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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독도·동해

일본 독도 전문가도 ‘다케시마 고유영토론은 잘못’

일본 독도 전문가도 ‘다케시마 고유영토론은 잘못’
시모조 다쿠쇼쿠대 교수 ‘외무성 주장에 동의 안해’
나이토 시마네대 명예교수 ‘일본 영토론’ 허구성 지적

한겨레 | 2011-03-31 오전 11:45:00


» 시모조 마사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대략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해 영유 의사를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것이다. 외무성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는 이를 집대성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독도와 가까운 시마네현 등 지방사 연구를 토대로 독도 문제의 역사자료를 발굴해온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 명예교수는 지난 2008년 해설서 파동이 일었을 때 당시 도쿄특파원이었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가지 포인트’는 상황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 고유 영토라는 것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며 외무성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외무성은 ‘일본은 에도 막부 초기인 17세기 중엽에 다케시마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주장했으나, 에도 막부는 오히려 1696년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확인해 일본 어부들의 출어를 금지했다고 나이토 교수는 반박했다. 그는 또 메이지 정부의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이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영토인지 조사한 뒤, 1877년 3월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와 관계없으니 조심하라’고 내무성과 시마네현에 지시한 공문서인 태정관 지령문을 근거로 일본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1905년 일본 정부의 독도 편입 및 영유의사 재확인 주장도 고유영토론과 모순되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재확인했다고 하는데 먼저 확인한 시점이 불분명하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05년 다케시마를 편입하면서 무주지 선점론을 근거로 내세웠다고 하면서 전후에는 갑자기 (고유영토의) 재확인론을 주장하고 있다.”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이론 작업의 첨병에 서고 있는 시모조 마사오 다쿠쇼쿠대학 교수도 2008년 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다케시마 고유영토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1980년대 한국생활을 근거로 한국통임을 자처하며 독도는 한국영토가 아니라는 주장의 책도 출간한 바 있는 그는 기자와의 3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거듭 다케시마 일본영토론의 논지를 펼치다 기자가 일본 외무성의 무주지 선점론과 고유영토론의 모순점을 따지자 “그건은 일본 외무성의 주장이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아무리 일본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우파학자라고 해도 고유영토론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 명예교수
나이토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다케시마 일본영토론’의 허구성을 목소리 높여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1904년 9월 시마네현 오키도민 니카이 요자부로가 강치잡이를 위해 내무· 외무·농상무 대신에게 리앙코섬(독도)의 영토편입 및 10년간 임대를 청원했다”는 내용을 적시하며 독도 영유의사 재확인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나이토 교수는 “당시 야마자 엔지로 외무성 정무국장, 마키 보쿠신 농상무성 수산국장, 기모쓰게 가네유키 해군성 수로부장 등 세 명이 중심이 돼서 강치잡이를 하기 위해 조선쪽에 대하원(독도 이용청원)을 하려던 니카이를 유인해서 그의 대하원 신청을 독도 ‘영토편입 및 대하원’으로 바꿔 일본 정부에 내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러-일 전쟁으로 동해를 지나는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는 망루를 설치하기 위해 독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 3명 중 마키와 야마자는 각각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1903년) <최신한국실업지침>(最新韓國實業指針·1904년)이라는 일본인을 위한 한국 가이드북의 서문을 썼는데 그 가운데 ‘조선 강원도에 속하는 울릉도와 그 부속 리앙쿠르(독도)’라는 서술이 나온다고 나이토 교수는 지적했다.

그러나 나이토 교수는 “현재까지 일본 내 자료에서는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자료가 많이 나와 있지만 한국 영토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면서 자신도 아직까지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1900년 대한제국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위해 칙령41호에서 제기한 석도(石島)가 독도임을 지칭하는 1905년 이전 기록들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다. 한국 학자들은 석도가 한국 방언으로 돌(石)을 ‘독’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를 발음대로 한자로 고치면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일본 정부는 매년 인터넷 홈페이지 내용을 정비해 새로운 주장을 추가하는 데 비해 한국 정부는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도문제 해결방안을 묻자 “일본 학자들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한국 학자들은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일반인들도 알 수 있게 큰 틀에서 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 선전포고 빌미로 우파들 나서

“북방영토가 우리 고유 영토라는 점 등 우리나라 영역을 둘러싼 문제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북방영토(하보마이,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섬)와 관련, 그 위치와 범위를 확인시킴과 동시에 북방영토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현재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거돼 있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정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사이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를 둘러싸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영토·영역에 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 문화과학성이 2008년 7월14일 발표한 중학교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주요 내용이다. 중학교 사회과 교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지침서이자 교과서 검정과정의 가이드라인인 이 해설서의 요구사항은 2년8개월 뒤인 30일 2012년도 검정과정에 통과된 교과서에서 적나라하게 구현됐다. 이번에 검정통과된 7개 공민교과서 모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는 일본 땅”이라고 기술됐을 뿐아니라 1개 뿐이었던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은 4개 교과서로 확대됐다.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에 관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해설서의 주장이 한국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정부가 1954년 6월 독도에 해안경비대를 파견한 것을 불법 점거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불법점거라는 점을 교과서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일본 청소년들에게 자국영토임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국제법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종래의 주장을 확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가 한국의 불법 점거라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이후. 20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3·1 경축사를 통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독도 문제는 단순히 영토문제가 아니라 식민지배 과정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역사인식 문제로 확대시켰다. 이에 일본 우파들와 언론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기화로 독도를 영토분쟁화를 시도했다. 독도에 순시선을 파견해 한-일간의 긴장감을 높였다. 일본 정부는 2006년 한국 정부가 독도를 불법점거했다는 답변서를 작성해 각의에서 결정해 일본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외무성이 한발 더 나아가 2008년 2월 홈페이지를 통해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라는 팸플릿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 등 세가지 언어로 작성된 이 팸플릿은 현재 중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10개국 언어로 번역게재되고 있다.

» 재일동포 독도연구가인 박병섭씨
재일동포 독도연구가인 박병섭씨는 2010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 “한-일 간 마찰이 본격화된 2005년 이후 교과서 검정과정 때부터”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6년 3월 발표된 문부과학성의 2005년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보면 다케시마를 다룬 정치·사회와 현대사회 과목의 교과서는 8종류에서 14종으로 갑절 가까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문부성은 당시 검정 과정에서, 각 출판사에 다케시마와 관련한 내용 30곳에 검정의견을 붙여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슈켄출판사는 “한국과 협상중”이라는 내용으로 신청했으나 문부성은 “우리나라 영토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검정의견을 붙였다. 결국 출판사 쪽은 “시마네현에 속하고… 한국도 영유권 주장”이라고 수정해 겨우 통과됐다.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자민당 55년 체제’를 종식시키며 출범한 민주당 정권들어서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흐름은 큰 변화가 없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는 ‘한-일 기독교의원연맹’의 3.1절 공동성명에 서명한 민주당의 도이 류이치 의원이 결국 우파들의 압력에 못이겨 당직을 사퇴했다.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시마네현은 2008년 이후 3년간 ‘다케시마대책비’를 연속 증액시켰다. 또한 시모조 마사오 다쿠쇼쿠 대학 교수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우파학자들로 구성된 ‘다케시마문제연구회’는 2009년 10월부터 다케시마=일본 고유영토론을 입증한다며 연구작업을 벌여 지난 2월 제2기연구활동 중간보고서를 정리했다. 내년 2월에는 최종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김도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