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변호인’ 흠집내기, 조선일보의 컴플렉스
‘좌파 문화계’때문? MB정부 ‘문화균형 전략’ 못봤나…흠집 보단 원인 찾아야
[미디어오늘] 정상근 기자 | 입력 : 2014-01-20 15:27:27 | 노출 : 2014.01.20 16:11:26
영화 ‘변호인’이 19일 천만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서는 9번째다. ‘천만영화’는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술적으로도 국민 5명 중 1명이 이 영화를 봤다는 의미로 이는 일종의 문화현상이다. 이 때문에 언론들도 천만 관객이 넘는 영화가 등장하면 그 현상의 배경을 찾는다. 직전 천만 돌파 영화인 ‘7번방의 선물’도 그랬다.
19일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했으니, 20일 주요 일간지에서는 이 소식을 다루었다. 조선일보의 역시 마찬가지나, 그 표정은 다른 언론과 다르다. 조선일보는 20일자 14면 <“사실 비틀고 미화”…부림사건 판·검사, 영화 ‘변호인’을 반박하다> 기사를 통해 ‘변호인’과 관련된 소식을 전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인터넷판에 12일 고영주 당시 부림사건 수사검사를 인터뷰 해 “‘변호인’이 엉터리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위의 20일자 기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선일보는 ‘변호인’이 천만을 넘은 가운데 ‘변호인’에 나온 부림사건 관련 내용들을 당시 판·검사 인터뷰를 통해 반박했다.
또한 이날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은 <보수가 주목해야 할 ‘변호인’> 칼럼을 통해 ‘변호인’의 흥행배경이 좌파 담론에 지배당한 문화예술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변호인’ 흥행 배경을 이념과 선동으로 채색하고 그 성공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림사건은 영장 없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회사원 등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검사, 판사들은 이들에게 직접 고문을 가하진 않았지만 고문의 흔적을 외면하는 등 국가폭력에 가담했다. 조선일보는 그들을 인터뷰 해 영화 ‘변호인’에서 다룬 일부 허구적 내용을 부각하며 그들의 말만을 사실처럼 포장했다.
부림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최병국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관련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고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이 혁명투사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며 “영화에서는 검찰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으로 매도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이를 읽고 사상학습을 한 부분을 기소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고영주 당시 수사검사도 “핵심 피의자였던 이상록씨는 되레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었다”며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사건’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석구 당시 판사, 최병국 검사, 고영주 검사들 모두 “(변호인은) 특정인을 미화하기 위한 뻔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림사건 당시 고문 피해자인 고호석씨는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고영주 검사가 ‘검사 심판’ 운운했다고 주장하던 이상록씨의 담당검사는 최병국이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혐의 입증에 핵심 진술이 될 수 있는 해당 부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극적요소가 필요하고 어느 부분에선 허구가 들어갈 수 있다. 영화 변호인도 앞부분에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허구’라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고문이라는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자와 이를 접한 한 변호사의 변화라는 영화의 본 주제 보다 이들을 인터뷰 하면서 허구적 요소를 부풀리거나 심지어 일방적으로 그들의 진술을 통해 부림사건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
이하원 정치부 차장은 변호인을 바라보는 조선일보 혹은 일부 보수세력의 불편한 심경을 잘 대변한다. 이 차장은 위 칼럼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일부 보수 성향 인사들의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며 “그(노무현 전 대통령)가 ‘부활’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이야 일부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니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쳐도 이 차장은 “영화 ‘변호인’은 좌파 또는 진보 세력의 담론이 지배하는 곳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거부 사태로 드러난 교육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심각해 보인다. 이것이 “진보 진영이 꾸준히 진지를 구축한 결과”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파 진영에서 영구집권을 위해 문화계를 ‘좌파’로 몰아붙이고 정권 차원의 압력을 가해 대중문화를 지배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지난 2008년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문화계 기관장들을 내쳤으며 김제동씨, 윤도현씨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이는 2012년 7월 청와대의 ‘문화균형 전략’이란 문건을 통해 공개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장은 여전히 대중문화계가 ‘좌파에 경도’된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상업영화도 ‘좌파’라고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장은 “‘변호인’ 성공에 고무된 일부 진보 성향 영화인들이 19대 대선이 실시되는 2017년 달력을 놓고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열심히 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까지 말한다.
조선일보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로 참패를 면치 못하자 ‘좌파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변호인’이 천만이 넘자 이번에는 ‘좌파에 경도된 문화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교과서를, 영화 내용을 흠집내는데 매몰되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것보다는 우파가 왜 교과서를 그렇게 밖에 못 만드는지, 영화는 왜 그렇게 흥행을 못하게 만드는지부터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출처 : 천만관객 ‘변호인’ 흠집내기, 조선일보의 컴플렉스
‘좌파 문화계’때문? MB정부 ‘문화균형 전략’ 못봤나…흠집 보단 원인 찾아야
[미디어오늘] 정상근 기자 | 입력 : 2014-01-20 15:27:27 | 노출 : 2014.01.20 16:11:26
영화 ‘변호인’이 19일 천만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서는 9번째다. ‘천만영화’는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술적으로도 국민 5명 중 1명이 이 영화를 봤다는 의미로 이는 일종의 문화현상이다. 이 때문에 언론들도 천만 관객이 넘는 영화가 등장하면 그 현상의 배경을 찾는다. 직전 천만 돌파 영화인 ‘7번방의 선물’도 그랬다.
19일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했으니, 20일 주요 일간지에서는 이 소식을 다루었다. 조선일보의 역시 마찬가지나, 그 표정은 다른 언론과 다르다. 조선일보는 20일자 14면 <“사실 비틀고 미화”…부림사건 판·검사, 영화 ‘변호인’을 반박하다> 기사를 통해 ‘변호인’과 관련된 소식을 전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인터넷판에 12일 고영주 당시 부림사건 수사검사를 인터뷰 해 “‘변호인’이 엉터리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위의 20일자 기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선일보는 ‘변호인’이 천만을 넘은 가운데 ‘변호인’에 나온 부림사건 관련 내용들을 당시 판·검사 인터뷰를 통해 반박했다.
▲ 변호인 포스터 |
또한 이날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은 <보수가 주목해야 할 ‘변호인’> 칼럼을 통해 ‘변호인’의 흥행배경이 좌파 담론에 지배당한 문화예술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변호인’ 흥행 배경을 이념과 선동으로 채색하고 그 성공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림사건은 영장 없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회사원 등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검사, 판사들은 이들에게 직접 고문을 가하진 않았지만 고문의 흔적을 외면하는 등 국가폭력에 가담했다. 조선일보는 그들을 인터뷰 해 영화 ‘변호인’에서 다룬 일부 허구적 내용을 부각하며 그들의 말만을 사실처럼 포장했다.
부림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최병국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관련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고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이 혁명투사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며 “영화에서는 검찰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으로 매도한 것처럼 그려졌지만, 이를 읽고 사상학습을 한 부분을 기소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1월 20일자. 14면. |
또한 고영주 당시 수사검사도 “핵심 피의자였던 이상록씨는 되레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었다”며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의식화 교육사건’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석구 당시 판사, 최병국 검사, 고영주 검사들 모두 “(변호인은) 특정인을 미화하기 위한 뻔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림사건 당시 고문 피해자인 고호석씨는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고영주 검사가 ‘검사 심판’ 운운했다고 주장하던 이상록씨의 담당검사는 최병국이었으며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혐의 입증에 핵심 진술이 될 수 있는 해당 부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극적요소가 필요하고 어느 부분에선 허구가 들어갈 수 있다. 영화 변호인도 앞부분에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허구’라고 못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고문이라는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자와 이를 접한 한 변호사의 변화라는 영화의 본 주제 보다 이들을 인터뷰 하면서 허구적 요소를 부풀리거나 심지어 일방적으로 그들의 진술을 통해 부림사건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
▲ 조선일보 1월 20일자. 35면. |
이하원 정치부 차장은 변호인을 바라보는 조선일보 혹은 일부 보수세력의 불편한 심경을 잘 대변한다. 이 차장은 위 칼럼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일부 보수 성향 인사들의 심경은 복잡해 보인다”며 “그(노무현 전 대통령)가 ‘부활’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이야 일부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니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쳐도 이 차장은 “영화 ‘변호인’은 좌파 또는 진보 세력의 담론이 지배하는 곳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거부 사태로 드러난 교육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심각해 보인다. 이것이 “진보 진영이 꾸준히 진지를 구축한 결과”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우파 진영에서 영구집권을 위해 문화계를 ‘좌파’로 몰아붙이고 정권 차원의 압력을 가해 대중문화를 지배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지난 2008년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문화계 기관장들을 내쳤으며 김제동씨, 윤도현씨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이는 2012년 7월 청와대의 ‘문화균형 전략’이란 문건을 통해 공개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장은 여전히 대중문화계가 ‘좌파에 경도’된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상업영화도 ‘좌파’라고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장은 “‘변호인’ 성공에 고무된 일부 진보 성향 영화인들이 19대 대선이 실시되는 2017년 달력을 놓고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열심히 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까지 말한다.
조선일보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로 참패를 면치 못하자 ‘좌파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변호인’이 천만이 넘자 이번에는 ‘좌파에 경도된 문화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른 교과서를, 영화 내용을 흠집내는데 매몰되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것보다는 우파가 왜 교과서를 그렇게 밖에 못 만드는지, 영화는 왜 그렇게 흥행을 못하게 만드는지부터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출처 : 천만관객 ‘변호인’ 흠집내기, 조선일보의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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