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치른 문화제…사회자 ‘집회’ 단어 빌미로 “불법”
경찰, ‘소요집회’ 사법처리 통보
[한겨레] 방준호 현소은 기자 | 등록 : 2015-12-20 21:16 | 수정 : 2015-12-20 22:01
경찰이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진행된 ‘3차 민중총궐기 문화제’를 ‘위장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문화제를 개최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 관계자들을 사법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 쪽에 ‘소요죄’를 적용하기로 한 것도 모자라, ‘집회 사전신고 제도’를 빌미로 사실상 모든 대중 모임을 검열하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사 끝날 무렵 “불법집회” 보도자료
“정치성 구호 사회자가 집회라고 말해”
문화제·집회 구분 자체가 난센스
‘집회 사전신고 제도’ 빌미로
모든 대중모임 검열·허가 악용 우려
경찰은 19일 문화제와 행진이 끝날 무렵인 이날 오후 6시께 ‘문화제가 불법집회로 변질됐다’며 집회 주최 쪽을 사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문화제를 위장 불법집회로 규정한 근거로 “정치성 구호가 적힌 펼침막과 손팻말을 사용했고 발언자 대부분이 정치적 발언을 한 점”을 들었다. 또 “사회자의 선동에 따라 구호를 제창했고 사회자가 ‘더 뜨거운 집회로 만들려 한다’는 등 ‘집회’라고 말한 바 있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이날 문화제·행진 참가자들은 허용된 문화제와 행진 장소를 크게 이탈하지 않았고,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지도 않았다. 경찰 역시 ‘해산명령’을 내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결국 경찰은 ‘정치적 활동(혹은 발언)’을 집회와 문화제를 가르는 경계라고 스스로 규정한 뒤, ‘미신고’ 집회인 만큼 불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이 이처럼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집회와 문화제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두고 있지 않은 탓이다. 법원도 그간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손팻말을 들면 관행적으로 사전신고 의무를 지는 집회로 판단해왔고, 이에 따라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 주최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해왔다. 경찰이 이번 집회에 대해 사법 처리 운운하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하고 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집시법이 사전신고가 필요한 집회를 규정하는 구체적인 내용 기준을 두지 않은 까닭은 헌법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집회에 대해 내용 검열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것인데, 경찰 등이 이를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제와 집회를 내용을 두고 구분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이유로 막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시법상의 신고의무가 전제하는 법익인 공공의 안전을 이유로 한다면 몰라도 내용을 근거 삼아 집회를 옥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개인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강요하는 국가 행위를 금지하는 기본권”이라며 “집회 자유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처를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헌재가 2009년 “미신고 집회의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은 (집회의 개최에 대한 처벌이 아닌, 신고를 하지 않은) 행정상 협력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라고 결정한 데 대해 일부 재판관들이 “사회질서를 해칠 개연성을 묻지 않고 사전신고를 의무화하고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축소시킨다”며 반대의견을 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이번 19일 문화제가 경찰의 잇단 집회 금지통고로 인한 궁여지책 차원에서 열린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경찰은 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와의 ‘장소 경합’을 이유로 들어 투쟁본부의 서울광장 집회를 금지통고했지만, 19일 경우회의 집회는 투쟁본부의 집회 방해를 위한 ‘알박기성’ 집회였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집회가 자유롭게 신고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탓에 문화제로 진행된 것 자체가 아이러니인데, 신고의무를 이유로 의사를 표현할 남은 숨구멍까지 막는 상황”이라고 했다.
출처 평화롭게 치른 문화제…사회자 ‘집회’ 단어 빌미로 “불법”
경찰, ‘소요집회’ 사법처리 통보
[한겨레] 방준호 현소은 기자 | 등록 : 2015-12-20 21:16 | 수정 : 2015-12-20 22:01
▲ ‘노동개악 저지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3차 민중총궐기 소란스럽고 요란한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19일 오후 호루라기 등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도구와 여러 종류의 가면을 쓰고 집회에 행진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게 소요 혐의를 적용한 공안당국을 규탄하는 의미로 ‘소요 문화제’를 열었다. 이정아 김성광 기자
경찰이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진행된 ‘3차 민중총궐기 문화제’를 ‘위장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문화제를 개최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 관계자들을 사법 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1차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 쪽에 ‘소요죄’를 적용하기로 한 것도 모자라, ‘집회 사전신고 제도’를 빌미로 사실상 모든 대중 모임을 검열하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사 끝날 무렵 “불법집회” 보도자료
“정치성 구호 사회자가 집회라고 말해”
문화제·집회 구분 자체가 난센스
‘집회 사전신고 제도’ 빌미로
모든 대중모임 검열·허가 악용 우려
경찰은 19일 문화제와 행진이 끝날 무렵인 이날 오후 6시께 ‘문화제가 불법집회로 변질됐다’며 집회 주최 쪽을 사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문화제를 위장 불법집회로 규정한 근거로 “정치성 구호가 적힌 펼침막과 손팻말을 사용했고 발언자 대부분이 정치적 발언을 한 점”을 들었다. 또 “사회자의 선동에 따라 구호를 제창했고 사회자가 ‘더 뜨거운 집회로 만들려 한다’는 등 ‘집회’라고 말한 바 있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이날 문화제·행진 참가자들은 허용된 문화제와 행진 장소를 크게 이탈하지 않았고,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지도 않았다. 경찰 역시 ‘해산명령’을 내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결국 경찰은 ‘정치적 활동(혹은 발언)’을 집회와 문화제를 가르는 경계라고 스스로 규정한 뒤, ‘미신고’ 집회인 만큼 불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이 이처럼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집회와 문화제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두고 있지 않은 탓이다. 법원도 그간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손팻말을 들면 관행적으로 사전신고 의무를 지는 집회로 판단해왔고, 이에 따라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 주최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해왔다. 경찰이 이번 집회에 대해 사법 처리 운운하는 것도 이를 근거로 하고 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집시법이 사전신고가 필요한 집회를 규정하는 구체적인 내용 기준을 두지 않은 까닭은 헌법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집회에 대해 내용 검열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것인데, 경찰 등이 이를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제와 집회를 내용을 두고 구분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이유로 막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집시법상의 신고의무가 전제하는 법익인 공공의 안전을 이유로 한다면 몰라도 내용을 근거 삼아 집회를 옥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는 개인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강요하는 국가 행위를 금지하는 기본권”이라며 “집회 자유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처를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헌재가 2009년 “미신고 집회의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조항은 (집회의 개최에 대한 처벌이 아닌, 신고를 하지 않은) 행정상 협력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라고 결정한 데 대해 일부 재판관들이 “사회질서를 해칠 개연성을 묻지 않고 사전신고를 의무화하고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축소시킨다”며 반대의견을 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이번 19일 문화제가 경찰의 잇단 집회 금지통고로 인한 궁여지책 차원에서 열린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경찰은 재향경우회 등 보수단체와의 ‘장소 경합’을 이유로 들어 투쟁본부의 서울광장 집회를 금지통고했지만, 19일 경우회의 집회는 투쟁본부의 집회 방해를 위한 ‘알박기성’ 집회였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집회가 자유롭게 신고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탓에 문화제로 진행된 것 자체가 아이러니인데, 신고의무를 이유로 의사를 표현할 남은 숨구멍까지 막는 상황”이라고 했다.
출처 평화롭게 치른 문화제…사회자 ‘집회’ 단어 빌미로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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