능을 보고 난 뒤 진로를 고민하다 여행에 마음이 이끌렸다. 전문대에 들어가 관광경영을 전공했다. 21세에 조기 취업해 정원 500명 규모의 크루즈선 승무원이 됐다.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면서 일주일을 꼬박 일본과 러시아를 오갔다. 한 달에 3주 일하고 1주 쉬는 패턴이었다. 한 달에 180만 원을 벌었다. 그는 “2011년에 월급 180만 원이면 또래들보다 넉넉히 번 거였다”고 했다.

크루즈선을 6개월 정도 타자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찾은 곳은 직원 세 명이 있는 작은 여행사였다. 항공권 발권 업무를 주로 맡았다. 2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사장은 상여도 챙겨줬고 6개월마다 임금도 올려줬다. 경력을 발판 삼아 대기업과 거래하던 여행사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도 올랐다. 매출의 80%가 대기업과 거래에서 나오는 회사였다. 그는 “큰 회사랑 거래하다 보니 일도 배울 게 참 많았다. 예전에 일하면서 배운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인연은 길지 않았다. 경쟁 관계에 있던 중소 여행사가 그가 다니던 여행사의 대기업 물량을 가져갔다.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한 대표는 그에게 퇴사를 권유했다. 박씨는 “그 회사는 원래 굴지의 대기업 항공권 발권을 담당했는데, 대기업에서 여행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바람에 물량을 빼앗겼다고 했다. 그 여파가 다니던 회사에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딱한 회사 사정을 고려해 퇴직금도 받지 않고 나왔다.

2017년 2월, 기존 중소기업 여행사가 만든 신설 법인에 다시 취업했다. 40대 중반의 남자 팀장이 “퇴근한 뒤에 치맥하자”며 카카오톡을 보냈다. 팀장은 일주일에 3~4번씩 단체 회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직장에선 가까이 다가와 어깨와 팔을 ‘터치’하는 건 예사였다. 참다못해 대표에게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한 증거 자료를 A4용지 한 장에 정리해 제출했다. 사장은 “신경썼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팀장은 “지혜씨도 저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회식하자고 할 때 곧잘 참석한 걸 두고 ‘관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팀장은 부인과 이혼한 뒤 재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2017년 5월이었다.

▲ 박지혜씨가 다녔던 중소기업 여행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강요했다는 영업비밀보호서약서 중 일부. ‘휴대폰 통제 및 검열에 동의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박지혜씨 제공


임신 뒤 찾아온 분쟁

뜻밖의 여유시간에 대학원 논문 준비를 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관광경영을 공부했다. ㄱ사에서 전화가 온 건 2017년 10월이었다. 경력직에 지원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ㄱ사는 8명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 여행사였다. 그는 “전화를 끊고 정규직 채용으로 직원을 모집한다는 구인 사이트 공고를 확인한 뒤 ㄱ사에 면접을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채용이 이뤄지고 한 달 뒤 근로계약서 작성은 했지만 사본을 교부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수습 기간으로 간주된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씩 출근해 일하면 자연스레 4대 보험 가입과 함께 정규직이 되는 줄만 알았다. 박씨는 “4대 보험도 3개월만 지나면 들어줄 거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대표가 정부지원금을 받아야 한다며 보험 등록도 차일피일 미뤘다”고 했다.

박씨는 2018년 4월 갑작스러운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4대 보험 가입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출산휴가 등을 보장받고 검진 비용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때부터 대표의 움직임이 이상했다”고 했다. 박씨는 “갑자기 대표가 이력서에 적어낸 경력을 다 증명하라고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까지 연락해 이력이 사실이냐고 확인을 했다”고 했다. 박씨가 제공한 카카오톡 내역을 보면 전 회사 대표가 “가지가지한다”고 말한 내용도 담겨 있다. ㄱ사 측에서 갑자기 박씨의 경력 확인을 하자 남긴 말이었다. 그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대표 ㄴ씨가) 경위서를 쓰라고 한 것도 수차례였다”고 했다.

ㄱ사에 다녔던 또 다른 직원 ㄷ씨도 ㄱ사에서 대표와 직원 사이에 분쟁이 많았다고 했다. ㄷ씨는 “대표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해 최소 3명 이상의 직원이 분쟁을 겪었다. 일부는 노동청에 신고한 뒤에야 합의가 됐고, 일부 직원은 퇴직금 액수를 깎아서 받았다”고 말했다. ㄱ사 대표 ㄴ씨의 주장은 최초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채용공고에 ‘정규직’ 표시 여부 등 주요 쟁점에서 박씨의 주장과 엇갈렸다. ㄴ씨는 오히려 악의적인 것은 박씨라고 반박했다. ㄴ씨는 “박씨가 저에게 낸 부당해고 무효 확인소송 민사소송가액이 5000만 원인데 돈 때문에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ㄴ씨는 “박씨가 본 채용공고에는 ‘정규직’이라는 표시가 없고, 애초에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로 구두 합의가 됐었다. 입사 직후 근로계약서는 애초에 합의 하에 쓰지 않은 것이 맞고 이는 저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갑자기 임신 사실을 알린 뒤에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박씨가 직원들과 저 사이에서 이간질도 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악의적인 주장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영세한 기업을 운영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채용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다른 직원의 퇴직금 문제도 다 해결된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판정문을 보면 박씨가 계약기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에 합의했다고 본 부분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부당해고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계약 종료임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9년 6월 12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에 올린 ‘임신을 이유로 해고위기에 처했어요!’ 카드뉴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갈무리


지노위는 “부당해고 아냐”

박씨가 2019년 1월 산후조리를 한 뒤 찾아간 곳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었다. ㄱ사 측이 그에게 ‘계약 종료’를 알린 뒤였다. 배정된 근로감독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임신한 뒤 회사 대표에게 부당 대우를 받았고, 부당해고로도 이어졌다며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근로감독관은 박씨에게 “부당해고는 일단 노동위원회에서 판단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구제는 노동위원회에 진정하라고 소개한다.

지노위나 중앙노동위원회는 하루 동안 심문을 거친 뒤 바로 판정을 한다. 노동자의 빠른 권리 구제를 위한 조치다. 노동위는 준사법기관으로 행정심판을 내리는 기구다.

지노위는 2019년 3월 ㄱ사 대표 ㄴ씨의 손을 들어줬다.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정이었다. 지노위가 핵심적으로 판단한 부분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이었다. 박씨가 ㄴ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 2018년 4~5월, 두 사람은 근로계약서를 두 차례 작성했다. 처음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박씨는 “대표가 2018년 표준근로계약서로 다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근로계약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바뀌었다. 계약기간이 명시됐고, 기타조항도 추가됐다. 두 번째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10월 31일까지’로 적혔다. ㄱ사 대표 ㄴ씨는 “박씨도 당연히 계약이 종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당해고라는 건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했다.

박씨는 두 번째 계약서를 쓸 때 ‘계약기간’으로 명시된 대목이 찜찜했다. 그는 “계약서를 고쳐달라고 했더니 출산 예정일인 2018년 10월 27일에 맞춘 기간일 뿐, 크게 의미가 없으니까 서명을 하라고 했다”며 “그래도 내키지 않아서 기타조항을 넣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기타조항에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계약기간 이내에 출산휴가, 육아휴직 신청 시 신청일로부터 정상적으로 휴직기간에 들어간다’고 쓰여 있다.

박씨는 지노위 공익위원들이 근로계약 기간만 따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전후 사정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면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근로계약서를 한 번 더 쓰고 특별조항을 넣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계약기간을 규정한 근로계약서가 위법하게 작성됐는지 여부를 노동위에서 중점적으로 따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노동위는 일주일 전쯤 공익위원들이 자료를 받고 하루에 심문과 판단을 마친다. 준사법기관이라는 한계도 있다. 합의된 근로계약서 효력을 무시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IFC몰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임산부의 날’ 행사에서 시민이 쓴 쪽지들이 나무에 걸려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결론

근로감독관은 올 초 박씨의 임신에 따른 부당해고 진정을 내사 종결했다. 지노위가 내린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단이 주된 근거였다. 검찰에는 ㄱ사 측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만 인정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상황이 바뀐 건 사건이 검찰 단계에 접어든 뒤다. 검찰은 박씨에게 직접 “진정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혐의가 입증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박씨 측 변호인은 바로 의견서를 제출했고, 검찰은 의견서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박씨와 ㄱ사 측의 대질조사도 진행했다. 검찰은 박씨의 임신이 해고의 단초가 됐다고 봤다. 검찰은 지난 2월 28일 임신한 박씨를 해고한 혐의로 ㄱ사 대표 ㄴ씨를 약식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ㄴ씨는 박씨에게 즉시 해고할 뜻을 보임으로써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했다”, ”박씨가 ㄴ씨의 해고할 듯한 태도에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고의사표시를 철회해 박씨에게 진정을 철회하게 했다”, “ㄴ씨는 2018년 10월 31일자로 박씨와 근로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함으로써 박씨를 해고했다”고 나와 있다.

검찰 관계자는 “노동청에서 올라온 서류만 본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제출했던 진정내용까지 들여다봐 기소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ㄱ사 대표 ㄴ씨는 “조사 과정에서 담당 검사가 바뀌었는데 제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기소됐다. 변호인과 저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다. 약식기소가 됐지만 정식 재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여성 경력단절의 가장 큰 원인이다. 2019년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를 보면 첫째 자녀를 임신한 취업 여성의 50.3%가 둘째 자녀를 임신하기 전에 하던 일을 그만뒀다. 공공기관보다는 규모가 작은 개인 기업일수록 여성이 임신한 뒤 일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았다. 박씨처럼 임신한 뒤 사측과 분쟁을 겪더라도 문제제기에 나서지 못한 여성들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박씨는 2018년 출산 직후 이혼한 남편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소송도 진행 중이다. 그의 전 남편은 박씨에게 아직 양육비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 ㄱ사 측과는 민사뿐 아니라 정식 재판에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다른 사람 좋자고 하는 소송은 아니다. 그런데 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여성이 살기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미미하더라도 작은 판례라도 하나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해고당하며 알게 된 법의 ‘맹점’

박지혜씨가 중소기업 여행사에 다니며 겪은 부조리는 해고만이 아니었다. 박씨는 “일하는 직원을 보호한다는 법에 허점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박씨가 꼽은 대표 사례는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이다. 그는 임신한 뒤에도 연차를 내고 산부인과에 다녀야 했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의2는 “사용자는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모자보건법 제10조에 따른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 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루를 다 쉬는 연차 개념이 아니다. 아이를 가진 여성 노동자는 사용자와 협의해 보통 반나절가량 검진을 받을 수 있다.

2008년 3월 새로 생긴 규정이다. 사용자는 임신한 노동자가 건강진단을 받는다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 임산부 정기건강진단 실시기준은 모자보건법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임신 28주까지는 4주마다 1회, 임신 29주에서 36주차 사이는 2주마다 1회씩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임신 37주 이후에는 1주마다 1회 정기건강진단을 청구할 수 있다.

임산부와 태아를 보호하겠다는 법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한계도 뚜렷하다. 상시적으로 5인 이상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임신한 노동자만 정기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지키지 않아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됐다. 별도 과태료 부과 규정도 없다. 박씨는 “검찰조사 때,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연차를 썼느냐고 질문받았다”며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다고 설명을 듣긴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채용공고가 과장돼 있더라도 제재가 어려운 현실도 짚었다. 박씨가 갈무리한 구인 사이트 채용공고를 보면, 그가 지원한 중소기업은 2017년 10월 ‘정규직’으로 채용형태를 표시했다. 박씨는 채용공고에서 사내 복지도 과장돼 있었다고 했다. 박씨가 갈무리한 구인 사이트 채용공고에는 ‘야근수당 지급’, ‘점심식사 제공’ 등이 명시돼 있다.

박씨는 “대표는 채용 이후에는 계약직 내지는 프리랜서로 채용한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며 “일정 금액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야근비가 지급되지 않았다. 식대도 전액이 아니라 3분의 1 정도만 받았다”고 했다.

허위 채용공고를 제재하는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제재 조항은 없지만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에는 별도 조항이 있다. 채용절차법 제4조 ‘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에는 “구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거짓 채용공고를 하면 5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 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2014년 도입됐다.

문제는 법의 실효성이다. 노동자가 직접 신고를 해야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서는데,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하는 구직자가 많지 않다. 법 시행 이후 처벌받은 사업장도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행된 벌금 수준도 200만~3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채용절차법은 30명 이상이 상시 근무하는 사업장의 채용절차에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박씨가 근무했던 소규모 중소기업은 채용절차법의 제재에서도 비켜나 있다.


출처  “임신하자 해고됐다” 91년생 박지혜씨는 왜 소송에 나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