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검이 아니라 처벌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검이 아니라 처벌
[민중의소리]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발행 : 2016-09-29 11:23:05 | 수정 : 2016-09-29 11:23:05


▲ 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남기(69)씨의 빈소를 찾은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지난해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직사로 살수한 물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님이 9월 25일 돌아가셨다.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가 317일간 사경을 헤매는 동안 대통령은 물론 경찰책임자까지 사과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래서 원통하다. 그런데 이 원통한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경찰과 검찰은 또 비수를 꽂는다.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는데도 부검을 하겠단다.

백남기 청문회에 참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태도와 흡사하다. 그는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하게 한 후에,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확정된 다음에 답변을 드려야 한다”고 했다. 대로변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답게 당당했다. 정말 강신명 전 청장의 말대로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모르는가.

2014년 한 해 동안 사용한 물대포 양의 4배에 달하는 20만 톤을 단 하루에 다 쏟아 부었다. 살수 규정에 맞지 않게 사람에게 직사했고 심지어 쓰러진 뒤에도 물대포를 계속 쏘아대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온 국민이 봤으며 그를 수개월간 진료한 진료기록도 있다. 더 이상 규명해야 할 사인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어야 했다.

부검의 의도는 분명하다. 백남기 님의 사인을 바꿔 경찰을 비롯한 정부의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다. 국가폭력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때맞춰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을 보수단체는 “부검으로 진실을 인양하라”고 했고 법원은 검경의 부검 영장신청을 받아들였다. 마치 밝힐 ‘사인의 진실’이 있는 냥 검경의 요청을 수용해서는 안 됐다.

법원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부검을 진행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부검이 필요 없다는 전문가들의 소견과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에게 시신을 넘길 수 없다는 유족의 의견을 무시한 결정이다. 따라서 부검 결정 자체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일방적으로 경찰의 입장만을 수용했으므로 이미 부검으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도달할 수 없다.

이는 1991년 안기부에 끌려가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박창수 위원장의 시신을 탈취해 강제로 부검했던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렇다. 당시 경찰은 부검 후 단순추락사라고 발표하지 않았던가.

▲ 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남기(69)씨의 빈소 앞에서 부검영장 재신청 관련 유가족과 의료인 법조인 기자회견을 진행. 故 백남기 농민 딸 백도라지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부검으로 밝힐 진실이 아니라 처벌로 밝힐 진실

국제사회에서도 ‘진실에 대한 권리’는 피해자와 피해가족의 권리로 천명됐다. 피해자는 집단일수도 있다고 했다. 실종자의 운명과 행방을 알권리로부터 시작한 진실에 대한 권리는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을 근절해야하는 국가의 의무와 밀접히 연관된다. 그래서 ‘불처벌 방지 행동을 통한 인권의 보호와 증진 원칙(E/CN.4/2005/102/Add.1)’에 진실에 대한 권리가 포함된 것이다.

이 권리는 심각한 ‘인권유린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심각한 침해와 관련된 원인과 조건,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한 환경과 원인, 침해가 벌어진 환경’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백남기 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사인 규명이 아니다. 온 국민이 백남기 님이 엄청난 수압의 살수를 맞고 쓰러진 영상을 봤고 뇌진탕으로 수술하고 진료 받은 사실로 사인은 이미 명명백백하다.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은 경찰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를 갑호 비상령까지 내놓으면서까지 막은 국가폭력의 구조다. 생명권까지 침해하도록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는 막강한 경찰의 자의적 행정권, IS에 빗대며 시위하는 국민을 비난한 박근혜의 가이드라인이 조성한 국가폭력의 환경을 조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집회시위를 권리가 아닌 범죄로 모는 법과 제도와 관행’을 점검하며 이를 시정하는 일이 진실규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백남기 님처럼 누군가 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진실규명이란 구조적 폭력의 실체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지, 사인을 밝히겠다며 망자의 몸을 훼손하고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9월 5일 대법원 양형위에서 ‘복면 시위에 대한 양형기준안을 높이려는 것’은 진실규명과 대치된다. 2003년 헌법재판소가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다고 한 바 있고, 2009년 국가인권위가 복면금지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복면 시위는 못하게 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주문만을 받아들여 구조적 폭력을 강화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며칠 전 부산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부검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를 폴리스라인을 넘었다며 경찰이 강제연행했던 일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백남기 님이 사망하자 조의를 표하기보다는 분향소 설치 차단하고 특히 경찰관서 주변에 분향소가 설치되지 않도록 엄정 대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의 구조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경찰 폭력의 강화는 생존을 강탈당한 이들의 저항권을 누르는 일이기에 다른 국가폭력을 방치하게 만든다.


지금은 행동하는 애도의 시간

진실에 대한 권리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권리이다. 과거의 동료만이 아니라 미래의 동료와 이웃들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싸워야’ 한다. 서울대병원에 조문하는 이들이 줄지 않고 있는 이유다.

많은 시민들이 가슴을 쓸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도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가 당신의 죽음을 잊지 않겠노라며, 책임자를 처벌하겠노라며 매일 매일 모이고 있다.

분노하는 애도로, 행동하는 애도로 국가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세월호에 수백 명을 수장시킨 정권, 서울 한복판에서 경찰력으로 사람을 죽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

이제 거리에 나와 무력했던 시간을 걷어내자.

▲ 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남기(69)씨의 빈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백민주화 씨가 눈물을 흘리며 발언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출처  [명숙 칼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검이 아니라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