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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WTO·FTA·TPP

“WTO 20년, 새로운 농업 정책이 필요하다”

“WTO 20년, 새로운 농업 정책이 필요하다”
[점검 - 농산물 수입개방 20년 ③]
인터뷰 -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1-02 13:43:13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진행됐던 제10차 각료회의 직후 “WTO는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이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농업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에서 WTO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박 위원장은 최근 <민중의소리>와 가진 두 차례(11일·21일) 인터뷰에서 “나이로비에서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은 다시 살아나기 힘든 나락으로 빠져들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형대 위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제10차 각료회의 농업 부분 협상 성과를 그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농업 수출 보조금 철폐’를 이번 협상의 성과로 꼽았는데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정작 협상에서 다뤄져야 했던 관세 인하와 국가보조 감축·철폐 등 핵심 쟁점은 ‘향후 논의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처리한 채 효과가 미미한 수출 보조금 철폐를 성과로 내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농업 정책 변경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DDA 타결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추곡수매제도를 폐기하는 등 DDA 협상 지침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결국 DDA는 20년이 지난 제10차 각료회의까지도 타결되지 않았다.

박형대 위원장은 “정부는 지금이라도 DDA와 관련한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고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등을 통해 농업 회생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대 정책위원장. ⓒ제공 : 한국농정신문


농산물 자유무역 20년 “민중의 거센 저항, 이젠 새로운 사상 꿈꿔야”

박형대 위원장은 “지난 20년간 진행된 WTO가 1993년 타결 이후 한 발도 진전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민중들의 거센 저항과 자본가들의 양보 없는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년간 우리 농민들은 삶의 모순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어려움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꾸준히 제기해왔다”며 “자유무역은 절대적 선이라는 논리 뒤에 숨겨진 탐욕을 고발해왔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과적 측면으로 보면 더는 악화하는 것을 막는 수준이기 때문에 얻어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도 “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해 농민들과 민중들이 각성하는 계기는 만들어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암초를 만난 신자유주의 세력은 양자 간 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이나 미국-EU 자유무역협정(TTIP, 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박형대 위원장은 “그간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각국의 이해당사자들이 ‘협상에 포함된 내용 중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에만 골몰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FTA 당사자인 양국의 민중연대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TPP의 경우 규모만 놓고 본다면 WTO의 1/10 수준”이라며 “이해 당사국 민중들이 국제연대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10차 나이로비 회담은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회의라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면서 “WTO는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아프리카 민중들의 저항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박형대 위원장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상과 철학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지금에 와서는 민중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잘 모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이런 국제 투쟁의 종착점에 대해서는 ‘우리 투쟁의 희망이 무엇인가. 막기만 하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가 가야 할 사회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가져야할 식량 체계와 무역 질서는 무엇인가라.’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라비아캄페시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제투쟁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비아캄페시나가 대중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개별화·개인화되는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농업의 몰락, 이제는 새로운 농업을 고민해야 할 때

“예전에 우루과이라운드 투쟁을 할 때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민 미래예측’ 소설 같은 게 돌아다녔습니다, 동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고 뒷동산에는 골프장이 들어서고 농민들은 소외되고 쫓겨가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우리 현실이 됐네요”

WTO 20년은 한국 농업에는 가혹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허황한 소설’이라고 여겨졌던 ‘농민 미래예측’은 20년 뒤 한국 농촌에서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났다. 1990년 한국 농민은 660만 명에 달했지만 20년 만에 270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남아있는 농민 40%는 65세 이상이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대 정책위원장. ⓒ제공 : 한국농정신문
박형대 위원장은 “이제 한국 농민은 예전 아메리카 원주민 처럼 소수자가 되어 내몰 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굳이 통계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농촌 현장의 모습을 보면 흔히 말하는 성장 동력이 1995년 이후 완전히 멈춰버렸다”면서 “인공호흡기로 살아가는 것이 농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농민들의 삶이 “WTO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도 한국 농업 몰락을 부채질했다. 농산물 자유무역은 상수로 두고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본 정부는 대농 육성 정책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로 맞서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나 컸다.

박형대 위원장은 “한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은 1.5ha에 불과하다. 미국은 200ha, 덴마크는 61ha, 뉴질랜드는 189ha에 달하는데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나마 규모를 키운 농가들도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박형대 위원장은 “대농·기업농 육성으로 농가부채만 대형기업화 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융자를 받아 생산 설비를 갖추고 규모화를 이룬 대농들은 농산물 가격 하락이라는 암초를 만나 투자금액은 그대로 부채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농가부채의 상승속도와 양은 이미 감당할 수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형대 위원장은 “최근 6차 산업이라며 농업 경쟁력을 말하는데 현장에서는 부채를 6배 만드는 산업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농업은 경쟁력과 식량 자급의 두 가지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품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경쟁력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 자급은 국적 정책 아래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쌀만 농사짓고 콩은 수입해다 먹자는 식으로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수입해서 먹는 농산물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느냐”면서 “한국 농업이 몰락하고 밀려 들어온 수입산 농산물은 농약 함유량, 유전자조작식품 등 안전한 먹거리라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대 위원장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량 주권 개념으로 본다면 기업농이라거나 대농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아니라 중·소농, 농업이라는 산업체계, 사회 체계가 어떻게 유지될 것이냐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산업으로서의 농업 정책이 아니라 식량 주권 개념을 기반으로 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등과 같은 가격 지지, 생산 복원 정책이 함께 시행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처  “WTO 20년, 새로운 농업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