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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마담이 ‘청와대 행정관 술접대’ 진정 낸 까닭

룸살롱 마담이 ‘청와대 행정관 술접대’ 진정 낸 까닭
술값 수천만원 못 받자 사채 빌려 대신 메워
두 번이나 자살 기도

[경향신문] 구교형 기자 | 입력 : 2012-03-05 03:00:00


서울 강남의 유명 룸살롱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김모씨(29)는 최근 두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응급실로 옮겨져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는 청와대 행정관과 현직 경찰이 낀 술자리를 만든 부동산 임대업자 최모씨(46)를 상대로 “수천만원 상당의 외상값을 달라”며 경찰에 고소했다. 이어 무혐의 처분이 나자 “편파수사를 당했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과연 김씨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김씨는 지난해 7월 지인의 소개로 최씨를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최씨는 같은해 9월까지 모두 9차례 룸살롱을 찾았다. 이 중 몇 번은 청와대 행정관 구모씨(40)와 경찰관 민모씨(49·경위)를 술자리에 불러냈다. 최씨 일행은 저녁 8시쯤 모인 뒤 17년산 양주 3~4병과 맥주 10~20병을 마셨다. 일부 외상을 달았지만 함께 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업계에서 ‘텐프로’라고 부르는 고급 룸살롱이다. 보통 3~4명이 술을 마실 경우 300만~400만원가량 비용이 나온다. 이 룸살롱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사전 모의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실 수행비서 김모씨와 최구식 전 한나라당 의원 비서였던 공모씨가 찾았던 곳이다. 술값은 크게 술과 안주 가격인 주대와 여종업원 봉사료로 나뉜다. 김씨처럼 손님을 끌어오는 실장은 주대의 35~45%를 이익금으로 가져간다. 김씨는 고소장에서 최씨가 여종업원 봉사료를 대부분 계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종업원 봉사료는 김씨의 개인 수입과 아무 관련이 없다. 여종업원 1명을 부르는 데 2시간 기준으로 12만원의 봉사료를 내야 한다. 일단 최씨가 지불하지 않은 봉사료는 업주가 대신 냈다. 이 돈이 한 달 넘게 밀리자 업주와 담당 전무가 김씨를 압박해왔다.

김씨는 결국 연이율 100%가 넘는 사채를 빌려 외상값의 일부를 갚았다. 하지만 업주는 14일 내로 모든 돈을 갚겠다는 내용의 지불각서를 쓰게 했다. 이후 변제가 계속 늦어지자 룸살롱 전무와 사채업자는 하루 평균 50여통씩 독촉 전화를 걸어왔다.

고심 끝에 김씨는 술자리에 동석했던 청와대 행정관인 구씨와 현직 경찰인 민씨에게 전화를 걸어 외상값을 갚아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왜 외상값을 줘야 하느냐. 최씨에게 전화해서 해결하라”고 핀잔을 줬다. 최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건달을 시켜 룸살롱 전무에게 항의 전화를 걸게 했다.

김씨는 더 이상 룸살롱에서 일할 수 없게 됐다. 두 달간 월세가 밀리면서 보증금도 찾지 못한 채 방을 빼야 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수서경찰서를 찾아가 최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최씨의 주소지가 있는 서울 용산경찰서로 이첩된 채 처리가 지연됐다.

지난 1월 김씨는 용산경찰서에 처음 출석해 최씨와 대질신문을 했다. 그런데 조사를 맡은 경찰관은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 마담’이라고 불렀다. 김씨는 참고 조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났다. 김씨는 경찰의 편파수사 정황을 정리해 최근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김씨는 진정서에서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대놓고 무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잘난 사람들이 아가씨 품에 안겨 마시고 계산하지 않은 수천만원의 술값 때문에 나는 빚쟁이가 됐다. 월세도 밀려 이 추운 겨울에 거리로 쫓겨났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행정관과 강력계 형사 등이 힘없고 빽없는 ‘술집 마담’에게 와서 무시하고 욕하고 폼 잡는 것만도 서럽다. 그러면서도 경찰에서 대질할 날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자기들끼리 내통해서 짜고 치는 게임에 다시 한번 바보가 됐다”고 적었다.


출처 : 룸살롱 마담이 ‘청와대 행정관 술접대’ 진정 낸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