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을 박정희체제 청산의 기회로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역사
[민중의소리]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 발행 : 2016-12-26 13:21:13 | 수정 : 2016-12-26 13:21:13
겉으로는 튼튼해 보이는 거대한 뚝도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가깝게는 이승만정권이 그랬다. 이승만 정권은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던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어 일어난 4월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더 가깝게는 박정희 정권이 같은 길을 걸었다.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의 저항을 짓밟기 위해 중앙정보부, 군대, 검찰, 경찰에다가 언론과 재벌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나 부마민중항쟁으로 위기감을 느낀 김재규가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자 유신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금 박근혜 정권의 처지도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는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뿐이다.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 때문에 정권이 끝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만약 최순실이 아니었다면 박근혜는 별 문제 없이 정해진 5년 임기를 다 채우고 웃으면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원집정부제 개헌 등을 통해 사실상 권력을 계속 행사한다는 망상을 실현시킬 수 있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이나 박정희도 김주열의 죽음이나 김재규의 거사가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민의를 거스르는 독재정권 자체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사실은 일어날 게 일어나서 종말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잘 한 건 거의 없다. 반면에 잘못한 걸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 남의 손가락까지 빌려야 할 지경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계속되는 대형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있으나 마나 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기껏해야 중동에 가서 일하면 된다는 엉뚱한 이야기나 늘어놓았다. 청년실업을 빌미로 자본의 오랜 요구인 더 쉬운 해고를 강행하려고도 했다. 우리 경제의 숨겨진 뇌관이 된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폭발 직전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1년 동안에 가계부채가 131조 원이나 늘어났다. 전체 가계부채는 1,300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서민들의 민생은 외면한 채 최순실과 재벌의 배 속을 채우는 데만 몰두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이 독일로 빼돌린 재산만 10조 원대라고 한다. 서민들이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발하는데도 재벌의 사내보유금은 사상 최대인 700조 원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정경유착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재벌은 얼마간의 정치자금을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제공하고는 그 대가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재벌이 챙기는 이익이 많으면 많을수록 서민의 살림살이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권은 겉으로는 민생 타령을 하면서 실제로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농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전교조와 통합진보당 탄압, 공영방송 장악과 언론탄압, 역사교과서 국정화, 테러방지법 제정 등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가 하면 민주정부 10년 동안 힘들게 이루어 놓은 남북대화와 평화통일 움직임을 하루아침에 파탄내고 다시 한반도를 냉전시대의 전쟁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자세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이다. 고작 10억 엔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눈물을 일본의 극우 아베정권에 팔아넘기더니 이제는 미국 자본의 배만 부르게 하는 사드 기지 설치를 강행하려고 한다.
아마 다른 대통령이 이 정도의 실정을 저질렀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에게는 설사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하겠다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었다. 이들의 묻지마 지지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실정은 계속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의 국정교과서 사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엉터리 합의는 콘크리트 지지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나쁜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이에 박근혜 정권 붕괴의 조짐은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만이 이런 조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균열은 이제 뚝을 무너뜨리는 구멍이 되었다. 이미 국민의 80%가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고 있으니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 몰락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본인이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서는 최순실의 조종에 놀아나는 ‘꼭두박씨’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박근혜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순실만 아니었다면 박근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권은 태생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이겼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박정희 체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역사의 시계를 유신독재의 1970년대로 후퇴시키려고 한 데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박근혜가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의 달콤한 구호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던 서민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도록 했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고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착시현상까지 겹쳐지면서 잘 살아보기 위한 선택으로 박근혜를 찍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 체제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도 서민 생활고를 해결하고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따뜻한 보수를 기대하고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박근혜의 본색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재벌과 뒷거래를 하는 박정희의 통치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박근혜는 재벌총수를 청와대로 부르거나 측근을 재벌총수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거액을 바치도록 요구했다. 그러면 재벌총수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이건 기업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터진 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최순실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적 재산은 정경유착의 추한 결과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박근혜야말로 박정희교라는 사교집단의 가장 충실한 교도라고 평가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박근혜에게는 박정희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제2의 유신체제’로 규정된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이 보인 여러 행태는 박정희 체제와 판박이다.
예컨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가 혁신세력에 용공의 혐의를 씌워 탄압했듯이 통합진보당에 종북 낙인을 찍어 탄압했고 교원노조를 강제로 해산시켰듯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유신체제 선포 직후 국사교과서의 국정제를 강행했듯이 딸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역작이라는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기 위해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박정희를 신격화하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은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이 유신체제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는 모든 개인이 국가나 민족, 아니 더 정확하게는 권력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 계도되고 동원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는 건 아버지인 박정희나 딸인 박근혜가 같다. 현행 헌법 1조 2항에 분명히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식으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를 이끄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도로 박근혜’를 막기 위한 적폐청산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적폐 가운데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살인 특검 도입, 성과퇴출제 저지, 언론개혁 및 방송법 개정, 사드 배치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가 꼽혔다. 이들 현안은 모두 우리가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 사건은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어느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국민의 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는 유신체제의 국가주의 논리가 짙게 배여 있다.
임금제나 해고 관련 사항은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사합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노사합의는 배제한 체 성과퇴출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성과퇴출제는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던 유신체제의 재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일부 진보언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심지어는 공영방송마저 ‘박비어천가’의 정권방송으로 추락했다. 그러니 2016년 현재 국경없는 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역대 최저인 70위로 추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언론통제는 박정희 정권이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을 장악한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반대, 특히 지역주민의 목숨을 건 저항에도 불구하고 안보라는 미명 아래 사드 기지 설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드 문제는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대미 종속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월남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박정희 정권과 닮은꼴이다.
국정교과서는 이름마저 똑같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 선포 직후에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를 통해 유신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했다. 역사교과서 발행제도는 민주화 과정에서 검정제로 바뀌었는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다시 국정제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려했던 대로 박정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여섯 적폐는 하나같이 박정희 체제로 이어진다. 6대 긴급현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원전 문제도 그렇다. 처음으로 원전이 가동된 것은 유신체제가 무너지기 1년 전인 1978년이었다. 지금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전 국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일본군‘위안부’ 합의나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정권은 초기부터 대일 굴욕외교를 반복했다. 한일협정 과정에서 일제강점에 따른 물질적 피해와 강제동원 피해를 헐값에 합의함으로써 일본정부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무력화시킨 것이 박정희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도 단돈 10억 엔에 일본의 아베정권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엉터리 합의를 한 것도 모자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통해 사실상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밀어붙이는 등 일본 재무장 움직임을 방조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박근혜의 불명예 퇴진을 계기로 박정희의 유령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박정희 체제의 종식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민주정부 10년도 되살아나는 박정희의 유령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의 뻘짓에 의해 이제 박정희 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켜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존중되고 누구에게나 기회균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박정희·박근혜 지지세력의 대규모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촛불혁명에 대한 반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보수언론의 반동 움직임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친박세력은 이미 촛불혁명에 대해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더욱 더 두 눈을 부릅뜨고 반동에 맞서야 한다.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박정희 기념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정희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추종자들이 자기 돈으로 박정희를 기념하겠다고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를 기념하는 데 국민의 혈세를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누가 뭐래도 박정희는 1인영구집권을 위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이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 및 반란죄로 사법처리되었듯이 박정희도 내란 및 반란죄로 사법처리되는 것이 마땅했다. 다만 박정희는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죽었기 때문에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더욱이 박정희체제에서 자행된 사법살인도 한두 건이 아니다. 불법고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박정희를 기념하는 데 더 이상 국민의 혈세를 쓸 수는 없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미시의 박정희 생가 근처에 조성된 새마을테마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동상이다. 이 동상의 높이는 5m나 된다. 동상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게다가 동상에는 금빛이 칠해져 있다. 평양에 있는 거대한 김일성 동상을 연상시킨다. 김일성 동상이 김일성 우상화, 신격화의 상징이라면 박정희 동상도 마찬가지다. 구미시의 박정희 우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탄신제, 새마을테마공원 등의 명목으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박정희 기념사업을 위해 구미시에 투입된 예산만 1,441억 원에 이른다. 현직 구미시장의 입에서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을 통해 박정희 신격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박정희 기념예산이 전체적으로 더 늘어났다. 4년 동안에 쓴 예산만 해도 3,4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이명박정권 시절의 840억 원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지지가 강했던 지역(경상북도)이나 새누리당 출신이 지방자치단체당을 맡은 지역(서울시 중구 등)에서는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서라도 박정희 기념사업을 하려는 작태를 보였다. 예컨대 울릉군에는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지방을 순시할 때 하루 묵었던 숙소에 기념관을 세운답시고 1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동상과 흉상도 적지 않다. 구미시만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새마을테마공원의 거대한 금빛 동상 외에 박정희의 모교인 구미초등학교에도 박정희 동상이 있고 구미시 곳곳에 여러 개의 소년 박정희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밖에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이 있는 경상북도 청도의 신거역, 경기도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등의 여러 곳에도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얼마 전에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황당한 주장을 한 적도 있다. 올해 초에는 대전의 과학기술연구원 안에 있던 장영실 동상을 외진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국 초등학교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대한민국의 중심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박정희 동상을 세워 반신반인 박정희를 기리자는 주장이 입만 열면 김일성 우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박정희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 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인권을 탄압한 박정희 기념사업에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국가 차원의 박정희 기념사업은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기왕에 이루어진 박정희 기념사업도 박정희의 공과를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기념·도서관 문제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 2012년 개관한 박정희 기념·도서관에는 국민의 혈세 208억 원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시민들은 독재자를 기리는 시설물에 반대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반대움직임을 무마하기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도서관의 성격으로 운영하기로 약속했다. 기념·도서관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말만 도서관이지 열람실 하나 없는 단순한 기념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박정희 미화 일색의 기념관이다. 심지어는 역사교과서에도 군사정변으로 적혀 있는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미화하는 반면 박정희 체제가 독재체제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박정희 미화 일변도의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애초의 약속대로 시민을 위한 공공도서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늘 논란이 되어 오던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도 마찬가지다. 정수장학회의 모태는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부산의 대기업가인 김지태로 강탈한 부일장학회였다. 박정희는 영남대학교도 강제로 빼앗았다. 영남대학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우상화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대학원까지 설치될 정도였다.
이름에서부터 육영수를 연상시키는 육영재단은 실제로도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를 내세워 만든 공익재단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재단 출연금의 조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박정희가 죽은 다음에는 박정희 자식들 사이에서 재산 때문에 분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유혈사태까지 일으켜가면서 박근혜가 동생 박근령으로부터 운영권을 탈취했다.
박근혜는 한때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의 이사장이었다. 배후에는 최태민 일가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검은 그림자는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2005년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관련 재산(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학교 등)은 최대 10조 원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는 육영재단 부동산만 해도 4조 원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은 결코 박근혜의 개인재산이 아니다. 박정희가 권력을 앞세워 타인으로부터 강탈했거나 정경유착으로 조성한 불법재산이다. 불법은 맞지만 이미 시효가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불의를 합리화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권력을 앞세워 강탈한 재산은 원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출처 [이준식 칼럼] 박근혜 퇴진을 박정희체제 청산의 기회로
박근혜와 함께 청산해야할 과제 - 역사
[민중의소리]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 발행 : 2016-12-26 13:21:13 | 수정 : 2016-12-26 13:21:13
마지막 날이 임박한 박근혜 정권
겉으로는 튼튼해 보이는 거대한 뚝도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가깝게는 이승만정권이 그랬다. 이승만 정권은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던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어 일어난 4월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더 가깝게는 박정희 정권이 같은 길을 걸었다.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의 저항을 짓밟기 위해 중앙정보부, 군대, 검찰, 경찰에다가 언론과 재벌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나 부마민중항쟁으로 위기감을 느낀 김재규가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자 유신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금 박근혜 정권의 처지도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는 국회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뿐이다.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 때문에 정권이 끝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만약 최순실이 아니었다면 박근혜는 별 문제 없이 정해진 5년 임기를 다 채우고 웃으면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원집정부제 개헌 등을 통해 사실상 권력을 계속 행사한다는 망상을 실현시킬 수 있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이나 박정희도 김주열의 죽음이나 김재규의 거사가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민의를 거스르는 독재정권 자체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사실은 일어날 게 일어나서 종말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 박근혜에 대한 국회 탄핵 가결 이후 처음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대로에서 날씨 탓인지 다소 줄어든 가운데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권의 계속된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탄핵
돌이켜 보면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잘 한 건 거의 없다. 반면에 잘못한 걸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 남의 손가락까지 빌려야 할 지경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계속되는 대형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있으나 마나 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기껏해야 중동에 가서 일하면 된다는 엉뚱한 이야기나 늘어놓았다. 청년실업을 빌미로 자본의 오랜 요구인 더 쉬운 해고를 강행하려고도 했다. 우리 경제의 숨겨진 뇌관이 된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폭발 직전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1년 동안에 가계부채가 131조 원이나 늘어났다. 전체 가계부채는 1,300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서민들의 민생은 외면한 채 최순실과 재벌의 배 속을 채우는 데만 몰두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이 독일로 빼돌린 재산만 10조 원대라고 한다. 서민들이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발하는데도 재벌의 사내보유금은 사상 최대인 700조 원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 당시의 정경유착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재벌은 얼마간의 정치자금을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제공하고는 그 대가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재벌이 챙기는 이익이 많으면 많을수록 서민의 살림살이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권은 겉으로는 민생 타령을 하면서 실제로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농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전교조와 통합진보당 탄압, 공영방송 장악과 언론탄압, 역사교과서 국정화, 테러방지법 제정 등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가 하면 민주정부 10년 동안 힘들게 이루어 놓은 남북대화와 평화통일 움직임을 하루아침에 파탄내고 다시 한반도를 냉전시대의 전쟁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자세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이다. 고작 10억 엔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눈물을 일본의 극우 아베정권에 팔아넘기더니 이제는 미국 자본의 배만 부르게 하는 사드 기지 설치를 강행하려고 한다.
아마 다른 대통령이 이 정도의 실정을 저질렀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에게는 설사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하겠다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었다. 이들의 묻지마 지지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실정은 계속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의 국정교과서 사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엉터리 합의는 콘크리트 지지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나쁜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이에 박근혜 정권 붕괴의 조짐은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만이 이런 조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올해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균열은 이제 뚝을 무너뜨리는 구멍이 되었다. 이미 국민의 80%가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고 있으니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연 전교조 탄압-부당해고 자행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박정희-박근혜 정부에 대한 피켓이 보이고 있다. ⓒ양지웅 기자
박정희 체제의 데자뷰, 박근혜 정권
박근혜 정권 몰락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본인이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서는 최순실의 조종에 놀아나는 ‘꼭두박씨’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박근혜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순실만 아니었다면 박근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권은 태생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이겼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박정희 체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역사의 시계를 유신독재의 1970년대로 후퇴시키려고 한 데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박근혜가 내세운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의 달콤한 구호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던 서민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도록 했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고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착시현상까지 겹쳐지면서 잘 살아보기 위한 선택으로 박근혜를 찍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 체제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도 서민 생활고를 해결하고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따뜻한 보수를 기대하고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박근혜의 본색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재벌과 뒷거래를 하는 박정희의 통치술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박근혜는 재벌총수를 청와대로 부르거나 측근을 재벌총수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거액을 바치도록 요구했다. 그러면 재벌총수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이건 기업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터진 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최순실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적 재산은 정경유착의 추한 결과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박근혜야말로 박정희교라는 사교집단의 가장 충실한 교도라고 평가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박근혜에게는 박정희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제2의 유신체제’로 규정된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이 보인 여러 행태는 박정희 체제와 판박이다.
예컨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가 혁신세력에 용공의 혐의를 씌워 탄압했듯이 통합진보당에 종북 낙인을 찍어 탄압했고 교원노조를 강제로 해산시켰듯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유신체제 선포 직후 국사교과서의 국정제를 강행했듯이 딸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역작이라는 새마을운동을 부활시키기 위해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박정희를 신격화하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은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이 유신체제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는 모든 개인이 국가나 민족, 아니 더 정확하게는 권력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 계도되고 동원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는 건 아버지인 박정희나 딸인 박근혜가 같다. 현행 헌법 1조 2항에 분명히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식으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촉구 제9차 범국민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뉴시스
‘도로 박근혜’를 막기 위한 적폐청산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를 이끄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도로 박근혜’를 막기 위한 적폐청산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적폐 가운데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살인 특검 도입, 성과퇴출제 저지, 언론개혁 및 방송법 개정, 사드 배치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가 꼽혔다. 이들 현안은 모두 우리가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 사건은 국가 공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어느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국민의 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는 유신체제의 국가주의 논리가 짙게 배여 있다.
임금제나 해고 관련 사항은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사합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노사합의는 배제한 체 성과퇴출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성과퇴출제는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던 유신체제의 재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일부 진보언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심지어는 공영방송마저 ‘박비어천가’의 정권방송으로 추락했다. 그러니 2016년 현재 국경없는 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역대 최저인 70위로 추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언론통제는 박정희 정권이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을 장악한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반대, 특히 지역주민의 목숨을 건 저항에도 불구하고 안보라는 미명 아래 사드 기지 설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드 문제는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대미 종속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월남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박정희 정권과 닮은꼴이다.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연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국정교과서는 이름마저 똑같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 선포 직후에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를 통해 유신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했다. 역사교과서 발행제도는 민주화 과정에서 검정제로 바뀌었는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다시 국정제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려했던 대로 박정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었다.
이상에서 언급한 여섯 적폐는 하나같이 박정희 체제로 이어진다. 6대 긴급현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원전 문제도 그렇다. 처음으로 원전이 가동된 것은 유신체제가 무너지기 1년 전인 1978년이었다. 지금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전 국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일본군‘위안부’ 합의나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정권은 초기부터 대일 굴욕외교를 반복했다. 한일협정 과정에서 일제강점에 따른 물질적 피해와 강제동원 피해를 헐값에 합의함으로써 일본정부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무력화시킨 것이 박정희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도 단돈 10억 엔에 일본의 아베정권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엉터리 합의를 한 것도 모자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통해 사실상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밀어붙이는 등 일본 재무장 움직임을 방조하고 있다.
▲ 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내 박정희 흉상이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으며 ‘철거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등 훼손돼 있다. ⓒ뉴시스
박정희체제 청산과 박정희 기념사업 중단
이제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박근혜의 불명예 퇴진을 계기로 박정희의 유령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박정희 체제의 종식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민주정부 10년도 되살아나는 박정희의 유령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의 뻘짓에 의해 이제 박정희 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켜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존중되고 누구에게나 기회균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박정희·박근혜 지지세력의 대규모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촛불혁명에 대한 반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보수언론의 반동 움직임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친박세력은 이미 촛불혁명에 대해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더욱 더 두 눈을 부릅뜨고 반동에 맞서야 한다.
박정희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박정희 기념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정희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추종자들이 자기 돈으로 박정희를 기념하겠다고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를 기념하는 데 국민의 혈세를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누가 뭐래도 박정희는 1인영구집권을 위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이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 및 반란죄로 사법처리되었듯이 박정희도 내란 및 반란죄로 사법처리되는 것이 마땅했다. 다만 박정희는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죽었기 때문에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더욱이 박정희체제에서 자행된 사법살인도 한두 건이 아니다. 불법고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박정희를 기념하는 데 더 이상 국민의 혈세를 쓸 수는 없다.
▲ 2011년 11월 14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등이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에서 개최된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경북도 제공
지금 전국 곳곳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구미시의 박정희 생가 근처에 조성된 새마을테마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동상이다. 이 동상의 높이는 5m나 된다. 동상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게다가 동상에는 금빛이 칠해져 있다. 평양에 있는 거대한 김일성 동상을 연상시킨다. 김일성 동상이 김일성 우상화, 신격화의 상징이라면 박정희 동상도 마찬가지다. 구미시의 박정희 우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탄신제, 새마을테마공원 등의 명목으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박정희 기념사업을 위해 구미시에 투입된 예산만 1,441억 원에 이른다. 현직 구미시장의 입에서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을 통해 박정희 신격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박정희 기념예산이 전체적으로 더 늘어났다. 4년 동안에 쓴 예산만 해도 3,4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이명박정권 시절의 840억 원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지지가 강했던 지역(경상북도)이나 새누리당 출신이 지방자치단체당을 맡은 지역(서울시 중구 등)에서는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서라도 박정희 기념사업을 하려는 작태를 보였다. 예컨대 울릉군에는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지방을 순시할 때 하루 묵었던 숙소에 기념관을 세운답시고 1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동상과 흉상도 적지 않다. 구미시만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새마을테마공원의 거대한 금빛 동상 외에 박정희의 모교인 구미초등학교에도 박정희 동상이 있고 구미시 곳곳에 여러 개의 소년 박정희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이밖에 새마을 발상지 기념관이 있는 경상북도 청도의 신거역, 경기도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등의 여러 곳에도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 설치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한 참석자가 박정희 조형물 사이를 지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얼마 전에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황당한 주장을 한 적도 있다. 올해 초에는 대전의 과학기술연구원 안에 있던 장영실 동상을 외진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국 초등학교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대한민국의 중심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박정희 동상을 세워 반신반인 박정희를 기리자는 주장이 입만 열면 김일성 우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박정희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 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인권을 탄압한 박정희 기념사업에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국가 차원의 박정희 기념사업은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기왕에 이루어진 박정희 기념사업도 박정희의 공과를 모두 보여주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 박정희 기념관 전시실 곳곳에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와 관련해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기념·도서관 문제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 2012년 개관한 박정희 기념·도서관에는 국민의 혈세 208억 원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시민들은 독재자를 기리는 시설물에 반대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반대움직임을 무마하기 위해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도서관의 성격으로 운영하기로 약속했다. 기념·도서관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말만 도서관이지 열람실 하나 없는 단순한 기념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박정희 미화 일색의 기념관이다. 심지어는 역사교과서에도 군사정변으로 적혀 있는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미화하는 반면 박정희 체제가 독재체제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박정희 미화 일변도의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애초의 약속대로 시민을 위한 공공도서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늘 논란이 되어 오던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도 마찬가지다. 정수장학회의 모태는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부산의 대기업가인 김지태로 강탈한 부일장학회였다. 박정희는 영남대학교도 강제로 빼앗았다. 영남대학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우상화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대학원까지 설치될 정도였다.
이름에서부터 육영수를 연상시키는 육영재단은 실제로도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를 내세워 만든 공익재단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재단 출연금의 조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박정희가 죽은 다음에는 박정희 자식들 사이에서 재산 때문에 분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유혈사태까지 일으켜가면서 박근혜가 동생 박근령으로부터 운영권을 탈취했다.
박근혜는 한때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의 이사장이었다. 배후에는 최태민 일가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검은 그림자는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2005년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관련 재산(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학교 등)은 최대 10조 원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는 육영재단 부동산만 해도 4조 원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은 결코 박근혜의 개인재산이 아니다. 박정희가 권력을 앞세워 타인으로부터 강탈했거나 정경유착으로 조성한 불법재산이다. 불법은 맞지만 이미 시효가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불의를 합리화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권력을 앞세워 강탈한 재산은 원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출처 [이준식 칼럼] 박근혜 퇴진을 박정희체제 청산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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