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죽음의 공장’서 또···만삭 아내 둔 38살 가장 죽었다

‘죽음의 공장’서 또···만삭 아내 둔 38살 가장 죽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매해 돌연사···‘대책은 無’
[경향신문] 사설 | 입력 : 2015-12-27 21:10:33 | 수정 : 2015-12-27 21:19:01

▲ 한국타이어 누리집 갈무리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38살 노동자 박모씨가 직업성 질환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숨진 지 열흘이 지났지만 정부도 사측도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4년간 타이어 생산라인에서 일한 박씨는 혈액암 판정을 받은 지 두달 만인 지난 16일 미처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그에게는 출산을 한달 정도 앞둔 만삭의 부인이 있었다.

평소 건강했던 박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한국타이어는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한국타이어는 2007년 한해에만 15명의 노동자가 각종 사고와 질환으로 사망한 바 있다.

2008년 국회 법사위원회에서는 1996~2007년 사망한 노동자가 93명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온 바 있다.

한국타이어는 2008년 이후에도 해마다 1~2명씩 박씨와 같은 원인불명의 돌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총 1,394건의 위반사항을 지적했고 한국타이어는 500억원을 투입해 작업공정을 개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망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박씨의 죽음은 산업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유해물질 취급 노동자들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험공정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화학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물질과 그 구성성분이 뭔지 모른 채 무방비로 근무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물질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기업이 ‘영업비밀’로 분류해 공개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한국타이어도 문제가 된 유기용제를 다른 제품으로 바꿨다고 할 뿐 여전히 성분 자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해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산재는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박씨의 경우 고무 원료에 압력과 열을 가하는 성형공정에 근무하면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 노출된 것이 사망원인으로 추정되지만 한국타이어는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부의 면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타이어는 이미 지난 10월 150여건의 산재 은폐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전·충북지역 3개 시민단체는 지난 26일 책임을 지는 이도, 묻는 이도 없는 이 상황을 ‘야만적 사태’로 규정했다.

노동부는 ‘노동개혁’을 말하기에 앞서 이 야만의 시대부터 끝내야 한다.


출처  [사설] 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에서 38살 노동자 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