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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어떻게 원세훈 유죄를 밝혀냈나

법원은 어떻게 원세훈 유죄를 밝혀냈나

[민중의소리] 최지현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2-16 17:47:40


원세훈 ‘무죄’에서 ‘유죄’로 바뀐 이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법 위반에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인정된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던 1심과 달리 2심은 꼼꼼한 통계분석을 통해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다. ‘정치 개입’과 ‘대선 개입’ 글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일일이 구분해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 분석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선거국면에서 주요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매번 활약을 벌이며 선거에 개입한 것이 확인된다.

국정원이 어떻게 2012년 대선에 개입해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를 이끌었는지 1심과 2심 판결문을 비교해 정리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박근혜 후보 선출 이후 본격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1심과 2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 게시글과 트위터 글(트윗)을 써서 단순히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넘어 대선에 개입했느냐에 대한 판단이었다. 목적성·능동성·계획성 행위 여부가 그 기준이었다.

1심은 국정원의 이러한 활동이 정치개입(국정원법 위반)이라는 점만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선거개입이 인정되려면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그런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이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선출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급증한 점에 주목하며 능동적, 계획적인 행위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검사가 선거운동의 시작점으로 기소한 2012년 1월은 제18대 대선 후보자의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평상시 하던 업무를 선거 시기에 했다고 해서 선거운동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과는 완전히 다른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박근혜 후보가 선출된 이후를 대선정국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선정국이라고 보편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시점은 유권자인 국민이 정치적 선택을 하기 위해 고려하는 공약과 전망 등 여러 요소가 후보자 및 소속 정당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진되고, 반대의 관점과 의견도 제시돼 서로 진지한 공방이 이뤄지는 무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에서 선출된 이후 구체적인 공약과 실천 가능성 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이 판결을 뒷받침했다.


국정원, ‘정치개입’보다 ‘선거개입’ 더 많이 했다

1심이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에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려는 목적성·계획성·능동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2심에서는 이런 점이 인정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2심이 1심의 판결을 뒤엎고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게 된 것은 치밀한 데이터 통계 분석 때문이었다.

2심 재판부는 먼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활동을 꼼꼼히 확인했다. 2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이 반영된 ‘이슈와 논지’를 매일 하달 받아 움직였다고 판시했다.

또한 시계열 분석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2012년 1월 1일부터 그해 12월 19일 대선 당일까지 사이버공간에 전파한 트위터 글은 총 27만3천192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국정원법상의 정치개입 글은 전체 중 약 43.9%(11만9천861건)이고, 공직선거법상 선거개입으로도 해당되는 것은 전체 글 중 약 56.1%(15만3천331건)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심 재판부가 규정한 대선정국이 시작되는 8월 전후로 선거개입 글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2년 상반기는 선거와 직접 관련 없이 이명박 정부를 홍보하는 등의 ‘정치 글’ 비중(84~97%)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8월 이후에는 ‘선거 글’ 비중(50~83%)이 부쩍 높아졌다.

절대적인 수치 면에서도 2012년 8월 이후의 선거 글이 이전의 선거 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2심 재판부는 “정치 글과 선거 글의 비중이 바뀌고, 선거 글의 절대적 양이 현저하게 증가했다는 것은 심리전단 사이버 활동의 방향과 의도하는 바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정황”이라고 평가했다.



국정원의 키워드 ‘문재인 반대’ vs. ‘박근혜 지지’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선거국면을 기점으로 ‘정치 글’과 ‘선거 글’의 비중 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변화가 있으면 선거개입 여부에 대한 평가도 달리 할 수 있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라 평상시에도 계속·반복적으로 실시했던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이 선거시기가 됐다고 해 당연히 선거운동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선거 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2심 재판부는 2012년 8월 전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쓴 글 내용을 분석해 공개해 원세훈 전 원장의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는 뚜렷했다. 2012년 8월 20일 이후 대선국면에 ‘안철수 반대’, ‘민주당 반대’, ‘문재인 반대’, ‘박근혜지지’ 등 특정 후보와 관련된 글이 눈에 띄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의 시계열 분석에 따르면, 2012년 8월 20일 이전에 선거 글은 ‘안철수’, ‘민주당’, ‘문재인’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중에서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아직 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 야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안철수에 대한 반대 글을 많이 올렸는데, 특히 ‘안철수의 생각’ 자서전 발간, ‘힐링캠프-안철수 편’ 방송 출연 등이 언론에 부각된 7월에 가장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도 4월 총선 이전까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4월 총선을 통해 문재인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면서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가 6월 대선출마 선언을 한 이후에는 참여정부 시기의 업적 등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 글이 쏟아졌다.

그러다가 박근혜 후보가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2012년 8월 20일 이후에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안철수·문재인 후보 및 민주당을 반대하거나 이정희 후보 및 통합진보당을 반대하는 일관된 경향과 흐름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시기에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자질 부족 비판, 각종 의혹 제기, 후보 단일화 비판, 모호한 입장표명 비판 등 유형의 글이 집중됐다.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한 9월에 특히 안철수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집중되다가(42%) 11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로 후보직을 사퇴하자 급격히 비판 글이 줄어들었다(11월 3%→12월 0%). 이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대선후보에 대해 기민한 대응을 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8월 이전보다 비판 여론의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를 하던 11월에는 특히 비판 글이 집중된 것을 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에 대해서도 각종 의혹 제기와 대선공약 비판, 후보 단일화 비판 등 유형의 글이 올라왔다.

또한 8월 20일 이전에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글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정희 후보에 대해서는 12월 1차 대선후보 TV토론을 기점으로 비판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정희 후보는 TV토론에서 직접 만난 박근혜 후보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중적 인기도를 높였다. 그러자 국정원 심리전단은 문재인 후보(7%)보다 이정희 후보(15%)에 대한 비판 글의 비중을 높였다.

반대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후보자의 자질 긍정 평가, 박정희 대통령 옹호, 과거사 논란 해명 등 긍정적인 평가가 집중됐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사과까지 했던 인혁당 사건 발언 논란이 일었던 9월에는 옹호 글의 절대량이 다른 시기보다 월등히 높았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고비마다 국정원 활약 증거 뚜렷

대선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연동된 특정 후보자에 대한 반대 또는 지지로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이 조직적으로 전파된 정황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특정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하기 위한 선거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게 1심과 다른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시점에도 어김없이 국정원 심리전단은 활약을 벌였다.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후보 확정 = 당시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데 대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박근혜 후보의 화합과 포용의 의지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대선 상대인 민주당을 비판하는 글을 리트윗했다.

2012.8.21.09:20:42 RT @Junghoon****:박근혜 대선 후보가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고 하니 종북좌파, 짝퉁진보 진영 멘붕에 빠졌나 보네요. 진심어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예를 가기도 전부터 폄하라니;;

2012년 9월 10일 인혁당 사건 발언 논란 =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사건의 평가와 관련해 두 개의 법원 판결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를 계기로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박근혜 후보를 옹호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우파 논객들의 글을 대규모로 리트윗하고, 또 야당 측을 비난하는 글을 작성해 서로 리트윗하기도 했다.

2012.9.20.18:41:00 zomoto241 인혁당 문제를 갖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물고 늘어지는 좌빨 꼴통들을 보면 어이없다. 인민혁명당 지하조직 간첩단사건은 우리역사에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실체가 있는 사건이었다. 실체가 없었다는 등 왜곡을 하고 있는 좌빨들.

2012년 9월 16일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 = 민주당 경선 결과 문재인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같은 날 트위터상에는 문재인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우파 논객들의 글이 집중적으로 올라왔고, 이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리트윗하면서 퍼뜨렸다.

2012.9.16.21:59:56 RT @Kangjae****:노무현을 죽인 자가 바로 문재인이다. 그런 자가 남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노무현 비서실장으로 결국 부엉이 바위에 끌어올린 자는 문재인인 것이다.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후보의 대선출마 공식 선언 = 안철수 후보가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출마 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폄훼하는 글들을 다수 리트윗했다.

2012.9.19.16:02:45 daveJust46 이제 6개월에 걸친 간은 다보고 간철수에서 안철수로 돌아왔네...그런데 딱지와 농지는 다 간 잘친겨???

2012년 10월 9일 ‘NLL 포기 발언’ 논란 =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여야간 공방이 벌어졌다. ‘NLL 포기 발언’ 논란은 대선국면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대선을 앞두고 지속적으로 NLL 관련 글을 작성하거나 리트윗하며 이슈를 확산했다. 여기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 등을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표현이 다수 들어갔고, 더 나아가 이를 대선과 연결해 ‘좌파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도 작성됐다.

2012.10.12.11:20:10 shore0987 우리 해군장병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지켜온 서해북방 5도와 NLL은 무엇인가요? 요즘 들어 과거좌파정부의 국가관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러니 좌파정부시절 그 많은 빨갱이 단체들이 합법화됬(됐)지요! 대한민국에 다시는 좌파정부를 절대 용인할 수 없습니다.

2012년 11월 6일 이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협상 =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자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의 글을 트윗, 리트윗했다. 2심 재판부는 야권 후보의 단일화 여부가 유권자인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글이 확산된 것은 야권에 대한 반대이자 경쟁 후보에 대한 우회적 지지의 표현이라고 봤다. 더 나아가 안철수 후보가 사퇴(2012년11월 23일)한 이후 안철수 후보에 대한 반대 글이 현저하게 줄어들다가 아예 등장하지 않은 데 반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반대 취지의 트윗이 증가한 점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중요한 선거 쟁점에 즉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2012.11.11.21:39:45 RT @Kangjae****:요즘 여자분들을 만나면 고개를 못들겠다. 문재인, 안철수 때문이다. 여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칼과 망치를 들고 설치는 모양새다. 에구~ 상상만 해도 쪽 팔린다. 남자들이 왜 그러나? 쫌팽이도 이런 쫌팽이들이 없어 보인다.

2012년 12월 4일 대선후보 1차 TV 토론 = 당시 실시된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남쪽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국정원 심리전단은 당일 밤부터 집중적으로 이를 비판하는 트윗을 작성하고 리트윗해 논란을 확산했다. 2012년 8월 이전엔 이정희 후보에 대한 반대 글의 비중은 극히 적었고, 9월 출마선언한 이후에도 2% 내외의 비중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TV 토론을 계기로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난 글이 급증했다. 이 역시 선거 국면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이 기민한 대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12.12.05.10:41:43 shore0987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 정부를 "남쪽 정부"라고 표현한 거 보셨죠? 그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념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우리 정부는 "남쪽정부" 밖에 안 되는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 참담해지네요.


원장님은 들키지 말라고 하셨다?

국정원 대선개입 활동이 단순히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원세훈 전 원장이 선거개입 활동을 지시했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1심과 2심의 판결은 엇갈렸다.

원세훈 전 원장은 재직 당시 부서장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 두 재판부에서 모두 확인됐다.

① 2012년 9월 21일 “선거철임에도 예전과 달리, 院(원·국정원)이 휩쓸리지 않도록 부서장들이 직원들을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함. 직원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자칫 院이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철저히 교육시키고 감독해야 하며, 문제 발생 시 직원뿐 아니라 상급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람.”

② 2012년 9월 21일 “선거철임에도 불구하고 예전과 달리, 院 흠집내기 보도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성과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도록 전 직원이 노력해야 할 것임. 이번을 계기로 院이 정치권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나아가 ‘선진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임.”

③ 2012년 10월 19일 “앞으로도 부서장 이하 전 직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고, 문제 발생 시에는 연대 책임을 물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람.”

④ 2012년 11월 23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직원들이 지금까지 잘 해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줄 것으로 믿고 있으므로, 선거 종료 시까지 불필요하게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기 바람.”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원세훈 전 원장이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명확히 지시했다”고 해석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선거 개입을 하지 말라는 데 방점을 둔 것이라기보다 대선 정국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개입) 활동이 외부에 드러나 문제 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하라는 데 방점을 둔 것”라고 다르게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너무 세게 하는 것 아니냐, 자제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상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하라’며 활동을 독려했다”며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지휘부의 노골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1심이 버린 ‘핵심 증거’ 되살렸다

1심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배제됐던 핵심증거인 ‘시큐리티 파일’(ssecurity.txt)과 '425지논 파일'(425지논.txt)이 2심에서 인정된 것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을 밝히는 데에 큰 몫을 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모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시큐리티 파일’과 ‘425지논 파일’을 김씨의 이메일 ‘내게 보낸 메일함’에서 확보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425지논 파일’에는 광우병 문제, FTA 문제, 제주해군기지 문제,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문제 등 다양한 정치적 이슈 또는 대북 이슈에 관한 내용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고, ‘시큐리티 파일’에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로 보이는 이름의 앞 두글자와 다수의 트위터 계정 및 활동 내용, RSS 주소 등이 기재돼 있었다.

김씨는 당초 검찰 조사에서 파일 작성 사실을 인정했으나, 1심 공판에선 “해당 이메일 계정을 자신이 사용한 것은 사실이고 다른 사람이 이 계정을 사용한 사실은 없으나, 이 파일들을 직접 작성했는지, 전달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메일 계정 관리자인 김씨가 해당 파일을 작성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은 해당 파일 작성자의 ‘진술’에 의해서만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313조에 따른 것이다. 압수된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을 진술 증거로 사용하는 경우, 그 기재 내용의 진실성에 관해선 전문법칙(傳聞法則, ‘전문증거는 증거로 되지 않는다’는 법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두 파일 안에 담겨 있던 국정원 심리전단의 수 백 개 트위터 계정 등이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2심 재판부도 동의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다른 법을 적용해 결과적으로 1심과 달리 문제의 두 파일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315조에 따라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이 업무상 통상문서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해당 문서 작성의 주체와 경위, 목적, 맥락, 문서에 담긴 내용과 업무와의 관련성 및 신빙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첨부 파일은 김씨가 업무상 작성한 통상 문서”라고 판시했다.

형사소송법 315조는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는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사실의 인정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무를 처리한 내역을 그때그때 기재한 문서의 경우, 사무처리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문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실제 2심 재판부는 해당 문서가 김씨의 이메일 ‘내게 보낸 메일함’에서 발견되고 같은 이메일에 저장돼 있던 다른 파일에도 동일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 점, 파일에 있는 트위터 계정은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했다는 것이 확인된 점 등 구체적인 정황을 종합해 문제의 두 파일과 김씨 업무의 관련성을 입증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러한 구체적인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그 작성자와 작성·보관 등의 경위가 분명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형사소송법 315조에 의해서도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2심 판결에 따라 두 파일의 증거능력이 되살아나면서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트위터 계정 수가 대폭 늘어났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수는 175개에서 716개로, 정치개입 트위터 글은 11만3천여 건에서 27만4천800여건으로 늘었으며, 선거개입 트위터 글은 13만6천여건이 새로 인정됐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8월 20일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선거개입 활동 비중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2심 재판부는 이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출처  법원은 어떻게 원세훈 유죄를 밝혀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