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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톤 쇳덩어리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를 덮친 이유

18톤 쇳덩어리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를 덮친 이유
‘작업 전 크레인으로 인양’ 미준수…표준작업순서 무시한 채 작업 지시
[민중의소리] 조한무 기자 | 발행 : 2019-10-22 10:21:15 | 수정 : 2019-10-22 10:21:15


▲ 2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이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최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는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작업순서가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중공업과 하청사는 사고 위험성을 사전에 알고 작업 전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표준작업을 마련했지만 자신들이 마련한 규정을 무시한 채 작업을 지시했다.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지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산업재해는 작업 안전성 확보를 위한 표준작업을 어기면서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18톤 쇳덩이 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쇳덩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작업 시작 전 크레인에 매달아야 한다. 그러나 하청사는 크레인에 매달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고 현대중공업은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사고는 지난달 20일 오전 발생했다. 해양 패널 공장에서 작업하던 박모(61) 씨가 가스 저장 탱크에 씌워 둔 캡에 깔려 사망했다. 고인은 기다란 원통 모양 탱크의 압력 시험을 위해 탱크 끝부분에 임시로 씌워 둔 캡을 제거하던 중이었다. 캡이 갑자기 아래로 꺾이면서 하부에서 작업하던 고인을 덮친 것이다. 고인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가스 저장 탱크 제작 프로젝트에 투입된 하청사 원양 소속이었다.

사측은 이러한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예방책도 마련해놓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배포한 양식에 맞춰 원양이 작성한 표준작업지도서의 작업수순을 보면 테스트 캡 위쪽을 크레인에 연결한 상태에서 캡을 제거하게 돼 있다. 캡 무게가 18톤에 이르는 만큼 이번 사고와 같이 예기치 않게 캡과 본체가 분리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레인이 캡을 지지하고 있으면 캡이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도 크레인에 매달리게 돼 노동자가 깔리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 현대중공업 하청사 원양이 작성한 표준작업지도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노조 “18톤 임시 마개, 반복 재활용으로 헐거워졌을 가능성…안전관리 시스템 붕괴”

문제는 그간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정유사 당고테로부터 수주받은 탱크는 총 15개로, 압력 시험은 3개의 테스트 캡을 재활용해 진행됐다. 이번 사고는 마지막인 15번째 탱크에서 발생했다. 노조는 이전의 탱크에서 테스트 캡을 제거할 때도 마무리 단계에서 뒤늦게 크레인을 걸었다고 설명한다. 표준작업지도서는 제거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크레인에 걸어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크레인에 걸지 않은 채 작업하다가 접합부를 거의 다 절단하고 나서야 크레인을 걸었다는 얘기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앞서 14개의 탱크 캡 제거 작업을 할 때도 하청 노동자는 이번과 똑같은 상태로 일했다”며 “고인이 아니라 다른 탱크의 누군가가 사망자가 됐을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크레인에 걸기 전까지 본체에 붙어있던 테스트 캡이 왜 이번에는 아래로 갑자기 고꾸라진 걸까. 테스트 캡은 말 그대로 압력 시험을 위해 임시로 본체에 끼웠다가 떼어내는 마개다. 애초에 설계될 때부터 본체 둘레보다 조금 크게 제작돼 캡과 본체가 130mm 겹치게 돼 있다. 앞선 탱크에서 제거할 때는 캡과 본체 간 용접된 부분을 파내도 빡빡하게 끼워져 있어 공구로 밀어내야 했다. 그러나 탱크의 압력 시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캡을 떼었다 끼웠다 하다 보면 마지막 탱크에서는 캡이 헐거워질 수 있다. 노조는 테스트 캡에 변형이 생기면서 캡이 본체에 붙어있지 않고 아래로 꺾였다고 보고 있다. 표준작업지도서에 캡 제거 전 크레인 인양이 명시된 이유도 캡 변형에 따른 사고 등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일 터다.

사고가 발생한 15번째 탱크뿐 아니라 앞선 탱크에서도 지속해서 테스트 캡이 크레인에 걸리지 않은 채 제거 작업이 이뤄진 건 현대중공업과 원양이 안전관리에 손 놓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해당 사건의 담당 근로감독관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원양 측은 초기 조사 당시, ‘캡 제거 마무리 단계에서 크레인으로 인양해도 구조상 문제가 없다고 봐서 작업 전 크레인 인양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전에 사고가 안 나서 계속 규정을 어겼다는 것인데 사측의 안일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원양이 표준작업지도서를 준수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하청사의 위험작업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관리자는 사고 당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현행법은 하청업체가 맡은 작업이더라도 원청이 산재 예방조치를 하고 현장을 점검하는 등 총괄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 측은 지난달 26일 현대중공업과 원양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원양은 직원 35명 수준의 소규모 업체로 10월 말 부로 폐업공고를 낸 상태다. 원양 관계자는 “회사 정리로 정신이 없다”며 사고 관련 언급을 꺼렸다.

현대중공업 측은 “사고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경찰과 노동청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얘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현대중공업(자료사진) ⓒ출처 : 현대중공업


출처  18톤 쇳덩어리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를 덮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