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1) 원칙인가, 독선인가
신뢰의 리더십 ‘선거 여왕’과 불통의 ‘수첩 공주’ 이미지 혼재
[경향신문] 이지선·강병한 기자 | 입력 : 2012-08-27 22:00:24 | 수정 : 2012-08-27 23:55:36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18대 대통령 선거 여당 후보로 선출됐다. 박 후보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복지·통합’을 화두로 12월19일 대선을 향해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경향신문은 대선 후보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에 앞서 지인들의 증언과 관련자료 등을 통해 박 후보의 삶과 정치 궤적, 제기된 의문을 되짚어보는 ‘박근혜 뒤집어보기’를 시작한다. 평가가 엇갈리는 정치 스타일과 정치관, 의문의 꼬리표가 붙어 있는 과거 및 가족, 도덕성, 정책적 변신의 과정, 5·16과 유신 등 과거사 인식까지 4개 분야로 나눠 짚어본다.
▲ “주변 사람을 딱 1m 바깥에 세워둬… 함께 넘어지는 일 없다”
“총선 뛰어보니 노소가 열광… 이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겠나”
“정치개혁 → 경제성장 → 복지… 여론 따라 달라지는 가치”
“발신번호 제한으로 전화… 폐쇄적 비밀주의가 소통 방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게 원칙과 명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감싸안아줄 사람이 아니다. 주변 사람을 자신의 딱 1m 바깥에 세워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행여 그 사람이 넘어질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넘어지는 일은 없다.”
“총선을 뛰어보니 뛰어볼수록 참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믿게 된다. 20·30대 친구들은 연예인처럼 카메라를 들이대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손을 부여잡고 ‘대통령 되는 것은 보고 눈을 감아야겠다’고 말한다. 이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겠나.”
모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가까운 의원들이 한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는 일정한 ‘보호 거리’를 유지하는 그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 된다. 상반되는 두 이미지의 바탕에는 ‘명분’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후보만의 소통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다. 세종시 논란에서 보듯 그는 늘 “신뢰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밝혀왔다. 이런 그의 신념은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박 후보에게 손을 내밀게 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차갑고 어렵다’ ‘소통이 어렵다’ ‘독선적이다’라는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과 이면
2004년 말 박 후보 별명은 ‘수첩공주’였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이른바 4대 법안을 두고 극한대치를 이어가던 때였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후보를 비롯해 김덕룡 원내대표,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4자 회담’을 열고 쟁점 법안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당시 여당 측 인사들은 회담 후 “박 대표가 수첩에 할 말을 적어와 그 말만 반복한다. 협상이 아니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고집으로 비치기도 하는 박 후보의 ‘원칙 정치인’의 모습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따라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 만들어질 당시 여야 합의를 한 만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박 후보다.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끝까지 약속을 지켜내게 한 것도 바로 그 ‘원칙’이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경선룰을 둘러싸고 이명박 후보와 대치할 때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놓고 “우선 기본 원칙이 무너졌고, 둘째로 당헌·당규가 무너졌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박 후보다. “1000표 드릴 테니 만들어 놓은 원칙대로 하자”는 조롱은 이때 나와 유명세를 탔다.
“신뢰와 약속을 지키고 말보다 행동으로, 생각보다 실천이 중요하다”(2007년 6월 전북대 강연)는 박 후보의 스타일은 신뢰받는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당은 어려울 때마다 박 후보에게 손을 내밀었고, ‘구원투수’라는 별명처럼 박 후보는 당을 위기에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없으면 선진사회로 갈 수 없다”며 “특히 법치와 신뢰, 인권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런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 후보에게 ‘약속 = 원칙’이란 등식이 있다. 다만 원칙의 가치·내용보다는 약속이란 형식적 속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정치인의 약속은 국민과의 약속이란 논리구조를 배경에 깔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2010년 1월 정몽준 당시 대표와 벌인 ‘미생지신(尾生之信)’ 논전이다. 정 대표는 박 후보가 세종시 추진이 국민과의 ‘약속’임을 강조하는 점을 빗대,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했다. 이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박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자 박 후보는 나흘 뒤 “이해가 안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런 그에게 ‘신뢰’란 긍정의 이미지가 덧붙었지만, 2005년 말 결국 거리 투쟁으로 이어진 ‘수첩공주’라는 비판에서 보듯 정치인으로서 유연성 부족이란 한계도 동시에 보여줬다.
■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박 후보의 어두운 면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두드러졌다. 당시 박 후보가 아닌 이명박 후보를 택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 후보는 참 반듯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바로 피드백이 오고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맛이 없다. 대선을 치른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것인데, 함께 도모한다는 느낌보다는 ‘시키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편한 사람이 좋았다.”
박 후보는 늘 부정하지만, 소통 부재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한 의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게 무엇이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고 때론 싸우고, 때론 동의하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박 후보는 그런 게 없다. 의례적인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이다. 질문도 하기가 싫더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도 “박 후보가 전화를 할 때면 ‘발신번호표시 제한’으로 하는데, 도대체 나를 믿는 건지, 아닌 건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캠프 구성 등을 앞두고 당 안팎 인사들이 ‘발신번호표시 제한’ 전화를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지난해 말 정태근·김성식 의원 탈당 등이 이어지며 쇄신파가 당의 변화를 촉구할 당시 박 후보를 향해 나왔던 말은 “전화번호도 모르겠고,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특정 의원을 통한 ‘메신저 정치’를 두고 쇄신파 의원들 사이에서 ‘우리의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박 후보는 아무 말 없고, 그의 뜻을 전하는 의원들만 늘어나면서 소통 방식 자체를 놓고 비판이 나온 것이다.
또 다른 인사의 회고담은 스파이 소설 같다.
“박 후보 쪽에서 연락이 와 만나기로 해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전화가 다시 와서 인근 다른 곳으로 오라더라. 그곳으로 갔더니 박 후보 측근이 있었다. 그 측근이 나를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가더라. 거기에 나 말고 다른 의원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박 후보를 만났다. 무슨 작전을 하나 싶더라. 굳이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하는가 싶고, 내용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밀주의’식 소통 방식은 박 후보의 용인술과 맞닿아 있다. “2인자를 두지 않고, 칸막이만 둬 각자 몫만큼만 일을 하도록 한다”(한 측근)는 것이다. 이 점은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의 조선일보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친박 진영이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에 최 의원은 “과거에는 2인자를 두고 그 사람이 회의해서 결정했는데 후보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퍼져 있다. 한 파트는 다른 파트 일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들 모르는 사이에 일이 정해졌다고 말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한번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의 실무 보좌진 4명은 1998년 정계 입문 이후 줄곧 호흡을 맞춰왔다. 측근들 사이에서는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기 전에는 자기 사람을 절대 내치는 일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친박계인 현기환 전 의원이 돈 공천 의혹에 휘말렸을 때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며 원칙적 입장만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5년 자신이 임명한 전여옥 대변인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빗대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을 때도 “당대표로서 대신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자르지’는 않았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리더십은 역설적으로 종종 측근 의원들이나 인사들 간에 박 후보와 ‘지근거리’를 과시하는 애정 경쟁을 부르기도 한다. 한 친박 의원은 박 후보의 ‘용인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박 후보에게 누구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치자. 나와 박 후보는 이미 알고 있고, 나머지는 낯선 사람들이다. 그럼, 박 후보는 나를 그냥 흘끗 보고 지나가고 나머지에게는 살갑게 대한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이 그날로 박 후보 지지자가 된다. 자발적으로 박 후보를 따라다니며 ‘박 후보가 나를 지난번에 알아봤다’면서 다음번에 또다시 박 후보를 보러 현장에 나타나는 거다. 바로 이게 박 후보의 용인술이 아닌가 싶더라.” 애정 경쟁을 조장하는 용인술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인의 장막’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친박계 의원은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2007년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이 아니면 박 후보에게 접근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박 후보 주변 사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친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친박’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2007년 캠프에서 일했던 김무성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 등도 박 후보와 의원들 사이의 ‘수평적 토론’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박 후보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머리에 뿔난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만 청와대에 어렸을 때부터 들어가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이 남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 최초의 여성 대통령 도전
‘불통’이라는 지적이 나올 때 박 후보는 “국민 여러분이나 동료 의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떤 때는 전화하다가 팔이 아플 정도다. 국민 여러분이 정말 불통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당이 어려운 사정에 있을 때 (4·11 총선에서) 믿고 지지해 주셨겠나”라고 반문했다. 그가 말하는 소통의 대상은 당내나 정치권보다 ‘국민’에 찍혀 있는 듯하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박 후보의 생각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일종의 ‘명분’ 우선의 정치다. 2002년 정당 개혁을 외치며 탈당했을 당시에도 박 후보는 당장 자기와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보다는 명분을 강조하는 입장을 택했다.
그는 “사람보다 원칙이 중요하다. 제가 이야기한 정당 개혁을 같이하겠다는 분이면 어떤 분이든 같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친박 관계자는 “박 후보에게는 ‘자리’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자리를 가지고 딜(거래)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했다.
‘명분’의 정치는 바탕을 국민 여론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약속 = 원칙’의 고집스러움과 달리 정치적 가치·주장에선 계속 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화두는 ‘정치·정당 개혁’이었고, 2007년엔 경제성장과 법질서로 대변되는 보수의 가치였다. 2012년에는 이전 명분의 대척점에 있는 복지를 앞세운 통합이다. 매번 당시 야당이나 정치적 경쟁자의 화두와 유사했던 점은 묘하다. ‘시대정신’이란 설명이 따라붙지만, 박 후보 리더십이 여론의 변동에 민감한 특징도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박 후보 리더십의 특징을 여성 리더십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당내에서 불통 얘기가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부 논리다.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해왔던 물밑 타협을 박 후보는 일절 안 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문법으로 읽히지 않고 답답하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진영 밖으로 나오면 박 후보의 행동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광폭 행보고, 여성 리더십이 힘을 발휘하는 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실제 여성 감수성을 갖고 있느냐에는 반박 논리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자신의 책에서 “(박 후보의) 역사관이나 개인적 가치관도 당연히 부성 콤플렉스 영향권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부성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의 특징 중 하나로 “개인적, 여성적 삶이 소멸되며 외부 세계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적 역할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박근혜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여성’이다. 주변에선 첫 여성 대통령 후보 같은 이야기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친박계 인사)는 전언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사무총장이던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후보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 절대 다시는 국민에게 지탄받는 언행이나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말했으나, 경질은 하지 않았다. 이후 최 전 의원이 자진 탈당했다. 박 후보는 제명과 관련해서도 “국회 윤리위에서 결정할 일”이라고만 했다. ‘여성 문제’라는 감수성을 갖고 처리하지 않고, 보통의 추문처럼 처리했다는 것이다.
출처 :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1) 원칙인가, 독선인가
신뢰의 리더십 ‘선거 여왕’과 불통의 ‘수첩 공주’ 이미지 혼재
[경향신문] 이지선·강병한 기자 | 입력 : 2012-08-27 22:00:24 | 수정 : 2012-08-27 23:55:36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18대 대통령 선거 여당 후보로 선출됐다. 박 후보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복지·통합’을 화두로 12월19일 대선을 향해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경향신문은 대선 후보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에 앞서 지인들의 증언과 관련자료 등을 통해 박 후보의 삶과 정치 궤적, 제기된 의문을 되짚어보는 ‘박근혜 뒤집어보기’를 시작한다. 평가가 엇갈리는 정치 스타일과 정치관, 의문의 꼬리표가 붙어 있는 과거 및 가족, 도덕성, 정책적 변신의 과정, 5·16과 유신 등 과거사 인식까지 4개 분야로 나눠 짚어본다.
▲ 2004년 11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김덕룡 원내대표 발언을 들으며 수첩에 메모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 “주변 사람을 딱 1m 바깥에 세워둬… 함께 넘어지는 일 없다”
“총선 뛰어보니 노소가 열광… 이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겠나”
“정치개혁 → 경제성장 → 복지… 여론 따라 달라지는 가치”
“발신번호 제한으로 전화… 폐쇄적 비밀주의가 소통 방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게 원칙과 명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감싸안아줄 사람이 아니다. 주변 사람을 자신의 딱 1m 바깥에 세워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행여 그 사람이 넘어질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넘어지는 일은 없다.”
“총선을 뛰어보니 뛰어볼수록 참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믿게 된다. 20·30대 친구들은 연예인처럼 카메라를 들이대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손을 부여잡고 ‘대통령 되는 것은 보고 눈을 감아야겠다’고 말한다. 이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겠나.”
모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가까운 의원들이 한 말이다. 주변 사람들과는 일정한 ‘보호 거리’를 유지하는 그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 된다. 상반되는 두 이미지의 바탕에는 ‘명분’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후보만의 소통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다. 세종시 논란에서 보듯 그는 늘 “신뢰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밝혀왔다. 이런 그의 신념은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박 후보에게 손을 내밀게 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차갑고 어렵다’ ‘소통이 어렵다’ ‘독선적이다’라는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과 이면
2004년 말 박 후보 별명은 ‘수첩공주’였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이른바 4대 법안을 두고 극한대치를 이어가던 때였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후보를 비롯해 김덕룡 원내대표,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4자 회담’을 열고 쟁점 법안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당시 여당 측 인사들은 회담 후 “박 대표가 수첩에 할 말을 적어와 그 말만 반복한다. 협상이 아니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고집으로 비치기도 하는 박 후보의 ‘원칙 정치인’의 모습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따라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 만들어질 당시 여야 합의를 한 만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박 후보다.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끝까지 약속을 지켜내게 한 것도 바로 그 ‘원칙’이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경선룰을 둘러싸고 이명박 후보와 대치할 때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놓고 “우선 기본 원칙이 무너졌고, 둘째로 당헌·당규가 무너졌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박 후보다. “1000표 드릴 테니 만들어 놓은 원칙대로 하자”는 조롱은 이때 나와 유명세를 탔다.
“신뢰와 약속을 지키고 말보다 행동으로, 생각보다 실천이 중요하다”(2007년 6월 전북대 강연)는 박 후보의 스타일은 신뢰받는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당은 어려울 때마다 박 후보에게 손을 내밀었고, ‘구원투수’라는 별명처럼 박 후보는 당을 위기에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없으면 선진사회로 갈 수 없다”며 “특히 법치와 신뢰, 인권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런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 후보에게 ‘약속 = 원칙’이란 등식이 있다. 다만 원칙의 가치·내용보다는 약속이란 형식적 속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정치인의 약속은 국민과의 약속이란 논리구조를 배경에 깔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2010년 1월 정몽준 당시 대표와 벌인 ‘미생지신(尾生之信)’ 논전이다. 정 대표는 박 후보가 세종시 추진이 국민과의 ‘약속’임을 강조하는 점을 빗대,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했다. 이는 세종시 수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박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자 박 후보는 나흘 뒤 “이해가 안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런 그에게 ‘신뢰’란 긍정의 이미지가 덧붙었지만, 2005년 말 결국 거리 투쟁으로 이어진 ‘수첩공주’라는 비판에서 보듯 정치인으로서 유연성 부족이란 한계도 동시에 보여줬다.
■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박 후보의 어두운 면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두드러졌다. 당시 박 후보가 아닌 이명박 후보를 택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 후보는 참 반듯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바로 피드백이 오고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맛이 없다. 대선을 치른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것인데, 함께 도모한다는 느낌보다는 ‘시키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편한 사람이 좋았다.”
박 후보는 늘 부정하지만, 소통 부재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한 의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게 무엇이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고 때론 싸우고, 때론 동의하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박 후보는 그런 게 없다. 의례적인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이다. 질문도 하기가 싫더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도 “박 후보가 전화를 할 때면 ‘발신번호표시 제한’으로 하는데, 도대체 나를 믿는 건지, 아닌 건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캠프 구성 등을 앞두고 당 안팎 인사들이 ‘발신번호표시 제한’ 전화를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지난해 말 정태근·김성식 의원 탈당 등이 이어지며 쇄신파가 당의 변화를 촉구할 당시 박 후보를 향해 나왔던 말은 “전화번호도 모르겠고, 만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특정 의원을 통한 ‘메신저 정치’를 두고 쇄신파 의원들 사이에서 ‘우리의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박 후보는 아무 말 없고, 그의 뜻을 전하는 의원들만 늘어나면서 소통 방식 자체를 놓고 비판이 나온 것이다.
또 다른 인사의 회고담은 스파이 소설 같다.
“박 후보 쪽에서 연락이 와 만나기로 해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전화가 다시 와서 인근 다른 곳으로 오라더라. 그곳으로 갔더니 박 후보 측근이 있었다. 그 측근이 나를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가더라. 거기에 나 말고 다른 의원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박 후보를 만났다. 무슨 작전을 하나 싶더라. 굳이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하는가 싶고, 내용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밀주의’식 소통 방식은 박 후보의 용인술과 맞닿아 있다. “2인자를 두지 않고, 칸막이만 둬 각자 몫만큼만 일을 하도록 한다”(한 측근)는 것이다. 이 점은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최경환 의원의 조선일보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친박 진영이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에 최 의원은 “과거에는 2인자를 두고 그 사람이 회의해서 결정했는데 후보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퍼져 있다. 한 파트는 다른 파트 일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들 모르는 사이에 일이 정해졌다고 말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한번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의 실무 보좌진 4명은 1998년 정계 입문 이후 줄곧 호흡을 맞춰왔다. 측근들 사이에서는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기 전에는 자기 사람을 절대 내치는 일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친박계인 현기환 전 의원이 돈 공천 의혹에 휘말렸을 때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며 원칙적 입장만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5년 자신이 임명한 전여옥 대변인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빗대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을 때도 “당대표로서 대신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자르지’는 않았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리더십은 역설적으로 종종 측근 의원들이나 인사들 간에 박 후보와 ‘지근거리’를 과시하는 애정 경쟁을 부르기도 한다. 한 친박 의원은 박 후보의 ‘용인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박 후보에게 누구를 소개하는 자리라고 치자. 나와 박 후보는 이미 알고 있고, 나머지는 낯선 사람들이다. 그럼, 박 후보는 나를 그냥 흘끗 보고 지나가고 나머지에게는 살갑게 대한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이 그날로 박 후보 지지자가 된다. 자발적으로 박 후보를 따라다니며 ‘박 후보가 나를 지난번에 알아봤다’면서 다음번에 또다시 박 후보를 보러 현장에 나타나는 거다. 바로 이게 박 후보의 용인술이 아닌가 싶더라.” 애정 경쟁을 조장하는 용인술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인의 장막’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친박계 의원은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2007년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이 아니면 박 후보에게 접근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박 후보 주변 사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친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친박’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2007년 캠프에서 일했던 김무성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 등도 박 후보와 의원들 사이의 ‘수평적 토론’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박 후보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머리에 뿔난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만 청와대에 어렸을 때부터 들어가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이 남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지난 3월28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 진제 스님 추대법회에 참석한 뒤 주위로 몰려든 불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정지윤 기자 |
■ 최초의 여성 대통령 도전
‘불통’이라는 지적이 나올 때 박 후보는 “국민 여러분이나 동료 의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떤 때는 전화하다가 팔이 아플 정도다. 국민 여러분이 정말 불통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당이 어려운 사정에 있을 때 (4·11 총선에서) 믿고 지지해 주셨겠나”라고 반문했다. 그가 말하는 소통의 대상은 당내나 정치권보다 ‘국민’에 찍혀 있는 듯하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박 후보의 생각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일종의 ‘명분’ 우선의 정치다. 2002년 정당 개혁을 외치며 탈당했을 당시에도 박 후보는 당장 자기와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는 것보다는 명분을 강조하는 입장을 택했다.
그는 “사람보다 원칙이 중요하다. 제가 이야기한 정당 개혁을 같이하겠다는 분이면 어떤 분이든 같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친박 관계자는 “박 후보에게는 ‘자리’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자리를 가지고 딜(거래)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했다.
‘명분’의 정치는 바탕을 국민 여론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약속 = 원칙’의 고집스러움과 달리 정치적 가치·주장에선 계속 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화두는 ‘정치·정당 개혁’이었고, 2007년엔 경제성장과 법질서로 대변되는 보수의 가치였다. 2012년에는 이전 명분의 대척점에 있는 복지를 앞세운 통합이다. 매번 당시 야당이나 정치적 경쟁자의 화두와 유사했던 점은 묘하다. ‘시대정신’이란 설명이 따라붙지만, 박 후보 리더십이 여론의 변동에 민감한 특징도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박 후보 리더십의 특징을 여성 리더십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당내에서 불통 얘기가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부 논리다. 남성 위주의 정치판에서 해왔던 물밑 타협을 박 후보는 일절 안 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문법으로 읽히지 않고 답답하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진영 밖으로 나오면 박 후보의 행동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광폭 행보고, 여성 리더십이 힘을 발휘하는 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실제 여성 감수성을 갖고 있느냐에는 반박 논리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자신의 책에서 “(박 후보의) 역사관이나 개인적 가치관도 당연히 부성 콤플렉스 영향권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부성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의 특징 중 하나로 “개인적, 여성적 삶이 소멸되며 외부 세계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적 역할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박근혜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여성’이다. 주변에선 첫 여성 대통령 후보 같은 이야기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친박계 인사)는 전언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사무총장이던 최연희 전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후보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 절대 다시는 국민에게 지탄받는 언행이나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말했으나, 경질은 하지 않았다. 이후 최 전 의원이 자진 탈당했다. 박 후보는 제명과 관련해서도 “국회 윤리위에서 결정할 일”이라고만 했다. ‘여성 문제’라는 감수성을 갖고 처리하지 않고, 보통의 추문처럼 처리했다는 것이다.
출처 :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1) 원칙인가, 독선인가
'세상에 이럴수가 > 박정희·박근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3) 정책변화, 진화냐 말 바꾸기냐 (0) | 2012.09.04 |
---|---|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2) 도덕성과 과거를 묻는다 (0) | 2012.09.04 |
유신헌법은 무엇이었나… 초헌법적 긴급조치, 삼권분립 부정, 세계사적 ‘헌정 파괴’ (0) | 2012.09.02 |
[단독] 국회서 <그녀에게> 지원 괴문서 나돌아..."유신공주 아닌 육영수 딸로 부각시키자" (0) | 2012.09.01 |
전두환에게 6억원(지금시세 300억원)을 받았던 박근혜 (0) | 2012.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