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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무한상사’보다 못한 노동개혁

‘무한상사’보다 못한 노동개혁
[민중의소리]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 최종업데이트 2015-09-21 19:13:04


무한도전 무한상사 편, 정형돈 대리가 길 인턴사원의 상황을 보다 못해 말한다. “무슨 놈의 회사가 3년 반을 인턴을 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예능 같은 상황이 리얼 다큐가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노사정 ‘대타협’이라 썼지만 ‘대야합’이라 불리는 노동개혁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가 한국노총의 태생적 한계, 기간의 전례를 봤을 때 딱히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합의, 너무 호락호락한 태도는 뭔가 찝찝하고 황당했다. 일단 뭔가 주고받는 액션은 취해야 보는 재미도 있고 욕을 덜 먹을 것 아닌가. 더욱이 한국노총 중집 회의에서 ‘동지’라 부르는 사람이 분신시도를 했음에도 어떤 의사결정의 연기나 재고 없음은 그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협상 타결 이후 줄줄이 집행되는 정부지원금의 행태를 보면서 “돈 때문이었나?” 라는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무한도전' 방송화면 ⓒ방송화면 캡처


무한상사가 현실이 될 줄이야

이렇게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합의한 핵심 내용에 대한 내 멋대로 해설은 이렇다.

▶ 노동법에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해고를 확대해서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일반 해고를 신설했다.
→ 이를 정부에서는 공정한 해고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데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해고와 공정함이 어울리나?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뭐 이런 거야? 슈스케도 아니도 함부로 집에 가라고 XX이야. 노조간부, 눈에 가시 같은 사람들 저성과자, 근태 불량이라면서 막 짜르는거 아냐?

▶ 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은 노사정의 공동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대안을 마련한 후 정기국회 입법에 반영키로 했다.
→ 비정규직, 인턴을 2년도 긴데 4년이나 하라고? 평생 비정규직 신세로 살란 말이군. 이게 비정규직 보호냐? 확대냐?

▶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충분한 ‘협의’를 하기로 하였다.
→ 협의? 이건 말해보고 안 되면 그냥 하겠다는 거임? 결국 회사가 칼자루 들고 지 맘대로 휘두르겠네.

▶ 통상임금을 ‘근로자의 개인적 사정에 따라 다르게 지급되는 금품’은 제외하고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키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했다.
→ 통상임금의 범위를 협소하게 적용하고 대체로 개인적 사정에 따라 다르게 지급되는 것이라 하면 되겠네. 눈에 불을 켜고 임금 깎으려 할 것 아냐.

▶ 청년고용(비정규직 포함)을 확대하는 기업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된 재원은 청년고용에 활용키로 했다.
→ 일단 지원은 받고 월급은 깎고,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뽑겠단 말이네. 딱이네. 근데 우리 아빠는 월급 깎는데 기업은 뭘 내놓으시나? 필자가 지나치게 의심이 많고 삐딱해서가 아니다. 온갖 말장난을 치며 작성된 합의서에는 기업의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정부의 어떤 의지도 나타나지 않고,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 월급은 깎고, 쉽게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뽑으면서 기업의 입맛에 맞게 노동자들을 길들이겠다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합의도 ‘쉬운 해고’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다. 전경련을 포함한 경제인 단체는 이런 내용으로는 진정한 노동개혁은 불가능하다며 입법청원을 통해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노사정 합의를 기초로 한다면서 재계에 불리한 합의 내용은 빼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합의도 없는 것을 쏙 집어넣어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더니 목숨까지 내놓으란 이야기 다름 아니다. 합의서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자본과 새누리당은 악랄한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래서 헬조선 헬조선 하나 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임금피크제 반대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 10대과제 쟁취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총력투쟁 선포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사실 이번 ‘대야합’이 나오기까지 정부가 주도했던 <대국민 갈등 프로젝트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는 막장드라마처럼 진부하긴 했지만 여전히 효과만점이었다. 검증도 안 된 임금피크제에 대한 높은 찬성율과 노사정 합의에 대한 여론조사결과가 이것을 방증한다. 비정규직문제, 양극화문제, 청년실업문제를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기업은 쏙 뺀 채 ‘정규직 대 비정규직’, ‘기성세대 대 청년세대’, ‘노동조합원 대 비노동조합원’ 간에 갈등을 부추기고 싸움을 붙인다. 거리의 현수막과 전광판에서, TV와 영화관에서 “부모님 그 동안 고생하셨으니 제발 양보하세요. 당신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고요”라는 메시지를 그렇게 쉴 새 없이 틀어댔으니. 덕분에 우리 부모들은 자식 앞 길 가로막는 돈 먹는 골칫덩이가 되고 말았다.


막장드라마는 권선징악 결말이라도

그리고 야당과 민주노총,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노사정이라는 대타협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산통 끝에 어마무시한 타협안이 나온 것처럼 꾸며댄다. 이어 기업들은 채용계획을 발표하고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은 월급의 일부를 청년고용창출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사실은 비정규직을 뽑는다는 이야기고, 아예 노동자들의 숨통을 끊을 노동개혁입법을 준비한다.

그래도 막장드라마는 결말이라도 권선징악이 실현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 밖에 몰랐던 아버지들은 이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월급은 반토막이 난다. 노후 준비? 자식이 이제 기약 없는 비정규직으로 겨우 취업했는데 꿈도 꿀 수 없다. 자식은 많이 일하고, 적게 받고, 쉽게 해고당하는 비정규직 신세를 전전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렇듯 지금의 노동개혁의 본질은 지금보다 좀 더 싸게, 좀 더 많이 부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헐값에 쓰다가 단물 빠지면 버리겠다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취업 결혼 걱정없는 한가위 노동개혁’으로 라는 빨간색 현수막이 온 동네에 붙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열이 받는다. 평생 회사와 자식 밖에 모르고 살아온 부모는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은 적이 없다. 청년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달라한 적이 없다. ‘노동개혁’을 하기 이전에,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들의 삶을 위험천만하게 만든 정부와 새누리당을 먼저 개혁하는 옳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해 달랬더니 전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이 바로 지금의 ‘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출처  [박석준의 청춘칼럼] ‘무한상사’보다 못한 노동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