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회피할 때, 이 남자는 책임을 다했다
[기고] 수감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그는 무죄다
[오마이뉴스] 글: 박래군, 편집: 박정훈 | 16.07.02 11:53 | 최종 업데이트 16.07.02 11:53
한상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가 걸어온 이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지금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7개월째 감옥생활을 한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 8년형을 구형했다. 오는 7월 4일, 그의 1심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다. 재판부는 어떻게 선고할까?
그를 만난다면, 첫인상부터 단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는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를 가졌다. 그는 대추방망이라고나 할까,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19살 나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광주 5.18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그는 광주에서 살아남았고, 그리고 노동자가 되었다. 한상균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이었다. 5천여 명의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 포함 3천여 명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리는 잔인한 구조조정에 맞서야 하는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는 실제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벌였다. 그런 일로 그는 감옥에 갔고 징역 3년 만기를 꼬박 채웠다. 그리고 다시 지난해 12월 10일 조계사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 동안의 옥쇄파업을 풀고 해산할 때 나는 그 모습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TV로 보았다. 건장한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고,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품에 안겨 우는 모습, 우는 사내들을 달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공장 문을 나서면 언제 만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울음을 삼키면서 그 사내들을 다독여 주었다.
당시 나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수배자 신세여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동안 가보지도 못했고, 다만 여기저기 연락해서 지원을 부탁하고는 했다. 공장 문을 나섰던 조합원들은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일부는 감옥에 갔다. 한상균은 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감옥살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해고자가 된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하나둘 죽어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맏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그가 더 이상의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리고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서 수십 미터 철탑에서 한겨울을 건너 봄까지 171일을 버틴 이유다.
그가 쌍용차 노조위원장으로 내걸었던 구호는 "함께 살자!"였다.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 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치기 하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그의 간결한 구호는 그것이었다. 그해 우리는 용산에서 외친 "여기 사람이 있다"와 함께 "함께 살자"를 외쳤다. 2012년 대선 기간 중에 생명평화대행진의 주요 구호도 그것이었다. 가장 끔찍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었던 용산과 쌍용차가 함께 외쳤고, 밀양과 강정이 함께 외쳤던 그 구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는 민주노총의 직선 첫 위원장이 되었다. 2014년 12월이었다. 총파업으로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위원장이 된 이후에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런 중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1주기 투쟁에 민주노총이 당연히 함께해야 하고, 메이데이 투쟁 뒤에도 밤샘 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약속을 하면 온몸을 던져서 지키는 사람이다. 세월호 1주기 투쟁에 민주노총은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모두 투입했다. 5월 1일 밤 청와대 항의 방문하러 가는 길이 인사동에서 막혔을 때도 그는 유가족들과 길거리에서 밤샘농성을 했다. 이런 일로 그는 경찰의 출두를 요구받았고 그는 출석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후 수배자가 되어 민주노총에 갇혀 살아야 했다.
나는 1주기 싸움과 관련해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11월에 민주노총에 갇혀서 수배생활을 하는 그를 방문했다.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뒤에 그는 민중총궐기를 맞아서 민주노총 건물을 나와 다시 거리에 섰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는 13만 명 이상의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고통받는 민중들이 모두 서울로 모였다. 그렇지만 이들을 대하는 건 차벽이었고, 물대포였다. 강고하게 형성한 차벽은 밤늦도록 버티면서 정부를 규탄하는 행동을 광화문 사거리 아래로 한정시켰다. 그 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한상균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그 현장에서 투쟁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정부는 이를 빌미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그를 잡기 위해 경찰들이 혈안이 되었지만 그는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조계사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계사는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지 않았다. 정부권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조계사는 그를 압박해서 결국 경찰에 출두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경찰에 출두했던 그 날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었음을 기억한다. 민중총궐기는 생존권의 위기에 내몰린 민중들의 비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폭발한 것이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힘 있고, 돈이 있는 세력에게 호소를 했던 행동이었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이지 말아 달라면서 비명을 내지르는 그 현장에서 그는 맨 앞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가 수배를 당했고, 체포까지 당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날로 기념하는 그 날, 한국에서는 인권옹호자인 한상균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인권은 무시당한 것이었다. 한상균이 감옥에 간 날 다양한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가 열렸다.
그의 이름은 유엔에서 종종 거론되고는 한다. 나의 이름과 함께. 유엔은 거듭거듭 지적하고 권고해왔다. 집회의 주최자가 집회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지른 행동 모두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일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정하고, 위축시키는 반인권적인 처사이므로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지난 6월 17일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이 의장으로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런 상황들을 보고했다. 특별보고관은 416연대의 나와 함께 한상균 위원장의 사례를 직접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법행위에 의해 야기된 손해에 대해 집회주최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고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정부는 집회참가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를 받거나 형사적 혹은 민사적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되며,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책임의 원칙이 집회주최자를 포함하여 지켜져야"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마이나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지난 1월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보고한 것이었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하여 유엔의 특별보고관이 보고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엔의 지적과 권고와는 반대로 한상균은 집회에 참가한 개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직접적인 유엔의 지적과 권고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검찰은 8년이라는 구형을 했다. 재판부도 유엔의 권고와 유엔의 인권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를 것인지 주목된다.
그는 이 시대 고통의 담지자다. 고통의 심연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세력들과의 싸움을 벌였다. 그는 노동자의 대표다. 만약 그에게 실형을 선고한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의 논리대로라면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하냐고 말이다.
물론 지금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회피할 것이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해외로 나갔던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무책임성을 읽는다. 한상균에게 집회시위에 참가한 개인들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은 과도하고 불합리하며, 결국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법부가 기본권을 지키는 일에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
한상균은 무죄다. 그는 노동자의 대표로 정부와의 대화의 자리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대표를 감옥에 가두고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모두 거짓일 뿐이다. 그는 민중의 대표다. 민주노총이 수많은 민중들의 고통에 연대해온 것이 그 증명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유엔이 정한 인권옹호자이다.
그런 그가 더 이상 감옥에 있는 것은 부당하고,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한상균을 석방하라. 그것이 지금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올바른 판결이다. 7월 4일 사법부가 그런 용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그가 석방되어 "노동자가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한" 그런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출처 박근혜 대통령이 회피할 때, 이 남자는 책임을 다했다
[기고] 수감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그는 무죄다
[오마이뉴스] 글: 박래군, 편집: 박정훈 | 16.07.02 11:53 | 최종 업데이트 16.07.02 11:53
▲ 한상균 위원장 ⓒ 민주노총
한상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가 걸어온 이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지금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7개월째 감옥생활을 한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 8년형을 구형했다. 오는 7월 4일, 그의 1심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다. 재판부는 어떻게 선고할까?
그를 만난다면, 첫인상부터 단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는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를 가졌다. 그는 대추방망이라고나 할까,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19살 나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광주 5.18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그는 광주에서 살아남았고, 그리고 노동자가 되었다. 한상균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이었다. 5천여 명의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 포함 3천여 명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리는 잔인한 구조조정에 맞서야 하는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는 실제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벌였다. 그런 일로 그는 감옥에 갔고 징역 3년 만기를 꼬박 채웠다. 그리고 다시 지난해 12월 10일 조계사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광주 시민군에서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 동안의 옥쇄파업을 풀고 해산할 때 나는 그 모습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TV로 보았다. 건장한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고,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품에 안겨 우는 모습, 우는 사내들을 달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공장 문을 나서면 언제 만날지 기약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울음을 삼키면서 그 사내들을 다독여 주었다.
당시 나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수배자 신세여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동안 가보지도 못했고, 다만 여기저기 연락해서 지원을 부탁하고는 했다. 공장 문을 나섰던 조합원들은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일부는 감옥에 갔다. 한상균은 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감옥살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해고자가 된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하나둘 죽어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맏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그가 더 이상의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리고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서 수십 미터 철탑에서 한겨울을 건너 봄까지 171일을 버틴 이유다.
▲ 2013년 2월 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사진)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이 77일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부근 철탑에서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그가 쌍용차 노조위원장으로 내걸었던 구호는 "함께 살자!"였다.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 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치기 하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그의 간결한 구호는 그것이었다. 그해 우리는 용산에서 외친 "여기 사람이 있다"와 함께 "함께 살자"를 외쳤다. 2012년 대선 기간 중에 생명평화대행진의 주요 구호도 그것이었다. 가장 끔찍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었던 용산과 쌍용차가 함께 외쳤고, 밀양과 강정이 함께 외쳤던 그 구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는 민주노총의 직선 첫 위원장이 되었다. 2014년 12월이었다. 총파업으로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위원장이 된 이후에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런 중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1주기 투쟁에 민주노총이 당연히 함께해야 하고, 메이데이 투쟁 뒤에도 밤샘 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약속을 하면 온몸을 던져서 지키는 사람이다. 세월호 1주기 투쟁에 민주노총은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모두 투입했다. 5월 1일 밤 청와대 항의 방문하러 가는 길이 인사동에서 막혔을 때도 그는 유가족들과 길거리에서 밤샘농성을 했다. 이런 일로 그는 경찰의 출두를 요구받았고 그는 출석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후 수배자가 되어 민주노총에 갇혀 살아야 했다.
나는 1주기 싸움과 관련해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11월에 민주노총에 갇혀서 수배생활을 하는 그를 방문했다.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뒤에 그는 민중총궐기를 맞아서 민주노총 건물을 나와 다시 거리에 섰다.
세월호 유가족과 밤샘을 하던 한상균
▲ 한상균 위원장 ⓒ 민주노총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는 13만 명 이상의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고통받는 민중들이 모두 서울로 모였다. 그렇지만 이들을 대하는 건 차벽이었고, 물대포였다. 강고하게 형성한 차벽은 밤늦도록 버티면서 정부를 규탄하는 행동을 광화문 사거리 아래로 한정시켰다. 그 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한상균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그 현장에서 투쟁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정부는 이를 빌미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그를 잡기 위해 경찰들이 혈안이 되었지만 그는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조계사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계사는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지 않았다. 정부권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조계사는 그를 압박해서 결국 경찰에 출두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경찰에 출두했던 그 날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었음을 기억한다. 민중총궐기는 생존권의 위기에 내몰린 민중들의 비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폭발한 것이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힘 있고, 돈이 있는 세력에게 호소를 했던 행동이었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이지 말아 달라면서 비명을 내지르는 그 현장에서 그는 맨 앞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가 수배를 당했고, 체포까지 당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날로 기념하는 그 날, 한국에서는 인권옹호자인 한상균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인권은 무시당한 것이었다. 한상균이 감옥에 간 날 다양한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가 열렸다.
그의 이름은 유엔에서 종종 거론되고는 한다. 나의 이름과 함께. 유엔은 거듭거듭 지적하고 권고해왔다. 집회의 주최자가 집회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지른 행동 모두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일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정하고, 위축시키는 반인권적인 처사이므로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지난 6월 17일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이 의장으로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런 상황들을 보고했다. 특별보고관은 416연대의 나와 함께 한상균 위원장의 사례를 직접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법행위에 의해 야기된 손해에 대해 집회주최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고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정부는 집회참가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를 받거나 형사적 혹은 민사적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되며,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책임의 원칙이 집회주최자를 포함하여 지켜져야"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마이나 키아이 특별보고관은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지난 1월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보고한 것이었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관련하여 유엔의 특별보고관이 보고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엔의 지적과 권고와는 반대로 한상균은 집회에 참가한 개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직접적인 유엔의 지적과 권고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검찰은 8년이라는 구형을 했다. 재판부도 유엔의 권고와 유엔의 인권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를 것인지 주목된다.
한상균의 석방은 유엔의 권고 사항
▲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지난 4월 18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총궐기는 무죄다, 구속자를 전원 석방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그는 이 시대 고통의 담지자다. 고통의 심연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세력들과의 싸움을 벌였다. 그는 노동자의 대표다. 만약 그에게 실형을 선고한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의 논리대로라면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하냐고 말이다.
물론 지금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회피할 것이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해외로 나갔던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무책임성을 읽는다. 한상균에게 집회시위에 참가한 개인들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은 과도하고 불합리하며, 결국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법부가 기본권을 지키는 일에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
한상균은 무죄다. 그는 노동자의 대표로 정부와의 대화의 자리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대표를 감옥에 가두고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모두 거짓일 뿐이다. 그는 민중의 대표다. 민주노총이 수많은 민중들의 고통에 연대해온 것이 그 증명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유엔이 정한 인권옹호자이다.
그런 그가 더 이상 감옥에 있는 것은 부당하고,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한상균을 석방하라. 그것이 지금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올바른 판결이다. 7월 4일 사법부가 그런 용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그가 석방되어 "노동자가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한" 그런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출처 박근혜 대통령이 회피할 때, 이 남자는 책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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