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의 싸움? 힘들죠. 죽어가고 슬퍼하고…”
[전태일 통신]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 인터뷰
[프레시안] 김대현 문화평론가 | 기사입력 2012-07-11 오전 9:58:02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이 발생하여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초일류기업 삼성, 게다가 완벽한 클린룸을 자랑하는 반도체 공정에서 직업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소외되었고, 동시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년 후, 사정은 바뀌었다. 아직은 미흡하긴 하지만 법원은 삼성과 피해노동자들과의 사이에서 일부 피해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최초로 인정하게 됐으며, 몇몇 언론은 삼성의 문제를 지적하곤 한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사정이 개선된 것은, 누구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그들의 옆에 서 있어준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반올림'이 출범한 이후의 역사는,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숨겨진 처절한 삶의 투쟁이자, 삼성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벌이는 숭고한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 연구소 연구원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김대현 : '반올림'이라는 이름이 참 독특한데요. 먼저 '반올림'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공유정옥 : '반올림'의 정식 명칭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약칭이고요, 반도체 노동자들의 인권을 올리자는 의미에요. 출범 당시에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분들이 걸린 백혈병에 대한 제보들이 많이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백혈병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들이 발병되었고, 또 그 사업장이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사업 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죠. 하지만 지금도 역시 주요활동은 삼성노동자들과 백혈병에 관한 것들이 많아요.
김대현 : 반도체 공정과정의 이미지는 하얀 방진복을 입고 청결한 작업현장으로 된 첨단 산업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보통 사람은 원진레이온과 같은 낙후된 공장처럼 유독물질이 발생한다는 것을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떠한 과정으로 생산공정 라인 노동자들이 병을 얻게 되는 것인가요?
공유정옥 : 홍보영상들을 보면 노동자들이 하얀 모자, 장갑, 신발 같은 방진복 같은 보호구들을 겹겹이 입고 깨끗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장면들이 보이죠.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보호구들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제품을 보호하는 것들이라는 거에 있어요. 즉 보호의 방향이 바깥에서 위험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부터 제품을 보호한다는 거죠. 사람의 땀이 흐르건 말건, 피부가 짓무르건 말건 간에 말이죠.
두 번째는 겉으로 깔끔해 보이는 그러한 작업장을 클린 룸(CR)이라 하는데, 여기서 클린이라는 의미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먼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즉 먼지는 통제하지만 가스와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보호가 안 되는 거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어떠한 위험을 가지고 있을지조차 잘 파악이 안 되는 화학물질집약산업입니다. 눈에 쉽사리 보이지 않는 위험한 액체나 유독가스는 전혀 방어가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클린 룸이라는 것은 다만 먼지가 없다는 것일 뿐 위험으로부터 클린 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방사성 물질 발생장치도 곳곳에 있고 말이죠. 그러니 미국에서 이러한 위험을 먼저 인지했던 분들은 "clean"이라고 써놓고 "not safe"라고 읽어요.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맞죠.
김대현 : 그렇다면 어떠한 유형들의 질병들이 주로 발생하게 됩니까?
공유정옥 : 제보자들 160여 명 중 대부분이 암이에요. 대표적으로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 가장 제보가 많이 왔어요. 유방암. 난소암 등이 그렇죠. 피부암도 제보가 많이 들어오는데 자외선이나 X선 많이 쐬어서 그런 듯해요. 뇌암, 뇌종양도 있고, 드물게 위암, 대장암 같은 경우도 있고요. 여기에 더해서 자가면역질환, 루게릭병, 뇌의 여러 부분이 딱딱해지면서 뇌의 기능을 상실하는 다발성 경화증 같은 희귀병들이 발생해요.
김대현 : 그렇군요. 어떤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에 국민적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할 정도로 삼성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은 기업입니다. 그런데 왜 삼성에서는 산재를 인정 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공유정옥 : 정확히 말하면 산재를 인정하는 주체는 정부에요. 그런데 정부가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 외부기관에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해요. 이런 식으로 결국 역학조사를 다른 정부기관(산업안전공단)에 의뢰해요. 그러면 거기에서 전문가들을 불러 역학조사 평가 위원회(민간)를 열고, 그 결과를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기면 또 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민간)를 거치는 등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통하게 되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삼성은 모든 단계를 전부 참가하지만, 노동자의 참가는 어려워요.
아무리 요청해도 (참여가) 잘 안되고, 아주 세게 요구하지 않으면 한 단계에 참가하기도 어렵죠. 사실은 (심사단계에서) 회사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결국 심사단계에서 회사의 주장만 들어가는 경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리하면 첫째로 산재 인정절차가 복잡하거나 장기화 되어있고, 둘째로 산재피해자인 노동자는 불편한 몸으로 조사단계에 참여도 어렵지만, 회사는 조사단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죠. 게다가 세 번째는 제일 큰 문제인데 복잡한 절차로 인하여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김대현 : 피해 이후 보상차원에서 볼 때 삼성 뿐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네요.
공유정옥 : 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 노동자 뿐 아니라 대체로 직업병 인정에 박하다는 평이 많아요. 산재보험조정이 어렵다는 핑계였는데. 지금은 1조 원 넘게 흑자를 보면서도 그러죠. 산재보험이라는 것이 사회보험의 성격을 가지니까 보험재정이 모자라면 (많은 흑자를 기록하는) 사업자한테 더 걷거나, 정부의 지원을 더 받거나 해서 아픈 사람들, 병든 사람들 치료받게 해야 하는데, 재정이 취약해졌다고 하니까 지출을 줄이는 거죠. 사실 근로복지공단의 악명은 오래된 일이고 거기에 더해서 삼성까지 엮이니까 여기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이 다 쩔쩔맸던 거죠.
김대현 : 근로복지공단이 비협조적이라면 삼성 자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어서 인정하면 안 되는 건가요? 본인들은 스스로를 일등기업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미지도 좋을 텐데요. 혹시 인정하면 삼성에 불이익이라도 가는 것일까요?
공유정옥 : 두 가지가 있는데요. 주겠다는 것은 있어요. 그게 하나는 위로금인데, 위로금을 주려는 까닭은 처음에는 (삼성이) 침묵했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영향력 있는 피해자들에게 산재를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고 접근해왔어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처음으로 공식발표하면서 퇴직한 직원들에게도 주겠다고 발표했어요. 2010년에 박지연 씨가 '반도체 소녀'로 알려지면서 스물두 살에 사망하고 이슈가 되니까, 그 해 4월에 사장이 기자들을 불러서 약속을 해요. '투명한 조사를 하겠다. 연구소를 만들겠다, 지원을 하겠다' 그런 식으로 말이죠.
앞의 두 개는 어쨌든 했는데 지원에 대해서는 1년 동안 아무 조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보다 못한) 노동부가 (삼성에게) '그것 좀 해야지' 하는 식으로 해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작년 8월에 발표한 게 몇 가지 조건에 맞으면 최대 1억 원까지 실비보장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그냥 생색내는 거죠. 해당자가 많지 않아요.
김대현 : 자기들은 잘못이 없는데, 도의적으로 해준다 그런 의미란 겁니까?
공유정옥 : 네. 삼성이 클린기업이니까 (책임이 없어도) 해준다는 거죠. 사실은 진정성도 없고 효용도 없고, 오히려 명분은 삼성이 챙겨가는 그런 식의 시도죠.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가 생각하기에도 삼성이 산재 인정 '쿨'하게 하면 이미지가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사력을 다해서 산재인정을 막고 있어요. 작년에 국정감사 때 나온 말인데, 무재해 사업장이 되면 산재보험료를 할인받게 된데요, (삼성이 내는) 보험료 규모가 크니까 일 년에 144억 원 정도를 감면받는 거죠. 이걸 '반올림' 활동하는 기간을 치면 만 4년이 넘었으니까 600억 원 가까이 아낀 거죠. 혹시 그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하여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산재 인정을 막는지) 모르는 일이죠.
김대현 : 다시 책임 문제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피해 노동자 입장에서 반도체 공정과 산재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텐데요.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반올림'같은 조력자가 필요한데, 삼성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사를 잘 받아주는 편입니까?
공유정옥 : 예전에 황유미 씨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황상기)를 들어가게는 해줬어요. 그 이후에 다른 건, 즉 취재 같은 게 있을 때, 피해자가 추천하는 전문가 참관인 한 명 정도는 들어가게 해줬어요. 딱 그 정도에요. 이번에 삼성이 2년 정도 심층조사를 했는데, 자기들이 미국에서 고용한 컨설팅 회사(인바이런 社)를 불러 그냥 자기들끼리 하고, '반올림'이나 피해당사자들을 안 부르는 거죠. 그러니까 자체 조사하는 거에도 저희들을 안 부르는 건 당연하고요, 이런 문제를 풀 때에는 구색이라도 갖춰야 하는데 그런 기본 개념이 없고요. 정부가 조사할 때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한 번 들어오게 하는 정도인데, 어떤 조사든 현장 조사할 때 한 번 따라간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화학물질이 이름표 달고 나(유해물질이에요)에요 하는 것도 아니고요.(웃음) 언제 어디서 뭘 들고 가서 조사를 할 건지 알아야 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안되죠.
김대현 : 이런 것을 보면 산업정보에 대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겠네요.
공유정옥 : 제도 개선도 필요하고, 기업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실은 정보공개에 관한 법이 있기는 해요. 저희가 더 분노했던 것은 정부 때문인데, 2008년 말 2009년 초에 노동부에서 조사를 했어요. 6개 반도체 회사들 요청해서 상용 중인 화학물질에 대한 것을요. (회사들이 얼마만큼 답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희가 노동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영업비밀이라 못 주겠다 그래요. 그래서 저희가 면담에서 양보해서, 여러 회사가 내어놓았으니까, 그 회사들이 사용하는 성분 전부 섞어서 알파벳순으로 그냥 화학물질 이름만 알려 달라 했어요. 반도체 공정은 배합비, 성분비, 순서, 처리시간이 중요한 것이고 재료물질은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듣고 일리가 있었는지 알려준다는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2009년에 이메일이 왔어요. 왜 안주냐 했더니 국제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일각'의 의견이 있어서 못 주겠다는 거예요. 실은 그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법률 위반이에요. 그렇게 하니까.
김대현 : 국제분쟁이라는 요건이 없는 건가요?
공유정옥 : 없죠. 왜냐면 저희가 이의신청을 하고 행정소송을 하면 저희가 보기엔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다만 저희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거죠. 힘이 없고, (인력부족에 다른 피해소송도 많아서) 그거 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괘씸한 거죠. 법에 의하면 영업 비밀을 공공기관이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있기는 해요. 하지만 단서조항에 의하면 공익이나 건강 안전은 예외로 한다는 거죠. 이게 딱 그 사안이잖아요. 그런데 일단 법을 어기고 있는 거죠. 그래놓고 시간 나고 돈 남으면 소송해라 이거죠. 정부가 법을 어겨놓고 나서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때리는 시어머니도 밉고, 말리는 시누이도 밉고 그런 거죠.(웃음)
김대현 : 그럼 행정부는 그렇다 치고 사법부는 어떤 태도인가요? 판례에 의하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업무와 질병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 그 입증이 있다는 식으로 입증책임을 완화시켜주는 데 실제 적용이 되는 편입니까?
공유정옥 : 과로사와 같은 경우는 조금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법원에서 질문하신 판례와 같은 취지로 해준 적도 있고 하지만 안 해준 적도 있고, 하여간 일관되게 평가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반도체 백혈병이나 암 같은 경우는 황유미 씨가 최초라서 비교할 전례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바뀌게 되는 사법제도의 한계죠. (구분해서 문제를 정리해보면)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는 데, 먼저 산재법 자체의 문제인데, 2007년에 개정될 때 '개인질환임을 반증할 수 없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문구를 쥐고 (피해 노동자들이) 싸울 수 있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개악이 되면서 그 문구가 삭제되었어요. 그 때 산재법 개악, FTA,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총파업, 총궐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다 묻혔죠. 산재법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일부 좋은 내용들을 몇 개 다른데다 놓고, 요 문구가 빠지면서, (노동계에서는) 반대해야 한다 이렇게는 개혁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는데,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다 찬성했어요. 국회의원 거의가 다 했죠. 그 만큼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진보적 정당에서도 부족했었다는 거죠.
김대현 :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았단 얘기겠네요.
공유정옥 : 읽어봐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거지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투쟁을 하고 근로조건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우던 사람들이 다 외면당할 때니까…. 두 번째로는 사법부 판단과 관련해서 말씀하셨듯이 명백한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인정해주는 것이 법의 취지가 맞거든요. 이게 행정소송에 가서 설령 100% 이긴다고 해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소송에서 지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애초에 소송에서 이길 정도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거든요. 행정소송에서 노동자가 정부를 상대로 자주 이긴다는 이야기는 정부가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고질적인 과로사 문제, 암 문제, 희귀질환 문제들은 아예 소송을 가지 않게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거죠. 또 사법부의 문제와 관련하여 세 번째는 삼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삼성이 왜 문제냐면 삼성이 노동자와 정부의 소송에 끼어들기 때문이죠. 정부와 노동자의 소송, 즉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인데 삼성이 피고 측 보조참가로 삼성의 변호사들이 들어와요. 자기들은 정당한 권리라고 들어와요. 정당한 권리는 맞죠. 하지만 반 인권적이죠. (삼성이 참여하지 않아도, 노동자와 정부의 소송만으로도 노동자가 약자인데 삼성이 참여하면서 더욱 이기기 어렵다는 의미). 이런 형태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취지를 무너뜨리는 거죠. 그저 노동자들이 먹고 건강하게 살기만이라도 하려는 이런 최소한의 제도마저 흔들고 있는 거죠.
김대현 : 그렇다면 소송이 진행되는 중간 과정에서 병원비나 생계비, 치료비도 상당히 필요할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가처분 같은 그런 제도들도 없습니까?
공유정옥 : 없고요. 퇴사 전에 병이 확인된 사람은 퇴사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돈을 지급했대요. 그런데 그 돈을 주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퇴사시키는 거죠. 그리고 입을 싹 닦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병들이 길게 싸워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다들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걸리죠. 몇 천에서 1~2억 정도 쓰는 거예요. 부모님 평생 모은 돈, 자기가 노력해서 모은 돈 다 쓰고도 모자라니까 빚지고, 돌아가시고. 더 문제는 만성 희귀병으로 장기간 투병해야 하는 분들이에요. 일도 못하고 우리나라 사회복지의료가 저열하다 보니, 더욱 힘들죠. 진짜 아닌 말로 몇몇 분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눈물). 참 답답한 거죠. 사회연대제도가 있으면 당연히 해결 될 문제인데….
김대현 :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데, 삼성과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크잖아요. 언론이나 혹시 피해자들의 직장 동료들의 협조 같은 것은 없나요?
공유정옥 : 어렵죠. 가슴 아픈 일도 몇 개 있었어요. 초창기 '반올림'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제보자가 있었어요. 4명이 팀으로 된 조직의 막내 분이었는데, 고(故) 황유미 씨와 동일한 공정 옆 라인이었어요. 유미 씨는 3라인이고, 이 분들은 7라인 엔지니어 팀이었어요. 부장님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고, 차장은 30대에 흑색종이라는 피부암에 걸려 돌아가셨고, 과장은 육아종이란 베게너 씨 병이라는 진짜 희귀한 병에 걸려 평생 치료받아야 하는 분들이었죠, 막내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어요. 진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다음에 이분이 나중에 국정감사 때 회사 쪽 참고인으로 나와 아무 문제없고, 깨끗하다고 주장했어요. 저희는 그때 그분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어요.
김대현 : 만일 노조가 있다면 저런 문제가 적을 텐데, 삼성은 지금 노조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고 하니 도저히 답이 없는 문제 같네요.
공유정옥 : 정말 어디랑 똑같죠. 3대 세습도 똑같고 언로도 막힌 것도 그렇죠.
김대현 : 마치 영혼의 샴쌍둥이 같네요.(웃음) 하여간 '반올림'의 투쟁성과는 피해자들의 구제와 명예회복에도 있지만, 후속 노동자들의 안전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를 삼성에서 반영하고 있는지요?
공유정옥 : 개선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려도 있습니다. 우선 개선된 것은 저희가 삼성만이 아니라 다른 반도체 회사에서도 제보를 받아요. 2009년부터 그런 변화들이 많이 있었나 봐요.
김대현 : 그러면 다른 반도체 회사들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네요? 해외도 비슷합니까?
공유정옥 : 네. 그러니까 이런 반도체 회사들이 가는 곳마다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지요. 그러면서 문제가 터지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그러는 거죠. 삼성 같은 데도 예전과는 다르다, 깨끗하게 한다 믿어달라고 하는데 믿어주고 싶어요. 다만 산재의 경우는 (사업주가) 못 한다의 문제가 아닌데, 자꾸 자기들은 우리는 세계 일류다, 깨끗하다고만 말하는 게 답답한 거죠. 그저 삼성의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근무하다 피해를 입은 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되는 문제인데 말이죠. 세계 일등이라도 틀릴 수가 있는 거잖아요. 삼성에서는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요.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문제가 외부화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피해노동자 중에 설비 엔지니어 고(故) 황민웅 씨가 있어요. 생산설비 자체를 씻고 고장 난 걸 수리하고, 사고가 나면 수습하는 일을 하는 건 데, 위험한 물질에 자주 노출되는 거죠. 이 분이 행정소송에서 진 이유가, '유해할 거 같긴 하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한 건 아닌 거 같다'에요. 왜냐하면 회사가 95년부터 이 일을 협력업체를 시켰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 황민웅 씨가 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것도 말이 안 되지만, 하여간 황민웅 씨와 별개로, 그렇다면 협력업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라는 거죠.
김대현 : 정말 그런 문제가 있겠군요.
공유정옥 : 또 한혜경 씨가 있는데 이분은 LCD 공정에서 납땜 일을 하다 뇌종양에 걸렸어요. 그래서 현장조사를 하러 갔는데, 일했던 라인이 다른 회사에 팔린 거예요. 그 공정 자체를 위험하니까 떼어서 다른 회사로 판매된 거죠. 그 회사도 또 다른 데다 판 거고요. 점차 작은 데로 내려가는 거죠. 즉 위험한 작업들이 그렇게 외부화 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올해 초에 삼성이 중국에 반도체 공장 짓는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위험이) 중국으로 가는 거죠. 미국에서 동유럽, 아시아. 이렇게 오다가 한국에 온 것처럼 중국으로 가는 거죠. 이렇게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위험이 도는 거죠.
김대현 : 말하자면 폭탄 돌리기와 같군요.
공유정옥 : 그렇습니다. 폭탄 돌리기죠.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이 되죠. 개선이라기보다 그냥 안 보이는 데로 치우는 거죠. 사실 원진레이온도 동일한 과정이었어요. 미국, 독일, 시작되다가 일본에 넘기고 일본에서 사람들 죽고, 다시 한국에 왔다가 우리나라에서 문제 생기고, 지금 그게 중국에서 돌아가고 있거든요. 20년 동안(웃음). 이게 기본적으로 백혈병 문제, 삼성 문제를 넘어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거죠. 그것이 삼성이라는 기업과, 공정하지 못한 정권이 가미되어 있긴 한데, 사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이런 문제를 깔고 있는 것이고 그 문제가 지금 터지고 있는 거죠.
김대현 : 말씀을 듣다보니 정말 갑갑하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반올림' 활동 방향이 다른 산재노동자들까지 합치거나 그런 식으로 운동이 확장 될 가능성이 있나요?
공유정옥 : 다른 산업까지 가진 않을 것 같고요. '반올림'은 세 가지 정도의 목표가 있는데, 하나가 전자산업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집중해서, 노조라든가, 노조가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자주조직화, 결사의 자유를 강화할 수 있도록 갔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는 삼성에 맞서는 싸움을 얘기 안할 수 없는데, 전자가 삼성의 큰 부분이니까, 저희가 실제로 삼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없지만 삼성 노동자들의 신앙심에 파문을 던지고 있어요. 벽을 깨지는 못했지만 삼성의 거짓된 신화를 벗기는 데 일조를 했으면 해요.
그 안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거나, 개인적으로 싸우는 삼성 노동자들에게 '반올림'이 힘이 되고 싶어요. 기왕에 투쟁해왔던 사람들보다 '반올림'이 기존조직과 달리 조금 유연해보이잖아요.(웃음) 그러니 저희가 귀담아 들을 테니 여러 제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것들이 저희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고,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삼성 노동자들에게 돌려드릴 것들이 생기거든요. 세 번째는 (위험이 외부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국제 연대를 통해 앞으로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할 노력이 필요하겠죠.
김대현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린다면 이런 일을 하시다가 힘이 든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으신가요?
공유정옥 : 힘들죠. 이기기 어려운 점이 힘든 것도 있지만, 작은 승리에 많이 기뻐하려고 애를 써요. 말씀하셨듯이 거대한 구조를 보면 답답하죠. 하지만 이것은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제일 힘이 드는 건 피해자들을 만날 때에요. 그냥 인간으로서 힘들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죽어가고, 남겨진 가족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들지만, 사실은, 잘 전달될까 모르겠지만…. 싸움이 아직 치유하는 과정까지 나가지 못한다는 반성이 많이 들어요. 오래 걸리는 싸움이라 피해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치유되고 그래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그때의 고통을 자꾸 뜯어내야 되잖아요. 내 딸이 죽고, 내 남편을 간병하면서 느꼈던 그런 것들, 슬픔이 희석되면서 잊혀져가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자꾸 '잊지말자 잊지말자' 해야 하니까. 좀 그럴 때는 뭐랄까 안 할 수는 없는데 참 많이 힘들죠.(눈물)
김대현 : 개인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문제들이 힘이 든다는 말씀 같습니다.
공유정옥 : 그렇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동정심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오래 싸우는 동지들이 다치니까… 마음을 다치니까… 지켜야 되는 소중한 동지들이, 싸움 자체 때문에 치유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 참 마음이 답답해요.
김대현 : 그래도 그런 희생들 때문에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위로를 해야겠네요. 다음은 상투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보람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공유정옥 : 보람 있고 기쁜 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데…. 그러니까 하겠죠?
김대현 : 국제 산업안전보건상 수상하셨는데…
공유정옥 : 그것은 그분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신 것 같아요. 일상적인 연대는 아니겠지만, 처음에 '반올림' 시작할 때, 국내에서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을 때,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20~30년 전에 겪었던 동지들, 미국이나 영국의 분들. 그분들에게 격려를 받았고. 사실 그분들은 저희에게 부채감을 느끼는 거죠. 자기들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김대현 : 그렇군요. 정말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그럼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유정옥 : 감사합니다.
처음 공유정옥 연구원에 대한 인터뷰 부탁을 받았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여러 조사를 하다 보니 그만 우울해지고 말았다. 이는 삼성에서 근무하다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희생자들이 무수히 발생하지만 가해자를 지목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울적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공유정옥 전문의와의 만남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세상은 타인의 아픔에 무감하면 할수록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가끔 타인의 아파하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 공유정옥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아직도 의술이 인술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온몸으로 증거 하는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현 한국사회의 환후를 드러내는 진단서다.
출처 "삼성과의 싸움? 힘들죠. 죽어가고 슬퍼하고…"
[전태일 통신]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 인터뷰
[프레시안] 김대현 문화평론가 | 기사입력 2012-07-11 오전 9:58:02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이 발생하여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초일류기업 삼성, 게다가 완벽한 클린룸을 자랑하는 반도체 공정에서 직업병이 발생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소외되었고, 동시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년 후, 사정은 바뀌었다. 아직은 미흡하긴 하지만 법원은 삼성과 피해노동자들과의 사이에서 일부 피해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최초로 인정하게 됐으며, 몇몇 언론은 삼성의 문제를 지적하곤 한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사정이 개선된 것은, 누구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그들의 옆에 서 있어준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반올림'이 출범한 이후의 역사는,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숨겨진 처절한 삶의 투쟁이자, 삼성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벌이는 숭고한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 연구소 연구원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 공유정옥 씨. ⓒ프레시안(손문상) |
“제보자 160여 명 중 대부분이 암”
김대현 : '반올림'이라는 이름이 참 독특한데요. 먼저 '반올림'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공유정옥 : '반올림'의 정식 명칭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약칭이고요, 반도체 노동자들의 인권을 올리자는 의미에요. 출범 당시에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분들이 걸린 백혈병에 대한 제보들이 많이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백혈병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들이 발병되었고, 또 그 사업장이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사업 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죠. 하지만 지금도 역시 주요활동은 삼성노동자들과 백혈병에 관한 것들이 많아요.
김대현 : 반도체 공정과정의 이미지는 하얀 방진복을 입고 청결한 작업현장으로 된 첨단 산업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보통 사람은 원진레이온과 같은 낙후된 공장처럼 유독물질이 발생한다는 것을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떠한 과정으로 생산공정 라인 노동자들이 병을 얻게 되는 것인가요?
공유정옥 : 홍보영상들을 보면 노동자들이 하얀 모자, 장갑, 신발 같은 방진복 같은 보호구들을 겹겹이 입고 깨끗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장면들이 보이죠.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보호구들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제품을 보호하는 것들이라는 거에 있어요. 즉 보호의 방향이 바깥에서 위험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부터 제품을 보호한다는 거죠. 사람의 땀이 흐르건 말건, 피부가 짓무르건 말건 간에 말이죠.
두 번째는 겉으로 깔끔해 보이는 그러한 작업장을 클린 룸(CR)이라 하는데, 여기서 클린이라는 의미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먼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즉 먼지는 통제하지만 가스와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보호가 안 되는 거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어떠한 위험을 가지고 있을지조차 잘 파악이 안 되는 화학물질집약산업입니다. 눈에 쉽사리 보이지 않는 위험한 액체나 유독가스는 전혀 방어가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클린 룸이라는 것은 다만 먼지가 없다는 것일 뿐 위험으로부터 클린 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방사성 물질 발생장치도 곳곳에 있고 말이죠. 그러니 미국에서 이러한 위험을 먼저 인지했던 분들은 "clean"이라고 써놓고 "not safe"라고 읽어요.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맞죠.
김대현 : 그렇다면 어떠한 유형들의 질병들이 주로 발생하게 됩니까?
공유정옥 : 제보자들 160여 명 중 대부분이 암이에요. 대표적으로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 가장 제보가 많이 왔어요. 유방암. 난소암 등이 그렇죠. 피부암도 제보가 많이 들어오는데 자외선이나 X선 많이 쐬어서 그런 듯해요. 뇌암, 뇌종양도 있고, 드물게 위암, 대장암 같은 경우도 있고요. 여기에 더해서 자가면역질환, 루게릭병, 뇌의 여러 부분이 딱딱해지면서 뇌의 기능을 상실하는 다발성 경화증 같은 희귀병들이 발생해요.
김대현 : 그렇군요. 어떤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에 국민적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할 정도로 삼성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은 기업입니다. 그런데 왜 삼성에서는 산재를 인정 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공유정옥 : 정확히 말하면 산재를 인정하는 주체는 정부에요. 그런데 정부가 판단하기가 어려우니까 외부기관에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해요. 이런 식으로 결국 역학조사를 다른 정부기관(산업안전공단)에 의뢰해요. 그러면 거기에서 전문가들을 불러 역학조사 평가 위원회(민간)를 열고, 그 결과를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기면 또 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민간)를 거치는 등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통하게 되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삼성은 모든 단계를 전부 참가하지만, 노동자의 참가는 어려워요.
아무리 요청해도 (참여가) 잘 안되고, 아주 세게 요구하지 않으면 한 단계에 참가하기도 어렵죠. 사실은 (심사단계에서) 회사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결국 심사단계에서 회사의 주장만 들어가는 경우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리하면 첫째로 산재 인정절차가 복잡하거나 장기화 되어있고, 둘째로 산재피해자인 노동자는 불편한 몸으로 조사단계에 참여도 어렵지만, 회사는 조사단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죠. 게다가 세 번째는 제일 큰 문제인데 복잡한 절차로 인하여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클린기업이니깐 책임 없어도 도의적으로 해준다?”
김대현 : 피해 이후 보상차원에서 볼 때 삼성 뿐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네요.
공유정옥 : 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 노동자 뿐 아니라 대체로 직업병 인정에 박하다는 평이 많아요. 산재보험조정이 어렵다는 핑계였는데. 지금은 1조 원 넘게 흑자를 보면서도 그러죠. 산재보험이라는 것이 사회보험의 성격을 가지니까 보험재정이 모자라면 (많은 흑자를 기록하는) 사업자한테 더 걷거나, 정부의 지원을 더 받거나 해서 아픈 사람들, 병든 사람들 치료받게 해야 하는데, 재정이 취약해졌다고 하니까 지출을 줄이는 거죠. 사실 근로복지공단의 악명은 오래된 일이고 거기에 더해서 삼성까지 엮이니까 여기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이 다 쩔쩔맸던 거죠.
김대현 : 근로복지공단이 비협조적이라면 삼성 자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어서 인정하면 안 되는 건가요? 본인들은 스스로를 일등기업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미지도 좋을 텐데요. 혹시 인정하면 삼성에 불이익이라도 가는 것일까요?
공유정옥 : 두 가지가 있는데요. 주겠다는 것은 있어요. 그게 하나는 위로금인데, 위로금을 주려는 까닭은 처음에는 (삼성이) 침묵했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영향력 있는 피해자들에게 산재를 포기하면 돈을 주겠다고 접근해왔어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처음으로 공식발표하면서 퇴직한 직원들에게도 주겠다고 발표했어요. 2010년에 박지연 씨가 '반도체 소녀'로 알려지면서 스물두 살에 사망하고 이슈가 되니까, 그 해 4월에 사장이 기자들을 불러서 약속을 해요. '투명한 조사를 하겠다. 연구소를 만들겠다, 지원을 하겠다' 그런 식으로 말이죠.
앞의 두 개는 어쨌든 했는데 지원에 대해서는 1년 동안 아무 조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보다 못한) 노동부가 (삼성에게) '그것 좀 해야지' 하는 식으로 해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작년 8월에 발표한 게 몇 가지 조건에 맞으면 최대 1억 원까지 실비보장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그냥 생색내는 거죠. 해당자가 많지 않아요.
김대현 : 자기들은 잘못이 없는데, 도의적으로 해준다 그런 의미란 겁니까?
▲ ⓒ프레시안(손문상) |
김대현 : 다시 책임 문제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피해 노동자 입장에서 반도체 공정과 산재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텐데요.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반올림'같은 조력자가 필요한데, 삼성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사를 잘 받아주는 편입니까?
공유정옥 : 예전에 황유미 씨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황상기)를 들어가게는 해줬어요. 그 이후에 다른 건, 즉 취재 같은 게 있을 때, 피해자가 추천하는 전문가 참관인 한 명 정도는 들어가게 해줬어요. 딱 그 정도에요. 이번에 삼성이 2년 정도 심층조사를 했는데, 자기들이 미국에서 고용한 컨설팅 회사(인바이런 社)를 불러 그냥 자기들끼리 하고, '반올림'이나 피해당사자들을 안 부르는 거죠. 그러니까 자체 조사하는 거에도 저희들을 안 부르는 건 당연하고요, 이런 문제를 풀 때에는 구색이라도 갖춰야 하는데 그런 기본 개념이 없고요. 정부가 조사할 때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한 번 들어오게 하는 정도인데, 어떤 조사든 현장 조사할 때 한 번 따라간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화학물질이 이름표 달고 나(유해물질이에요)에요 하는 것도 아니고요.(웃음) 언제 어디서 뭘 들고 가서 조사를 할 건지 알아야 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안되죠.
김대현 : 이런 것을 보면 산업정보에 대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겠네요.
공유정옥 : 제도 개선도 필요하고, 기업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실은 정보공개에 관한 법이 있기는 해요. 저희가 더 분노했던 것은 정부 때문인데, 2008년 말 2009년 초에 노동부에서 조사를 했어요. 6개 반도체 회사들 요청해서 상용 중인 화학물질에 대한 것을요. (회사들이 얼마만큼 답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저희가 노동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영업비밀이라 못 주겠다 그래요. 그래서 저희가 면담에서 양보해서, 여러 회사가 내어놓았으니까, 그 회사들이 사용하는 성분 전부 섞어서 알파벳순으로 그냥 화학물질 이름만 알려 달라 했어요. 반도체 공정은 배합비, 성분비, 순서, 처리시간이 중요한 것이고 재료물질은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듣고 일리가 있었는지 알려준다는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2009년에 이메일이 왔어요. 왜 안주냐 했더니 국제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일각'의 의견이 있어서 못 주겠다는 거예요. 실은 그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법률 위반이에요. 그렇게 하니까.
김대현 : 국제분쟁이라는 요건이 없는 건가요?
공유정옥 : 없죠. 왜냐면 저희가 이의신청을 하고 행정소송을 하면 저희가 보기엔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다만 저희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거죠. 힘이 없고, (인력부족에 다른 피해소송도 많아서) 그거 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괘씸한 거죠. 법에 의하면 영업 비밀을 공공기관이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있기는 해요. 하지만 단서조항에 의하면 공익이나 건강 안전은 예외로 한다는 거죠. 이게 딱 그 사안이잖아요. 그런데 일단 법을 어기고 있는 거죠. 그래놓고 시간 나고 돈 남으면 소송해라 이거죠. 정부가 법을 어겨놓고 나서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때리는 시어머니도 밉고, 말리는 시누이도 밉고 그런 거죠.(웃음)
“최소한의 제도마저도 흔들고 있다”
김대현 : 그럼 행정부는 그렇다 치고 사법부는 어떤 태도인가요? 판례에 의하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업무와 질병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 그 입증이 있다는 식으로 입증책임을 완화시켜주는 데 실제 적용이 되는 편입니까?
공유정옥 : 과로사와 같은 경우는 조금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법원에서 질문하신 판례와 같은 취지로 해준 적도 있고 하지만 안 해준 적도 있고, 하여간 일관되게 평가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반도체 백혈병이나 암 같은 경우는 황유미 씨가 최초라서 비교할 전례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바뀌게 되는 사법제도의 한계죠. (구분해서 문제를 정리해보면)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는 데, 먼저 산재법 자체의 문제인데, 2007년에 개정될 때 '개인질환임을 반증할 수 없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문구를 쥐고 (피해 노동자들이) 싸울 수 있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개악이 되면서 그 문구가 삭제되었어요. 그 때 산재법 개악, FTA,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총파업, 총궐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다 묻혔죠. 산재법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일부 좋은 내용들을 몇 개 다른데다 놓고, 요 문구가 빠지면서, (노동계에서는) 반대해야 한다 이렇게는 개혁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는데,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다 찬성했어요. 국회의원 거의가 다 했죠. 그 만큼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진보적 정당에서도 부족했었다는 거죠.
김대현 :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았단 얘기겠네요.
공유정옥 : 읽어봐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거지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투쟁을 하고 근로조건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우던 사람들이 다 외면당할 때니까…. 두 번째로는 사법부 판단과 관련해서 말씀하셨듯이 명백한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인정해주는 것이 법의 취지가 맞거든요. 이게 행정소송에 가서 설령 100% 이긴다고 해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소송에서 지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애초에 소송에서 이길 정도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거든요. 행정소송에서 노동자가 정부를 상대로 자주 이긴다는 이야기는 정부가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고질적인 과로사 문제, 암 문제, 희귀질환 문제들은 아예 소송을 가지 않게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거죠. 또 사법부의 문제와 관련하여 세 번째는 삼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삼성이 왜 문제냐면 삼성이 노동자와 정부의 소송에 끼어들기 때문이죠. 정부와 노동자의 소송, 즉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인데 삼성이 피고 측 보조참가로 삼성의 변호사들이 들어와요. 자기들은 정당한 권리라고 들어와요. 정당한 권리는 맞죠. 하지만 반 인권적이죠. (삼성이 참여하지 않아도, 노동자와 정부의 소송만으로도 노동자가 약자인데 삼성이 참여하면서 더욱 이기기 어렵다는 의미). 이런 형태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취지를 무너뜨리는 거죠. 그저 노동자들이 먹고 건강하게 살기만이라도 하려는 이런 최소한의 제도마저 흔들고 있는 거죠.
김대현 : 그렇다면 소송이 진행되는 중간 과정에서 병원비나 생계비, 치료비도 상당히 필요할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가처분 같은 그런 제도들도 없습니까?
공유정옥 : 없고요. 퇴사 전에 병이 확인된 사람은 퇴사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돈을 지급했대요. 그런데 그 돈을 주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퇴사시키는 거죠. 그리고 입을 싹 닦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병들이 길게 싸워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다들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걸리죠. 몇 천에서 1~2억 정도 쓰는 거예요. 부모님 평생 모은 돈, 자기가 노력해서 모은 돈 다 쓰고도 모자라니까 빚지고, 돌아가시고. 더 문제는 만성 희귀병으로 장기간 투병해야 하는 분들이에요. 일도 못하고 우리나라 사회복지의료가 저열하다 보니, 더욱 힘들죠. 진짜 아닌 말로 몇몇 분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눈물). 참 답답한 거죠. 사회연대제도가 있으면 당연히 해결 될 문제인데….
▲ ⓒ프레시안(여정민) |
김대현 :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데, 삼성과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크잖아요. 언론이나 혹시 피해자들의 직장 동료들의 협조 같은 것은 없나요?
공유정옥 : 어렵죠. 가슴 아픈 일도 몇 개 있었어요. 초창기 '반올림'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제보자가 있었어요. 4명이 팀으로 된 조직의 막내 분이었는데, 고(故) 황유미 씨와 동일한 공정 옆 라인이었어요. 유미 씨는 3라인이고, 이 분들은 7라인 엔지니어 팀이었어요. 부장님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고, 차장은 30대에 흑색종이라는 피부암에 걸려 돌아가셨고, 과장은 육아종이란 베게너 씨 병이라는 진짜 희귀한 병에 걸려 평생 치료받아야 하는 분들이었죠, 막내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어요. 진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다음에 이분이 나중에 국정감사 때 회사 쪽 참고인으로 나와 아무 문제없고, 깨끗하다고 주장했어요. 저희는 그때 그분이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어요.
“삼성, 3대 세습도 똑같고 언로 막힌 것도 똑같다”
김대현 : 만일 노조가 있다면 저런 문제가 적을 텐데, 삼성은 지금 노조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고 하니 도저히 답이 없는 문제 같네요.
공유정옥 : 정말 어디랑 똑같죠. 3대 세습도 똑같고 언로도 막힌 것도 그렇죠.
김대현 : 마치 영혼의 샴쌍둥이 같네요.(웃음) 하여간 '반올림'의 투쟁성과는 피해자들의 구제와 명예회복에도 있지만, 후속 노동자들의 안전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를 삼성에서 반영하고 있는지요?
공유정옥 : 개선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려도 있습니다. 우선 개선된 것은 저희가 삼성만이 아니라 다른 반도체 회사에서도 제보를 받아요. 2009년부터 그런 변화들이 많이 있었나 봐요.
김대현 : 그러면 다른 반도체 회사들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네요? 해외도 비슷합니까?
공유정옥 : 네. 그러니까 이런 반도체 회사들이 가는 곳마다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지요. 그러면서 문제가 터지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그러는 거죠. 삼성 같은 데도 예전과는 다르다, 깨끗하게 한다 믿어달라고 하는데 믿어주고 싶어요. 다만 산재의 경우는 (사업주가) 못 한다의 문제가 아닌데, 자꾸 자기들은 우리는 세계 일류다, 깨끗하다고만 말하는 게 답답한 거죠. 그저 삼성의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근무하다 피해를 입은 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되는 문제인데 말이죠. 세계 일등이라도 틀릴 수가 있는 거잖아요. 삼성에서는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요.
또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문제가 외부화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피해노동자 중에 설비 엔지니어 고(故) 황민웅 씨가 있어요. 생산설비 자체를 씻고 고장 난 걸 수리하고, 사고가 나면 수습하는 일을 하는 건 데, 위험한 물질에 자주 노출되는 거죠. 이 분이 행정소송에서 진 이유가, '유해할 거 같긴 하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한 건 아닌 거 같다'에요. 왜냐하면 회사가 95년부터 이 일을 협력업체를 시켰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 황민웅 씨가 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것도 말이 안 되지만, 하여간 황민웅 씨와 별개로, 그렇다면 협력업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라는 거죠.
김대현 : 정말 그런 문제가 있겠군요.
공유정옥 : 또 한혜경 씨가 있는데 이분은 LCD 공정에서 납땜 일을 하다 뇌종양에 걸렸어요. 그래서 현장조사를 하러 갔는데, 일했던 라인이 다른 회사에 팔린 거예요. 그 공정 자체를 위험하니까 떼어서 다른 회사로 판매된 거죠. 그 회사도 또 다른 데다 판 거고요. 점차 작은 데로 내려가는 거죠. 즉 위험한 작업들이 그렇게 외부화 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올해 초에 삼성이 중국에 반도체 공장 짓는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위험이) 중국으로 가는 거죠. 미국에서 동유럽, 아시아. 이렇게 오다가 한국에 온 것처럼 중국으로 가는 거죠. 이렇게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위험이 도는 거죠.
김대현 : 말하자면 폭탄 돌리기와 같군요.
공유정옥 : 그렇습니다. 폭탄 돌리기죠.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이 되죠. 개선이라기보다 그냥 안 보이는 데로 치우는 거죠. 사실 원진레이온도 동일한 과정이었어요. 미국, 독일, 시작되다가 일본에 넘기고 일본에서 사람들 죽고, 다시 한국에 왔다가 우리나라에서 문제 생기고, 지금 그게 중국에서 돌아가고 있거든요. 20년 동안(웃음). 이게 기본적으로 백혈병 문제, 삼성 문제를 넘어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거죠. 그것이 삼성이라는 기업과, 공정하지 못한 정권이 가미되어 있긴 한데, 사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이런 문제를 깔고 있는 것이고 그 문제가 지금 터지고 있는 거죠.
김대현 : 말씀을 듣다보니 정말 갑갑하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반올림' 활동 방향이 다른 산재노동자들까지 합치거나 그런 식으로 운동이 확장 될 가능성이 있나요?
공유정옥 : 다른 산업까지 가진 않을 것 같고요. '반올림'은 세 가지 정도의 목표가 있는데, 하나가 전자산업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집중해서, 노조라든가, 노조가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자주조직화, 결사의 자유를 강화할 수 있도록 갔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는 삼성에 맞서는 싸움을 얘기 안할 수 없는데, 전자가 삼성의 큰 부분이니까, 저희가 실제로 삼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없지만 삼성 노동자들의 신앙심에 파문을 던지고 있어요. 벽을 깨지는 못했지만 삼성의 거짓된 신화를 벗기는 데 일조를 했으면 해요.
그 안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거나, 개인적으로 싸우는 삼성 노동자들에게 '반올림'이 힘이 되고 싶어요. 기왕에 투쟁해왔던 사람들보다 '반올림'이 기존조직과 달리 조금 유연해보이잖아요.(웃음) 그러니 저희가 귀담아 들을 테니 여러 제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것들이 저희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고,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삼성 노동자들에게 돌려드릴 것들이 생기거든요. 세 번째는 (위험이 외부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국제 연대를 통해 앞으로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할 노력이 필요하겠죠.
“제일 힘든 건 고통을 자꾸 뜯어내야 하는 것”
김대현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린다면 이런 일을 하시다가 힘이 든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으신가요?
공유정옥 : 힘들죠. 이기기 어려운 점이 힘든 것도 있지만, 작은 승리에 많이 기뻐하려고 애를 써요. 말씀하셨듯이 거대한 구조를 보면 답답하죠. 하지만 이것은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제일 힘이 드는 건 피해자들을 만날 때에요. 그냥 인간으로서 힘들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죽어가고, 남겨진 가족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들지만, 사실은, 잘 전달될까 모르겠지만…. 싸움이 아직 치유하는 과정까지 나가지 못한다는 반성이 많이 들어요. 오래 걸리는 싸움이라 피해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치유되고 그래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그때의 고통을 자꾸 뜯어내야 되잖아요. 내 딸이 죽고, 내 남편을 간병하면서 느꼈던 그런 것들, 슬픔이 희석되면서 잊혀져가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자꾸 '잊지말자 잊지말자' 해야 하니까. 좀 그럴 때는 뭐랄까 안 할 수는 없는데 참 많이 힘들죠.(눈물)
김대현 : 개인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문제들이 힘이 든다는 말씀 같습니다.
공유정옥 : 그렇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동정심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오래 싸우는 동지들이 다치니까… 마음을 다치니까… 지켜야 되는 소중한 동지들이, 싸움 자체 때문에 치유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 참 마음이 답답해요.
김대현 : 그래도 그런 희생들 때문에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위로를 해야겠네요. 다음은 상투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보람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공유정옥 : 보람 있고 기쁜 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데…. 그러니까 하겠죠?
김대현 : 국제 산업안전보건상 수상하셨는데…
공유정옥 : 그것은 그분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신 것 같아요. 일상적인 연대는 아니겠지만, 처음에 '반올림' 시작할 때, 국내에서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을 때,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20~30년 전에 겪었던 동지들, 미국이나 영국의 분들. 그분들에게 격려를 받았고. 사실 그분들은 저희에게 부채감을 느끼는 거죠. 자기들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김대현 : 그렇군요. 정말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그럼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유정옥 : 감사합니다.
처음 공유정옥 연구원에 대한 인터뷰 부탁을 받았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여러 조사를 하다 보니 그만 우울해지고 말았다. 이는 삼성에서 근무하다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만이 아니라, 희생자들이 무수히 발생하지만 가해자를 지목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울적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공유정옥 전문의와의 만남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세상은 타인의 아픔에 무감하면 할수록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가끔 타인의 아파하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 공유정옥은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아직도 의술이 인술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온몸으로 증거 하는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현 한국사회의 환후를 드러내는 진단서다.
출처 "삼성과의 싸움? 힘들죠. 죽어가고 슬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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