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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산재 사망자 3087명이 통계에서 사라진 이유

산재 사망자 3087명이 통계에서 사라진 이유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발행 : 2016-07-03 15:51:46 | 수정 : 2016-07-03 15:51:46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의 한 화장품업체 공장에서 노동자 A씨가 지게차에 치였다. 동료들이 119에 신고했고 곧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현장책임자인 B씨는 119구급차를 돌려보내고, A씨를 회사 지정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이송이 한 시간이나 지연됐고, A씨는 끝내 숨졌다.

동료들이 부른 119 구급차를 돌려보내고 회사 지정병원으로 이송한 건, 산재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대기업 건설사에서 119를 돌려보내고 회사 지정병원으로 이송해 산재를 은폐한 사례가 있었고, 심지어 회사 지정병원은 산재 노동자의 진료기록마저 없애는 일도 있었다. 대기업과 병원이 유착해 산재를 은폐한 것이다.

▲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4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작업복을 입은 채 행진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산재은폐 부추기는 노동부?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가 한 해 2,400여 명이나 된다. 하루 6.5명꼴로 일하다 죽는 셈이다. 최근에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산재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이 비용절감 등을 위해 외주화하면서 안전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탓이다. 수년 전부터 지적돼 온 '위험의 외주화'다.

노동계와 야당에서는 안전을 무시한 기업활동을 통해 얻는 이익은 막대하지만, 안전 무시에 따른 산재 사고 시 처벌은 미약하므로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등을 통해 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 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라면 그 이름에 걸맞게 노동계, 정치권과 협의하면서 산재를 줄이기 위한 정책·입법적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통계 꼼수로 산재 숫자를 줄이는 등 거꾸로 가고 있어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21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사업주가 지방 고용노동청에 보고해야 할 산업재해의 대상을 현행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서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4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또 현재는 위와 같은 재해 발생 시 사업주가 1개월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지방 고용노동청에 제출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보고기한이 초과했더라도 지방 고용노동청장이 15일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의 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자가 해고의 위협을 무릅쓰고 산재 은폐를 고발하더라도, 노동부가 이를 사업주에게 통지하고 사업주가 15일 이내에 보고만 하면 면죄부를 줄 수 있도록 바뀌는 것이다.

이 개정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노동계는 산재 은폐를 노동부가 나서서 더욱 확대하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행규칙 개정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정부 재량으로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 있으므로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정부 내에서 조용히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 몇 줄의 규칙 개정은 장기적으로 노동환경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

▲ 민주노총, 416연대 안전사회위원회,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제정연대 소속 단체 회원들이 4월 2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2016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한 뒤 산재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의식으로 안전 장비 위에 추모의 꽃을 놓고 있다. ⓒ김철수 기자



OECD 산재 사망 1위국 오명 부담?
산재통계 기준 바꿔 사망자 수 줄여

노동부는 과거 통상임금의 범위를 축소하는 지침을 내놓고,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행정해석 등을 내놓아 "노동부냐? 기업부냐?"는 비판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노동자의 권익 보다는 기업의 이윤에 더욱 신경 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산재 문제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데, 노동부는 산재 통계 기준을 변경해 산재 사망자 통계도 줄이고 있다.

노동부는 2011년 '산업재해통계업무처리규정'을 개정했다. 이 개정을 통해 노동부는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 사업장 밖의 교통사고, 체육 행사, 폭력 행위에 의한 사망,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을 지나 사망한 경우 등은 산재 사망 통계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과거에는 모두 산재 통계에 포함되던 내용이었다.

이것의 문제점은 산재로 보상받은 경우에도 노동부의 산재 통계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산재 보상을 받은 사망의 경우 매년 200여 명가량이 산재 통계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면, 2014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보상을 받은 사망자는 2,134명인데,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통계업무처리규정에 따른 산재 사망자는 1,850명이다. 근로복지공단 통계보다 284명이나 적다.

노동부는 새 업무 규정을 적용해 2003년 이후 산재 사망 통계를 새로 작성했다. 이렇게 하면서 2003년 이후 산재 사망자가 매년 200~300명씩 줄어든 통계가 새로 산출됐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3,087명이 통계에서 사라졌다.

노동부는 업무처리 규정을 왜 개정한 걸까? 노동계에서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오명을 씻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통계 기준을 바꿔 산재 사망률을 낮추려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ILO(국제노동기구)는 산재통계 권고 지침에서 교통사고, 체육 행사 등 사업장 행사 사고나 폭력 행위 사고 등이 업무와 관련성 있어서 산재보상을 받으면 산재통계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업무처리규정 개정 이유에 대해 "사업장 밖 재해는 예방할 수 있는 재해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출처  산재 사망자 3087명이 통계에서 사라진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