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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뉴라이트 교과서’에 담긴 친일·독재 미화 ‘10’

‘뉴라이트 교과서’에 담긴 친일·독재 미화 ‘10’
국정 역사교과서의 원형이 될지 모를 ‘뉴라이트 교과서’
[민중의소리] 김백겸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0-18 13:14:12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가 극찬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뉴라이트 교과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는 2008년 5월 26일 뉴라이트 교과서 출판기념회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참석해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축사를 했다. 또 “우리가 더욱 자랑스럽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이 책이 큰 토대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향후 국정교과서에 뉴라이트 교과서내용이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극우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았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도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보이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 불가피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부가 만드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원형이 될 것이라고 지적받고 있는 뉴라이트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표현을 살펴봤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표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일제 강점 시대 ① ‘위안부, 일본 꾐에 빠진 무지한 여성들’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부분(93쪽)을 보면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출신의 여인들이 위안부로 노예처럼 수용돼 일본군에 성적 위안을 제공했다’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강제 동원’에 대한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해 ‘일본인 대리업자의 꾐에 빠진 무지한 여성들’이라는 취지로 폄훼하는 내용을 발췌해 실었다.

한국 여성이 위안부가 된 사정에 관해 당시 심문을 맡았던 미국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42년 5월 상순 일본인 대리업자가 ‘위안봉사’를 시킬 한국인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하고, 몇 백 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무지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 대개 800여 명이 이렇게 모집되어 1942년 8월 20일까지 랑군에 도착했다.”

- 93쪽 ‘미얀마 전선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한국 여성 위안부들’ 중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일제 강점 시대 ② ‘쌀은 수탈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수출된 것’

뉴라이트 교과서는 일제 강점 시기로 인해 경제 성장과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고 있다.

일제 강점 시기 한국인들의 삶을 설명한 부분(98쪽)에서는 ‘쌀은 수탈된 것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따라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그에 따라 일본인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소득은 증가했다 (중략) 1890~192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들의 키가 1~2cm 커진 것도 생활수준의 개선을 의미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식민지 한국인의 생활수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98쪽


일제 강점 시대 ③ ‘김구는 테러리스트’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항일운동에 대해 설명한 부분(129쪽)을 보면 김구 선생에 대해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했다’며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김구 선생이 해방 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남한 단독 총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이 교과서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던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김구에 대한 설명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29쪽


해방 후 ① ‘8.15는 광복절보다 건국절로 경축해야’

뉴라이트 교과서는 ‘광복절의 올바른 이해’(144쪽)라는 대목에서 ‘종래 광복절을 해방절로만 기억해 온 것을 지양하고, 보다 중요하게 건국절로 경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건국’이 아닌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 건국’을 내세우는 뉴라이트 측의 지론이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권은 모든 정부문서에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 자신도 정부 수립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919년 상하이 통합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며 헌법에도 이를 적시했다.

이에 따라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뉴라이트 교과서의 주장은 ‘반헌법적 주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도 올해 8.15 경축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해 ‘반헌법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건국절' 주장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4쪽


해방 후 ② ‘제주 4.3 사건은 좌익 무장반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뉴라이트 교과서는 ‘남로당은 정부 수립 이전인 1948년 4월 3일에 제주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144쪽)’고만 서술하고 있을 뿐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제주 4.3 사건을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로 보고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더불어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양민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 교과서는 제주 4.3 사건의 양민학살에 대해 ‘그 과정(국군의 진압작전)에서 약 9만 명의 이재민과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제주 4.3 사건이 ‘진압됐다’고 표현해 제주 4.3 사건을 단순한 좌익들의 반란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으로 치부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제2조에서는 ‘제주 4.3 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제주 4.3 사건'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4쪽


해방 후 ③ ‘친일파 청산보다 반공이 더 급해’

뉴라이트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청산을 목적으로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탄압하고 끝내 와해시킨 데 대해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 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148쪽)’고 정당화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반민특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5쪽

당시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을 상정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다. 결국 집행유예 5인, 실형 7인, 공민권정지 18인 등 겨우 30인만이 제재를 받았고, 실형의 선고를 받은 7인도 재심청구 등의 방법으로 모두 풀려나 친일파에 대한 숙청작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박정희 ① ‘5.16은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

뉴라이트 교과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불법적인 쿠데타’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 배경과 결과에 무게를 두고 설명하면서 정당화 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5.16'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80쪽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180~181쪽)이라는 부분을 보면 ‘5.16쿠데타는 국민적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결여된 구정치 세력과 그에 도전한 급진이념의 정치 세력 모두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국가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 일대변혁이었다’며 ‘5.16쿠데타는 근대화혁명의 출발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정희 ② ‘10월 유신으로 자주국방·중화학공업화 강력 추진’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저지른 10월 유신 정변에 대해서 뉴라이트 교과서는 ‘안보불안’, ‘경제 악화’ 등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개인의 권력욕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한국인에게 안겨주었다’(205쪽)고 불가피성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자신(박정희)에게 집중된 행정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며 경제발전을 기틀을 마련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10월 유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박정희 ③ ‘박정희의 추진방식 덕분에 새마을 운동 성공’

박근혜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새마을운동’에 대해 뉴라이트 교과서는 고 박 전 대통령의 추진방식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새마을운동'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211쪽

‘새마을운동의 추진 방식(211쪽)’이라는 부분을 보면 ‘그(박정희)는 잘하는 마을에 전기를 우선적으로 넣어줌으로써 마을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며 ‘새마을 운동이 정부의 주도로 시작됐지만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이 같은 경쟁유발적 추진방식 덕분이었다’고 극찬하고 있다.


박정희 ④ ‘박정희 찬양’

뉴라이트 교과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부패에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했다(186쪽)’고 극찬하고 있다.

만주국 장교 경력과 ‘친일 혈서’ 등 고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군인이 되고픈 평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40년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했다’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고 박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서는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돼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고로 동원하는 역설절 결과를 낳았다’며 ‘그의 집권기에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실린 '박정희'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86쪽


출처  ‘뉴라이트 교과서’에 담긴 친일·독재 미화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