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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은 산업재해인가, 아닌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은 산업재해인가, 아닌가
[민중의소리] 임자운 변호사(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 발행 : 2016-09-07 07:09:46 | 수정 : 2016-09-07 07:09:46


반도체 노동자 열 네 명의 백혈병, 림프종, 유방암, 뇌종양, 난소암, 폐암 등은 모두 산업재해다.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단이 그러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또 다른 반도체 노동자 세 명의 백혈병, 림프종은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심지어 같은 공장(삼성전자 기흥)에서 발생한 같은 질병(백혈병)에 대해 누구는 산재인정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은 “개별적 심리”를 강조했다. “담당 공정과 업무 내용에 따라 노출된 유해물질과 그 노출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문제의 본질을 피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6월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다목적홀에서 삼성병원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자료 제출 거부하는 삼성, 산재 밝히기 소극적인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이유로 산재 보상을 받으려면, ‘업무환경의 유해성’부터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업무환경에 관한 자료는 회사가 쥐고 있고, 업무환경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근로복지공단에게 있다. 산재 인정을 꺼리는 회사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기업의 ‘산재은폐’ 보다는 노동자의 ‘부정수급’에 더 관심이 많은 근로복지공단은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건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졌다. 삼성은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의 자료제출 요청을 온갖 이유를 들어 거부해 왔다. “1년이 지난 자료는 모두 폐기 한다”는 누구도 믿기 어려운 답변을 버젓이 했고, “근로자에 대한 보호구 지급 현황도 영업비밀”이라는 막장 답변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사건과 관련이 없는 자료는 제출하지 않겠다” 했다. 사실상 제출하고 싶은 자료만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회사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조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 측이 지목하는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조사를 종결하기도 했다. 회사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노동자 측의 조사 참여를 거부하는가 하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직업병 판정을 삼성 병원 소속 의사에게 맡기는 일도 있었다.

그러한 사정들로 인해 ‘업무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입증 곤란’의 상황이 빚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증 곤란의 상황은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결국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산업재해가 되거나 되지 못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판결은 이렇게 답했다.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은 근로자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참작해야 한다.” ‘난소암’에 대한 산재인정 판결문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 산재인정을 받은 ‘폐암’ 사건에서는 사측이 노골적으로 조사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조사를 맡은 직업성 폐질환 연구소는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근로자들의 업무특성상) 높은 농도의 비소에 노출될 수 있었다고 판단되는데, (사측의 조사 거부로 인해) 작업환경평가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당수준의 비소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이번 대법원 판결문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원고가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되었고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노출 또는 과로의 정도가 질병을 유발할 정도라고 보기 어려우며, 그 밖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벤젠․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정도를 알 수 없게 된 사정, 다른 유해물질 노출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

▲ 삼성전자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고(故) 황유미씨 추모주간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회원들이 수원시 팔달구 삼성전자 중앙문부터 수원역까지 방진복을 입은 채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고(故)황유미씨 사진을 들고 행진 중인 아버지 황상기씨. ⓒ윤재현 인턴기자



삼성 산재 입증 곤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의 잘못으로 빚어진 ‘입증 곤란’의 상황이 노동자 측에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해석되었다. 어느 쪽이 옳은가. 그 판단에 앞서 두 가지만은 분명히 하자.

하나, 산재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토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결국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둘째,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이 산업재해인가 아닌가를 묻는 이유는 삼성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도 그 백혈병의 과학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노동자를 산재보험제도로써 보호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고, 이는 곧 질병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치료비ㆍ생계비 보장의 문제일 뿐이다.

이 둘을 강조하며 다시 묻자.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은 산업재해인가 아닌가.


출처  [기고]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은 산업재해인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