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현장]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
11.03.31 18:52ㅣ최종 업데이트 11.03.31 20:05
"내 자식 살려내. 이 개XX들아. 내가 우리 아들이 삼성전자 들어갔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우리 주현이 살려내라고."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25년의 짧은 생을 살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현씨의 어머니에게는 악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 앞에 얼굴을 가린 30여 명의 건장한 경비요원들은 침묵을 지킨 채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있었다. 이따금씩 경찰들이 왔고, 삼성전자 직원들은 유가족들 옆을 무심하게 지나갔다. 지나가는 어떤 이들도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없었다.
"약품 연기에 두통, 생리불순, 하혈"... 스물셋 소녀의 슬픈 죽음
'46명의 슬픈 죽음'은 천안함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46명의 노동자들은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었다. 사망한 노동자들 중에는 스물셋의 어린 소녀도 있었고, 한 가정의 가장도 있었고, 어머니의 효심지극한 아들도 있었다. 어느 하나 가정에서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봄기운이 만연한 31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주최로 열린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제 기자회견'에는 봄의 화창함 대신 슬픔이 감돌았다.
고 박지연(23)씨는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화학약품과 X선을 이용한 반도체 검사일을 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지난 2010년 3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당신은 아픔만을 남기고 스물셋 어린 삶을 고통스럽게 마감했습니다. 고 황유미, 고 황민웅, 고 이수경, 고 김경미의 죽음에 이어 당신은 9번째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무려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렵기만 합니다. 더 이상 죽이지 않기 위해 삼성을 바꾸어내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산 자들이 더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고 박지연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만 120명을 넘었다. 이중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백혈병과 뇌종양 등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 또 지난 1월 11일에는 삼성전자 천안LCD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한 고 김주현(26)씨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
고 박지연씨의 부모님을 대신해 발언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이 젊은 나이에 왜 죽었겠냐"며 "삼성전자는 인체에 유해한 반도체 화학물질들을 직원들에게 교육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생산 물량이 많은 날에는 일이 많아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 하는 일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삼성공장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 박지연씨는 2009년 5월 15일 천안 근로복지공단 자문의협의회에서 "납에 제품을 담글 때 나오는 하얀 연기가 코로 바로 흡입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고,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어 물로 씻어도 약품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생리불순은 물론 하혈을 해 방진복에 피가 묻은 적도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A+ 학점을 받던 스물여섯 공학도 청년의 죽음
이날 '고 박지연 1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1월 11일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26)씨의 죽음도 추모했다. 인하공전 디지털전자과를 A+ 학점을 받으며 다녔다는 고 김주현씨의 시신은 현재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80일째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유가족은 장례를 미룬 채 삼성전자에 고 김주현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김씨는 삼성전자 천안LCD공장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다. 김씨는 일을 시작하면서 각종 피부질환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지난 1월 11일 삼성전자 기숙사 13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유가족과 반올림은 김씨의 자살을 삼성이 사실상 방치했다고 판단해 노동부와 경찰의 진상조사를 촉구해왔다.
유가족이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CCTV 원본화면에 김씨가 오전 4시 22분부터 오전 6시 44분 사이 4차례 투신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관리직원이 자살시도를 하는 김씨를 기숙사 방으로 데려다 놓은 뒤 아무 조치 없이 바로 방을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전 6시 47분경 네 번째 자살시도 끝에 밖으로 몸을 던졌다.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인 김명복씨는 "우리 가족들 모두 비통한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며 "주현이가 죽은 지 80일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차가운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우리는 주현이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는 절대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어 김씨는 "유가족들을 돈으로 회유하고, 협박하는 것이 어떻게 공정사회이냐. 우리 유가족은 삼성이 처벌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지난 1월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유가족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며 장례 절차를 서두르도록 회유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가 발언하는 동안 서초경찰서 박아무개 경감이 불법집회를 해산하라고 확성기에 대고 말해 잠시 발언이 중단되기도 했다. 추모 기자회견은 추모시 낭독과 고 박지연씨 영정사진 앞 헌화 시간을 가진 뒤 끝이 났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삼성본관 앞 유가족들의 항의는 계속되었다.
2시간 동안 계속된 집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만이 '무슨 일이냐? 무슨 데모를 하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는 일류기업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는 '김주현을 살려내,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유가족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출처 : "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 오마이뉴스
[현장]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
11.03.31 18:52ㅣ최종 업데이트 11.03.31 20:05
"내 자식 살려내. 이 개XX들아. 내가 우리 아들이 삼성전자 들어갔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우리 주현이 살려내라고."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25년의 짧은 생을 살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현씨의 어머니에게는 악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 앞에 얼굴을 가린 30여 명의 건장한 경비요원들은 침묵을 지킨 채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있었다. 이따금씩 경찰들이 왔고, 삼성전자 직원들은 유가족들 옆을 무심하게 지나갔다. 지나가는 어떤 이들도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없었다.
▲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 지난해 3월 31일 사망한 고 박지연씨 추모기자회견이 3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리고 있다. ⓒ 구태우 |
"약품 연기에 두통, 생리불순, 하혈"... 스물셋 소녀의 슬픈 죽음
'46명의 슬픈 죽음'은 천안함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46명의 노동자들은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었다. 사망한 노동자들 중에는 스물셋의 어린 소녀도 있었고, 한 가정의 가장도 있었고, 어머니의 효심지극한 아들도 있었다. 어느 하나 가정에서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봄기운이 만연한 31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주최로 열린 '고 박지연씨 1주기 추모제 기자회견'에는 봄의 화창함 대신 슬픔이 감돌았다.
고 박지연(23)씨는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화학약품과 X선을 이용한 반도체 검사일을 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지난 2010년 3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당신은 아픔만을 남기고 스물셋 어린 삶을 고통스럽게 마감했습니다. 고 황유미, 고 황민웅, 고 이수경, 고 김경미의 죽음에 이어 당신은 9번째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이 되었습니다. 무려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렵기만 합니다. 더 이상 죽이지 않기 위해 삼성을 바꾸어내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산 자들이 더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
고 박지연씨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만 120명을 넘었다. 이중 46명의 젊은 노동자가 백혈병과 뇌종양 등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 또 지난 1월 11일에는 삼성전자 천안LCD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한 고 김주현(26)씨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
고 박지연씨의 부모님을 대신해 발언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이 젊은 나이에 왜 죽었겠냐"며 "삼성전자는 인체에 유해한 반도체 화학물질들을 직원들에게 교육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생산 물량이 많은 날에는 일이 많아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 하는 일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삼성공장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 박지연씨는 2009년 5월 15일 천안 근로복지공단 자문의협의회에서 "납에 제품을 담글 때 나오는 하얀 연기가 코로 바로 흡입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고,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어 물로 씻어도 약품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생리불순은 물론 하혈을 해 방진복에 피가 묻은 적도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 고 박지연 1주기 추모 기자회견 반올림 회원이 고 박지연씨의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고 있다. ⓒ 구태우 |
▲ 고 박지연 1주기 추모 기자회견 추모 기자회견에서 박지연씨의 사진 앞에 놓여진 꽃. ⓒ 구태우 |
A+ 학점을 받던 스물여섯 공학도 청년의 죽음
이날 '고 박지연 1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1월 11일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26)씨의 죽음도 추모했다. 인하공전 디지털전자과를 A+ 학점을 받으며 다녔다는 고 김주현씨의 시신은 현재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80일째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유가족은 장례를 미룬 채 삼성전자에 고 김주현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김씨는 삼성전자 천안LCD공장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다. 김씨는 일을 시작하면서 각종 피부질환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지난 1월 11일 삼성전자 기숙사 13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유가족과 반올림은 김씨의 자살을 삼성이 사실상 방치했다고 판단해 노동부와 경찰의 진상조사를 촉구해왔다.
유가족이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CCTV 원본화면에 김씨가 오전 4시 22분부터 오전 6시 44분 사이 4차례 투신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관리직원이 자살시도를 하는 김씨를 기숙사 방으로 데려다 놓은 뒤 아무 조치 없이 바로 방을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전 6시 47분경 네 번째 자살시도 끝에 밖으로 몸을 던졌다.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인 김명복씨는 "우리 가족들 모두 비통한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며 "주현이가 죽은 지 80일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차가운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우리는 주현이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게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는 절대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어 김씨는 "유가족들을 돈으로 회유하고, 협박하는 것이 어떻게 공정사회이냐. 우리 유가족은 삼성이 처벌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지난 1월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유가족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며 장례 절차를 서두르도록 회유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고 김주현씨 유가족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고 김주현씨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켓을 들고 있다. 뒤에는 보안요원이 건물 출입을 막고 있다. ⓒ 구태우 |
김씨가 발언하는 동안 서초경찰서 박아무개 경감이 불법집회를 해산하라고 확성기에 대고 말해 잠시 발언이 중단되기도 했다. 추모 기자회견은 추모시 낭독과 고 박지연씨 영정사진 앞 헌화 시간을 가진 뒤 끝이 났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삼성본관 앞 유가족들의 항의는 계속되었다.
2시간 동안 계속된 집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만이 '무슨 일이냐? 무슨 데모를 하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는 일류기업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는 '김주현을 살려내,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유가족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출처 : "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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