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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외교부 당국자’ 인용 보도 이대로 좋은가

‘전직 외교부 당국자’ 인용 보도 이대로 좋은가
[기자수첩] ‘당시 협상 사정에 밝은 전직 외교부 당국자’ 발언…신뢰할 수 있나
[고발뉴스닷컴]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 승인 : 2020.05.13 16:00:22 | 수정 : 2020.05.13 16:41:40


<법적 책임 명시 않아도 된다더니… 윤미향 합의 당일 돌변>

오늘(13일) 국민일보 5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온라인에선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 밝혀’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다수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를 등장시키면서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가 갑자기 180도 태도를 바꿔 외교부 당국자들이 당혹감을 느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국민일보 홈페이지 캡처>


‘전직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 …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인가

윤미향 대표가 “당시 협상 과정에서 외교부 당국자를 여러 차례 접촉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합의 발표 직전 내용을 설명 듣고 긍정적 반응을 표시”했으나 “합의 당일인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가 ‘조직적 범죄’였으며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점이 문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등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수용을 전면 거부했다”는 겁니다.

국민일보가 전한 ‘익명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 발언은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정의기억연대 및 윤미향 당선자 ‘공격’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이들은 윤미향 당선자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외교부로부터 듣고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합의가 무산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12일) 한겨레 등이 보도하면서 알려진 내용이지만 당시 외교부의 ‘검증 태스크포스(TF) 보고서’를 보면, 박근혜 정부 외교부는 ‘피해자 단체’와 접촉은 했지만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에서 일본 비판 자제’ 등 핵심 내용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접촉’한 것과 ‘핵심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보수언론들은 ‘접촉=모든 설명 다했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심각한 논리 왜곡이자 비약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일보를 비롯한 일부 기성 언론에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익명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는 박근혜 정부 때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입니다.

당시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에 협상 실무자 혹은 당사자로서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는 못할망정 갑자기(!) 최근 언론에 등장해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를 공격하는 이유 –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한 부분이죠.

▲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 회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책임있는 당사자들의 정의기억연대 공격 … 정당한가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고 근거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실명을 밝히면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전직 공직자’의 자세 아닌가요. 자신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도 않고 언론에 ‘익명’으로 등장하면서 ‘이런 저런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한겨레가 어제(12일) 사설 <‘윤미향 논란’ 빌미로 ‘위안부 인권 운동’ 흔들지 말아야>에서 지적했듯이 “자신들의 과거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 측에선 ‘익명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들’의 주장과 전언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기성 언론은 계속 ‘익명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를 보도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책임 회피를 위한 일방적 주장인지, 그것도 아니면 대립각을 세워왔던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인지 등에 대해선 크로스 체크를 통해 검증해야 할 사안인데 많은 언론이 이들의 주장을 그냥 전달하기 바쁩니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의 ‘반박과 해명’에 대해선 제대로 반영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전직 외교부 당국자’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선 왜 이리 ‘무게중심’을 두는 걸까요. 윤 당선자 입장을 일부 반영한 언론도 있지만 ‘공방 프레임’을 바탕으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익명의 전직 외교부 당국자 발언에 결과적으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 2015년 12월 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왼쪽) 외무상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전직 외교부 당국자들’이 최근 언론에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 제목만 몇 개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전직 고위 당국자 “위안부 합의 내용, 윤미향 알고 있었다”> (5월 11일 조선일보)
<“할머니들 만나지 말고 나한테만 얘기하라”…윤미향, 당시 외교부에 요구> (5월 11일 매일경제)
<前 외교부 간부 “윤미향, 위안부 합의 사전설명 듣고 ‘괜찮다’ 반응”… 윤미향 “들은적 없다”> (5월 12일 동아일보)
<윤미향ㆍ정의연 vs 박근혜 외교부… ‘2015년 위안부 합의’ 진실 공방> (5월 12일 한국일보)


참고로 현재 외교부는 2017년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 보고서를 근거로, 윤미향 당선인의 입장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여전히 ‘당시 협상 사정에 밝은 전직 외교부 당국자’를 등장시키며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기자와 데스크들에게 묻습니다. 검증은 없고 일방적 전달만 있는 이런 기사 – 대체 언제까지 계속 내보낼 건가요?


출처  ‘전직 외교부 당국자’ 인용 보도 이대로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