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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탈영, 한국 경찰은 어디로 갔나?

주한미군 탈영, 한국 경찰은 어디로 갔나?
[민중의소리] 홍민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21 10:45:38



지난 18일 오후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카톡방에서 일제히 ‘새 카톡’ 알람이 울렸다. 카톡에는 탈영한 주한미군 A 이병의 사진과 미군범죄수사대(CID)의 D모 수사관의 명함 사진이 들어있었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으니 발견 즉시 명함에 담긴 전화번호로 연락해 달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발신자는 홍익대학교 각 단과대학교 학생회였다. 주한미군범죄수사대가 홍익대학교에 직접 찾아와 “탈영병이 이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니 신고해달라”고 밝혔고 학교측이 총학생회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탈영병이 혹시나 저지를 지 모를 범죄를 막기 위해 취한 주한미군과 홍익대, 총학생회의 조치는 신속했다. 또 지극히 당연했다.

“아니 이런 사실을 왜 경찰이 아니라 학생회가 알려주는 거지? 정말 황당하네”

취재과정에서 만난 홍익대학교 학생의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주한미군이 탈영 해 학교 인근에 있다고 하는데, 한국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민중의소리>가 주한미군이 자주 출몰(?)하는 마포, 서대문, 용산, 동두천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을 모두 확인했지만 경찰은 보도가 나가던 18일 오후까지 주한미군의 탈영 사실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들은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주한미군으로부터 공식 통보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식 통보가 없어서 몰랐다는 말인지,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만 공식 통보를 받은 바는 없었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대답이다.

미2사단과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케이시의 필리핀계 미국인 A(25) 이병은 지난 14일 오전 8시 30분께 비무장 상태로 부대를 벗어난 뒤 연락이 끊겼다. A 이병은 18일 아동성범죄 관련 혐의로 군사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우리 국민은 아동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주한미군이 탈영한 14일부터 검거된 19일 저녁까지 추가 범죄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주한미군, 탈영병 발생사실 숨기고 독단적 수사
국제법 전문가 “사실상 주권 유린 행위”, 명백한 한미SOFA 규정 위반

‘별 사고 없이 잡았으면 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비무장으로 탈영한 군인인데 굳이 알려 혼란을 조장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우리 경찰에 알리지 않고 직접 탈영병을 잡은 것은 또다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수사과정을 살펴보자. 탈영병이 발생하자 주한미군 헌병대와 범죄수사대는 자체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CCTV를 보고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A이병이 갖고 있었다는 카드 사용 내역을 추적했다. 탈영병의 행선지가 홍익대학교로 모아지자 홍익대학교에 미군범죄수사대 수사관이 급파됐다. 주한미군은 이렇게 4일이 지나는 동안 한국 정부와 경찰에 ‘공식 통보’를 하지 않은채 독단적으로 수사를 벌였다.

주한미군의 독단적 수사는 동맹국 국민들의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 될 수밖에 없다. 탈영병이 어디가서 무슨짓을 벌일지 누가 알겠는가. 왜 알리지도 않고 수사를 하는가. 게다가 홍익대학교에 얼굴과 신분을 공개한 것은 수사 단계상 공개수사로 전환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공개수사로 전환해야 할 정도로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한국 정부와 경찰에 알리고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단적 수사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도 위반한 행위다. 한미SOFA 제22조 10항 (나)에 따르면, ‘미군기지 밖에서 미군의 경찰권 행사는 한국 당국과의 연결 하에 행사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탈영병이 발생하고 그 탈영병이 범죄자라는 사실은 SOFA규정을 떠나 당연히 우리 정부에 알려줘야 하는 것”이라며 “탈영병의 범죄행위가 중한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탈영병을 검거하고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의 독단적 수사는 무엇보다 우리 국가의 주권을 유린했다는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군인이 한국 정부의 협조 없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벌이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국제법상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한 범인을 한국 경찰이 미국 정부의 협의 없이 미국 땅에 들어가 잡아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국제법 전문 교수는 “만약 주한미군이 한국 정부에 통보 없이 수사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외교부나 경찰청은 유감 표시를 해도 시원찮을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유감표시를 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한국 경찰의 반응은 어땠을까. 취재 과정에서 통화를 나눈 경찰 관계자의 말을 소개한다.

기자님이 이 사건을 왜 크게 보시는지 모르겠네요, 아 우리 군인도 탈영병 생기면 자기들이 잡잖아요. 거기다 총도 없다고 하고...


출처  [기자수첩] 주한미군 탈영, 한국 경찰은 어디로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