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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교과서 현실화’…”정부 압력에서 자유롯지 못할 것”

‘밀실 교과서 현실화’…”정부 압력에서 자유롯지 못할 것”
국편 “대표필진 거의 확정”…신형식·최몽룡 교수만 발표
9일까지 필진 공모 “근현대사, 비전공자 3~4명 참여”
황우여 ‘인터넷 검증’도 “신중하게 공개해야”로 뒤집어

[한겨레] 엄지원 기자 | 등록 : 2015-11-04 19:28 | 수정 : 2015-11-05 09:03


전국 역사 관련 학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전국 역사학도 네트워크’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내년, 역사 교육을 받고 있을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등의 글귀를 적은 종이를 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안을 폐기할 때까지 “우리 역사학도들은 역사를 펜이 아닌 온몸으로 써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명진 기자


국정 교과서 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편향성 시비를 막겠다던 정부가 결국 40명 남짓한 집필진 가운데 2명의 대표 필자만 공개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비공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밀실 집필’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교과서 편찬 책임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4일 신형식(76)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최몽룡(69) 서울대 명예교수를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이라고 밝혔다. 김정배 국편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교과서) 집필진 구성은 초빙과 공모를 병행한다. 학계의 명망이 높은 원로를 초빙해 시대별 대표 집필자를 맡아주시도록 부탁하는 한편, 학계의 중진 학자와 현장 교사를 대상으로 4일부터 9일까지 집필진을 공모하겠다”고 밝혔다. 국편은 이날 누리집에 ‘교수·연구원·현장교원 25명’을 공모한다는 공고를 냈다. 김 위원장은 또한 편찬 기준과 관련해 “현재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교육부의 심의 과정을 거친 후 이달 말에 확정되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국편은 오는 20일까지 선사시대·고대사·고려사·조선사·근대사·현대사 등 6개 시대사별 각 1명의 대표 집필자를 포함해 전체 36명의 국정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할 계획이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21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15명이 배정된다. 또한 국편은 근·현대사 부문에 정치학·경제학·사회학·군사학 등 비역사 전공자 3~4명을 추가로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신형식 교수는 고대사 부문을, 최몽룡 교수는 선사시대 부문을 대표 집필하게 된다. 국편 관계자는 “대표 집필자들은 거의 확정된 상태”라고 밝혔다.

애초 이날 브리핑에선 원로학자로 구성된 대표 집필진 6명이 모두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선사·고대사 대표 집필자인 신 교수와 최 교수 2명만 공개됐다. 국편 쪽은 “대표 집필자 공개는 집필자들과 충분히 검토하고 어느 시점에 공개하는 게 집필에 방해가 없을지 따져서 적당할 때 하겠다”고 밝혔다. 대표 집필진을 포함해 모든 집필진을 집필이 끝난 뒤에야 공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애초 정부는 ‘전체 집필진 (사전) 공개’에서 ‘대표 집필진만 공개’로 입장을 바꿨었다.

이에 따라 집필진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정부가 편향 없는 교과서를 쓰겠다고 밝힌데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집필진은 집필 시작 전에 공개하는 게 맞다. 밀실 집필로 가게 되면 오히려 집필진이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투명성’을 강조하며 밝힌 약속도 하루 만에 공수표가 됐다. 황 장관은 “단원이 마무리될 때마다 웹에 전시한다든지 해서 국민과 함께 내용을 검증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날 진재관 편사부장은 “집필자들과 논의해 신중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출처  ‘밀실 교과서 현실화’…”정부 압력에서 자유롯지 못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