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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인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인가?
[한겨레] 권종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17 15:01:33

▲ 지난 2013년 5·18 민중항쟁 33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 사진전에 전시된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원본 사진 ⓒ이승빈 기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민중항쟁 36주년을 앞두고 올해도 정부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공연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 민중항쟁 기념식’, 민중항쟁을 기념하는 그 자리에서 그날을 상징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수난을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가보훈처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인 2009년부터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았다. 지난 2009년과 2010년엔 식전공연으로, 2011년 이후엔 공연단 합창으로 대체됐다. 심지어 2010년엔 방아타령으로 대신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고, 2013년엔 국가보훈처에서 4천8백만 원을 들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공식 추모곡’을 공모하려다 국민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4년에는 국가보훈처가 “이 노래가 북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됐다”며 문제를 제기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광주광역시가 만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동영상

지난 2009년엔 당시 공무원노조가 행사에서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를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이유로 징계를 추진해 논란을 빚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이 종북 공세에 시달리던 당시엔 정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며 공격을 하기도 했다.

정부와 보훈처가 나서 기어이 막으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연 어떤 노래일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 주제곡이다. 윤상원 열사는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도청에서 전사했다. 박기순 열사는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졌다. 두 사람은 1982년 5.18 묘역에 나란히 합장 돼 죽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들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 형식으로 추모제전에서 발표됐다. 백기완 선생이 1980년 12월에 쓴 시 ‘묏비나리’의 구절을 바탕으로 황석영 소설가가 가사를 썼고,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받은 전남대 김종률이 작곡했다. 그 뒤, 1982년에 제작된 음반 ‘넋풀이-빛의 결혼’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단순히 오월 광주, 광주항쟁을 추모하는 노래가 아니라 5월을 기억하며 새날이 올 때까지 그 길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이후 대학가와 노동계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전두환 정권 당시엔 부를 수 없는 금지곡 취급을 당했지만 1990년대를 지나며 각종 집회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불리는 노래가 됐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나라를 거쳐 간 이주 노동자들을 통해 해외로까지 퍼져나갔다.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중국,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현지어로 번안돼 불리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제는 세계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우뚝 서고 있다.






출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노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