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청와대 전에 꼭 이곳을 찾으십시오
[편지] 밀양, 강정마을, 대한문... '억압받는 사람들'을 만나주세요
[오마이뉴스] 조정 | 14.03.15 21:08 | 최종 업데이트 14.03.16 12:10
교황님, 로마의 날씨는 어떤가요? 저희 집 마당에는 수선화와 둥굴레 새순이 솟았습니다. 땅이 보내는 소식입니다. 이 무렵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립니다. 따스해진 햇살과 솟아나는 새순을 보며 옷을 얇게 입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저녁 뉴스 앵커들도 자주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곤 합니다. 교황님께서도 감기에 걸리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황님, 저는 교황님의 8월 방한 소식을 봄소식처럼 반가워했던 한국의 시인입니다. 취임 후 1년 동안 교황님께서 보여주신 사제적 의지에 무척 공감하고 큰 갈채를 보내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신임 추기경이 교황님의 의지에 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실 때는, 제가 알고 있는 '사제적 의지'에 대한 원칙이 순간 헛갈리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중순, 로마에 갔습니다. 여느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바티칸 입장권을 샀고, 오후에는 베드로 대성당의 돔까지 헉헉거리며 올라갔습니다. 돔을 빙 돌며 내려다본 로마는 퍽 아름다웠습니다.
<술 취한 노파>의 비애
하지만 마음이 좀 쓸쓸해졌습니다. 오랫동안 나지막하게 자기 키를 유지하고 있는 로마가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오래된 도시들이 있지만, 기품 있는 집과 골목 그리고 나무들은 큰길과 고층건물들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맑은 바다와 산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데, 쉽지 않습니다.
교황님, 제게 로마 여행은 오래된 꿈이었습니다. 꿈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늦가을 보르게세 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보르게세 공원에 갔고, 미술관에 가서 <아폴로와 다프네> <플루토와 페르세포네>를 봤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 보았던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카피톨리니 미술관에서 본 <술 취한 노파>였습니다. 술병을 끌어안은 노파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무릎과 술병에는 비애가 가득 차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그녀의 웃음은 기도 같기도, 원망 같기도 했습니다.
교황님. 수많은 그림과 조각 덕분에 저의 로마 여행은 '압도당함'이라는 말로 축약됐습니다.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교황님의 8월 한국 여행도 복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교황님의 방문이 저희에게 실제적인 복이 되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에게 뭔가 받으려는 태도는 매우 무례한 것이지만, 사제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용납되리라 믿습니다.
"교황님, 밀양과 강정에 가주세요"
교황님께 편지를 쓰기 전,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황님께 편지를 씁니다, 교황님께 바라는 게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라고. 제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를 선생님께 이르는 것처럼 교황님께 우리 사정을 일러야 하는 건가. 교황님이 우리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줄까?"(가장 긴 글을 남긴 조아무개님)
"교황님,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청와대 비우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세요."(현 정부에 잔뜩 화가 나 있는 배아무개·이아무개님)
"추기경…, 다시 뽑아주세요."(차아무개님)
"밀양 할매들과 강정 주민들에게 가 주세요. 안 되면 한 곳이라도."(신아무개님)
"정치적인 것은 제쳐놓고 북한에 좀 가주세요. 교황님이 가시기만 해도 북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예요."(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아무개님)
"먼저 청와대로 가지 마시고…, 꼭! 제주도 강정에 먼저 가셔서 교황님의 평소 의지를 보여주세요."(늘 마음이 가난하고 아픈 김아무개님)
해양생태 과학자인 황아무개님은 "교황님께 전해주세요, 문 열어달라고…"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고, 제주교구 염미카엘라님은 "교황님, 사랑해요"라는 고백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주도를 또다시 전쟁 제물로 내줘선 안 됩니다
교황님께서는 제 친구들이 전하는 말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솔로몬왕 이후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처럼, 한국과 북한은 한 민족이면서 60년이 넘도록 분단돼 있습니다. '김씨 왕조'가 된 북한에서는 주민 대부분이 인간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형제자매인 저희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남쪽 한국에서는 상위 1%를 위한 부의 재편성이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초법적인 존재가 되려는 부자와 권력자들은 동북아 패권다툼에 영토 일부분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내주고 있습니다. 그곳이 제주도 강정마을입니다.
교황님. 세상은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먹이사슬과 같다지요.
저희가 믿고 의지하는 황금률은 저희 자신의 존귀함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속한 사람도 함부로 해직당하거나, 돈이 없어서 학교나 병원에서 내쫓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농사지을 땅과 바다와 마을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열강의 동북아 패권다툼의 희생양으로 살아왔습니다. 미국의 묵인하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동서 냉전의 인질로 민족이 나누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동족 간 처참한 전쟁이 치러졌고, 강대국의 요구를 뿌리칠 힘이 없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수많은 생명을 내줬습니다.
오늘 밤에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제주도 해군기지 야간공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나 다름없습니다. 제주도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전진기지로 수탈당했고, 미군의 좌익척결 정책에 의해 3만여 도민이 학살당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제주도를 다시 전쟁의 제물로 내줘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교황님, 저희는 제주도가 동북아 분쟁의 비무장평화지대 (DMZ)가 되기를 원합니다. 전쟁기지나 외국 군인들을 위로하는 유흥가 대신 유엔 평화대학과 같은 각종 평화기구들이 제주도에 세워지길 바랍니다. 제주 남쪽 바다를 둘러싼 한국·중국·일본·대만이 전쟁 대신, 평화로운 외교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전쟁을 거부하는 저희의 꿈과 평화적 저항에 힘을 보태주시기 희망합니다.
한국의 '버림받은 사람들'을 만나주세요
지난해 여행 당시 피렌체의 아카데미아와 우피치 미술관을 보고 로마로 돌아온 다음날은 마침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함께했습니다. 교황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뵐 수는 없었으므로 피켓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교황님의 창문에서 가장 잘 보일 법한 곳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저는 피켓에 이렇게 적어놨습니다.
'철수하라! 제주 해군기지. 교황님은 평화의 메신저십니다. 우리 곤경을 도와주세요.'
제 호소는 교황님이 나오시기 직전, 경찰에 의해 차단됐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교황님, 저희는 언론에 보도되는 교황님의 소식을 매일 듣습니다. 힘센 자들이 유포한 규칙에 포박된 사람들은 교황님의 선포에 귀를 기울입니다. 카피톨리니 미술관의 <술 취한 노파>처럼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사제들은, 억압된 이들의 기다림으로부터 교황님을 차단하려고 할 것입니다. 보기 좋게 꾸며놓은 행려자들의 집 같은 곳에 교황님을 모시고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서시게 할 것입니다.
물론 그곳도 소중한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교황님, 하실 만하거든, 버림받은 사람들의 마당인 대한문 앞에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땅과 바다와 미래를 전쟁으로부터 지키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을 꼭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손들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교황님의 소식을 듣게 된 이 봄이 기쁩니다. 뵐 때까지 늘 건강하십시오.
출처 : 교황님, 청와대 전에 꼭 이곳을 찾으십시오
[편지] 밀양, 강정마을, 대한문... '억압받는 사람들'을 만나주세요
[오마이뉴스] 조정 | 14.03.15 21:08 | 최종 업데이트 14.03.16 12:10
▲ 프란치스코 교황 ⓒ EPA-연합뉴스 |
교황님, 로마의 날씨는 어떤가요? 저희 집 마당에는 수선화와 둥굴레 새순이 솟았습니다. 땅이 보내는 소식입니다. 이 무렵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립니다. 따스해진 햇살과 솟아나는 새순을 보며 옷을 얇게 입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저녁 뉴스 앵커들도 자주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곤 합니다. 교황님께서도 감기에 걸리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황님, 저는 교황님의 8월 방한 소식을 봄소식처럼 반가워했던 한국의 시인입니다. 취임 후 1년 동안 교황님께서 보여주신 사제적 의지에 무척 공감하고 큰 갈채를 보내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국 신임 추기경이 교황님의 의지에 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실 때는, 제가 알고 있는 '사제적 의지'에 대한 원칙이 순간 헛갈리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중순, 로마에 갔습니다. 여느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바티칸 입장권을 샀고, 오후에는 베드로 대성당의 돔까지 헉헉거리며 올라갔습니다. 돔을 빙 돌며 내려다본 로마는 퍽 아름다웠습니다.
<술 취한 노파>의 비애
▲ <술 취한 노파> ⓒ 조정 |
하지만 마음이 좀 쓸쓸해졌습니다. 오랫동안 나지막하게 자기 키를 유지하고 있는 로마가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오래된 도시들이 있지만, 기품 있는 집과 골목 그리고 나무들은 큰길과 고층건물들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맑은 바다와 산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데, 쉽지 않습니다.
교황님, 제게 로마 여행은 오래된 꿈이었습니다. 꿈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늦가을 보르게세 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보르게세 공원에 갔고, 미술관에 가서 <아폴로와 다프네> <플루토와 페르세포네>를 봤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 보았던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카피톨리니 미술관에서 본 <술 취한 노파>였습니다. 술병을 끌어안은 노파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무릎과 술병에는 비애가 가득 차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그녀의 웃음은 기도 같기도, 원망 같기도 했습니다.
교황님. 수많은 그림과 조각 덕분에 저의 로마 여행은 '압도당함'이라는 말로 축약됐습니다.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교황님의 8월 한국 여행도 복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교황님의 방문이 저희에게 실제적인 복이 되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에게 뭔가 받으려는 태도는 매우 무례한 것이지만, 사제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용납되리라 믿습니다.
"교황님, 밀양과 강정에 가주세요"
교황님께 편지를 쓰기 전, 저는 페이스북을 통해 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황님께 편지를 씁니다, 교황님께 바라는 게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라고. 제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를 선생님께 이르는 것처럼 교황님께 우리 사정을 일러야 하는 건가. 교황님이 우리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줄까?"(가장 긴 글을 남긴 조아무개님)
"교황님,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청와대 비우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세요."(현 정부에 잔뜩 화가 나 있는 배아무개·이아무개님)
"추기경…, 다시 뽑아주세요."(차아무개님)
"밀양 할매들과 강정 주민들에게 가 주세요. 안 되면 한 곳이라도."(신아무개님)
"정치적인 것은 제쳐놓고 북한에 좀 가주세요. 교황님이 가시기만 해도 북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예요."(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아무개님)
"먼저 청와대로 가지 마시고…, 꼭! 제주도 강정에 먼저 가셔서 교황님의 평소 의지를 보여주세요."(늘 마음이 가난하고 아픈 김아무개님)
해양생태 과학자인 황아무개님은 "교황님께 전해주세요, 문 열어달라고…"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고, 제주교구 염미카엘라님은 "교황님, 사랑해요"라는 고백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주도를 또다시 전쟁 제물로 내줘선 안 됩니다
▲ 2012년 3월 7일 해군은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했다. 사진은 이날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자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항의하고 있는 모습. 경찰들이 이들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유성호 |
교황님께서는 제 친구들이 전하는 말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솔로몬왕 이후 남북으로 나뉜 이스라엘처럼, 한국과 북한은 한 민족이면서 60년이 넘도록 분단돼 있습니다. '김씨 왕조'가 된 북한에서는 주민 대부분이 인간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형제자매인 저희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남쪽 한국에서는 상위 1%를 위한 부의 재편성이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초법적인 존재가 되려는 부자와 권력자들은 동북아 패권다툼에 영토 일부분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내주고 있습니다. 그곳이 제주도 강정마을입니다.
교황님. 세상은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먹이사슬과 같다지요.
저희가 믿고 의지하는 황금률은 저희 자신의 존귀함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속한 사람도 함부로 해직당하거나, 돈이 없어서 학교나 병원에서 내쫓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농사지을 땅과 바다와 마을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열강의 동북아 패권다툼의 희생양으로 살아왔습니다. 미국의 묵인하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동서 냉전의 인질로 민족이 나누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동족 간 처참한 전쟁이 치러졌고, 강대국의 요구를 뿌리칠 힘이 없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수많은 생명을 내줬습니다.
오늘 밤에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제주도 해군기지 야간공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나 다름없습니다. 제주도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전진기지로 수탈당했고, 미군의 좌익척결 정책에 의해 3만여 도민이 학살당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제주도를 다시 전쟁의 제물로 내줘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교황님, 저희는 제주도가 동북아 분쟁의 비무장평화지대 (DMZ)가 되기를 원합니다. 전쟁기지나 외국 군인들을 위로하는 유흥가 대신 유엔 평화대학과 같은 각종 평화기구들이 제주도에 세워지길 바랍니다. 제주 남쪽 바다를 둘러싼 한국·중국·일본·대만이 전쟁 대신, 평화로운 외교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전쟁을 거부하는 저희의 꿈과 평화적 저항에 힘을 보태주시기 희망합니다.
한국의 '버림받은 사람들'을 만나주세요
▲ '철수하라! 제주 해군기지. 교황님은 평화의 메신저십니다. 우리 곤경을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피켓. ⓒ 조정 |
지난해 여행 당시 피렌체의 아카데미아와 우피치 미술관을 보고 로마로 돌아온 다음날은 마침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함께했습니다. 교황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뵐 수는 없었으므로 피켓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교황님의 창문에서 가장 잘 보일 법한 곳에 자리를 잡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저는 피켓에 이렇게 적어놨습니다.
'철수하라! 제주 해군기지. 교황님은 평화의 메신저십니다. 우리 곤경을 도와주세요.'
제 호소는 교황님이 나오시기 직전, 경찰에 의해 차단됐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는 그곳에 남았습니다.
교황님, 저희는 언론에 보도되는 교황님의 소식을 매일 듣습니다. 힘센 자들이 유포한 규칙에 포박된 사람들은 교황님의 선포에 귀를 기울입니다. 카피톨리니 미술관의 <술 취한 노파>처럼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 부자와 권력자들과 그들의 편에 선 사제들은, 억압된 이들의 기다림으로부터 교황님을 차단하려고 할 것입니다. 보기 좋게 꾸며놓은 행려자들의 집 같은 곳에 교황님을 모시고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서시게 할 것입니다.
물론 그곳도 소중한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교황님, 하실 만하거든, 버림받은 사람들의 마당인 대한문 앞에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땅과 바다와 미래를 전쟁으로부터 지키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을 꼭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손들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교황님의 소식을 듣게 된 이 봄이 기쁩니다. 뵐 때까지 늘 건강하십시오.
출처 : 교황님, 청와대 전에 꼭 이곳을 찾으십시오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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