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비정상이니까, 다시 ‘대·자·보’
[경향신문] 김지원 기자 | 입력 : 2015-12-25 21:15:19 | 수정 : 2015-12-25 21:16:07
2010 김예슬 선언, 2013 안녕들 하십니까, 2015 국정화 반대…대자보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학생사회 조직이 와해했을 뿐, 학생들은 옳지 못한 것에 꾸준히 분노해왔다. SNS와 결합해 재생산되면서 파급력은 더 커지고 있다.
“학교에 그렇게 많은 대자보가 붙은 건 입학 이후 처음 봤던 것 같아요.” 서울지역 한 사립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 씨(24)는 지난 10~11월 한창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사회가 들끓었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김 씨는 “평소엔 토익이나 취업, 행사 관련 벽보만 가득했던 학내 게시판 곳곳이 개인이 붙인 대자보들로 가득했다”면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지나가던 교수님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학생들과 함께 대자보를 읽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희대학교에서 김수영 시인이 쓴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의 시 대자보를 학교 측이 철거하자 다른 대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 대자보들이 연달아 나붙고 많은 이들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 ‘아날로그’의 표상인 대자보가 대학가에서 다시금 생명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대자보의 ‘부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운동의 퇴조 또는 학생 사회의 종말론이 대두했으나, 개인이 쓴 대자보는 꾸준히 힘을 얻고 학생 사회에서 회자해 왔다.
2010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 선언을 했던 고려대 김예슬 씨의 대자보는 학생 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서울대 등 많은 대학에서 ‘제2, 제3의 김예슬’을 자처하는 이들이 그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런 대자보 ‘열풍’은 3년 후인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로 이어졌다. 2013년 12월 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주현우 씨가 처음으로 부착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비슷한 형태의 자보들이 각지에 붙기 시작했다. 주씨가 처음 작성한 대자보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지만, 어느새 ‘안녕들 하십니까’는 힘든 취업, 노동조건 등 각자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됐다.
그리고 지난 10~11월 정부의 국정화 방침 발표를 전후로 다시금 대학을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대자보들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국정화 방침이 발표되고 열흘 뒤인 10월 22일 비영리 대학생 단체인 ‘대학희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 69개 대학에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0~11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자보와 지난달 30일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의 특징은 우선 그것이 기존과는 다르게 기지 넘치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패러디 등을 적극 차용하고 ‘글’이 아닌 ‘이미지’ 형식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방침 발표 이후 지난 10월 19일 연세대에 붙은 대자보는 대외적으로 큰 쟁점이 됐다. 해당 대자보는 북한 선전 매체의 말투를 활용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했다. 이어 서울대 등에서도 대자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을 유신이 선포된 연도인 ‘1972’로만 가득 채운 대자보나, 수학식을 이용한 대자보, 한시(漢詩) 형식의 대자보 등 이색적인 대자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패러디와 재생산을 가능케 했던 핵심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대, 공유 과정이었다. 쟁점이 된 대자보는 곧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삽시간에 널리 퍼져나갔고 이에 동조 혹은 반박하는 의견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오갔다.
지난 10월 22일 교내 게시판에 국정화 반대 대자보를 부착한 신 모 씨(21)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대자보를 쓸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다만 명백히 잘못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자기 생각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대자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 대자보의 ‘부활’ 현상을 단순히 ‘대자보의 재등장’이 아닌 ‘진화’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이광수 교수는 이와 같은 대자보·소셜미디어의 결합을 인터넷 시대 ‘감성 연대’의 회복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인터넷 초창기엔 온라인상에서도 논쟁, 감성의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2010년 들어서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소셜미디어상의 글이 갖는 위력이 상당히 쇠락했다”면서 “‘지역적인(local)’ 방식으로 친밀하게 소비되던 80~90년대 대자보가 온라인과 결합했을 때 더 파급력도 강해지고 현세대에 호감을 사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자보, 선전에서 패러디를 차용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있는 현상”이라며 “특히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국면이 강화될수록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패러디’를 통해 돌려 말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최근 국정화 교과서 반대 자보에 등장한 패러디와 각종 재생산도 이러한 현상의 일환”이라고 했다.
<88만원 세대>의 공동저자인 박권일 씨는 이런 젊은 세대의 관심이 ‘찻잔 속의 태풍’에서 진화할 동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등에서도 대자보가 화제가 됐지만, 그것이 실제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나 집회로 이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최근 헬조선 담론도 ‘한국이 지옥 같다’는 현상에 대한 많은 글이 올라오고 공감을 얻고 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라는 질문엔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죽창’이란 유행어도 극단적인 분노 표출 수단 같아 보이지만 추상적인 담론상의 공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성한 담론들을 현실에 대한 변화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 네트워크가 와해된 상황에서 우리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대자보의 부활을 ‘비정치적인 대학생’들의 일시적인, 특이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론가 노정태 씨는 “최근 10여 년 사이 대학생들을 공부, 취업에만 매달리는 ‘비정치적인’ 존재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학생사회의 조직이 와해된 것일 뿐, 학생 개개인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옳지 못한 것에 꾸준히 분노해왔고 대자보 열풍도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아프니까 비정상이니까, 다시 ‘대·자·보’
[경향신문] 김지원 기자 | 입력 : 2015-12-25 21:15:19 | 수정 : 2015-12-25 21:16:07
2010 김예슬 선언, 2013 안녕들 하십니까, 2015 국정화 반대…대자보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학생사회 조직이 와해했을 뿐, 학생들은 옳지 못한 것에 꾸준히 분노해왔다. SNS와 결합해 재생산되면서 파급력은 더 커지고 있다.
“학교에 그렇게 많은 대자보가 붙은 건 입학 이후 처음 봤던 것 같아요.” 서울지역 한 사립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 씨(24)는 지난 10~11월 한창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사회가 들끓었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김 씨는 “평소엔 토익이나 취업, 행사 관련 벽보만 가득했던 학내 게시판 곳곳이 개인이 붙인 대자보들로 가득했다”면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지나가던 교수님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학생들과 함께 대자보를 읽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희대학교에서 김수영 시인이 쓴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의 시 대자보를 학교 측이 철거하자 다른 대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 대자보들이 연달아 나붙고 많은 이들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 ‘아날로그’의 표상인 대자보가 대학가에서 다시금 생명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자보의 화려한 부활
대학 대자보의 ‘부활’ 이야기가 나온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운동의 퇴조 또는 학생 사회의 종말론이 대두했으나, 개인이 쓴 대자보는 꾸준히 힘을 얻고 학생 사회에서 회자해 왔다.
2010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 선언을 했던 고려대 김예슬 씨의 대자보는 학생 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서울대 등 많은 대학에서 ‘제2, 제3의 김예슬’을 자처하는 이들이 그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런 대자보 ‘열풍’은 3년 후인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로 이어졌다. 2013년 12월 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주현우 씨가 처음으로 부착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비슷한 형태의 자보들이 각지에 붙기 시작했다. 주씨가 처음 작성한 대자보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지만, 어느새 ‘안녕들 하십니까’는 힘든 취업, 노동조건 등 각자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됐다.
그리고 지난 10~11월 정부의 국정화 방침 발표를 전후로 다시금 대학을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대자보들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국정화 방침이 발표되고 열흘 뒤인 10월 22일 비영리 대학생 단체인 ‘대학희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 69개 대학에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 1979년 10·26사태에 관한 대자보 경향신문 자료 사진
수학식·한시 등 다양한 형식
지난 10~11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자보와 지난달 30일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의 특징은 우선 그것이 기존과는 다르게 기지 넘치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패러디 등을 적극 차용하고 ‘글’이 아닌 ‘이미지’ 형식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방침 발표 이후 지난 10월 19일 연세대에 붙은 대자보는 대외적으로 큰 쟁점이 됐다. 해당 대자보는 북한 선전 매체의 말투를 활용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했다. 이어 서울대 등에서도 대자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을 유신이 선포된 연도인 ‘1972’로만 가득 채운 대자보나, 수학식을 이용한 대자보, 한시(漢詩) 형식의 대자보 등 이색적인 대자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 2010년 고려대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 경향신문 자료 사진
이런 패러디와 재생산을 가능케 했던 핵심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대, 공유 과정이었다. 쟁점이 된 대자보는 곧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삽시간에 널리 퍼져나갔고 이에 동조 혹은 반박하는 의견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발히 오갔다.
지난 10월 22일 교내 게시판에 국정화 반대 대자보를 부착한 신 모 씨(21)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대자보를 쓸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다만 명백히 잘못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소셜미디어 등에서 자기 생각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대자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 ‘감성 연대’
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 대자보의 ‘부활’ 현상을 단순히 ‘대자보의 재등장’이 아닌 ‘진화’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이광수 교수는 이와 같은 대자보·소셜미디어의 결합을 인터넷 시대 ‘감성 연대’의 회복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인터넷 초창기엔 온라인상에서도 논쟁, 감성의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2010년 들어서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소셜미디어상의 글이 갖는 위력이 상당히 쇠락했다”면서 “‘지역적인(local)’ 방식으로 친밀하게 소비되던 80~90년대 대자보가 온라인과 결합했을 때 더 파급력도 강해지고 현세대에 호감을 사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자보, 선전에서 패러디를 차용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있는 현상”이라며 “특히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국면이 강화될수록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패러디’를 통해 돌려 말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최근 국정화 교과서 반대 자보에 등장한 패러디와 각종 재생산도 이러한 현상의 일환”이라고 했다.
▲ 2013년 고려대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있는 학생들 경향신문 자료 사진
<88만원 세대>의 공동저자인 박권일 씨는 이런 젊은 세대의 관심이 ‘찻잔 속의 태풍’에서 진화할 동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등에서도 대자보가 화제가 됐지만, 그것이 실제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나 집회로 이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최근 헬조선 담론도 ‘한국이 지옥 같다’는 현상에 대한 많은 글이 올라오고 공감을 얻고 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라는 질문엔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죽창’이란 유행어도 극단적인 분노 표출 수단 같아 보이지만 추상적인 담론상의 공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성한 담론들을 현실에 대한 변화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 네트워크가 와해된 상황에서 우리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대자보의 부활을 ‘비정치적인 대학생’들의 일시적인, 특이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론가 노정태 씨는 “최근 10여 년 사이 대학생들을 공부, 취업에만 매달리는 ‘비정치적인’ 존재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학생사회의 조직이 와해된 것일 뿐, 학생 개개인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옳지 못한 것에 꾸준히 분노해왔고 대자보 열풍도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2000년대 전자게시판 정책·학생운동 퇴조 맞물려 “대자보 사라졌다” 섣부른 보도도
“대학 구내에는 갖가지 색깔의 매직펜으로 쓴 대자보와 신문지상엔 발표되지 않는 문서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온 대학의 벽을 대자보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1980년 5월 한 언론은 당시 대학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들은 시국 성토에 관한 한 같은 의식과 목적 때문인지 어느 대학이나 내용이 거의 비슷했다.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대자보의 주장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운동권’ 주류의 목소리뿐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등장했다.
1986년 10월엔 서울대 서양사학과 황인욱 씨 등이 북한 기관지 ‘민주조선’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쓴 대자보를 학교에 붙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다. 당시 교수와 학생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자보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했다.
정치적 노선뿐 아니라 학내 사안을 다룬 대자보도 등장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1986년 5월 6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개교기념축제를 ‘소비 지향적, 향락적’이라는 이유로 전면 거부하자 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대자보를 통해 개진되기도 했다. “대학이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므로 축제 거부와 다른 의견을 갖는 소수의 주장도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대를 위시한 몇몇 학교들이 전자게시판으로 학내 공지사항, 홍보를 일원화하면서 ‘클린 캠퍼스’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학내에 자보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배포하기 위해선 학생처장이나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1970년대 유신시대 학칙이 부활했다. 이런 학칙에 학생운동 퇴조가 맞물려 2000년 한 언론은 ‘대자보가 사라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현재 대자보는 또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부활·진화하고 있다.
“대학 구내에는 갖가지 색깔의 매직펜으로 쓴 대자보와 신문지상엔 발표되지 않는 문서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온 대학의 벽을 대자보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1980년 5월 한 언론은 당시 대학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들은 시국 성토에 관한 한 같은 의식과 목적 때문인지 어느 대학이나 내용이 거의 비슷했다.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대자보의 주장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운동권’ 주류의 목소리뿐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등장했다.
1986년 10월엔 서울대 서양사학과 황인욱 씨 등이 북한 기관지 ‘민주조선’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쓴 대자보를 학교에 붙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다. 당시 교수와 학생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자보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했다.
정치적 노선뿐 아니라 학내 사안을 다룬 대자보도 등장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1986년 5월 6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개교기념축제를 ‘소비 지향적, 향락적’이라는 이유로 전면 거부하자 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대자보를 통해 개진되기도 했다. “대학이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므로 축제 거부와 다른 의견을 갖는 소수의 주장도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대를 위시한 몇몇 학교들이 전자게시판으로 학내 공지사항, 홍보를 일원화하면서 ‘클린 캠퍼스’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학내에 자보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배포하기 위해선 학생처장이나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1970년대 유신시대 학칙이 부활했다. 이런 학칙에 학생운동 퇴조가 맞물려 2000년 한 언론은 ‘대자보가 사라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현재 대자보는 또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부활·진화하고 있다.
출처 아프니까 비정상이니까, 다시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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