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새누리 ‘색깔론’으론 2002년 박근혜도 ‘종북’?

새누리 ‘색깔론’으론 2002년 박근혜도 ‘종북’?
2007년 유엔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놓고
철지난 색깔론으로 문재인 전 대표 비난
1963년 아버지 박정희도 색깔론 피해자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 | 등록 : 2016-10-16 16:57 | 수정 : 2016-10-16 18:01


▲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펴낸 '빙하는 움직인다'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견해를 문재인 당시 실장이 수용했으며,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의 뜻을 존중해 기권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2007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때 우리 정부가 기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의사를 타진했다는 논란은 당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회고록을 펴내면서 불거졌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가 정부의 방침을 결정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 때 정부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문재인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 인권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묻는 것은 타당한 일입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새누리당 의원들과 언론의 문제 제기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15일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2007년은 한반도 관리의 다양한 전략을 토론하던 시기였습니다. 정상회담 직후라는 시기적 특성 속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하여 1) 찬성 → 국제공조 → 북한 개선 유도라는 전략과 2) 기권 → 한국의 주도성 확장 → 북한/미국 설득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두고 정부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가 기준이었습니다.

외교부는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습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정상회담 후 남북총리회담과 국방장관회담 등 다양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보수 성향 언론의 문제 제기에 대한 비교적 성실한 답변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박맹우 의원을 위원장으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대북결재사건 태스크 포스’(가칭)를 구성했습니다. 길게 끌고 가려는 의도입니다.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문 전 대표는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 북한 지도부의 심기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라며 “북한 주민보다 북한 독재정권을 더 존중하는 태도, 한편으로는 인권 보호에 국제사회의 적(敵)인 테러단체까지 인정하자는 과잉 대응 등 문 전 대표의 오락가락 가치관, 갈팡질팡 안보관이 정상적인지 묻고 싶다. 아울러 문 전 대표가 사드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이유도 북한 정권이 반대하기 때문인지 묻고 싶다”라고 공격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색깔론입니다. 왜 그럴까요? 새누리당이 철지난 색깔론으로 문재인 전 대표를 공격하는 이유가 뭘까요? 친박 성향 새누리당 지도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청원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 종속 국가도 아닌데 북한에 알아봐서 결정하자? 국기를 흔들 문제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문서 열람위원회를 구성해 즉각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누리당 단독으로라도 사실을 파악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는 16일 이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6일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제34회 대통령기 이북도민 체육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북한의 그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이탈해 온 많은 주민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러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우리 말고 세계 각국의 유엔에서 그러한 인권을 탄압 하는 걸 중지하라는 촉구 결의안을 만드는데 우리나라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장과 거기에 관계된 장관들이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를 북한 당국에다 물어서 거기서 반대를 하니깐 기권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접하고 또한 다시 한번 저는 막막함을 느낀다. 반드시 이 진상은 규명을 해내서 이러한 사람들이 다시는 이 정부에서 일할 수 없도록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

이정현 대표는 15일에는 ‘2016 남북 어울림 한마당’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내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많은 국방 예산을 쓰고 젊은이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시간을 들이고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데 그 적들(북한)하고 내통해서 이런 식으로 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하면 남북 공식 대화이고 국민 모르게 했으면 내통이지 뭐냐.”

“공식 대화를 통해서도 할 수 있는데 뭣 때문에 국민 모르게 했느냐. 당당하고 떳떳하면 숨길 이유가 없다.”

앞서 지난 14일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런 논평을 냈습니다.

“음주단속을 하는데 음주중인 대상자들에게 단속을 해도 되는지 물어본 어처구니 없는 충격적인 일이다. 국기문란 성격의 사건이다.”

“결국 문 전 대표는 북한의 인권탄압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마저 외면하고 북한 정권의 북한 동포에 대한 인권탄압을 묵인 방조한 것이다. 북한 정권의 눈치만 살피고 최악의 인권유린 상태에 놓여있는 북한 동포를 철저히 외면하는 위험천만하고 그릇된 태도가 얼마나 반인륜적인 폭거인지 진지하게 고민이라도 하길 바란다.”

“과거 엔엘엘 발언을 생각만 해도 문 전 대표는 대단히 불안하고 위험한데, 이번 파문까지 더해 이런 위험천만한 대북관을 가진 분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

서청원 의원은 이른바 ‘친박좌장’을 자처하는 정치인입니다.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 대표의 ‘대변인격’과 박근혜의 ‘정무수석’, ‘홍보수석’을 지낸 사람입니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20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박근혜 대변인을 했습니다. 따라서 세 사람의 생각과 발언은 박근혜와 ‘싱크로율 100%’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친박세력의 색깔론 제기는 박근혜의 ‘최순실-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한 물타기 용도라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파장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뭐라고 설명하든 어차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친박세력의 맹목적 색깔론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이들의 색깔론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불온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자가당착인지는 쉽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민 모르게 하면 ‘내통’이라는 이정현 대표의 말은 정치인의 발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경미 대변인이 16일 이런 논평을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전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남북한 사이의 비밀접촉들은 무엇인가. 1971년 11월부터 1972년 3월까지 남북한 적십자사 실무자들의 비밀접촉, 1972년 5월 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 그리고 그 직후 북한 부수상의 서울 방문에 이르기까지 7·4 남북공동성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루어졌던 그 의미심장한 비밀 접촉들을 우리 당은 결코 ‘남북간 내통’이라 폄하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적 존재입니다. 전쟁을 치렀던 적입니다. 동시에 통일을 위해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는 상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친박세력의 맹목적 색깔론은 북한을 적으로만 보겠다는 외눈박이 논리입니다. 친박세력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북한과 했던 모든 대화와 협상은 불법적인 것이 됩니다. 박근혜는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 2002년 5월 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협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측과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 그들도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지킬 것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북한 방문을 통해 이런 확신을 얻었다.”

박근혜와 김정일 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2002년 9월 상암경기장에서 남북한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정몽준 전 의원의 자서전에 따르면 박근혜는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약속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또 붉은 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박근혜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는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후하게 평가했는데, 정몽준 전 의원은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정몽준 전 의원의 기억입니다.

지금 친박세력이 문재인 전 대표에게 들이대는 색깔론을 박근혜의 방북과 그 이후 언행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박근혜는 반국가단체 수괴인 김정일 위원장과 회합하고 그의 지령에 따라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고무·찬양한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자가 됩니다.

▲ 19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국립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박정희 정부의 남북적십자회담과 7·4 남북공동성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1963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 쪽에서 제기한 색깔론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지금 색깔론을 마구 휘두르는 박근혜가 바로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박정희 후보가 신문 광고로 실었던 반박문의 일부 내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비이성적 색깔론의 만행에 대한 박정희 후보의 분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색깔론을 놓고 벌어지는 역사의 악순환과 역설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우리들은 이제 이 나라 사회의 근대화 작업을 끈덕지게 방해하고 있는 일체의 매카시즘을 타도, 청소해야 할 공동의 전선에 섰습니다. (…) 매카시즘의 한국적 아류들인 그들은 그 악습의 보검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무새우(시커먼 새우)를 매카시즘이라는 번철(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새빨간 빨갱이로 만들려는 수법을 농하고 있습니다. (…) 지난날의 우리 헌정사를 더듬어볼 때 여러분들은 오늘의 야당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 지성인들의 건설적인 발언을 매카시즘적인 수법으로 탄압해왔는가를 똑똑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참다운 반공’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참다운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 지반인 전근대적인 유제가 위협을 당하면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상투적인 술어로 상대세력을 학살시켰던 것이 한국적 매카시즘의 아류들이 저질러온 행적이었습니다. (…) 무슨 일이 있든지 우리는 차제에 한국적 매카시즘의 신봉자를 우리 사회에서 일소시키기 위해 분연히 궐기하여 과감히 투쟁합시다.”(<동아일보> 1963년 10월 5일치 광고)


출처  새누리 ‘색깔론’으론 2002년 박근혜도 ‘종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