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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농산물 자유무역의 이익은 ‘곡물 메이저’에 돌아갔다

농산물 자유무역의 이익은 ‘곡물 메이저’에 돌아갔다
[점검 - 농산물 수입개방 20년 ②]
압력에 굴복한 정부, 농업을 망치다

[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25 16:10:37


“‘컴퓨터로 먹고 살 수는 없다’고 누가 그랬다. (따라서) 농어업은 인류역사가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 농수산업은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기초산업이고, 식품산업이 IT보다 더 유망한 시장이다. 농수산업이 우리의 ‘미래성장엔진’이자 ‘대박산업’이라는 확신과 열정을 갖고 각오를 새롭게 다져 줄 것을 당부한다”

지난 7월 7일,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농수산업 미래성장산업화’ 등을 주제로 제4차핵심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박근혜는 이날 회의에서 “농어촌이 고령화, 인력부족, 시장개방 등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른바 ‘농업 대박론’이다.

박근혜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인구는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박근혜의 말대로 ‘컴퓨터를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라면 한국의 농업이 몰락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대박’을 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시장인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 본대로 한국 농업은 몰락했다.

한국의 산업이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사회로, 다시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1차 산업인 농업의 쇠락은 불가피한 과정이었을까? 전세계 곳곳에서 중소농의 몰락과 농업의 위기는 공동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었던가? 한국인들의 입맛이 변해 쌀 소비량을 줄이고 보다 다양한 먹거리를 많이 먹게 되면서 한국 농업 몰락을 부채질 한 것일수도 있다. 실제 쌀 소비량은 국민들의 입맛이 변하면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이같은 요인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우리 농업의 몰락은 지나치게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농산물 자유무역’과 자유무역을 무기로 전 세계 농업 몰락을 부채질 하고 있는 ‘초국적 농식품기업’이라고 지적한다.

▲ 박근혜가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정상회의 및 체코 순방을 위해 출국에 앞서 환송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등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글로벌 곡물 메이저, 농업을 무력화 시키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면서 모든 농산물은 자유무역의 대상에 포함됐다. 한국 농산물보다 싼 외국 농산물이 있다면 이를 수입해 들어와 관세를 물고 한국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구상은 1995년 WTO 체제로 구체화됐고 국내 농업에 직접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WTO는 원칙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수량제한을 금지했다. 관세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농업에 들어가는 보조금도 줄여나가도록 했다. 정부가 농산물에 매길 관세 계산법까지도 제시했다. WTO가 허용하지 않은 농업 정책은 실시할 수 없었고 농산물 가격 대폭락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관세도 마음대로 조절 할 수 없었다.

이같은 농산물 자유무역 확대의 이면에는 곡물 메이저 회사들이 있었다. 곡물 메이저는 지난 20여년 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 곡물시장 지배에 장애요인이 되는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농업․식량․먹거리 정책을 철폐시켜 왔다.

WTO 협상을 두고 인도의 환경 운동가 반디나 시바는 “WOT 협상은 카길협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카길은 미국의 곡물 메이저 그룹의 이름이다. 카길의 대니얼 암스터츠 전 부회장은 198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농업협상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미국 협상팀의 농업 대표를 맡았고 어네스트 마이섹 전 사장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대통령 수출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WTO 협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내세워 개별 국가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농업정책 및 식량․먹거리 정책을 끊임없이 축소하거나 철폐시켜 왔다. 지난 2004년 한국의 대표적인 농업보호정책이었던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WTO가 장기 표류하게 되자 곡물메이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대신 내세워 개별 국가의 독립적인 농업정책을 가로막고 있다.

카길을 비롯한 4대 곡물메이저는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80%, 전 세계 곡물 저장시설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곡물을 운송할 수 있는 선적 능력 역시 47%에 이른다. 이들 4대 곡물메이저를 통하지 않고서는 곡물의 국제 거래, 저장, 운송이 쉽지 않을 만큼 이들은 세계 곡물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곡물 수입은 특정국이나 이들 곡물 메이저 등 일부 기업에 편중돼 있다. 한국의 주요 수입 곡물인 옥수수, 밀, 대두는 대부분 미국, 중국,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에서 들어오고 있다. 한국 곡물시장의 72.9%를 카길, ADM, LDC, BUNGE 등 곡물 메이저와 마루베니, 미쓰비시와 같은 일본계 종합상사가 장악하고 있다.


압력에 굴복한 한국 정부 “굴욕적 협상, 비판받아 마땅”

세계 곡물 메이저와 WTO의 자유무역 압력에 한국 정부는 매번 굴복해왔다. 이는 한국 정부가 WTO와 벌였던 ‘쌀 수입 협상’을 살펴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WTO는 ‘최소시장접근(MMA)’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품목의 관세화를 유예하는 동안 국내 소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저율관세로 의무수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국은 쌀 관세화 협상을 하면서 일본 등 여타 국가에 비교해 매우 많은 의무 수입 물량을 들여왔다. 한국의 의무수입 물량은 1995년 5만1천 톤에서 2004년 20만5천 톤까지 네 배나 늘었다. 2004년에는 재협상을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재협상에 임해 다시 의무수입물량을 늘려 2005년 22만6천 톤에서 2014년까지 40만9천 톤까지 늘리도록 했다.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소비량과의 비율로 따지만 1994년 1%, 2004년엔 4%, 2005년엔 4.4%, 2014년엔 8%에 달한다. WTO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눠 의무수입물량을 구분하고 있는데 개발도상국인 한국의 쌀 의무수입량은 선진국인 일본의 7.2%보다 높은 수치다. 국내에서 쌀 소비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비율은 10% 이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나 2004년 협상은 WTO 각료회의가 사실상 결렬되고 모든 협상이 2005년 홍콩 각료회의까지 중단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다른 이해 당사국들은 협상에서 한국 정부에 불공정한 조건을 수용하도록 지속해서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이에 굴복했다. 일본 전국농민운동연합회 마시마 요시타카 부의장은 “한국 정부가 그런 굴욕적인 조건들을 수용한 것에 대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파괴된 한국 농업, 부작용은 심각했다

한국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수출입 정보에 따르면 1998년 한국에 들어온 수입 농수축산물은 66억9천만 달러(약 8조2천억 원) 어치였다. 그로부터 불과 5년 뒤인 2003년 수입액은 2배로 불어 났고(121억8천500만 달러, 14조3천억 원) 2010년에는 세 배로(223억3천만 달러, 26조3천억 원) 지난해에는 316억3천5백만 달러(37조3천억 원)에 달했다. 농산물 수입액이 불과 16년 만에 372% 늘어난 것이다.

농수축산물 수입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농산물이다. 농산물은 1998년 5조5천억 원 가량(전체 수입액 67.1%)이 수입됐는데 2014년에는 22조8천억 원(61.0%)으로 늘었다. 2014년 농산물 수입액은 같은 해 국내 농림업 전체 생산액 47조 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농산물의 경우 생산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은 폭락한다. 하루 세 공기씩 먹는 밥을 쌀값 내렸다고 네, 다섯 공기씩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불과 16년 만에 값싼 수입 농산물이 세배 이상 몰려들었으니 국내 농산물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국내 대표 농작물 중 하나였던 당근은 이제 수입산이 국내산보다 더 많아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당근은 지난 2000년 1만t이었던 수입량이 2011년부터 9만t 톤을 넘어서고 있다. 수입당근의 가장 큰 무기는 싼 가격이었다. 지난해 수입 당근의 도매시장 반입 가격은 1kg당 761원으로 국산(1,060원)보다 30%가량 낮았다.

지난 2002년 당근의 국내 생산량은 13만6천 톤에 달했으나 10년이 지난 2012년 당근 생산량은 6만3천 톤으로 절반 이상 축소됐다. 같은 기간 1만8천 톤이던 당근 수입량은 10만3천 톤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국내 당근 농가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2000년 당근 재배면적은 4,383ha였던데 반해 2014년에는 2천397ha로 반 토막 났다.

▲ 전남 해남군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김장용 배추를 심고 있다. 해남군은 전국 배추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배추 주산지다. ⓒ제공 : 뉴시스


금배추와 똥배추, 먹거리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

비단 당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는 품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쌀,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 등과 같은 소수품목을 제외하면 농사지을만한 작목이 별로 없다. 그래서 농민들은 소수품목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생산 집중도를 높인다.

이들 중 쌀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들은 가격 파동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표적인 품목들이 되어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추는 지난 10년간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2010년 가을에 배추는 한 포기에 1만5천 원까지 치솟으며 ‘금치’로 불렸다. 바로 그 전해인 2009년에는 한 포기 가격이 500원도 안 됐다. 양파와 마늘 역시 2013년 kg당 평균 1,300원에 거래됐지만 2014년에는 kg당 500원으로 절반 이상 가격이 폭락했다. 다시 올해 9월에는 양파가격이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뒤늦게 수매 비축, 생산조정, 자율 감축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부소장은 “지난 20여 년간 농산물 자유무역과 농업 구조조정으로 국내 농업생산기반은 매우 취약해졌다”며 “소수 특정 품목으로의 생산 집중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 및 공급의 변화가 가격 불안을 초래하는 힘이 더욱 커지게 됐다 “특정 품목의 재배면적이 조금만 늘어나더라도 가격은 더욱 큰 폭으로 폭락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고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 감소가 가격을 더욱 크게 폭등시키는 현상이 초래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20년간 자유무역의 결과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먹거리 불안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다.


쌀만은 버텨낼 것이라고요?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국 농업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은 쌀 때문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24%를 기록했다. OECD 최하위 수준이지만 그나마 자급률이 20%대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쌀 때문이다. 쌀 자급률은 지난해와 올해 대풍으로 90% 후반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쌀 자급률이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쌀을 자유무역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쌀만은 지키겠다’며 호언장담해왔다. 실제 UR이나 이후 진행됐던 FTA 협상에서도 쌀은 될 수 있는 대로 개방을 수준을 낮춰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올해 쌀마저도 개방했다. ‘높은 관세를 매겨 상관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관세율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지는 순간 높은 관세는 점차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513%의 쌀 관세율을 지켜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후 진행될 환태평양경제자유협정(TPP) 등의 협상에서 관세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관세율이 점차 낮아져 쌀마저도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생산기반이 무너질 경우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배추가 금값이면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는 이명박의 ‘꼼수’라도 나올 수 있겠지만, 쌀값이 폭등한다면 대체할 작물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지나친 비관론, 혹은 피해망상이라고 여겨진다면 20년 전 농민들이 외쳤던 ‘우리 농산물 다 죽이는 수입개방 저지하자’라는 구호를 떠올려 보자. 1편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 농업이 사실상 ‘다 죽는’ 데는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출처  농산물 자유무역의 이익은 ‘곡물 메이저’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